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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홀도-153화 (153/600)

#153화. 第三十一章 미완성(未完成) (3)

서리가헌을 공격했던 무인들은 흔적 없이 사라졌다.

몽설이 나타나서 한 명을 벨 때까지는 누군가 방해꾼이 나타났구나 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바로 이어서 아걸이 나타났다. 이미 서리가헌을 제거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그들은 빠르게 사라졌다.

어차피 누가 공격했는지도 모른다.

서리가헌은 짐작 가는 사람이 있겠지만, 누구에게도 책임을 묻지 못한다.

또한, 책임을 물을 처지도 아니다.

서리가헌은 왼팔이 낫기만 하면 다시 옛날의 일홀도로 돌아갈 게 틀림없다.

서리가헌 같은 칼귀신에게 팔 하나 없는 것은 큰 장애가 아니다.

팔을 갓 잃어서 쩔쩔맬 때가 아니면 공격할 기회조차도 없다고 봐야 한다.

더욱이 서리가헌은 애초에 두 손으로 칼을 잡지도 않았다. 한 손만 사용했다. 왼팔이 있을 때보다 중심이동에서 조금 차이가 있겠지만, 그 정도의 차이는 금방 숙달될 것이다.

서리가헌이 허도기의 의도를 알았다고 해도 큰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사실, 허도기의 의도는 진작 알았다.

그러니 본인 스스로 알아서 몸조심했어야 한다.

언제든 지금처럼 또 아픈 상황이 되면 즉각 공격받을 것이다. 지금은 운이 좋아서 요행히 목숨을 구했지만, 언제까지 운이 따르지도 않을 것이다.

무인은 언제든 허점이 생기면 당한다.

“방금 공격한 사람들, 허도기지? 허도기가 왜 공격한 거야? 풍도곡과 성검문은 사부 몸에 칼을 댄 날부터 한통속이 된 게 아닌가?”

“후후! 말 좀 곱게 하지.”

“곱게 해도 같은 말이야. 우리가 말을 가려서 할 사이도 아니고.”

“저쪽은 두 부류로 나뉘지. 허도기를 아는 놈과 모르는 놈. 제자나 수하라고 똑같은 놈들이 아냐. 이번에 날 공격한 놈은 허도기의 의중을 모르는 놈이야.”

아걸이 서리가헌을 쳐다봤다.

서리가헌이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허도기는 진심을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않아. 그러니 직속 부하라는 것들도 모를 수밖에. 첫 번째 부류, 모르는 놈. 그놈들은 우릴 눈엣가시로 본다. 허도기가 인정을 베풀어서 우릴 살려두고 있다는 쪽이야. 그러니 기회만 닿으면 치려고 해. 우리가 칠 수 있으니까 자기들도 치겠다는 거지. 날 공격한 놈들도 이쪽이야. 허도기의 진심을 알아채지 못한 놈이지.”

“아는 놈은?”

“허도기가 우릴 살려두고 있는 진짜 이유를 짐작하는 놈이지 않겠니?”

“그 이유가 뭔데?”

“공갈 협박용.”

서리가헌이 뜻밖의 말을 했다.

공갈 협박용? 허도기가 공갈 협박을 할 사람도 있나? 그만한 위치에 있는 사람이?

서리가헌이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허도기가 황궁에 있잖니. 황궁에 있는 사람들한테 우리 풀어놓으면 어떻게 될지 은근히 협박하는 거지. 우리는 살아있다는 자체로 저들에게 공포의 대상이 되니까.”

“황상을 협박한다는 건가?”

“어딜! 아무리 허도기라도 직접 황상을 노리지는 못하지. 지금 황상은 병권을 단단히 틀어쥐고 있거든. 그러니 우린 기껏해야 대감이나 장군들 협박용인 거지.”

“그렇군.”

“짐작한 게 있었니?”

“항상 궁금했어. 일홀문주를 쓰러트렸을 때, 두 제자도 같이 죽여버리면 가장 깔끔한데 왜 살려줬을까 하고. 당시 허도기 무공으로는 그러고도 남았거든. 물론 지금도 그럴 테지만.”

허도기는 성검문 문주를 찬탈할 때부터 황궁을 노리고 있었던 것 같다.

그렇다면 백만대군의 총 교두가 된 것도 우연이 아니다.

공부가 된 것도, 현재 황궁에 몸을 담고 있는 것도 모두 잘 짜인 각본대로 움직이고 있다.

허도기, 굉장히 무서운 사람이다.

사실, 아걸도 두 사형을 살려주고 있는 이유가 사부를 암살할 때 맺은 약속 때문이라고 추측했다. 또 두 사형의 일홀도가 무적에 가까운 만큼 요긴할 때 쓸 생각인 줄 알았다.

사형 말대로라면 풍도곡은 정말 협박용이다.

일홀도를 수련한 무인 두 명이 중원 한구석에 웅크리고 있다면, 협박당하는 쪽도 상당히 불안할 것이다.

아걸은 비로소 풍도곡의 진가를 알아냈다.

이런 사실은 차라리 모를 때가 나을 뻔했다. 사실을 알고 나니 두 사형이 더 미워진다. 겨우 이런 꼴로 살려고 사부에게 칼을 들이밀었나.

“그런데 넌 언제부터 취화원에 있었던 거니? 오비야.”

서리가헌이 몽설의 진짜 이름을 부르면서 말했다.

“반말하지는 마라.”

아걸이 툭 쏘아붙이며 서리가헌을 쳐다봤다.

“별 거지 같은 놈들에게 죽는 꼴이 보기 싫어서 머물라고 했지만, 결국 우리는 서로 칼을 맞댈 사이니까, 서로 안면 트는 것은 삼가자고.”

“네게 묻지 않았다.”

“오비야, 몽설. 내 사람이야. 내 사람이 칼 맞댈 자에게 반말 들을 이유는 없다.”

서리가헌이 아걸을 쳐다보고는 피식 웃었다.

“그러지. 내 눈에는 여전히 꼬맹이로 보이기는 하는데, 네 사람이라니 말 올리지.”

그러자 몽설이 아걸에게 말했다.

“잠시 자리 좀 피해줘.”

“…….”

“아버지에게 삼인독을 쓴 흉수이지만, 아버지 제자이기도 해. 내 기억에는 없는데, 나를 알아보잖아. 우리 두 사람만 할 말이 있어.”

“……알았어. 그러지.”

아걸이 일어섰다.

* * *

“후후! 누가 일홀문 후인 아니랄까 봐 성격이 개차반이군.”

서리가헌이 말했다.

“다음에 만날 때는 저 사람 손 안 빌려. 당신, 내가 죽일 거야.”

몽설이 서리가헌을 뚫어지게 쏘아보며 말했다.

“아까 물었는데, 도대체 둘이 언제부터 만난 거니?”

“그런데 난 어떻게 알아봤어? 많이 변했을 텐데?”

“네 얼굴에서 사모를 봤다면 대답이 되겠니?”

“그렇구나.”

“그런데 내 물음에는 대답 안 하니? 둘이 언제부터…….”

“내가 늑대의 먹이가 돼서 뼈만 수습한 날부터 인연이 시작되었다고 하면 대답이 될까?”

“…….”

서리가헌이 침묵했다.

그 사건을 서리가헌이 모를 리 없다. 너무 잘 안다.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사부의 무남독녀, 아주 귀엽던 꼬맹이가 늑대에게 잡아먹힌 날이지 않나.

“하나만 물어. 몸이 나으면 누구에게 칼을 겨눌 거야? 오빠야, 허도기야?”

“그 대답은 아걸이 했잖니.”

“그렇구나. 그럼 몸조리 잘해. 몸이 다 나을 때까지는 최선을 다해서 보살필게. 이런 일은 죽기보다 싫지만, 오빠가 머물라고 했으니까 나도 약속은 지킬게.”

몽설이 일어섰다.

“……내가 사용한 검법, 혈검이냐?”

“맞아.”

“현정 부인과는 어떤 관계지?”

“알 필요가 없잖아?”

“부창부수도 아니고…… 어떻게 톡 쏘는 것까지 아걸을 닮아가니? 지필묵을 가져와라. 허도기에 대해서 아는 건 모두 적어줄 테니. 일단 허도기부터 잡고, 우리 승부는 나중에 하자. 됐니?”

“그래 줄 거야?”

“이 말을 하고 싶어서 아걸을 먼저 보낸 것 아니니?”

“맞아.”

“후후! 아걸에게 전해라. 이번에는 내가 졌지만, 덕분에 아걸 칼을 봤다고. 다음엔 이길 수 있다는 얘기지.”

“그런 말은 전할 필요 없어. 일홀문도는 말로 안 해. 칼로 말하지. 만약 그런 상황이라서 오빠가 죽는다면 난 감수할 수 있어. 강자에게 꺾이면 죽는 게 일홀문도의 운명이니까. 그러니 일홀문도는 꺾이지 않아야 해. 난 아걸이 그럴 수 있다고 믿어.”

몽설이 서리가헌의 말을 일축하며 일어섰다.

꺾이지 않아야 한다.

참 오랜만에 듣는 말이다.

너무 긴 세월 동안 한 사람에게는 무조건 꺾인다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한 사람은 넘어설 수 없지만 다른 사람은 모두 이긴다.

서리가헌이나 서리형개나 모두 같은 생각이다.

아걸은 모두 이긴다고 생각한다.

서리가헌은 아걸과 허도기가 만나면 아걸이 말도 안 되게 무참히 무너질 것으로 판단한다. 허도기의 검을 직접 본 사람이라면 모두 서리가헌의 생각에 동조할 것이다.

그런데도 아걸은 꺾이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아걸도 허도기를 이길 수 없다고 생각할 것이다. 무공으로는 대적할 수 없는 강자라고. 하지만 싸우면 지지 않는다. 반드시 이길 것으로 생각한다.

그렇다. 무공과 싸움은 다른 문제다.

“후후후! 꼬맹이한테 이상한 말을 들었잖니. 어찌 사부가 하던 말하고 똑같지 않니. 후후후!”

서리가헌이 피식피식 웃었다.

* * *

일홀문 삼십육도에는 모두 이름이 있다.

서리가헌이나 서리형개의 칼에도 일홀도 명칭이 붙어있다.

아걸은 자신의 일홀도에 아직 이름을 정하지 못했다.

일홀도라고 생각한 것을 얻었을 때, 이름을 붙이고 싶다는 충동이 일었었다.

하지만 정하지 못했다. 마땅한 명칭이 생각나지 않았다. 또 자신의 일홀도에 자신이 이름 붙이는 것은 적당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이름은 옆에서 본 사람이 붙여야 정확하지 않겠나.

이름 붙이지 않기를 아주 잘했다.

서리가헌과 싸울 때 또 다른 일월도를 얻었다.

몰안에 이은 탄궁도는 일탄십검을 막지 못했다. 처음, 쩔쩔매면서 일탄십검을 막은 것이 좋은 예다. 정말 힘들게 막았다. 이러다가 당하는 게 아닐까 싶었다.

하지만 두 번째는 다르다.

오히려 공격을 가했고 팔을 따냈다.

여기에서 전혀 새로운 일홀도가 터져 나왔다.

지금까지 지녔던 모든 무학 상식이 사라졌다. 몰안, 감각망기술, 간착아, 오체진감 등등 모든 진공(眞功)이 다 잊혔다. 갑자기 머릿속이 텅 비면서 하얀 백지상태가 되었다.

그리고 굉장한 고요함이 찾아왔다.

고요한 상태는 편안함을 이끌어주었다. 서리가헌과 칼을 맞대고 있는 상황에서, 이런 상태라면 언제까지 유지해도 좋다는 느낌이 들 정도니…… 미쳤다고 할까?

그런 고요함, 편안함은 아걸이 만든 게 아니다.

일부러 그런 상태에 들어가려고 해도 들어갈 수가 없다. 감각망기술이 육체의 한계를 뛰어넘어서 또 다른 세계에 접했을 때나 일어나는 편안함이다.

마음이 명경지수(明鏡止水)처럼 맑아졌다.

높은 산 속에 있는 큰 호수처럼 밑바닥이 환히 보일 만큼 투명하고 맑았다.

그러자 서리가헌의 칼이 보였다.

서리가헌의 일탄십검은 기묘하게 뛰어오는 보법에서부터 발동이 걸린다. 단지 서리가헌의 습관인 줄만 알았는데, 사실은 일탄십검을 일으키는 원동력이었다.

하체에서 일어난 움직임이 상체로 전달되고 칼로 전달된다.

발끝으로 땅을 차면 그 힘이 고스란히 칼에 전달된다. 중간에 허리를 비틀면 비트는 힘도 완벽하게 전달된다. 몸의 모든 움직임이 칼에 집중되어 있다.

일탄십검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힘의 완벽한 집중이다.

정신도 힘이다. 육체가 일으키는 탄력도 힘이다. 진기도 힘이다. 이런 모든 것이 티끌만 한 손상도 없이 칼로 전해진다.

하지만 사람들은 다리를 보지 않는다. 열 개로 확 늘어난 분검(分劍)만 본다. 너무 빠르다는 생각만 하지, 빠름이 어디서 나온 것인지는 생각하지 못한다.

서리가헌과 칼을 맞댄 게 두 번째다.

먼저 풍도곡에서 싸울 때는 다리를 전혀 보지 못했다. 몸의 움직임에는 관심도 두지 않았다.

이제, 이런 이치가 한눈에 들어왔다.

그다음은 상대하기 쉬웠다.

심장을 치지 못하고 팔을 때린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서리가헌이 빨랐고, 자신이 늦었다. 머릿속으로 알았다고 해서 싸움이 그대로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서리가헌의 장점, 몸에서 일어나는 빠름이 반철도를 흘려보냈다. 그리고 그 빠름으로 목에 칼을 그었다. 만약 서리가헌이 조금만 더 빨랐거나, 아걸이 손톱만큼이라도 늦었다면 승패는 정반대가 되었을 것이다.

실로 종이 한 장 차이로 겨우 일 할의 우세를 건졌다.

스읏!

아걸은 반철도를 들어 올렸다.

어떠한 진공도 떠올리지 않았다. 한데, 단박에 편안함이 찾아왔다.

편안함이 찾아오자 주변의 움직임이 환히 보인다.

이런 상태라면 누구와도 싸울 수 있을 것 같다.

소축십검 중 일군 전가성을 칠 때와는 전혀 다른 일홀도다. 그때의 일홀도가 몰안과 탄궁도, 그리고 기묘한 진동의 결합이었다면 지금은 관조(觀照)에서 일어난 일홀도다.

반철도를 들어서 나뭇잎을 겨눴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반철도를 어떤 식으로 휘두르면, 나뭇잎이 어떻게 떨어질지 사실처럼 보였다.

반철도를 내렸다.

굳이 칼을 써서 확인할 필요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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