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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홀도-155화 (155/600)

#155화. 第三十一章 미완성(未完成) (5)

처벅! 처벅! 처벅!

일단의 무리가 줄을 맞춰서 걸었다.

그들은 모두 턱까지 덮는 큰방갓을 썼다. 흑의 경장을 입었고, 피풍의(避風衣)까지 둘렀다.

모두 같은 모습이다.

또 그들은 왼쪽 허리에 검을 찼다.

검 모양도 똑같다. 물소 뿔로 만든 검은색 검집이라서 한눈에 들어온다.

그들은 무려 백여 명에 이른다.

사열 종대로 열을 맞춰서 군인들처럼 질서 정연하게 걷는다.

처벅! 처벅! 처벅!

좁은 관도를 걷는데도 대오가 흐트러지지 않는다. 어느 한 사람도 허튼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마치 군인들처럼 보인다.

길을 가던 사람들은 기에 눌려서 즉시 옆으로 비켜섰다.

“뭐 하는 사람들이지?”

“글쎄? 군인 같기도 하고, 무인 같기도 하고.”

“무인은 아닌 것 같은데? 무인들이 저런 모습으로 다니겠어? 줄 맞춰서?”

사람들은 소리가 새어 나가지 않도록 작은 소리로 말했다.

방갓 무인들에게서는 피 냄새가 풍겼다. 시비를 걸면 당장 검부터 뽑을 자들이다. 저들은 줄 맞춰서 걷기만 할 뿐, 어떤 위협도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도 위험하게 느껴졌다.

“워! 워!”

앞에서 우마차를 몰던 농부가 급히 소를 멈춰 세웠다.

뒤에서 일단의 무리가 ‘처벅! 처벅!’ 소리를 흘리면서 다가오니 옆으로 비켜서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완전히 비켜서기에는 우마차가 너무 컸다.

방갓 무인들이 네 줄에서 세 줄로 줄여서 지나쳐가는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그때, 방갓 무인 중 한 명이 앞으로 쑥 나왔다.

그는 거침없이 우마차를 발로 걷어찼다.

퍽! 덜컹! 덜그렁! 쿵!

우마차는 장정 서너 명이 함께 들어올리기가 힘겨울 정도로 무겁다. 하지만 방갓 무인 발길질 한 번에 돌멩이 걷어채듯 논둑길로 굴러떨어졌다.

“억! 아이쿠!”

우마차와 함께 농부도 굴러떨어졌다.

방갓 무인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앞으로 걸어가서 우마차를 어깨에 걸고 힘겨워하는 소를 툭 걷어찼다.

우웨에엥!

소가 거친 비명을 쏟아내며 풀썩 주저앉았다. 아니, 곧 몸을 눕히더니 논길로 굴러떨어졌다.

처벅! 처벅! 처벅! 처벅!

방갓 무인들은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 태연히 줄 맞춰서 걸었다.

뒤따라오는 자들도 앞에서 벌어진 일을 봤을 텐데,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

“아이구! 이를 어째?”

“괜찮소?”

관도에 있던 사람들이 급히 논으로 내려가서 농부를 안아 일으켰다.

“내 소! 내 소!”

농부는 자신의 안위보다는 소가 중요한지 급히 소에게 달려갔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소는 복장이 터져서 죽은 후였다. 아직도 감지 못한 눈이 힘없이 논을 쳐다봤다.

“야! 이놈들아!”

농부가 걸어가는 방갓 무인들에게 힘껏 고함쳤다.

하지만 그의 발악은 옆에 있던 사람들에게 즉시 제지당했다. 입은 틀어막히고, 손발을 꾹 눌려 잡혔다.

사람들은 방갓 무인들이 피도 눈물도 없는 냉혈한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저들은 검을 쓰는 데 조금도 주저하지 않는다.

방금 농부가 직접 경험하지 않았나. 소와 우마차만 걷어차고, 농부를 내버려 둔 것만 해도 천만다행이다.

저들의 의사는 분명했다.

앞을 가로막는 자는 죽는다. 그러니 미리미리 알아서 피해라.

처벅! 처벅! 처벅!

일단의 무리가 줄 맞춰서 무섭게 걸어왔다.

“저놈들 뭐야?”

“뭐긴 뭐야. 무인 나부랭이지. 요즘은 저런 것들까지 설치는 바람에 피곤해 죽겠어.”

성문을 지키던 군졸 두 명은 창을 고쳐잡았다.

그들은 무인이 두렵지 않았다. 무공으로 따지면 어림도 없지만, 그들 뒤에는 오십 명의 총기(總旗)가 있다. 또 그들 뒤에는 천 명의 천호(千戶)가 있고, 그 뒤에는 오천여 명의 일위(一衛)가 있으며, 또 그 뒤에는 황상이 있다.

군졸을 건드리는 것은 나라를 건드리는 것이다.

“누구냐!”

군졸 두 명이 창을 겨누며 물었다.

그러자 방갓 무인 중 한 명이 앞으로 쑥 걸어 나왔다.

“뭐 하는 놈들인데 대낮에 떼를 지어서 위압스럽게 다니는 거야!”

그때다. 군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방갓 무인의 허리춤에서 검광이 번쩍 빛났다.

“커억!”

“큭!”

군졸 두 명이 썩은 짚단처럼 푹 쓰러졌다.

“엇! 살인이닷!”

“저놈들이! 살인이다!”

성 안쪽에 있던 군졸들이 살인을 봤다. 당연히 황급히 창을 움켜잡았고, 무인들을 향해 달려 나왔다. 그런데,

“멈춰!”

군졸들을 불러세운 사람은 뜻밖에도 종오품(從五品) 부천호(副千戶)다. 평소에는 얼굴도 보지 못할 사람인데, 어찌 된 영문인지 성문에 와있다.

“너희들 상대가 아니다. 물러서.”

“부천호님! 저놈들이…….”

“물러서! 군명(軍命)이다!”

부천호가 직접 군명이라고 말하는 데야 더 할 게 있나.

군졸들은 동료가 살해당했는데도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뒤로 물러서야만 했다.

부천호는 군졸들을 뒤로 물렸을 뿐, 방갓 무인들에게는 가타부타 말을 하지 않았다.

처벅! 처벅! 처벅!

방갓 무인들이 거침없이 성안으로 들어섰다.

그들 눈에는 부천호와 군졸들이 보이지 않는 듯했다. 아니, 철저하게 무시했다.

방갓 무인 중 한 명이 말했다.

“시행해!”

쒜에엑! 퍼억!

“아아악!”

사방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방갓 무인 백여 명은 시행하라는 명령이 떨어지자 일제히 메뚜기처럼 날아올랐다.

그들은 사방으로 흩어졌다.

순간, 길 가던 사람이 검을 맞고 쓰러졌다. 느닷없이 쳐낸 검에 처절한 비명을 토하면서 죽었다.

성문 앞에서 호떡을 팔던 호떡 장수도 죽었다.

지금 막 따뜻하게 구워진 호떡을 꺼내는 중이었는데, 등 뒤에서 검이 날아왔다.

“악!”

그는 자신이 왜 죽는지도 모른 채 죽었다.

“아악!”

“아아악! 왜! 왜!”

사람들이 혈겁을 피해서 이리저리 도망 다녔다. 돼지우리 속으로 뛰어드는 사람도 있었다. 죽은 시신 밑으로 기어서 들어가는 자도 나왔다.

난리가 따로 없다.

부천호는 눈앞에서 살상이 벌어지는데도 군졸을 움직이지 않았다. 인상을 있는 대로 찡그렸지만, 자신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일처럼 멀거니 구경만 했다.

군졸들은 덜덜 떨기만 했다.

동료가 죽었을 때는 분노가 치밀어서 싸우려고 했지만…… 이들 악귀의 모습을 보니 기가 팍 꺾인다. 자신들이 상대할 수 있는 자들이 아니다.

일단, 이들은 무공이 매우 뛰어나다.

사람을 죽이면서 망설이지도 않는다. 아니, 검이 숨을 끊는 순간에는 웃기까지 한다.

부천호가 말리지 않았다면 벌써 시신이 되었을 것이다.

쉬이이잇!

사방으로 뛰쳐나갔던 방갓 무인들이 한 명씩 제자리로 돌아왔다.

이들은 제 자리를 가지고 있다. 중을 맞출 요량이면 당연히 돌아오는 순서대로 서야 하는데, 이들은 원래 자기가 섰던 자리로 돌아와서 대기했다.

“아악!”

“크아아악!”

사방에서 아직도 비명이 터지고 있다.

길 가던 사람들, 장사하던 사람들, 구경하던 사람들, 담장 너머에서 아무것도 모르고 마당을 쓸던 하인까지 거침없는 검에 쓰러져 고혼이 되었다.

방갓 무인들은 살인도 계획적으로 했다.

이들은 한 사람당 딱 다섯 명씩만 죽였다. 그 이상은 그 누구도 건드리지 않았다. 목표 숫자를 채운 사람은 누군가가 농기구를 들고 덤벼도 죽이지 않았다. 검으로 농기구를 떨구고, 다시 덤비면 죽이겠다는 듯 무섭게 쏘아보기만 했다.

차찻! 차차찻!

방갓 무인들이 모두 돌아왔다.

백 명이 나가서 백 명이 돌아왔다. 그 말은 시신 오백구가 쌓였다는 뜻이다.

착! 착!

방갓 무인들이 일제히 뒤돌아섰다. 그리고 성 밖으로 향해 질서 정연히 걸어 나갔다.

처벅! 처벅!

악귀들이 성안으로 들어왔다가 한바탕 살겁을 일으킨 후, 빠져나간다.

군졸들은 살인 현장을 수습했다.

시신을 한 군데로 모았다. 가족이 있는 사람이건 없는 사람이건 아랑곳하지 않았다. 죽은 자들은 모두 들어서 성 밖에 있는 넓은 공터로 옮겼다.

“당신들 뭐 하고 있었어! 사람이 죽는 동안!”

죽은 사람의 가족이 군졸들에게 따졌다.

“그러게 누가 중원 살수와 붙어먹으래!”

“뭐? 무슨 소리야? 누가 누구와 붙어먹어!”

“살수! 또 말해줘? 살수!”

방갓 무인들에게 분노를 떠올리던 군졸이 아니었다. 그들은 이미 군명을 받았다. 그래서 죽은 사람들을 악의로 대한다. 죽어서 마땅한 자들이라는 생각이다.

“말도 안 돼!”

“저리 꺼져!”

군졸들이 유족을 발로 찼다.

사실, 그렇게 말하는 군졸들도 자신들의 말이 얼마나 터무니없는지 알 것이다.

열 살배기 어린아이가 중원 살수와 어떻게 붙어먹었단 말인가. 병석에 누워서 일 년 내내 끙끙 앓던 노인이 무슨 수로 살수와 짝짜꿍이 되겠나.

죽은 사람들은 그들의 이웃이었다.

평소 늘 인사를 주고받던 사람들이었다.

너무 잘 알고 있어서 절대로 살수와 연계된 일이 없다고 생각하는데, 그런데도 죽어 마땅하다고 우겼다.

“부천호가 아무래도 이상해.”

“쉿! 그런 말 하다가 끌려가!”

“그렇잖아. 놈들이 와서 살인하는데도 멀거니 보기만 했잖아. 그러고 뭐가 어째? 이런 우라질!”

“그런데 이놈들은 어디로 갔지? 성 밖으로 나간 건 확실한데 어디로 갔는지 본 사람이 없어.”

“무인이잖아. 우리 정도 속이는 건 일도 아니지.”

사람들이 욕을 퍼부어댔다.

방갓 무인은 귀신처럼 사라졌다. 일단의 무리가 성 밖으로 나갔는데, 그 후 싹 사라졌다.

시신을 옮기던 군졸들이 선심이라도 쓰는 듯 말을 흘렸다.

“횡액을 피하려면 멀리 떨어져 있어. 그놈들 간 거 아냐. 내일 또 올 거야.”

“뭐요!”

“나도 자세한 건 몰라. 좌우지간 여기서 취화원인가 뭔가 하는 살수 문파와 연관된 사람들, 싹 죽이겠다고 벼른대. 그런데 말이 연관된 사람들이지, 분이 풀릴 때까지 죽이겠다는 거잖아. 잘 못 걸리면 무조건 죽는 거야.”

군졸 한 명만 그런 말을 하는 게 아니다. 시신을 옮기는 군졸들 대부분이 같은 말을 했다.

명령을 받고 말을 전하는 게 틀림없다.

“그러면 당신들은 내일도 구경만 한다는 거야?”

“구경만 하긴! 이렇게 시신 치워주잖아!”

한성은 군사 요지다. 그래서 관부 대신 천호소(千戶所)가 성을 관리한다.

정천호가 이번 일에 개입하지 않기로 했다면 군사 개입은 기대하지 못한다.

“우리 도망가 있을까?”

“아무래도 그러는 게 낫겠지? 보아하니 이놈들, 아무나 막 죽이는 것 같아.”

한성 사람들이 수군거렸다.

* * *

‘우릴 노린 짓이야!’

적화는 즉시 방갓 무인들의 의도를 파악했다.

저들은 너무도 분명하게 ‘살수’라는 말을 썼다. 그리고 무차별적으로 살상했다.

일이 이렇게 되면 지금까지 취화원에 우호적이었던 사람들도 완전히 돌아선다. 오히려 그들이 더 위험할 수도 있다. 방갓 무인들에게 살수들의 정체를 말해줄 수 있으니까.

’일단 모두 철수시켜야 해!’

적화는 빠르게 판단했다.

취화원은 두 번에 걸쳐서 기습을 받았다. 취화원에서 한 번, 구절곡에서 한 번 당했다.

저들이 급습해오면 얼마나 위험한지 몸소 깨우쳤다.

그래서 이제는 공격 기미만 보여도 즉각 반응한다.

적화는 전서구를 날리거나, 사람을 보내는 짓은 하지 않았다. 밀마 같은 것도 남기지 않았다.

지금부터는 모든 것을 직접 행한다.

주변 모든 사람을 적으로 간주하고 움직인다. 최소한 한성을 벗어날 때까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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