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9화. 第三十二章 탄완취주(彈完就走) (4)
“……이거 곤란한데? 이러면 온전히 데려가기는 힘들겠어.”
사내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말했다.
사내도 몽설을 해치지 않고 온전한 상태로 잡아갈 생각이었던 것 같다. 그렇다면 사내 역시 전력을 다하지 않았다는 뜻이 된다. 사정을 봐준 게 그 정도였다.
“해혈법을 내놓는 게 어때? 나도 최선을 다해야지. 이렇게 싸우는 건 너무 불공평하잖아.”
“후후! 원래 인생은 불공평한 거지.”
사내가 소검을 번뜩였다.
“그런데, 내가 정말 이해되지 않아서 물어보는 건데 말이야. 할망구 목숨쯤 그냥 버려도 되지 않나? 뭐 딱히 써먹을 것도 없는데, 구하려고 애를 써?”
사내가 팔 장로를 보면서 말했다.
“너…… 아주 못된 놈이네.”
몽설이 분노를 터트렸다.
“어떻게 사람 앞에 두고 그런 말을 해?”
“원주, 이런 말은 뒤에서 하는 게 더 나쁜 거야. 앞에서 하면 솔직하기라도 하지.”
“언젠가 허도기도 당신한테 그런 말을 할 때가 있을 거야. 이런 쓸모없는 놈을 내가 왜 데리고 있었는지 모르겠다고. 그런 말, 빨리 듣기를 고대할게.”
“악담이군. 악담을 들었으니 오래 살겠어. 적어도 이번 싸움에서는 목숨을 잃지 않겠는데? 원주 덕분에. 하하하!”
사내가 웃었다.
스읏!
몽설을 검을 들어 올렸다.
지금부터는 서로 전력을 다해서 싸운다. 봐주는 것 없다. 죽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도 떨쳐놔야 한다.
사내는 분명히 그렇게 할 것이다.
하지만 몽설은 그러지 못한다. 여전히 팔 장로를 구제하려면 사내가 필요하다.
‘어떻게 하지?’
몽설은 검을 들어 올렸지만, 마음은 여전히 갈팡질팡 중심을 잡지 못했다.
전력을 다하지 않으면 안 될 상대, 하지만 전력을 다하면 팔 장로를 구할 수 없다.
슷!
사내가 싸우기 전에 하는 습관인지 소검을 들어서 전신을 가렸다.
소검을 들고 있는 손이 무쇠처럼 단단해 보인다. 진기를 더 강하게 밀집시키고 있다. 이번에는 기필코 몽설을 잡겠다는 의지가 소검을 통해 전해진다.
‘아! 답답해!’
몽설은 남모르게 한숨을 토해냈다.
“지금부터는 나도 검초라는 걸 써보지.”
쉬이이잇!
사내가 말이 끝나기 무섭게 신형을 쏘아냈다.
몽설도 혈검을 전개했다. 하지만 그녀의 검은 여전히 방어에 치중했다.
소검이 머리를 찍어온다. 한데 이 순간,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니환일검이 다리를 향한다. 분명히 검자루가 하늘을 향하고, 검첨이 땅을 가리켰다.
니환일검이 거꾸로 세워졌다.
진기가 느끼는 감각은 상단이 아닌 하단을 가리킨다. 사내의 소검이 다리를 찍어온다고 말한다.
몽설은 니환일검을 쫓아서 혈검 제일식 일검무극을 펼쳤다. 백이십칠 동작으로 이루어진 아름다운 검무가 부드럽게 피어났다. 검이 몸 주위를 완전히 감쌌다. 그러던 한순간,
까앙!
느닷없이 정강이 부근에서 불똥이 튀었다.
사내는 머리를 찍어오는 중이었고, 몽설은 춤을 추는 중이었다. 모두 하단과는 전혀 상관없는 움직임을 보였다. 그런데 정작 검은 다리에서 부딪쳤다.
‘환술!’
사내는 분명히 머리를 찍어왔다. 한데 느닷없이 다리로 방향을 틀었다. 아니, 처음부터 다리를 노리고 찍어왔다. 그가 언제 다리로 내려섰을까.
몽설이 본 것은 환상이다.
니환일검이 옳았다. 전신의 모든 감각이 소검을 쫓아다닌다. 그러니 철저하게 니환궁을 믿어야 한다.
“이걸 막아? 대단하네!”
사내가 감탄했다.
몽설의 검은 순간적인 검속이 매우 뛰어나다.
아주 짧은 특정 구간에서는 세상에 존재하는 어떤 무공이나 병기보다도 빠르다.
특정 구간이 아닌 곳에서는 진기를 풀어놓는다. 절대로 진기를 집중시키지 않는다. 그래서 검무를 추듯이 하늘거린다. 하지만 어느 구간에 들어서면 그동안 풀어놨던 모든 진기가 일시에 응축되어서 발산된다.
그 힘은 원래 일으켰던 진기보다 두 배는 강해진다.
그런 검을 가지고도 사내를 잡지 못하는 것은 오직 수련이 부족한 탓이다. 아직은 그녀가 펼칠 수 있는 최대 검속을 일으키지 못하고 있다.
“어디! 이번에는!”
사내의 신형이 좌우로 비틀거렸다.
왼쪽으로 가는 척하다가 오른쪽으로 가고, 오른쪽인가 싶으면 왼쪽으로 간다.
이번에도 환술이다.
오른쪽 혹은 왼쪽, 둘 중 하나는 거짓이다.
그러니 왼쪽에서 공격해 온다 싶을 때, 오른쪽을 경계해야 한다. 또는 역의 역이라는 말이 있듯이, 왼쪽으로 오는 척하다가 정말 왼쪽을 공격할 수도 있다.
이 검을 막으려면 소검을 끝까지 지켜봐야 한다.
하지만 인간의 눈처럼 믿을 수 없는 것도 없다. 인간의 감각 중 가장 많이 쓰이는 감각이 시각이다. 하지만 시각은 오감 중 가장 많은 착오를 일으킨다.
소검이 왼쪽 옆구리를 향해 날아들었다. 정말 왼쪽인가? 아니다. 오른쪽이다. 니환일검이 오른쪽으로 기운다.
몽설은 혈검 제이식 일검무진을 펼쳤다.
스으으읏! 툭!
하늘하늘 움직이던 검이 뚝 떨어졌다. 오른쪽으로 날아드는 소검을 정확하게 보았고, 소검이 날아오는 특정 구간에서 가장 빠른 검속으로 하강했다.
까앙!
검과 검이 격돌했다.
순간, 사내가 움찔거렸다. 손에 들고 있던 소검이 부르르 떨리기까지 했다.
그렇다! 여기에 방법이 있다!
사내의 검을 떨구는 거다. 그러면 사내를 사로잡을 수 있다. 팔 장로를 해혈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잠깐의 생각이 오히려 혈검을 전개하는데 장애 요인이 된다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사내는 만만한 자가 아니었다.
‘왼쪽!’
몽설은 소검이 오는 것을 봤다. 환상이 아니라 실체를 봤다.
그녀는 당장 진기를 집중시켰다. 이번에는 반드시 소검을 떨어내야 한다. 강한 힘으로 손아귀를 찢는다. 그리고 바로 이어서 혈을 제압한다.
하지만 니환일검은 진기를 풀라고 한다.
일정 구간에서만 집중시키면 된다. 계속 진기를 끌어올리고 있을 필요가 없다.
하지만 몽설은 진기를 풀지 않고 오히려 집중시켰다.
니환일검이 왼쪽으로 기울었다. 사내가 왼쪽으로 온다는 것을 감지했다.
몽설은 전력을 다해서 소검을 쳐냈다. 하지만 이 검은 그녀가 조금 전에 펼쳤던 검보다 절반이나 느렸다. 검에 집중된 힘도 오히려 더 약했다.
까앙!
검이 부딪치는 순간, 소검이 오히려 장검을 압도했다.
몽설의 검이 손에서 벗어나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절망이다. 사내는 내친김에 몽설의 목까지 찍어왔다. 신체 중 일부분에 상처를 낼 생각이다.
하지만 사내는 달려들 때보다 더 빠르게 뒤로 물러섰다.
저벅! 저벅! 저벅!
묵직한 발소리가 들렸다.
순간, 몽설의 얼굴에 환한 웃음이 피어났다.
아걸이 걸어오고 있다. 반철도를 꼭 쥐고 천천히 걸어오는데, 그 모습이 매우 믿음직스럽다.
“이 손님은 반갑지 않은데…….”
사내가 인생을 찡그리면서 아걸을 쳐다봤다.
아걸은 사내를 지나쳐서 몽설 앞으로 왔다. 사내로부터 몽설을 가로막았다.
아걸이 몽설을 보며 물었다.
“괜찮아?”
“날 보면 항상 그 말부터 묻네? 내가 그렇게 안 미더워?”
“믿어. 마음껏 싸워.”
아걸은 어느새 주워왔는지 몽설이 놓쳐버린 장검을 내밀었다.
“장로님이…….”
“걱정하지 말고, 마음껏 싸워.”
몽설에게 아걸의 말 한마디는 천군만마의 힘이 된다.
아걸이 팔 장로의 점혈을 어떻게 치료할지 모르겠지만, 걱정하지 말라고 했으니 해혈해 낼 것이다.
“우리 정말로 싸워야겠네?”
몽설이 검을 쳐들었다.
“전세가 역전됐군. 이 대 일이면 내가 불공평하지. 하지만 원래 인생이 불공평한 거니까. 우선 할망구 상태나 살펴보지 그래. 내 점혈은 워낙 특이해서 아무나 풀 수 없거든.”
“신경 쓰지 않아도 돼. 우리 일은 우리가 알아서 할게. 자! 들어. 내가 먼저 시작해?”
몽설이 사내를 다그쳤다.
“아니, 정말 보고 싶어서 그래. 내 점혈을 정말 풀까 하고.”
아걸이 사내를 흘깃 쳐다봤다. 그리고 팔 장로에게 걸어가며 말했다.
“몽설. 이 자, 일기장군 하원랑이야. 허도기 최측근. 전장에서 한 사람이 부대 하나 몫을 했대.”
아걸은 말을 하면서 팔 장로의 목을 슬쩍 주물렀다. 순간,
“끄응!”
팔 장로가 짙은 신음을 토하며 꿈틀거렸다.
“웃!”
하원랑이 깜짝 놀란 표정으로 팔 장로를 쳐다봤다.
정말 해혈 되었다. 독문 점혈이 풀렸다.
사실 아걸에게는 해혈이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이곳까지 쫓아오는 동안, 마음이 용광로처럼 팔팔 끓었다. 몽설이 당하면 어쩌나 하는 생각에 느린 발걸음이 원망스러웠다. 더 빨리 달릴 수 있으면 좋을 텐데 하고.
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투지만큼은 잔잔하게 가슴 밑바닥으로 가라앉았다.
투지가 사라진 것이 아니다. 투지는 존재하지만, 겉으로 드러나지 않았다. 아걸 자신은 싸울 생각이 분명하지만, 상대방은 느끼지 못하는 상태다.
일홀도가 정상을 향해 치달리고 있다.
아걸의 일홀도는 그가 창안했다. 다듬는 것도 그가 직접 한다. 그래서 한계가 어디까지인지 아걸 자신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 상태만으로도 만족할 수준은 되었다고 생각한다.
만족의 기준은 허도기다.
그와 싸울 수 있을 것 같으면 만족한다. 더 발전할 이유도 없다. 허도기만 죽이면 무림을 떠날 수도 있다. 명성이나 부귀 따위는 관심도 없다.
만족할 만한 수준…… 그런 현상이 계속 유지되고 있다.
그런 상태에서 팔 장로를 쳐다보면 꽉 막힌 지점이 보인다. 기운이 정체되어 움직이지 않는 부분이 한눈에 드러난다.
그다음은 해혈이다.
점혈을 어떻게 했느냐에 따라서 해혈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매듭을 짓는 방식에 따라서 푸는 것도 달라진다. 무조건 칼로 싹둑 베어낼 수는 없다.
점혈을 칼로 베어낸다는 것은 진기로 밀어붙인다는 뜻이다. 봉혈을 짓뭉갠다.
점혈에서는 그런 방식이 통하지 않는다.
아걸은 진기를 밀어 넣었다. 그리고 스스로 풀리도록 유도했다. 매듭이 역순으로 풀린다.
아걸은 조금씩 더 힘을 가하면 된다.
물론 해혈하는 시간은 찰나에 불과하지만, 그 짧은 시간 동안에 많은 일이 벌어진다.
아걸에게는 독문 점혈이나 일반 점혈이나 다를 바 없었다.
팔 장로는 점혈 되어 있던 시간이 길어서인지 쉽게 일어나지 못하고 머리를 부둥켜안았다.
두통이 상당히 심하게 일어나는 모양이다.
“괜찮아요?”
몽설이 물었다.
팔 장로는 고개만 끄덕였다.
아걸이 하원랑을 쳐다보며 말했다.
“보내줄 테니까 가. 가서 허도기에게 말해. 비무 날짜가 정해졌으니 그날 보자고. 그때까지 귀찮게 하지 말고. 다른 사람 눈에는 허도기가 무신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내 눈에는 쓰레기를 깔고 앉은 미친놈으로 보여.”
“후후후! 그 말, 그대로 전하지.”
하원랑이 소검을 허리춤에 찔러넣었다. 그러면서 옅은 웃음을 머금은 채 말했다.
“하지만 내가 가는 게 썩 좋은 것만은 아니야. 나 다음에는 네놈 말대로 공부께서 직접 나서실 거다.”
“그러길 바라. 그래서 보내주는 거야. 직접 오라고. 꼭 비무 때가 아니더라도 언제든지 오면 받아준다고 해.”
“하하하! 당금 무림에서 공부에게 그런 말을 하는 미친놈은 너밖에 없을 거다. 하하하! 일홀도가 매섭긴 매섭네. 단시간에 무척 빠르게 성장했어. 하하!”
하원랑이 웃으면서 신형을 날렸다.
“정말로 그냥 보내주는 거야?”
몽설이 옆으로 다가서며 물었다.
“보내줘도 괜찮아. 그것보다…… 여기를 막아야겠어. 아니면 장소를 옮기든가.”
아걸이 대별산 골짜기를 돌아보며 말했다.
“장소를 옮겨야지. 이미 발각된 장소는 빨리 버리는 게 상책이야. 그래서 살수는 떠돌이라고도 하잖아.”
몽설이 활짝 웃으면서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