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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홀도-158화 (158/600)

#158화. 第三十二章 탄완취주(彈完就走) (3)

‘함정!’

몽설은 함정을 예감했다.

도망치는 자가 너무도 뚜렷하게 흔적을 남긴다. 냄새가 은은해도 쫓아가기 충분한데, 이건 아예 사향(麝香)처럼 진한 냄새를 풀풀 날리면서 골짜기로 들어가고 있다.

추격에 둔한 자라도 이 냄새는 놓칠 수가 없다.

하지만 몽설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

냄새가 함정으로 유인한다고 해도 계속 따라가야만 한다. 여기서 물러서면 팔 장로가 위험하다. 자신의 안위는 지킬 수 있어도, 팔 장로는 잃는다.

파아아앗!

몽설은 니환일검을 일으켜서 주위를 충분히 경계했다.

언제 어디서 급습을 해오더라도 맞받아칠 준비가 되어 있다.

‘혈검을 믿어!’

몽설은 상대가 누구인지, 어떤 종류의 사내인지 궁금해졌다.

상대는 분명히 강자다. 팔 장로를 단숨에 제압한 것만 봐도 강자라는 말에 이의를 달 수 없다.

자신에게도 벅찬 상대인 것만은 틀림없다.

자신을 팔 장로를 단숨에 제압할 수 있을까?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아닐 것이라는 측면이 제압하는 쪽보다 조금 더 강하다.

상대가 자신보다 상수인 것 같다.

그래서 뭐 어쩌라고? 정말로 선택의 여지가 없는데. 싸워서 뺏어오는 방법밖에 없는데.

쒜에에엑!

몽설은 한 번도 들어선 적이 없는 미지의 땅에 발을 디뎠다.

꽈르르릉!

골짜기 안쪽에서 폭포 소리가 울렸다.

경치는 매우 좋다.

좌우로는 바위로 둘러싸여 있고, 한가운데에 어른 키만 한 폭포가 시원한 물줄기를 떨구고 있다.

폭포 앞에는 작은 소(沼)도 있다.

가장 깊은 곳이라고 해도 가슴 높이까지 밖에 차지 않을 것 같은 작은 소이지만, 맑은 물이 찰랑거리고 있어서 무척 시원하게 느껴진다.

머리가 반쯤 벗겨지고, 수염이 코 밑을 완전히 덮은 사내는 물가에서 모닥불을 피우는 중이었다.

몽설은 팔 장로부터 찾았다.

팔 장로는 물가에 아무렇게나 쓰러져 있다.

다행히 목숨을 잃은 것 같지는 않다. 축 늘어져 있기는 하지만 죽었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쉬이이잇!

몽설은 거침없이 사내 앞에 내려섰다.

사내가 고개를 들어 몽설을 힐끔 쳐다봤다. 하지만 곧 모닥불에서 치솟는 연기를 맡고 눈살을 찌푸렸다.

그는 몽설에게 무관심했다.

몽설도 그를 아랑곳하지 않고 팔 장로에게 걸어갔다.

사내는 모닥불에 집중할 뿐, 몽설이 장로에게 걸어가도 제지하지 않았다.

몽설은 장로의 완맥을 잡았다.

‘맥은 정상이야.’

팔 장로는 의식이 있는지 눈을 뜨고 있었다. 하지만 몸을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마혈을 제압당한 거예요?”

팔 장로는 묻는 말에도 대답하지 않았다. 고갯짓을 한다거나 눈꺼풀을 깜박거리지도 않았다.

마혈과 아혈을 동시에 제압당한 듯하다.

몽설은 어떤 혈이 막혔는지 알기 위해서 진기를 미미하게 흘려 넣었다.

츠으으읏!

진기가 완맥을 통해서 팔 장로의 전신으로 스며들었다. 순간,

“크으으윽!”

갑자기 멀쩡하던 팔 장로가 신음을 쏟아냈다.

팔 장로는 몹시 괴로운 듯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이마에서는 식은땀까지 줄줄 흘렸다.

몽설은 즉시 진기를 거뒀다.

외인의 진기가 경혈을 건드리면 제압된 마혈과 아혈이 충격을 받는 형태인 것 같다.

팔 장로는 사내의 독문 점혈에 당했다.

몽설은 이제야 비로소 사내가 왜 이렇게 태연했는지 알았다.

사내는 자신의 독문 점혈에 상당한 자신을 가지고 있다. 누구도 쉽게 풀지 못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 만약, 외인이 아무런 지식도 없는 상태에서 팔 장로를 무리하게 건드리면 오히려 막인 혈이 폭발할 수도 있다.

설혹 갖은 노력 끝에 점혈을 푼다고 해도, 점혈을 풀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렸다면 문제는 여전히 존재한다.

자칫하면 막힌 혈이 딱딱하게 굳어져서 정상으로 돌아가지 못할 수도 있다. 그렇지 않으면 완전히 낫기까지 상당히 오랜 시간이 걸릴 수도 있다.

독문 점혈은 이래서 위험하다.

“와서 앉지. 생선 몇 마리 잡아놨는데.”

사내가 꼬치구이를 하기 위해 만든 나뭇가지로 모닥불 맞은편을 가리켰다.

그는 정말로 작은 물고기를 잡아놨다. 손가락 길이밖에 안 되는 물고기가 십여 마리쯤 보였다.

사내는 물고기 아가미에 넝쿨 줄기를 찔러넣었다.

“내가 식사를 안 해서. 이것도 다 밥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인데 저녁은 먹어야지.”

“사람 납치하는 게 일이야?”

“그런 말을 하면 섭섭하지. 당신 일은 사람 죽이는 거 아닌가. 죽이는 것보다는 납치하는 게 낫지.”

사내가 줄기에 꿰인 물고기를 모닥불 위에 올려놨다. 그리고 나뭇가지를 살살 돌렸다.

곧 고기 익는 냄새가 구수하게 번졌다.

“몇 마리 하지?”

“풀어.”

몽설이 차디찬 음성으로 말했다.

“우선 좀 먹고. 뱃가죽이 등짝에 달라붙었다니까 안 믿네. 지금은 너무 배고파서 헛것이 보여.”

노릇하게 익은 생선에서 누런 기름기가 뚝뚝 떨어졌다.

사내는 그중에서 한 마리를 빼내 으적 씹었다.

“호오! 뜨거워. 약간 덜 익었는데, 그래도 괜찮네. 다 익을 때까지 못 기다리겠어. 어휴!”

사내는 정말 배고픈 듯 허겁지겁 물고기를 먹었다.

다섯 마리쯤 물마시듯 먹은 후에야 한숨 돌리며 말했다.

“말 한마디에 풀어줄 것 같으면 뭐 하러 점혈을 해? 목적이 있으니까 한 거지. 풀어주긴 풀어주는데, 그 전에 듣고 싶은 말이 있어. 우리 서로 편하게 가자고.”

“뭐야?”

“사실 이 대답은 저 할망구 뼈마디 몇 대 부러트리면 들을 수 있는 거지만, 그래도 당사자에게 직접 듣는 게 더 나을 것 같아서 말이지.”

“말하라니까!”

“현정부인과 당신, 어떤 관계야?”

“그걸 왜 물어?”

“하! 내가 곤란한 질문을 했나? 별로 어려운 질문 같지 않은데? 그냥 말해주지?”

“그럼 나부터 물어볼게. 당신과 허도기, 어떤 관계야?”

“수하. 내가 수하, 공부가 상관. 공부가 시키면 내가 한다. 봐? 쉽지? 이렇게 쉬운 대답을 왜 못하는지 몰라. 이게 뭐가 그렇게 중요한 질문이라고. 이제 답해보지?”

몽설이 고개를 살래살래 흔들었다.

“당신도 대답하기 곤란한 말이 있을 거야. 다시 물어볼까? 나와 현정부인의 관계를 허도기가 왜 궁금해하는데? 허도기와는 아무 상관이 없잖아?”

“그거 남의 상관 이름을 막 불러대도 되나? 그 질문은 내가 대답하지 못해. 알지 못하거든. 모르는 것은 대답해 줄 수 없고……. 보아하니 내 질문, 답할 생각이 없나 봐?”

사내가 남은 물고기를 모두 먹었다. 그리고 옷소매로 입을 쓱 문질렀다.

“사실…… 난 이런 질문하는 것도 귀찮아. 내가 모르는 것을 물어야 한다는 것도 짜증 나고. 그래서 당신과 저 할망구. 당사자에게 데려가려고. 만남은 내가 주선할 테니까 궁금한 게 있으면 서로 물어봐. 중간에 모르는 사람 끼지 말고.”

스읏!

사내가 단검을 뽑았다.

사내의 병기는 작은 검, 소검(小劍)이다.

사내는 작은 검을 거꾸로 잡고, 검신으로 얼굴을 가렸다. 작은 검 하나로 몸 전체를 막았다.

그런데 이상하다. 정말로 몸 전체가 소검에 감싸인 느낌이 든다. 치고 들어갈 구멍이 없어 보인다. 어디를 공격해도 소검이 마중 나올 것 같다.

사내는 검을 조금씩 움직이면서 앞으로 다가섰다.

‘백타(白打)!’

몽설은 사내의 싸움 방식을 알았다.

사내는 근접전 고수다. 몸을 바싹 붙인 상태에서 찌르고 베는 데 능하다.

거리를 잃으면 사내가 유리해진다. 거리를 넓게 잡고 있으면 백타를 쓰기가 어렵다.

스릉!

몽설은 장검을 뽑았다. 그리고 사내를 겨눴다.

이 순간, 니환궁이 활짝 열렸다. 손에도 검, 니환궁에도 검 한 자루가 들어섰다.

“점혈은 어떻게 풀지? 네가 죽으면 점혈을 풀지 못하잖아.”

“그런가? 그럼 죽어야지. 아니면 네가 검 내려놓고 얌전히 따라가는 수도 있고.”

“해혈 안 해 줄 생각이네?”

“안 해주긴. 내가 이기면 해준다니까.”

사내를 죽일 수 없다. 제압해야 한다. 독문 점혈을 해혈하려면 사내가 필요하다.

서로 최선을 다 해도 누가 이길지 모르는 상대인데, 반드시 생포해야만 한다는 압박감까지 생겼다. 하지만 이것 역시 선택의 여지가 없다. 반드시 해내야 한다.

파앗!

몽설은 혈검을 일으켰다.

먼저 어깨가 들썩거렸다. 어깨에 붙은 팔꿈치도 움직였다. 그리고 손목, 손…… 손에 붙어있는 검이 제일 마지막으로 꿈틀거렸다.

몽설이 춤을 추기 시작했다.

손에서 검까지의 거리, 이 거리만 지키면 된다. 이 거리가 유지되는 한, 사내는 백타를 펼치지 못한다. 단검을 쓰지 못하고 피하는 데 급급해질 것이다.

몽설은 춤을 추듯이 우아하게 검을 휘둘렀다.

“거참 들어가기 힘드네.”

사내가 중얼거렸다.

실제로 그는 달려들려고 하다가 물러서고, 물러섰다가는 다시 달려들기를 반복했다. 그리고 그때마다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어깨를 움찔거렸다.

앞으로 달려들 시차를 잡지 못하고 있다.

휘리리릭! 스으으읏!

몽설이 전개한 검은 흐르는 강물처럼 완만하다. 너무 부드러워서 낭창거리는 버드나무가 딱딱해 보인다.

혈검은 중원 오대 검공 중 하나다. 만약, 오늘 몽설이 패한다면 혈검경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수련이 부족한 탓이다.

탓!

부드럽게 흐르던 검이 맹렬하게 사내를 찔렀다. 창으로 찌르듯이 푹 찔렀다가 뒤로 쭉 빠졌다.

사내가 깜짝 놀라 뒤로 물러섰다.

몽설이 펼친 검은 매우 이상하다. 미간 한가운데를 찔러오는데, 머리를 돌릴 수가 없다. 어느 쪽으로 돌려도 검이 끝까지 따라붙을 것 같다.

남은 수는 하나, 뒤로. 물러서는 것이다.

사내를 훅 물러섰다가 다시 제자리를 찾아왔다.

“혈검이 왜 유명한지 알겠네. 후후!”

사내가 웃었다.

하지만 그 웃음이 공격 신호다.

사내가 훅! 달려들었다.

‘빠르다!’

이번에는 몽설이 사내를 잘못 봤다. 지금보다는 느릴 것으로 생각했는데, 무척 빠르다. 분명히 눈앞에 있었는데, 어느새 코앞까지 달려와 단검을 내리찍는다.

하지만 몽설은 사내가 달려들 때부터 이미 달려드는 방향과 속도를 계산했다.

슷! 까아앙!

위로 쳐들린 검이 소검을 막았다. 동시에 장검이 살아있는 뱀처럼 사내의 팔뚝을 감았다.

사내는 손아귀 안에서 소검을 돌려 잡았다. 그리고 그대로 쑤셨다.

까앙! 깡!

장검과 소검이 또 충돌했다.

몽설은 빙그르 회전하면서 여전히 사내의 팔뚝을 노렸다.

니환일검이 백타를 따라붙었다. 사내의 소검을 끝까지 쫓았다. 그리고 앞으로 전개될 움직임도 예측했다.

근접전에서는 소검이 장검보다 훨씬 유리하지만, 지금은 오히려 몽설이 유리해 보였다. 단검을 든 사내가 몸에 찰싹 달라붙은 장검을 떼어내지 못해서 쩔쩔맸다.

까앙! 깡깡깡! 까앙!

두 사람은 순식간에 십여 초를 주고받았다.

한데 검과 검이 부딪치자 몽설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 벌어졌다. 장검이 소검에게 밀렸다. 내력 대결에서 사내가 월등히 앞선다. 장검이 부르르 떨렸다.

스읏! 푸욱!

사내는 여세를 몰아서 어깨를 내리찍었다.

몽설은 장검 대신 왼손으로 혈검을 떨쳤다. 부드럽게 쳐들린 손가락이 번개처럼 빠르게 사내의 가슴을 쿡 찍었다.

“훅!”

사내가 헛바람을 흘리며 물러섰다.

몽설도 따라붙지 않았다. 사내가 물러서자 몽설도 뒤로 쭉 물러섰다.

지금까지 두 사람은 짧은 거리에서 이십여 초를 주고받았다. 오직 한 호흡으로만 모든 초식을 전개했다. 싸우기 전에 힘껏 들이쉰 숨이 전부였다.

폐가 눌러 참은 공기를 토해내지 못해서 안달이다.

잠시 숨을 고를 필요가 있다.

“후욱! 후우우욱!”

“후욱!”

두 사람은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큰 숨을 들이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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