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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홀도-152화 (152/600)

#152화. 第三十一章 미완성(未完成) (2)

“이거 참 서럽네.”

서리가헌이 툴툴 웃었다.

산중의 제왕인 호랑이도 이빨 빠지고 발톱 빠지면 늑대에게 잡아먹히는 법이다.

무인은 더하다. 틈만 보이면 죽이려고 달려드는 자가 한둘이 아니다. 그러니 늘 틈을 보이지 말아야 한다. 자신의 몸 상태는 자신이 관리해야 한다.

저들은 자신이 팔 하나 잃은 사실을 안다.

츠츠츳! 츠츠츠츳!

주위에서 맹수 냄새가 풍긴다. 벌써 늑대들이 달려들기 시작했다.

스읏! 싹둑!

서리가헌은 칼을 뽑아서 옆에 있던 나뭇가지를 잘라냈다. 그리고 땅에 떨어진 나뭇가지를 집어서 입에 물었다.

잠시 숨을 고르고 왼팔을 쳐다봤다.

반철도는 매우 정확하게 터졌다. 아걸이 일부러 왼팔을 노린 게 아니다. 아걸은 심장을 노렸다. 뭉툭한 반철도가 섬광처럼 심장을 향해 날아오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자신이 그 칼을 피해냈다.

심장을 피하고, 몸통을 돌려세우고, 팔을 막 빼냈다.

모든 게 완벽했다. 자신이 생각해도 만족스러울 정도로 빨랐다. 목을 쳐낸 칼도 좋았다. 수비와 공격이 원래 생각했던 대로 정확하게 이루어졌다.

그런데 손가락 한 마디, 그 차이가 모든 걸 바꿔놓았다.

손가락 한 마디 정도를 피하지 못해서 팔에 일격을 당했다. 손가락 한 마디 정도를 더 깊이 찌르지 못해서 머리를 잘라내지 못하고 목만 그으며 지나갔다.

정말로 아쉽고 원망스러운 간격이다.

“후웁!”

서리가헌은 큰 숨을 들이켰다.

회생할 가능성이 단 일 푼만 있어도, 아니, 단 일 리 정도만 있어도 이런 결단은 하지 않는다. 어떻게든 팔을 살려보려고 애를 썼을 것이다.

왼팔은 도저히 살리지 못한다.

“이익!”

서리가헌이 칼을 휘둘렀다. 그리고,

“크윽!”

서리가헌은 칼을 쓰자마자 비명을 쏟아냈다.

왼팔이 싹둑 잘려서 땅에 떨어졌다. 잘린 팔에서는 피가 분수처럼 콸콸 쏟아졌다.

팔이 잘리는 아픔은 말로 표현하지 못한다.

뼈가 잘린다. 신경이 끊어진다. 근육이 썰린다. 심적인 고통까지 보태면 실제로 육체가 느끼는 고통은 천 길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보다 못하지 않다.

“크윽!”

서리가헌은 이를 악물었다.

까무러치지 않은 것만도 다행이다. 하지만 여기서 넋을 잃는다면 바로 죽는다. 늑대들이 달려들기 전에 과다 출혈로 일다경도 버티지 못하고 죽어버린다.

꾸욱! 꾹! 꾸욱!

견우혈(肩髃穴), 거궐혈(巨闕穴), 천정혈(天井穴)…… 어깨 부위에 붙은 혈은 모두 눌렀다.

당장 급하게 쏟아지는 피부터 멈춘다.

그리고 재빨리 녹선마황을 한 움큼 꺼내서 잘린 부위에 밀어 넣듯이 붙였다.

“크으으윽!”

다시 신음이 쏟아졌다.

녹선마황이 빠른 속도로 피를 빨아먹기 시작했다 아니, 피와 함께 엉겨 붙었다.

서리가헌은 웃옷을 벗어서 왼팔에 칭칭 동여맸다.

웬만하면 길에서 팔을 자르는 행동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팔을 살릴 수 없다는 것은 알았다. 그래서 급히 의원부터 찾아가서 집도를 받을 생각이었다.

한데 뜻하지 않게 늑대들이 나타났다.

덜렁거리는 팔을 가지고는 도저히 싸울 수 없는 강적이 목숨을 노린다.

사실, 이들은 적수가 아니었다. 팔만 멀쩡했다면 웃으면서 베어 넘겼을 무리다. 하지만 몸이 엉망이니 어쩌랴. 호랑이도 앞다리가 잘리면 늑대에게 먹히는 것을.

“끄으으윽!”

서리가헌은 신음을 쏟아내며 왼팔을 감쌌다.

헝겊이 상처를 건드릴 때마다 자신도 모르게 이 앓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퉤엣!”

서리가헌은 왼팔을 둘둘 말아 감자, 그제야 입에 물었던 나뭇가지를 뱉어냈다.

‘내가 아걸에게 팔을 잃을 줄은 몰랐군.’

이마에서 식은땀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전산은 고열로 펄펄 끓는데, 이마에서 흘러내리는 땀은 얼음처럼 차가웠다.

“끄응!”

서리가헌은 칼을 지팡이 삼아서 짚고 일어섰다. 그때다!

스스스슷! 스스스스!

주위에서 바람이 일렁거렸다. 숲이 흔들리고, 풀잎이 아삭아삭 소리를 냈다.

서리가헌 주위로 일단의 무인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후후! 칼귀신에게 이런 날이 올 줄이야.”

모습을 드러낸 자가 믿을 수 없다는 투로 말했다.

서리가헌은 그들을 쳐다봤다.

처음 보는 자들이다. 성검문 문도가 아니다. 무림 어떤 문파 소속도 아니다. 하지만 이들은 늑대다. 그것도 사람을 갈기갈기 물어뜯는 흉포한 맹수다.

“네놈들…… 뭐니?”

서리가헌이 나타난 자들을 가소롭다는 눈빛으로 쳐다봤다.

멸시의 눈은 저들도 가졌다. 그들의 눈에는 오히려 서리가헌이 쓰러지기 직전의 병든 환자일 뿐이다.

실제로 서리가헌은 심한 출혈로 인해서 안색이 백지장보다 하얗게 탈색되었다. 전신은 땀으로 범벅이 되어 있고, 잘린 팔은 여전히 지혈되지 않아서 핏물이 뚝뚝 떨어졌다.

칼 든 손도 부들부들 떨렸다. 저런 몸, 저런 손으로 칼이나 휘두를 수 있을지 모르겠다.

서리가헌은 병든 호랑이가 틀림없다.

“그래도 풍도곡 살귀이니 대접은 해줘야지?”

“대접은 무슨. 칼 맞고 쓰러지면 똥 되는 건 똑같은데, 얼른 죽이고 가자고.”

서리가헌은 저들 이야기를 들으면서 피식 웃었다.

자신에게 이런 날이 올 줄은 몰랐다. 일 초 상대도 안 되는 자들에게 수모까지 당할 줄이야.

“이게 뭐니! 이런 잡종들로 날 죽일 수 있겠니!”

서리가헌이 쩌렁 고함을 질렀다.

숲에는 이들을 부리는 자가 있다. 그 자에게 한 말이다.

“천하에 다시없는 칼 귀신도 취하면 취객이고, 죽으면 송장일 뿐. 당신 목숨 기꺼이 접수하지.”

쒜에에에엑!

한 사람이 창을 찔러왔다.

‘이놈들!’

서리가헌은 눈살을 찌푸렸다.

이들은 무인이 아니다. 이들은 들개다. 난전에 능한 자들이며, 사람을 많이 죽여 본 살인귀들이다.

그래서 싸우는 방식도 안다.

비록 서리가헌이 한쪽 팔을 잃었지만, 남은 팔만 가지고도 능히 도귀(刀鬼)가 되고도 남는다는 사실을 안다. 그러니 죽을 생각이 없다면 정면 승부를 걸지 않는다.

이 자들, 정상적으로 싸우지 않는다.

어떤 미친놈이 풍도곡 칼 귀신을 상대로 일대일 싸움을 하겠나. 제일 먼저 창 든 놈이 달려든 것만 봐도 모르겠나. 보나 마나 이들은 차륜전에 능한 자들이다.

‘내 목숨은 여기서 끝나겠군.’

서리가헌은 죽음을 예감했다.

최대한 싸우긴 하겠지만, 끈질기게 물고 늘어질 공격을 막아낼 자신이 없다.

하지만! 나는 일홀도다!

쒜에에에엑!

서리가헌은 일탄십검을 펼쳤다.

타탁! 타타타탁!

처음에는 느리고, 이어서 무척 빠르게 치달렸다. 신형을 쏘아냄과 동시에 창을 후려쳤다. 일도에 창끝을 쳐내고, 이도에 창대를 치고, 삼도에는 손잡이 윗부분까지 때렸다.

쒜에엑! 쒝!

등 쪽과 옆구리 쪽에서 찬바람이 불어왔다.

기습이 매우 날카로워서 목숨을 구하려면 당장 피해야 한다.

하지만 저들은 일홀문도를 아직도 몰랐다. 이런 경우, 절대로 물러서지 않는다는 사실도 몰랐다.

쒜에에엑!

서리가헌은 내처 달려들면서 네 번째 칼을 휘둘렀다.

파파파팟! 쒜에엑! 퍽퍽퍽!

창 든 자의 육신이 잘 익은 꽈리처럼 터졌다.

목에 일도, 가슴에 일도, 심장에 일도…… 삼도가 연속적으로 터지면서 핏물을 뽑아냈다.

“악!”

창 든 자가 짧은 비명을 쏟아냈다.

서리가헌은 명치 부근에 칼을 찔러 넣자마자 칼이 힘을 주어서 상대방의 몸을 옆으로 돌려세웠다.

퍼억!

옆구리를 찔러오던 검이 동료를 찔렀다.

산 자를 공격한 것은 아니다. 서리가헌이 상대를 돌려세웠을 때는 이미 절명한 후였다.

한 사람 공격은 사람으로 막았다. 하지만 등을 찔러 온 다른 공격은 미처 막지 못했다.

퍼억!

검이 옆구리를 깊게 찔렀다.

정말 아쉽다. 손가락 한 마디. 그 한 마디만큼만 빨리 피했다면 왼팔을 잃을 일도 없었고, 지금 옆구리를 찔릴 일도 없지 않겠나. 아니, 이들이 어떻게 감히 자신을 공격하겠나.

서리가헌은 일 검을 맞았지만, 그냥 맞지는 않았다.

검이 옆구리를 파고드는 순간, 그도 칼을 거꾸로 잡았다. 그리고 상대방의 목을 싸악 그었다.

“끄으으윽!”

상대방의 목에서 핏물이 주르륵 쏟아졌다.

“정말 이것들로 되겠니!”

서리가헌이 버럭 일갈을 내질렀다.

스스스스스! 스으읏!

숲에서 몇 명이 더 나타나더니 서리가헌을 포위했다.

다시 한번 느끼는 것이지만, 이들은 무인이 아니다. 전쟁에서 사람을 죽인 살귀다. 이들의 검은 무인의 검이 아니다. 전쟁을 동해서 터득한 검이다.

누가 이들에게 자신을 죽이라고 명령했을까?

생각할 필요도 없다. 공부 허도기다.

허도기가 풍도곡 살귀들을 모를까. 살귀들이 가진 야심을 모를까. 언젠가는 성검문과 일전을 겨루고자 한다는 숨겨진 속내를 전혀 몰랐을까.

풍도곡이 허도기를 알고 있는 만큼 허도기도 풍도곡을 알고 있다.

그러니 병들고 아픈 자는 가차 없이 베어내는 거다. 몸이 멀쩡할 때는 그나마 혹시 쓸모가 있을까 싶어서 살려두지만, 아프면 더는 쓸모가 없다.

솔직히 지금의 서리가헌 같은 자는 얼마든지 있다.

허도기가 필요한 것은 왼팔을 잃지 않은 서리가헌이다. 서리가헌이 정상적일 때는 상대할 자가 손꼽는다. 그때는 누구도 함부로 병기를 들지 못한다. 하지만 지금은…….

스슷! 스읏! 슷!

낯선 자들이 서리가헌을 포위했다.

“끝내 안 나타나니? 비겁하구나야! 협성림!”

서리가헌이 육군 이름을 불렀다.

사실, 이들이 협성림의 수하라고 단정 짓지는 못한다. 공부 허도기에게는 수족처럼 부리는 자가 네 명 있다. 그중 누구라도 이들과 같은 자들을 부릴 수 있다.

“마지막 가는 길에 일탄십검 좀 보여주지. 멀리서나마 그 유명한 칼을 구경했으면 하는데.”

숲에서 차가운 음성이 들려왔다.

협성림의 음성이 아니다. 칠군의 음성도 아니다.

공부 허도기의 또 다른 부하, 적위군인 것 같다.

“보여주지. 그런데, 그렇게 보고 싶다면 네가 직접 보면 안 되겠니? 나도 낯짝 좀 보게.”

“어디, 일탄십검 펼쳐봐!”

서리가헌을 포위하고 있던 자들이 일제히 달려들었다.

그때, 서리가헌의 등 뒤에서 아주 맑은 쇳소리가 울렸다.

터엉! 촤라라라랑!

연검(軟劍)이 바람을 가를 때처럼 가볍고 경쾌한 검음(劍音)이다.

사르륵!

부드럽게 날아와 날갯짓한다. 검을 슬쩍슬쩍 움직인다. 손끝으로 검을 잡은 듯 매우 유약하게 흔들거린다. 너무 약해서 장난스럽기까지 하다. 그런데,

슈아아악!

검이 느닷없이 변했다. 무슨 일이 있었나? 갑자기 눈앞으로 섬광이 스쳐 갔다.

“컥!”

서리가헌을 공격하던 사내가 풀썩 쓰러졌다.

사내는 가슴 혹은 배를 맞았는지, 엎드린 곳에서 피가 흘러내려 땅을 적셨다.

스스스슷!

무인들이 일제히 물러섰다.

서리가헌은 여인을 봤다.

“네가 몽……설?”

서리가헌이 여인의 이름을 불렀다. 처음 보는 여인인데, 깜짝 놀란 듯 두 눈을 부릅뜨며 물었다.

“절 알아요?”

“크크큿! 그렇군. 네가…… 아! 생략. 아직 이름을 부르면 안 되겠군. 듣는 귀가 많아서. 하하하! 오랜만이군. 네 검이면 죽을 만하지. 적어도 땀내 나는 놈들에게 죽는 것보다는 낫겠어. 하하하!”

서리가헌이 뭔가를 알아낸 듯 크게 웃었다.

그때 또 한 사람이 나타났다.

아걸이 목에 붕대를 둘둘 말아감은 채 다가왔다.

“배웅은 안 할 생각이었는데….”

“둘이 언제부터 알았지?”

서리가헌이 흥미로운 듯 물었다.

“아무래도 내 집에서 좀 쉬었다 가야 할 거 같은데? 가기를 고집하면 말리지는 않겠지만 말야.”

“…아니, 호의 받지.”

서리가헌이 냉큼 호의를 받아들였다.

“그렇게 말해주니 며칠 쉬었다가 가지. 후후! 기왕 쉬는 김에, 난 지금부터 좀 쉬어야겠어. 뒤 좀 처리해.”

서리가헌이 털썩 주저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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