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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홀도-164화 (164/600)

#164화. 第三十三章 고육책(苦肉策) (4)

좌석에 앉은 무인들이 병기를 잡았다.

그들은 서두르지 않았다. 일남일녀는 이미 포위된 상태다. 빠져나갈 구멍이 없다.

문제는 두 사람이 심상치 않은 고수라는 점이다. 무인들의 머릿속에는 두 사람과 싸울 수 있을까 하는 생각으로 가득했다.

몽설이 그들을 쓱 둘러본 후, 다시 아걸을 보며 말했다.

“오빠, 나 여기서 많이 다칠 건데, 피를 흘려도 개입하지 않고 그냥 봐줄 수 있어?”

“뭐? 안 돼!”

아걸이 단호하게 말했다.

아걸은 다친다는 말에 금방이라도 반철도를 뽑을 기세였다.

그러자 몽설도 딱 부러지게 말했다.

“그럼 자리 좀 피해줘.”

“안 된다고 했지!”

“난 여기서 다쳐야 해. 오빠는 정상적으로 싸워서 취화원이 정동을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해? 그래서 최악의 방법을 써야 해.”

“중간 점검이라고 했지, 다친다고는 안 했잖아.”

“이게 중간 점검이야. 우린 이번에 한 단계를 딛고 일어서야 해. 그렇지 않으면 취화원은 계속 도망만 다니는 약해빠진 문파로 전락할 거야. 오빠, 나 일 좀 하게 해줘.”

몽설이 아걸을 빤히 쳐다봤다.

“이런 걸 할 생각이면 진작 말을 했어야지.”

“말을 했으면? 허락할 거야? 아니잖아. 허락하지도 않을 거였으면서 뭘 그래.”

“……꼭 다쳐야 하는 거야?”

몽설이 고개를 끄덕였다.

“심하게 다치지는 않을 거지?”

몽설이 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몽설은 심하게 다칠 것이다. 그녀가 부상이라는 말을 입에 담았다면 상당히 크게 다칠 것을 각오한 것이다. 왜 다쳐야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매우 싫다.

“난 너 다치는 거 못 봐.”

“그러니까 자리를 피해 달라고 했잖아. 그게 좋겠어. 차라리 안 보는 게 나도 좋아.”

아걸이 고개를 끄덕였다.

“밖에 나가 있을게. 크게 다치면 참지 못해.”

“밖에 나가면 취운 언니가 와 있을 거야. 따라가서 기다려줘. 나도 곧 갈게.”

아걸이 몽설을 빤히 보다가 뒤돌아섰다.

그러자 문가에 있던 무인 몇 명이 즉시 일어나서 객잔 문을 가로막았다.

아걸이 눈을 가늘게 뜨고 말했다.

“그러잖아도 내가 죽이고 싶은 거 억지로 참고 나가는 거니까. 시비 걸지 마라.”

그 말, 무인들에게는 허풍으로 들렸다.

객잔 무인들은 아걸을 알아보지 못했다. 아걸은 칼만 차고 있을 뿐, 무인다운 패기가 전혀 엿보이지 않았다.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사람에 불과했다. 고수다운 면모라고는 눈곱만큼도 읽을 수 없었다.

살수가 아걸을 봤다면 퇴빙을 의심해 보겠지만, 이들은 그런 것에는 일절 관심이 없었다.

그러니 길을 열어줄 리 만무하다.

“죽이고 싶으면 죽여야지 그런 걸 왜 참아? 참지 마. 그런 거 참으면 병 생겨.”

무인은 유들거리기까지 했다.

아걸은 차분히 그들을 보며 말했다.

“참지 마라? 혈도비자에게 그런 말을 하는 사람도 있군. 지옥혈객이 사지가 찢겨서 죽었다는 말도 듣지 못했나 보네. 정말 참지 않아도 될까?”

순간 그를 막아섰던 무인들이 주춤주춤 물러섰다.

그들은 아걸이 스스로를 혈도비자라고 말하자, 비로소 아걸 허리춤에 꽂혀 있는 칼에 눈길에 갔다.

칼 중간이 부러진 듯 도첨이 없는 뭉툭한 칼, 반철도!

“혀, 혈도비자!”

“아걸!”

무인들은 그제야 아걸을 알아봤다.

아걸 자신이 혈도비자라고 말해서 알아본 것이 아니다. 허리에 찔러 넣은 칼이 반철도였기 때문에 알아본 것도 아니다.

지금의 아걸은 조금 전의 아걸과 전혀 달랐다.

극강의 기운!

정상에 선 사람만이 뿜어내는 호기(豪氣)!

아걸은 어느새 그런 기운을 뿜어내고 있었다. 평범한 자는 사라지고 절대 무신이 앞에 섰다.

이 사람과 싸우면 죽는다!

객잔에 있는 무인들은 주춤주춤 물러섰다. 누구도 문을 향해 걸어가는 아걸을 막지 못했다. 그러잖아도 지옥혈객들의 죽음이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고 있는 터이다.

성한 사람이 한 명도 없는, 사지가 멀쩡한 시신이 한 구도 없는 처절한 살인 현장.

객잔 무인들은 혹여 아걸이 칼을 뽑을까 봐 옷깃도 닿지 않았다.

* * *

아걸이 나갔지만, 몽설을 향해 덤벼드는 사람은 없었다.

아걸이 밖에 있다면 몽설을 건드리면 안 된다. 그러면 혈도비자와도 싸울 각오를 해야 한다.

“갔어.”

문틈으로 밖을 주시하던 무인이 말했다.

아걸이 걸어가는 모습을 끝까지 지켜봤는데, 완전히 시야에서 사라져 버렸다.

객잔 무인들은 그제야 흉흉해졌다.

“혈도비자와 같이 온 걸 보니 네가 취화원 원주인 모양이군.”

무인 중 한 명이 말을 건네왔다.

시비다. 여차하면 병기가 난무한다. 싸워야 할지 말아야 할지 가늠하고 있다.

“그래. 맞아. 내가 원주야. 서로 목적을 알고 있으니 질질 끌지 말자고. 아! 혈도비자는 진짜 간 거니까 걱정하지 마. 이 싸움은 취화원과 정동 싸움이라서 혈도비자에게는 빠져달라고 했어.”

“흐흐흐! 건방지게 취화원 따위가!”

혈도비자가 빠졌다고 하자 객잔 무인들이 당장 사나워졌다.

객잔 무인들은 아걸이 사라지고 몽설만 남은 이유를 짐작했다. 싸우자는 거다.

객잔 무인들도 사양하지 않는다.

몽설은 사실상 무명(無名)이다. 그녀가 취화원 원주라는 사실도 몇몇만 안다. 중원 무인들은 몽설이라는 살수가 있는지조차 모르는 사람이 많다.

성검문과 풍도곡, 그리고 정동 무인들에게만 조금 알려졌다.

인도부도 되지 못하고, 이제 인도부가 되려고 수련하는 무뇌자들은 더욱 알지 못한다.

몽설이 혈검경의 전인인 것도 알지 못한다.

무뇌자들은 중원 무림이 돌아가는 상황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한다. 오직 인도부가 되려고 죽을힘을 다해서 무공을 갈고 닦는 중이다.

고작해야 여자 한 명이다.

그렇게 강해 보이지도 않는다. 실제로 싸우자고는 하지만 며칠 동안 피죽도 못 먹은 사람처럼 힘이 없어 보인다. 솔직히 검초나 제래도 펼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스릉!

몽설이 검을 뽑고는 진기를 일으켰다. 그리고 검을 살랑살랑 흔들었다.

이미 검초가 전개되고 있다. 무뇌자들이 싸우지 않겠다고 해도 그녀가 가만있지 않는다.

“어린 계집이 보자 보자 하니까!”

쒜에에엑!

무뇌자 한 사람이 거칠게 말하며 칼을 휘둘러 왔다.

창도 날아들었다. 옆에서 칼을 휘두르며 달려들자, 기회를 놓칠세라 즉시 창을 찔러냈다.

다른 병기들도 날아들었다.

일반적으로 넓은 공지에서 포위되었을 때, 일시에 들이칠 수 있는 병기 수는 여덟 개로 간주한다. 병기의 종류에 따라서 다소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대체로 그렇다.

지금 몽설에게 병기 여덟 개가 쏟아졌다.

몽설은 급작스러운 합공에 당황한 듯 급히 검초를 쏟아냈다.

쒜에에엑! 쒜에에엑! 까앙! 깡깡깡깡깡!

몽설은 매우 빠르게 움직였다. 하지만 무뇌자들이 평범하게 쏟아낸 병기를 쳐내는 게 고작이었다.

확실히 몽설의 표정에 당황한 빚이 역력했다.

무뇌자들은 몽설의 무공을 알게 되자, 확실하게 자신감을 얻었다. 괜히 혈도비자가 나타나는 바람에 몽설까지 겁낸 게 억울하기까지 했다.

“죽엇!”

쒜에에엑!

무뇌자들은 거침없이 공격을 퍼부었다.

몽설은 폭풍에 휘날리는 꽃잎이었다. 그녀가 펼치는 검법은 너무 힘이 없어서 불쌍하기까지 했다.

그런데 하늘하늘 움직이던 검이 느닷없이 빨라졌다.

쒜엑! 퍽!

검이 막 몽설을 덮쳐가던 창수의 목을 깨끗하게 뚫었다. 검이 목젖을 파고들어 목 뒤로 삐져나왔다.

“꺼어억…….”

창수가 괴음을 흘리며 쓰러졌다.

하지만 그사이, 몽설은 허벅지와 옆구리가 뜯겨나갔다.

칼이 허벅지를 꽤 깊이 갈랐다. 옆구리는 스치는 정도에 불과했는데, 그래도 피는 쏟아졌다.

한 사람을 죽인 대가로 병기 두 개를 맞았다.

하지만 몽설은 지혈할 틈도 없었다. 쉴 새 없이 계속해서 검을 휘둘러야만 했다.

쒜에에엑! 깡깡깡깡!

팔방에서 병기가 몰아쳤다. 겨우 막아냈다 싶으면 또 달려들고, 간신히 막아내면 다른 자들이 병기를 쏟아냈다.

저들은 여유 있게 몰아쳤다. 반면에 몽설은 방어에 급급했다.

“타앗!”

몽설이 거세게 검을 휘둘러서 무뇌자들을 밀어냈다. 그리고 재빨리 신형을 쏘아내서 이 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밟았다.

하지만 몽설은 곧 포위되었다.

객잔에 투숙했던 무뇌자들이 2층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그들이 계단을 내려오며 병기를 쏟아냈다. 일 층에 있던 무뇌자들도 계단으로 달라붙었다.

몽설은 계단에 갇혔다.

하지만 조금 전보다는 한결 수월했다. 그녀를 공격하는 병기가 여덟 개에서 네 개로 줄었다.

계단은 폭이 좁아서 두 명만 나란히 서도 꽉 찼다.

창창창창! 창창창! 창창창!

몽설은 위에서 공격하는 병기를 막고, 바로 신형을 돌려서 아래 공격도 막았다.

위와 아래를 동시에 막자니 정신이 없다.

더욱이 그녀는 힘도 없다. 검초는 아예 펼치지 못하고 본능적으로 검을 휘둘러서 쏟아지는 공격을 막는다.

“큭큭큭!”

이 층 계단에서 공격하던 무뇌자들이 몽설을 얕잡아보고 화다닥 달려들었다.

순간, 몽설이 재빨리 다리를 쳤다.

“악!”

몽설을 덮치던 자가 비명을 내질렀다.

그는 발목이 반이나 잘렸다. 다리가 무너지면서 제대로 서 있지 못하고 계단을 굴러떨어졌다.

몽설은 살짝 몸을 피하면서 굴러떨어지는 무뇌자의 몸에 다시 일 검을 먹였다. 그때,

퍽! 퍽!

누가 날렸는지 모를 표창 두 개가 날아와 몽설의 등에 꽂혔다.

“윽!”

몽설은 비명을 흘렸다.

이제 더 싸우는 것은 무리다. 벌써 온몸에 피칠을 하고 있다. 옆구리와 허벅지에서 쏟아진 피가 하의를 새빨갛게 물들였다. 거기에 표창까지 맞았으니.

쒜에에엑!

몽설은 무뇌자들이 진형을 갖추기 전에 재빨리 신형을 쏘아냈다.

탁! 타타탁!

계단 난간으로 밟았다. 그리고 힘차게 도약했다. 2층 계단 난간을 밟았고, 다시 도약했다. 객잔 대들보를 밟았다. 다소 안전해졌다. 하지만 멈추지 않았다. 다시 신형을 쏘아내서 지붕을 뚫고 밖으로 퉁겨 나갔다.

“잡앗!”

무뇌자들이 분분히 뛰어올랐다.

“후욱!”

몽설은 지붕 위로 올라서는 데는 성공했지만, 미처 도주하지는 못했다.

벌써 무뇌자들이 따라붙었다. 지붕 위로 올라섰다.

등에 꽂힌 표장이 문제였다.

몸을 움직일 때마다 신경을 건드리는 바람에 전신이 송곳으로 쑤셔대는 듯 아팠다.

“어떻게 원주라는 사람이 도망을 치시나.”

“후후후! 네년이 먼저 검을 뽑아놓고, 이제는 도주해? 그러면 우리가 ‘안녕히 가십쇼’하고 인사라도 할 줄 알았어? 가더라도 머리는 놓고 가야지.”

무뇌자들은 완전히 자신감을 얻었다.

막상 싸워보니 취화원 원주라는 것도 별것 아니다. 하기는, 살수 문파가 오죽하겠나. 은밀히 숨어들어서 암살 혹은 독살이나 일삼는 것들인데.

몽설은 피를 철철 흘렸다. 인상도 잔뜩 찡그렸다. 입술을 하얗게 질렸고, 이마에서는 식은땀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검을 들고 있기는 하지만 손이 덜덜 떨렸다.

쒜에엑!

등 뒤에서 파공음이 들린다.

몽설은 즉시 뒤돌아섰다. 그러자 검을 쳐오던 자가 피식 웃으면서 물러섰다.

쒜에엑!

다시 등 뒤에서 파공음이 들렸다.

몽설은 곧바로 다시 돌아섰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칼로 머리를 쪼개오던 자가 뒤로 훌쩍 물러섰다.

실제로 공격은 하지만 접전은 철저히 피했다.

무뇌자들은 서두르지 않았다. 그들이 보기에 몽설은 덫에 걸린 사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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