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6화. 第三十二章 탄완취주(彈完就走) (1)
방갓 무인들은 삼 일 연속 나타났다.
오는 길은 각기 다르다.
첫날 동문에서 살겁을 벌였고, 이튿날은 북문을 쳤다. 사흘째 되는 날에는 서문을 공격했다.
이제 남은 곳은 남문이다.
방갓 무인은 각기 다섯 명씩만 죽인다. 그들이 나타났다가 사라질 때까지 걸린 시간은 겨우 일다경, 차 한 잔 마실 시간 동안에 오백 명이 죽는다.
사흘 동안 천오백 명이 죽었다.
치안을 맡은 군대는 어떤 행동도 취하지 않았다.
‘살수와 관계없는 자는 죽지 않는다. 죽은 자들은 살수와 내통한 자들이다.’라는 원론적인 말만 했다.
군대는 방갓 무인들을 잡을 의지가 전혀 없다.
죽은 사람이 중원 살수와 연관이 있다는 말을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하지만 공포심만은 확실하게 심어주었다.
중원 살수와 아무런 관계가 없는데도 이 지경인데, 정말로 어떤 관계라도 맺으면 어떻게 할 것인가. 정말로 그런 일이 벌어지면 어떻게 할지 예측된다.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동문, 북문, 서문. 아직 남문이 남았지? 그럼 한 번 더 오겠네?”
“한 번만 오면 천만다행이게? 거기서 한 바퀴 더 돌면 다섯 번 더 오는 거야.”
“끔찍한 소리 말아!”
“나오지 마. 아예 문 닫고 틀어박혀 있어. 그 수밖에 더 있어?”
사람들은 아예 문을 닫고 나오지 않았다.
길거리가 한산해졌다. 오가는 사람들이 눈에 띄게 줄었다. 아예 사람이 살지 않는 도읍 같았다.
장사하는 사람들도 문을 닫았다.
아예 한성을 빠져나가는 사람도 보였다. 마차에 간단한 짐을 싣고 살겁이 벌어지지 않는 다른 도읍으로 임시 피신한다. 혹은 절 같은 곳을 찾아가기도 한다.
아무 데도 갈 수 없는 사람들은 집 앞에 굴을 파기도 했다.
한성은 죽음의 도읍이 되었다.
“저희도 일단 피할게요.”
적화가 말했다.
한성에서 발 빼는 일은 그녀 독단으로 처리할 수 없다. 수하들에게는 언제든 빠질 준비를 하라고 일러두고, 자신은 직접 와서 몽설에게 보고했다.
“아니, 움직이지 마.”
몽설이 뜻밖의 말을 했다.
“무슨 소리예요? 그럼 우리가 벌써 발각됐나?”
적화는 움직이면 바로 추살 당한다는 소리로 받아들였다.
몽설이 미간을 찡그리면서 말했다.
“움직이지 않는 게 좋겠어. 빠져나오지 마. 저들이 누군지 모르지만, 우리가 한성에 있는 것을 몰라. 만약 알았다면 애꿎은 사람들을 벨 것이 아니라 직접 우리를 공격했을 거야.”
“아! 듣고 보니 그렇네요.”
몽설은 방갓 무인들의 행동을 전혀 다른 측면에서 받아들였다.
“저들이 한성에서 살겁을 저지른 목적은 우릴 겨냥한 게 맞아. 한성이 대별산에서 가깝잖아. 그러니 저러는 거야. 한성에 발을 들여놓지 말라고 경고하는 거지.”
“풋! 저렇게 사람을 죽이는데 누가 우리를 받아들이겠어요. 앞으로 한성 사람들 협조 얻기는 틀렸어요.”
적화가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낯모르는 사람을 포섭해서 내 편으로 만들려면 공을 상당히 들여야 한다. 하지만 초반부터 살겁을 겪으면 어떤 일도 꾸미지 못한다. 협조는 고사하고 완전히 숨는 것도 힘들게 생겼다.
“가만! 그러면 우리, 물자도 다른 곳에서 구해야 하는 거야?”
소명이 인상을 찡그리면서 말했다.
“당분간 그래야 해. 많은 물자를 은밀히 들여오기가 쉽지 않을 거야. 생각 좀 해줘.”
“그건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알아서 할게요.”
소명이 일부러 밝게 웃었다.
“누각은 어떻게 할까요? 그것도 당분간은 중지하는 게 낫겠죠? 아무래도 시선을 잡아끌 테니까.”
“아니. 진행해.”
“……?”
적화가 그래도 괜찮냐는 표정으로 몽설을 쳐다봤다.
“누각은 이미 관심 대상이야. 모두가 주목하고 있어. 한성에서 제일 높은 망루잖아. 지금 중단하면 그게 오히려 더 이상해. 계속 진행하되, 사람을 심는 것만 뒤로 미뤄.”
“그래봤자 자금 추적을 하면 바로 발각되는데…….”
“자금 추적은 걱정하지 마. 돈을 대는 사람은 사천(四川) 사람이야. 사천까지 오가는 데만 족히 일 년은 걸려. 물론 전주(錢主)를 찾지도 못해.”
소명이 자신 있게 말했다.
* * *
쒜에에엑! 쉐엑! 촤라라락!
검이 허공을 흐른다.
팔 장로는 암영보에서 사생락으로 이어지는 부분을 계속해서 수련했다.
아무래도 연결이 매끄럽지 않다.
암영보는 은(隱)에 치중되어 있고, 사생락은 사(死)에 집중한다.
은밀하게 움직이다가 갑작스럽게 죽이겠다고 달려드는 것이니, 연결 순간에 마찰이 일어난다.
팔 장로는 암영보 대신에 형옥주의 무공이었던 비사보를 펼쳐봤다.
스르르륵! 촤아아악!
뱀이 기름 위를 기어가듯 스르륵 미끄러지다가 돌연 살검으로 변화시킨다.
피윳!
팔 장로는 사생락을 중간에서 멈춰버렸다.
사생락을 전개하기도 전에 맥이 끊겼다. 몸 왼쪽이 오른쪽을 막아서 회전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사생락이 제대로 터지지 않고 억지로 끌어낸 느낌이 든다.
“이건 아니고.”
팔 장로는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기 위해서 검을 추슬렀다.
근래 들어서 취화원 젊은 살수들이 급격하게 부상하고 있다. 무공도 뛰어나고, 일 처리도 탁월하다.
취화원 살수 중에 능력이 뛰어난 아홉 명만 꼭 꼬집어서 살린 것은 아니다.
멸겁을 피하다 보니 저들 아홉 명이 살아남았다.
그런데 그들 모두가 하나같이 재질이 뛰어나다. 몽설이 각 부분을 믿고 맡겨도 될 만큼 일을 잘한다.
팔 장로는 취화원 장로다.
몽설에게 도움은 되지는 못할망정 짐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압박감이 있다.
팔 장로는 이마에서 땀이 흐르는 것도 잊고 사생락 수련에 열중했다. 그런데,
‘응?’
팔 장로는 낯선 인기척을 감지했다.
누군가가 자신을 향해 다가오고 있다.
팔 장로는 수련을 멈추고 숲을 노려봤다. 인기척을 감지한 곳이다. 현재, 아무것도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숲속에 누군가가 있다고 확신한다.
“아이쿠! 이거 가시넝쿨에 걸렸네. 여긴 조심해서 다녀야겠는데? 가시가 꽤 날카롭군.”
숲에서 한 사람이 투덜거리면서 걸어 나왔다.
사내는 건장하다. 키가 크지만, 몸의 균형이 빼어나게 좋아서 크다고 느껴지지 않는다.
머리는 절반쯤 벗겨졌다.
대체로 머리가 벗어지면 두건 같은 것으로 가리는 법인데, 사내는 버젓이 내놓고 다닌다.
수염이 코 밑부분을 완전히 덮었다. 그래서 입을 꾹 다물고 있으면 입술이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보기 싫지는 않다. 정성스럽게 잘 다듬었다.
팔 장로는 본능적으로 위기를 감지했다.
사내는 강자다.
자신의 검을 보고도 이토록 여유를 부리는 것은 그만한 자신이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사내는 선의로 나타나지 않았다. 대별산은 금역이 아니니 누구든 들어설 수 있다. 하지만 다른 사람이 수련하는 모습을 사내처럼 대놓고 지켜보는 사람은 없다.
“지나가면서 봤는데, 검이 꽤 흥미롭더군.”
“지나친 관심은 단명으로 이어져. 지나가는 길이라면 참견하지 말고 계속 가시게.”
사내가 손을 들어서 콧구멍을 후볐다.
“나도 그냥 가고 싶은데, 그래도 소위 칼날 위의 인생이 사생락을 보고 그냥 갈 수야 있나.”
사생락을 안다!
팔 장로는 경각심을 더 높였다.
“누구냐?”
쉬릭!
팔 장로는 매서운 눈으로 사내를 쏘아보며, 검을 위협적으로 휘돌렸다.
“나? 말해도 몰라. 무림이란 곳에 발을 들여놓지 않아서. 옛날에는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면서 싸움깨나 했는데, 다 철없던 어린 시절 이야기지.”
“정동이냐?”
“정동? 아! 그 쓰레기들? 섭섭하네. 나를 겨우 그런 쓰레기들로 봤다니.”
사내가 유들유들 웃으면서 가까이 다가왔다.
스읏!
팔 장로는 검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곧장 기수식을 취했다.
사내의 의도가 명확하다. 일부러 팔 장로에게 접근했다. 누군지 모르지만, 분명히 악의가 있다.
싸움은 불가피하다.
문제는 이자를 이길 자신이 없다는 것이다.
사내는 전혀 긴장하지 않는다. 싸울 생각이 없는 사람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런데도 전신에서 허점을 찾을 수 없다. 걸어올 때, 손을 들어 올릴 때, 허리를 숙일 때…… 어느 경우에든 항시 반격할 요소가 보인다.
언제 어디서든 싸울 준비가 되어 있는 완벽한 싸움꾼이다.
‘내가 기에 눌리다니. 사생락은 누구든 벨 수 있어! 자신을 잃으면 목숨을 잃는 것!’
“누군지 말하지도 못하는 졸장부인가! 그렇다면 상대할 가치도 없지. 돌아갈래, 죽을래?”
팔 장로가 차분히 숨을 고르면서 말했다.
사내는 눈을 가늘게 뜨고 웃는 얼굴로 쳐다봤다.
더 볼 것도 없다. 사내는 싸움을 원한다. 어떤 말을 물어도 대답하지 않을 것이다.
쒜에에엑!
팔 장로가 쾌속하게 신형을 쏘아냈다.
습관처럼 암영보가 일어났다. 발바닥 밑 용천혈(湧泉穴)에서 진기가 통통 튀었다.
촤와앗!
그녀의 신형이 두 겹으로 겹쳐 보였다. 동시에 검 세 자루가 사내를 쳐갔다.
머리에서 뚝 떨어지는 검, 옆에서 갈라오는 검, 비스듬히 이마를 찍는 검.
슈웃!
사내는 즉시 뒤로 물러섰다.
순간, 사내의 눈앞에서 검무(劍舞)가 피어났다.
팔 장로가 전개한 검들이 실낱같은 차이로 사내를 스쳐지나 빈 허공을 훑었다.
파락! 파라락! 파락!
사내는 검 세 자루가 스쳐 지나가는 것을 냉철하게 지켜보았다. 그리고 마지막 검이 얼굴을 쓸면서 지나갔을 때, 즉시 팔 장로 앞으로 달려 나왔다.
“훗!”
팔 장로는 즉시 뒤로 물러서려고 했다.
이 자, 무척 빠르다. 일 검을 삼 검으로 변초(變招)했는데, 변초한 검보다 더 빠르게 달려든다.
쉿! 퍽!
사내의 주먹이 팔 장로의 복부를 후려쳤다.
“큭!”
팔 장로는 짧은 비명을 내지르며 비틀비틀 물러섰다.
취화원 장로, 암영보에 이어서 사생락까지 수련한 무공 고수가 단 일 초에 나가떨어졌다.
세상에 이런 사실을 말하면 워낙 믿기지 않는 말이라서 당장 미친놈 취급을 당할 것이다. 누가 믿겠나. 팔 장로가 일 권에 나가떨어졌다는 사실을.
“꺼억! 꺽!”
팔 장로는 털썩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복부를 움켜잡은 채 컥컥거렸다.
숨이 꽉 막혔다. 숨을 쉬지 못하겠다.
복부가 비비 꼬여서 어떤 반격도 할 수 없다.
사내가 팔 장로에게 다가오더니 머리채를 확 움켜잡았다.
“사람은 꼭 이렇게 맞아야 정신을 차린다니까. 할망구. 왜 이렇게 날뛰어? 좀 조용히 있지.”
사내가 머리채를 잡고 흔들었다.
팔 장로는 침착하게 호흡부터 골랐다. 정상적으로 숨을 돌리고, 진기를 응집시키고, 반격한다. 다행히 사내는 바싹 붙어있다. 진기만 모이면…….
사내가 말했다.
“아까는 잘 묻던데. 대답도 잘할까? 나도 하나 묻고 싶은 게 있어서 말이지. 몽설, 현정부인하고 어떤 관계야?”
“컥! 끄윽!”
“그렇지? 말 안 할 줄 알았어. 쉽게 말하면 재미없지. 취화원 장로쯤 되면 잘 알겠지만, 나 같은 사람은 듣고 싶은 말을 꼭 들어야 하는 성격이잖아? 버틸 수 있으면 버텨도 좋고. 그런데 할망구 뼈다귀가 약해서
…
.”
사내가 말끝을 흐리며 팔 장로의 목덜미를 움켜잡았다.
그러자 응집되던 진기가 바람 빠지듯 푹 빠져나갔다.
‘웃!’
팔 장로는 깜짝 놀랐다.
사내는 뒷 목덜미를 잡았다. 양쪽 손가락이 목 양쪽에 있는 천창혈(天窓穴)을 짚었다.
천창혈은 마혈(痲穴)이 아니다. 혼혈(渾穴)도 아니다. 진기를 조절하는 혈이 아니다.
그런데도 천창혈을 짚이자, 진기가 모두 사라졌다.
쉬이이잇!
사내가 신형을 쏘아냈다.
팔 장로는 저항하지 못했다. 사내에게 목덜미를 잡힌 채로, 그가 이끄는 대로 끌려갈 수밖에 없었다.
팔 장로는 죽음을 예감했다.
일생이 이렇게 끝날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