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일홀도-154화 (154/600)

#154화. 第三十一章 미완성(未完成) (4)

소축십검이 엉망진창이 되었다.

한때는 무적을 자랑하던 허도기 직제자 열 명이 풍비박산 났다.

열 명 중 네 명이 목숨을 잃었다. 그중 첫째인 독안혈검 전가성의 죽음은 치명타다.

만인이 보는 앞에서 공개적으로 비무 끝에 죽었으니 할 말도 없다.

전가성은 사실상 문주를 대리해서 성검문을 이끌던 지략가였다. 묘법제일이라고 불릴 만큼 병법에 밝았다. 그런데 하필이면 그때 월직을 서는 바람에.

하기는 전가성이 당할 정도라면 소축십검 중 누가 나서도 당했다는 소리다.

사실, 소축십검은 자신들끼리 약간 알력이 있었다.

내장을 담당하는 사람과 밖으로 돌아다니면서 성검문의 위신을 높이는 외장 사이에 늘 팽팽한 긴장감이 흘렀다.

지금은 그런 게 싹 사라졌다.

열 중 넷이 죽었는데, 자신들끼리 싸우면 어떡하겠나. 그렇게 생각이 없지는 않다.

아걸!

아걸이란 놈이 느닷없이 나타나 분탕질을 치고 있다. 중원 무림에 그런 사람이 있는지도 몰랐는데, 이제는 완전히 머리 꼭대기에 올라타서 발길질해댄다.

확실히 일홀도는 뿌리를 잘라버려야 한다.

삐걱!

초가평은 사립문을 열고 폐가로 들어섰다.

폐가는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아서 금방이라도 부서질 것처럼 삐걱거렸다.

“후후! 여전하군.”

그는 주위를 쓱 훑어봤다.

옛날, 이곳에서 무공을 수련했다.

허도기가 성검문주가 되기 전, 자신들이 군(君)으로 불리기 전, 단순히 허도기를 따르는 추종자로 인식될 무렵, 이곳에서 먹고 자고 무공 수련을 했다.

폐가는 초가평의 거처였다.

거의 이십여 년 가까이 비워놓은 집인데, 마당에 잡초 하나 자라지 않았다.

누가 깨끗이 청소해 놓았다.

“흠!”

초가평은 미간을 살며시 찡그렸다.

폐가를 누가 관리했는지 알 것 같다. 오래전부터 관리한 것은 아니다. 이삼일 전쯤 급히 청소한 흔적이 역력하다. 마당에 잡초를 뽑은 흔적이 지금도 남아 있다.

‘사부!’

초가평은 공부 허도기를 떠올렸다.

그러고 보니 사부 얼굴 본 지가 꽤 오래되었다.

군대를 떠돌아다닐 때는 진공부에서 가끔 뵈었는데, 요즘은 도통 얼굴 뵙기가 힘들다.

사부에게는 성검문이 보물 열 개 중 하나일 뿐이다.

사부는 이미 그만큼 큰 사람이 되었다. 그러니 누가 성검문에 찝쩍거려도 관심 대상이 되지 못한다. 비무? 귀찮을 뿐이다. 그런 건 소축십검이 알아서 처리하기를 바라신다.

그런 분인데, 직접 사람을 시켜서 폐가를 청소해 놨다.

저벅! 저벅!

초가평은 안으로 들어섰다.

무려 이십여 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지만, 아직도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 환히 안다.

초가평은 방으로 들어설까 하다가 그만두었다.

방으로 향하는 길은 정리되어 있지 않다. 지붕 밑에 거미줄이 치워지지 않았다.

방으로 들어가지 말라는 뜻이다.

초가평은 잘 정돈된 길을 쫓아서 쭉 걸어갔다.

길은 연공실로 이어진다. 집 뒤에 토굴을 파놓고, 그 안에서 운공을 하곤 했다. 물론 어설프게 파놓아서 지네도 나오고 쥐도 들끓는다. 모기며 파리도 우글거린다.

길은 연공실을 향해 다듬어졌다.

“음!”

초가평은 연공실로 들어서자마자 신음을 흘렸다.

예상했던 대로 연공실은 깨끗이 치워져 있다. 뱀이 들어서지 못하게 백반 가루도 뿌려놓았다.

초가평은 익숙한 흙냄새를 맡으면서 토굴 깊이 들어갔다.

토굴은 깊이가 십 장에 이른다. 가장 안쪽으로 들어서면 바깥 풍경이 보이지 않는다. 빛도 완벽하게 차단되어서 짙은 어둠이 무섭게 몰아친다.

연공실 깊은 곳에 나무 탁자가 놓여 있었다. 황초도 이십여 개나 준비되어 있다.

초가평은 나무 탁자 위에 놓인 비급을 쳐다봤다.

- 조명칠해(照明七解) 광망(光芒)

순간, 초가평의 입꼬리가 파르르 떨렸다.

광망은 광망사사(光芒四射)의 줄임말이다. 빛이 사방에 환하게 비친다는 뜻이다.

초가평은 소축십검 중 검속제일(劍速第一)로 통한다.

초가평이 검속에 대해 집착하기 시작한 지는 꽤 오래되었다. 허도기의 발검술을 따라잡기 위해서 집중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모든 관심이 검속으로 모였다.

조명십해를 이해하는 부분도 조금 달랐다.

그도 조명십해를 모두 수련하고 깨우치는 중이지만, 그중에서도 특히 칠해 광망에 매달렸다.

광망사사는 초가평에게 특화된 무리(武理)다.

검이 검집에서 뽑히면 검광이 발산된다. 검이 지닌 특유의 빛이 햇볕이나 달빛을 받아서 번쩍인다.

이 순간을 극한으로 좁힌다.

한순간에 검공이 번쩍 터지게 만든다. 그러면 검은 보이지 않고 오직 빛만 보인다. 검광이 사방을 환하게 밝힌다고 여긴 순간, 이미 살수는 끝난다.

사부 허도기도 무척 빠른 검이다.

검집에서 겁이 나오는 순간, 이미 상대는 절명한다. 그래서 상대방은 오직 발검술밖에 보지 못한다. 검초가 어떻게 전개되는지 전혀 보지 못한 채 절명한다.

하지만 여전히 광망사사는 아니다.

냉정히 말하면 사부의 검은 광망사사에 덜 미친다. 아직 더 수련해야 광망사사가 된다. 검이 뽑히는 찰나, 상대방에게 검이 보인다면 이미 광망사사가 아니다.

칠해 광망에 대한 무리는 알고 있다.

광망사사를 어떻게 하면 이룰 수 있는지도 안다. 수련을 거듭하지만 제대로 되지 않을 뿐.

조명십해는 깨달음 영역에 속하는 무학이다.

초가평은 나무 탁자 앞에 앉아서 손으로 까칠까칠한 비급 표지를 쓰다듬었다.

비급에는 사부가 깨달은 광망사사가 적혀 있을 것이다.

초가평의 수련을 방해할 목적이 아니다. 초가평을 믿지 못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초가평이 지금보다 더 강해졌으면 하는 바람에서 진학을 남긴다.

사부가 지금 이 시점에 광망사사를 전하는 목적이 무엇인가. 자신에게 성검문을 넘겨주겠다는 것인가? 아니다. 육군과 칠군을 제외한 다른 소축십검도 자신과 똑같은 상황에 놓여 있을 것이다.

진개, 점박이, 호금연이 어떤 비급을 받았을지 조금은 짐작할 수 있다.

그들도 자신처럼 집중하는 무리가 있다. 영약을 먹어서 성취할 수 있는 부분이라면 벌써 중원 전역을 샅샅이 뒤져서 복용하고도 남았을 것이다.

그만큼 절박한 무리가 있다.

사부는 소축십검이 약하다고 봤다. 지금까지는 약해도 무방했는데, 이제부터는 더 강해져야 한다고 주문한다. 그래서 아걸 같은 자는 직접 처리하라고.

사실 이런 비급을 읽어본다고 해서 새로운 절학을 깨우치는 것도 아니다. 깨우칠 수도 있지만, 제자리에서 답보할 가능성이 더 크다. 웬만한 것은 이미 알고 있으니까.

스읏!

초가평은 비급 표지를 넘겼다.

소축십검이 엉망진창으로 당하기는 했지만, 그들은 누가 뭐래도 중원 제일의 기재들이다. 한때는 무공 천재라는 소리를 들었던 적도 있다.

‘조명천검?’

비급은 곧장 조명십해로 들어가지 않았다. 이미 손에 익어서 눈 감고도 펼칠 수 있는 조명천검부터 설명한다.

가장 기본으로 돌아가서 다시 시작한다.

초가평은 비급을 읽으면서 진한 피 냄새를 맡았다.

토굴을 나가는 날, 소축십검 네 명은 아걸과 혈전을 벌여야 한다.

아걸이 찾아오지는 않는다. 자신들이 쫓아가서 두 번 다시 사부 앞에 얼씬거리지 못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이것이 사부가 비급을 내려준 이유다.

초가평은 급하게 서두르지 않았다. 차분하게 한 자 한 자 천천히 읽어 나갔다.

급하게 서둔다고 해서 깨달아질 무학이 아니다.

* * *

협성림은 서신을 받았다.

사부가 보내온 서신이다. 서신에 황제만 사용하는 금검(金劍)이 새겨져 있다.

이 서신이 외부로 흘러나가면 허도기는 당장 황제에게 불려가서 힐문 당한다. 그만큼 금검이 지닌 의미는 크고 깊다. 황제의 직명을 뜻하기 때문이다.

허도기가 이런 서신을 보내온 것은 금검이 지닌 의미만큼 협성림을 믿는다는 뜻이다.

자신의 약점을 내주어서 상대방이 신뢰하게 만든다.

다른 의미도 있을 수 있다. 금검 인장 정도는 마음대로 사용할 만큼 성장했다는 뜻이지 않을까? 황제가 감히 힐문할 수 있겠냐는 자신감 말이다.

“음!”

협성림은 미간을 잔뜩 찡그린 채 서신을 집었다.

현재, 소축십검 중 네 명이 패관수련에 들어갔다.

군대에 붙박여 있는 칠군과 자신을 제외한 십검 모두가 특별 연공에 몰입했다.

지금은 일을 벌이기보다는 차분히 안정을 취해야 할 때다.

그러잖아도 성검문이 많이 흔들렸는데, 여기서 더 흔들리면 무림 제일 문파로서 체면이 안 선다.

내실을 다지면서 차분히…….

하지만 사부는 그런 일에 밀서를 보내오지 않는다. 특히 금검 인장이 찍힌 밀서라면 세상이 발칵 뒤집힐 만큼 큰일이거나, 아니면 위험한 일이다.

협성림은 밀서를 읽기가 두려웠다.

‘좋지 않은 내용이 틀림없을 텐데…….’

밀서를 읽으면 반드시 이행해야 한다. 그것도 완벽하게 해내야 한다. 그런 면에서 협성림과 칠군 고조시는 사부 마음에 쏙 드는 제일 제자다.

“그것참 곤란하게 만드시네.”

협성림은 밀지를 펼쳐서 읽기 시작했다.

협성림은 침묵했다.

밀지를 읽고, 조용히 촛불을 댕겨서 밀지를 소각시켰다. 그런 후, 팔짱을 켠 채 침묵한다.

사박! 사박! 사박!

시녀들이 저녁상을 들고 왔다.

하지만 그녀들은 얼굴에 붉은 가면을 쓴 적면대에게 가로막혔다.

“저녁 식사인데요?”

적면대는 방해하지 말고 돌아가라는 손짓을 했다.

적면대는 협성림을 쫓아서 전장 구석구석을 누볐다. 그래서 협성림의 의중을 누구보다도 잘 안다.

지금 협성림은 아주 깊은 고민을 하고 있다.

이럴 때는 누구도 방해해서는 안 된다. 하늘을 나는 새도, 땅 밑을 기어가는 두더지도.

“그럼 이따가 다시 내올까요?”

“됐다. 오늘은 들이지 않아도 된다.”

적면대 무인이 차게 말했다.

오후부터 시작된 침묵이 저녁이 되고 밤이 깊도록 풀어질 줄 몰랐다.

다른 때 같으면 벌써 두 시진 전에 촛불이 밝혀졌다. 아니, 지금은 시간이 훌쩍 지나서 자정을 넘어서고 있다. 밝힌 촛불마저도 꺼야 할 판이다.

협성림은 불도 밝히지 않은 채 고민을 거듭했다.

사실 그는 전장에서도 이토록 깊은 고민을 해본 적이 없다. 명령이 떨어지면 히죽 웃으면서 달려 나갔다. 모든 일이 신나게 싸우는 일뿐이었다.

협성림은 표정은 마치 운공을 하는 듯 편안했다. 하지만 겉이 편안해 보일수록 안은 들끓고 있다. 고민할 때는 겉과 속이 완전히 다르다.

꼬끼오!

밖에서 수탉이 울었다.

아직 세상은 캄캄한데…… 곧 날이 밝아올 모양이다.

“차를 가져와라.”

협성림이 팔짱을 풀면서 말했다.

협성림은 적면대를 대기시켰다.

적면대 백 명, 전장을 누비면서 생사고락을 함께했던 전우이자 친구들이다.

협성림이 그들에게 일일이 밀지를 건네주었다.

“명령서는 밖에 나가서 읽고.”

서신을 꺼내서 읽어보려던 무인들이 즉시 명령서를 품 안에 갈무리했다.

“명령 자체는 매우 간단하다. 문제는 명령을 시행한 후에 일어날 일이야. 너흰 운이 좋으면 아걸에게 추격당한다. 놈의 별호는 두 개다. 명부판관, 혈도비자. 어느 쪽 신분으로 너희를 추격할지는 나도 모르겠다.”

“괜찮습니다. 상대할 수 있습니다.”

적면대가 자신 있게 말했다.

이들은 자신이 없을 때도, 상황이 절망적일 때도 늘 자신 있다고 말한다.

“운이 나쁘면 아걸에 이어 성검문까지 공격할 것이다.”

“…….”

“아직 최악이 남았다. 가장 운이 나쁜 경우는 소축십검이 나설지도 모른다는 거다. 그때가 되면 너희가 가진 명령의 뜻이 명확해지겠지. 소모품으로 쓰겠다는 명령이니까.”

협성림이 묵묵히 적면대를 쳐다봤다.

적면대의 표정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그들은 늘 붉은 복면을 쓰거나, 붉은 가면을 쓴다. 표정이 드러나지 않고, 한결같이 차가운 모습이다.

그들이 말했다.

“말씀 다 하셨으면 가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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