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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홀도-157화 (157/600)

#157화. 第三十二章 탄완취주(彈完就走) (2)

“장로님이 납치됐어요.”

청란이 하얗게 질린 얼굴로 보고했다.

“뭐라고!”

몽설은 오랜만에 편히 앉아서 차를 마시다가 벌떡 일어났다.

“무슨 소리야! 장로께서 납치됐다니!”

청란은 검집 없는 검을 내밀었다.

팔 장로의 검이 틀림없다.

취화원 때부터 사용하던 화검(花劍)이다. 검신에 꽃 모양이 음각되어 있다.

청란이 급히 말했다.

“장로님과 저녁 비무를 하기로 약속했는데, 시간이 되어도 오시지 않는 거예요. 그래서 찾아가 봤더니…

.”

청란이 급히 손가락을 펴서 몽설이 마시던 찻물을 찍었다. 그리고 탁자에 그림을 그렸다.

둥근 원, 원을 파괴하는 삐침 하나, 그 밑에 일(一).

“정말이야?”

몽설이 놀란 눈으로 그림을 쳐다봤다.

밀마의 뜻은 분명하다.

- 납치된다.

- 단 일 합에 당했다.

밀마만 보아서는 팔 장로가 어떤 식으로 납치되었는지 알 길이 없다. 다수에게 포위되어서 납치되었는지, 아니면 미혼약에 쓰러졌는지 구분이 되지 않는다.

분명한 것은 납치되어서 끌려가고 있다는 점이다.

“밀마가 어디 있었어?”

“땅에 그려져 있었어요.”

그렇다면 팔 장로는 무릎이 꿇린 상태다. 무릎으로 땅에 작은 단서를 남겨놓았다.

“추격은?”

“문도를 전부 내보냈는데, 아직 아무 연락이 없어요. 못 찾은 것 같아요.”

“음!”

몽설은 미간을 있는 대로 찡그리면서 신음을 흘렸다.

팔 장로가 납치된 장소는 일반인이 접근할 수 없는 곳이다.

대별산에서도 아주 깊고 외진 곳이다. 맹수도 자주 출몰해서 엽사도 들어서기를 꺼린다.

무엇보다도 그곳으로 가려면 취화원 경계망을 뚫어야 한다.

요즘 취화원이 거침없이 뚫리고 있다. 서리가헌도 뚫었고, 서리가헌을 공격한 무인들도 뚫었다. 그리고 오늘은 누군지 알 수 없는 자에게 뚫렸다.

취화원 경계망에 아주 심각한 허점이 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점을 생각할 겨를이 없다.

납치와 추격은 시간 싸움이다. 추격이 조금이라도 늦으면 돌이킬 수 없는 사태가 벌어진다.

‘어디로 끌고 갔을까?’

몽설은 크고 우람한 대별산을 쳐다보면서 생각에 잠겼다.

장로의 시신이 현장에 없으니 산 채로 끌고 간 것이다.

개인적인 원한 같지는 않다. 그렇다면 팔 장로에게서 무엇인가를 알아낼 생각이다.

곧 고문이 이루어진다.

끌고 가기 귀찮은 사람, 고문.

멀리 납치해 가는 수고를 덜면서 고문을 하기 적당한 곳이라면 어딜까?

‘안으로 들어갔어!’

몽설은 대별산 깊은 그늘을 쳐다봤다.

“난 지금 바로 추격할 거야. 저기로 가.”

몽설이 어두운 그림자로 덮여있는 대별산을 가리켰다.

“그럼 저도!”

“아니, 언니는 아걸에게 가. 사정 이야기를 하고 급히 나서 달라고 해. 자칫하면.”

몽설이 말을 끊었다.

뒷말을 하면 정말로 그런 일이 벌어질 것 같아서 불길했다. 그러니 불길한 말은 하지 않는다.

그녀는 지금 청란을 ‘언니’라고 불렀다.

지금은 원주고 문도도 가릴 겨를이 없다. 마음이 급해지니 속마음이 드러났다.

“알았어요. 저도 빨리 쫓아갈게요. 참! 문도들은 어떻게 할까요? 뒤따라서…….”

“아니. 계속 수색시켜. 내가 잘못 판단했을 수도 있으니까. 나, 먼저 가!”

쉬이이익!

몽설은 대답도 듣지 않고 신형을 쏘아냈다.

* * *

“장로님이?”

아걸은 청란의 말을 듣자마자 곧바로 반철도를 들고 일어섰다.

그때, 한쪽 구석에서 멍하니 하늘을 쳐다보고 있던 서리가헌이 불쑥 말했다.

“공부에게는 수족이 몇 명이나 있을 것 같니?”

아걸이 서리가헌을 쳐다봤다.

“네 명. 네 명이 있지. 세상은 허도기의 수족으로 소축십검을 꼽지만, 진짜 수족은 네 명. 소축십검 중에는 육군 협성림과 칠군 고조시가 포함되고. 자, 생각나는 것 없니?”

서리가헌이 말한 사람은 모두 전장을 떠돌았다.

소축십검 중 외장을 맡은 일곱 명이 무공 교두로서 백만대군에게 무공을 가르쳤다.

하지만 전장을 떠돈 사람은 두 명뿐이다.

나머지 다섯 명은 무공만 가르쳤을 뿐, 전장까지 뛰어들지는 않았다. 간혹 전장에 나가기는 했어도 한두 번 정도에 불과하니, 잠깐 경험 쌓은 것에 지나지 않는다.

육군과 칠군은 인생의 절반은 성검문에서 무공을 수련했고, 절반은 전장에서 전투하며 보냈다.

‘허도기는 같이 싸운 사람을 신뢰한다!’

아걸은 서리가헌이 묻는 말뜻을 알았다.

근래에 안 사실이지만 허도기의 수족은 소축십검이 아니다.

허도기에게는 군부에서 데리고 온 놈들이 있다. 그가 무공 교두를 괜히 맡은 것이 아니다. 무공을 가르치면서 천상 늑대인 자들을 발굴해 냈다.

그들의 힘은 성검문의 몇 배를 능가한다.

더욱이 군대는 마르지 않는 샘물이다. 성검문처럼 일부가 쓰러지면 그만큼 세력이 약해지는 구조가 아니다. 하나가 쓰러지면 다른 자를 또 데려오면 된다.

어차피 최고 무공을 지닌 자는 허도기다.

소축십검이 되었든 군에서 데려온 자이든 적당한 곳에 쓸 수 있을 정도면 된다.

솔직히 허도기 입장에서는 성검문이 쓸모없어졌다.

성검문은 황궁으로 통하는 열쇠였다. 성검문을 딛고 올라선 후에야 황궁에 닿을 수 있었고, 황궁에 올라선 지금은 아래를 내려다보기가 귀찮다.

성검문은 황궁으로 들어서는 발판에 불과했다.

이것이 현재 무림제일인, 무림 제왕의 생각이다.

그러니 총애하는 자도 당연히 군부가 주축을 이룬다. 소축십검은 정말로 쓸모가 있다고 인정받아야 한다.

서리가헌이 말했다.

“후후! 다른 두 명은 백만 명 중에 추리고 추린 놈들이야. 하나는 적위군을 이끄는 사구정이란 놈이고, 다른 한 놈은 하원랑(何遠良)이라는 놈인데 일기장군(一騎將軍)이라고 불렸지. 한 사람이 부대 하나 몫을 해냈어.”

“장로를 납치한 놈이 하원랑인가?”

“아마도.”

아걸이 신형을 쏘아내려고 했다. 한데 서리가헌이 아걸의 조급한 심정은 아랑곳하지 않고 또 말했다.

“귀찮더라도 생각할 건 생각하고 움직여야 하지 않겠니?”

“……?”

“생각해 보라. 허도기가 가장 총애하는 자를 시켜서 고작 팔 장로를 납치했던 말이지.”

“고작이란 말을 쓸 만큼…….”

“아! 고작이란 말에 비위 상했니? 그럼 미안. 하지만 우리에게 팔 장로 정도는 고작에 불과하거든. 허도기의 제일 수족인 하원랑과 취화원 원주도 아니고 한물간 팔 장로. 솔직히 서로 손을 맞댈 수준이 되니?”

“으음…

!”

“하원랑이 팔 장로를 납치했다면 무언가 단단히 알아낼 게 있는 거겠지. 그게 무엇일까? 지금 내가 가장 궁금한 점은 몽설과 현정 부인의 관계야. 도대체 무슨 관계이기에 몽설이 혈검경을 전수받았을까? 언제 전수한 것일까?”

“그게 그렇게 궁금한가?”

“허도기에게 일홀문은 아무것도 아냐. 일홀도는 단지 강한 칼일 뿐이지. 그런 칼이야 언제든 꺾으면 그만인 것이고. 하지만 현정 부인은 다르지. 바로 허도기의 치부이거든. 허도기에게는 가장 껄끄러운 부분이라 이 말이지. 그러니 그 일은 깨끗이 덮어야지. 어떻게 된 건지 사실 여부를 확인한 후에.”

‘위험하다!’

아걸은 몽설이 위험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허도기가 몽설을 노리고 있다.

일홀도를 노린다고 생각한 것은 오산이다. 서리가헌의 말대로 일홀도야 꺾으면 그만이다. 하지만 혈검경은 세상에 나타나서는 안 되는 무학이다. 허도기 입장에서는.

이번에 하원랑이 실패하면 다음에는 허도기가 직접 나선다.

몽설은 죽이는 것은 이미 정해졌다.

허도기는 반드시 몽설을 죽인다. 수하를 시키든 자신이 직접 나서든 죽이고야 만다.

아마도 몽설을 죽이는 일에는 그가 직접 나설 공산이 크다.

지금은 암암리에 사태를 파악하는 중이다. 몽설과 현정부인이 어떤 관계인지, 옛날 사건을 아는 자가 또 있는지, 있으면 어디 있는지 세부적인 것을 알고자 한다.

“생각하지 못한 부분인데, 고맙군.”

아걸은 가볍게 묵례했다.

서리가헌을 만난 이후, 그에게 베푸는 첫인사다.

* * *

추격에도 니환일궁은 편하게 쓰인다.

검성압만성(劍聲壓萬聲)!

검음이 만 가지 소리를 제압한다.

혈검경 제삼식 일검무성의 오의다.

니환궁에 검을 들어놓으면 검성, 검의 소리가 울린다. 그 소리가 주변에서 일어나는 만 가지 소리를 제압한다.

세상은 적막해진다.

츠으으읏!

몽설은 빠르게 질주했다.

팔 장로는 납치해 간 자는 아주 강인한 살기를 내뿜고 있다. 그 살기가 주변을 억눌렀다. 새들이 우짖지 못하고, 짐승들이 숨죽였다. 벌레도 울지 못한다.

고요함이 흐르는 곳만 쫓아간다.

그러다가 아주 고약한 냄새, 속이 뒤틀릴 정도로 역겨운 냄새를 맡았다.

화약에 찌든 냄새라고 할까?

냄새를 맡자마자 코를 톡 쏘아서 후각이 마비되는 줄 알았다.

납치범이 풍기는 냄새가 틀림없다.

그렇다면 추격하기가 매우 편해졌다. 이런 냄새는 쉽게 흩어지지도 않기 때문에 바로 따라갈 수 있다.

‘팔 장로를 건드리면 넌 죽어!’

몽설은 처음으로 살의를 느꼈다.

팔 장로를 비롯한 취화원 아홉 명의 살수는 이제 가족이나 다름없다. 살수 조직이 아니다. 살과 피를 나는 형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살수 명령을 주는 원주 심정은 어땠을까?

때때로 살수 조직은 비정해야 한다. 절대로 아랫사람에게 정을 주어서는 안 된다. 조금이라도 정을 주면 제대로 된 살수 명령을 내릴 수 없다.

세상에 쉬운 청부만 있겠나. 감당하기 벅찬 청부도 얼마든지 있다. 살해할 자를 보는 순간, 이건 살수가 살아오기 힘들겠구나 하는 청부도 있다.

그래도 원주라면 기꺼이 누군가를 보내야 한다.

가면 빤히 죽는 줄을 알면서 청부금 몇 푼을 받고 수하를 보내는 일이 얼마나 잔인한가.

그러니 청부가 들어오면 두 번, 세 번 살핀다. 살수가 해낼 수 있는 청부인지 가늠한다. 충분히 파악한 끝에 해낼 수 있다고 판단되면 그때서야 일을 맡긴다.

일이 들어오는 대로 아무에게나 순차적으로 맡긴 것이 아니다.

몽설은 전임 취화원주의 고뇌를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장로님을 건드리면 넌 편히 죽지 못해!”

이건 맹세다.

쒜에에에엑!

몽설은 빠르게 냄새를 쫓아서 대별산으로 들어갔다.

* * *

‘냄새? 함정이다!’

아걸은 미간을 확 찡그렸다.

도망자는 절대로 냄새를 남기지 않는다. 허도기의 수족쯤 되는 자는 특히 그렇다.

그런데 아주 진한 냄새가 풍기고 있다.

냄새가 고약해서 인상이 절로 찌푸려지지만, 반대로 말하면 결코 놓칠 수 없는 냄새다.

강호 경험이 풍부하다면 여기서 즉시 걸음을 멈췄어야 한다.

몽설은 계속 쫓아가고 있다. 아마도 팔 장로를 잃으면 안 된다는 조급함이 냉철함을 무디게 한 것 같다.

‘팔 장로만 노린 게 아니다. 잡을 수 있으면 몽설까지 잡겠다는 뜻이야.’

팔 장로가 단순히 미끼일 수도 있다.

일부로 쫓아오게 만들어 놓고, 몽설이 따라붙으면 잡겠다는 건가? 너무 심한 억측인가?

아니, 괜한 억측이 아니다.

상대는 전장 경험이 풍부한 백전노장이다. 사나운 호랑이이자 교활한 능구렁이다. 함정을 잘 파고, 걸려든 맹수는 결코 놓치는 법이 없다.

쒜에에에엑!

아걸은 전력을 다해서 신형을 쏘아냈다.

냄새는 곧바로 대별산 깊은 골로 이어졌다. 아걸조차도 들어간 본 적이 없는 산골짜기다.

‘아!’

아걸은 부지불식간 경악성을 토해냈다.

이제 알겠다. 하원랑이라는 자는 이 길을 통해서 잠입했다. 앞을 뚫고 온 것이 아니라 뒤로 돌아왔다. 길 없는 곳에 길을 만들면서 천천히 내려왔다.

당연히 싸워야 할 곳도 파악해 놓은 상태일 것이다.

‘몽설, 조금만 버텨!’

쒜에에엑!

아걸은 입에서 단물이 벨 정도로 전력을 끌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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