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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홀도-167화 (167/600)

#167화. 第三十四章 무모한 싸움 (2)

“원주님!”

숲에서 이제 갓 방년(芳年)을 넘겼을 법한 소녀가 몽설을 불렀다.

“쉿! 이렇게밖에 못 배웠어?”

몽설은 숲으로 들어서기 무섭게 질책부터 했다.

소녀가 급히 머리를 숙였다.

숲에는 몽설을 부른 소녀를 비롯해서 모두 다섯 명이 대기하고 있었다. 그들은 각기 큼지막한 가죽 주머니를 들었다. 허리에는 검도 야무지게 매어놓았다.

몽설은 미간을 찌푸렸다.

‘너무 어려!’

아직 이런 일을 맡기기에는 너무 어리다.

소녀들은 오곡주 취운 휘하의 살수다.

구절곡 시절부터 취운이 정성을 쏟아서 양성하는 후인(後人)들이다. 직제자라고 해도 좋다. 향후 이들 중 한 명에게 자신의 자리를 물려줄 생각으로 키우고 있다.

이들은 이미 취화원 제일 절기인 암영검을 모두 수련했다.

무공 입문은 늦었지만, 재질이 워낙 영특해서 무공 깊이가 상당한 수준이다. 과거 몽설이 활검문 동승을 암살하러 갈 때 정도는 된다고 본다.

그런데도 몽설이 보기에는 마냥 어린애들 같았다.

‘휴우!’

몽설은 소녀들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

과거, 취화원주도 자신을 이런 마음으로 보았을 것이다. 살행을 맡기면서도 영 마음을 놓지 못하셨을 것이다.

몽설이 일부러 딱딱하게 말했다.

“하루 정도만 묶어놓으면 된다. 너무 욕심부리지 마.”

“네. 알겠습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소녀들이 들고 있는 가죽 주머니에는 돼지 피가 가득 들어있다.

몽설은 소녀들에게 몇 마디 당부를 더 했다.

저쪽에 표창 고수가 있다. 반드시 일정한 거리를 유지해라. 만약 부딪히게 되면 어둠 속에서 날아오는 암기를 조심해야 한다. 저들이 무뇌자들이기는 해도, 칼 쓰는 법을 안다. 불가피한 상황이 아니면 충돌을 피해라.

잔소리하다 보니 한도 끝도 없다.

몽설 자신이 스스로 잔소리라고 여겨질 만큼 상식적인 말들만 늘어놓고 있다.

“원주님 걱정하지 마십시오. 인도부들을 충분히 조사했고, 또 곡주님께서…… 아시잖아요. 워낙 엄하게 가르치신 것. 저희 정말 자신 있습니다. 싸워도 괜찮아요.”

소녀가 하는 말을 들으니 더 한심하다.

“이 세상에 충분한 건 없어. 나도 조심한다. 취운도 조심하고, 팔 장로님도 조심해. 누구나 다 조심한다. 단단히 마음 잡고 움직여야 죽지 않아.”

“네.”

“오늘 하루만 붙잡아 놓고 있어. 더 끌지 마.”

“네.”

“그럼 맡기고 간다.”

쉬이이이잇!

몽설은 소녀들에게 뒤를 맡기고 신형을 날렸다.

주의사항을 당부하고, 잘하는지 지켜보고, 안심이 될 때까지 또 말하고…… 그러다 보면 끝이 없다. 일을 맡기는 것보다 자신이 직접 하는 게 빠르다.

그래서 두 눈 질끈 감고 움직였다.

쉬이이익!

몽설을 진기를 최상으로 뽑아내서 치달렸다.

사실 지금부터는 굳이 유인책을 쓰지 않아도 된다. 정동에서 바로 철수 명령을 하달하고, 무뇌자가 즉시 움직여도 싸움이 끝나기 전까지 정동에 도착하지 못한다.

아무리 빨리 달린다고 해도 정동까지는 사흘거리다.

그것도 안심이 안 되어서 하루쯤 더 잡아놓으려고 한다. 오곡 살수들이 미리 말해둔 대로만 움직이면 아무 일 없이 하루 정도는 묶어둘 수 있다.

쒸이이이익!

몽설은 전력으로 치달리다가 숲에 묶여 있는 말을 찾아냈다.

미리 준비해 놓은 말이다. 상당한 명마고, 푹 쉬었기 때문에 정동까지 하루 만에 도착할 수 있다.

쉬이잇!

몽설은 달리는 기세 그대로 말 등에 올라탔다. 그리고 고삐를 낚아챈 다음 힘차게 달리기 시작했다.

“끼럇!”

두두두두두!

말이 치달린다. 말이 움직일 때마다 강한 충격이 전신에 전달된다. 상처가 욱신거린다. 아물기 시작한 상처가 다시 터져서 핏물이 흘러내린다.

그래도 쉬지 않았다. 계속 말고삐를 낚아챘다.

“끼럇!”

두두두두! 두두두두두!

시골에서는 흔히 볼 수 없는 명마가 현지인들도 잘 찾지 않는 외진 마을로 들어섰다.

마리에 달려오자 보이지 않는 그물이 살며시 거둬졌다.

시골길에 그물 같은 것이 깔려 있을 리 없다. 실질적으로 눈에 보이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하지만 몽설은 느꼈다. 보이지 않는 그물이 자신을 칭칭 감았다가 사라졌다.

취화원 살수들의 눈길이다.

취화원 살수들은 누가 나타나면 즉시 반격할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다.

취화원은 이 시간쯤에 원주가 달려올 것도 알고 있다. 하지만 경계를 늦추지 않는다. 말이 달려오고, 마상에 있는 사람이 원주라는 것을 확인한 후에야 살기를 거둔다.

‘모두 다 도착했어.’

몽설은 적이 안심했다.

살기가 그물망처럼 촘촘히 얽혀있다가 거둬졌다는 것은, 반대로 말하면 그만큼 살기를 뿜어내는 살수가 많다는 것이다. 대부분 무사히 도착했다.

두두두두두! 두두두!

몽설은 내처 달렸다.

시골길로 지나 마을로 접어들었다. 그래도 좁은 길을 계속 달렸다. 마을 가장 뒤쪽에 큰 느티나무가 있다. 그리고 다른 집들보다 두 배는 큰 집이 있다.

몽설을 그 집을 향해 말을 몰았다.

막다른 마을이다

마을은 텅 비었다. 마을 사람들은 취화원 살수들에게 모두 제압된 상태다.

마을 사람들에게는 미안하지만, 이 수밖에 없다.

취화원은 양해를 구하지 않았다. 양해를 구하려고 시도했다면, 당장 정동에 소식을 보냈을 것이다.

이곳 사람들은 정동 사람들이다.

“워워!”

몽설은 마당에 들어선 후에야 말을 멈췄다.

마당에는 구곡주와 팔 장로가 미리 나와서 대기하고 있었다.

말이 마당 안으로 들어서기 무섭게 화요가 달려 나와 말고삐를 낚아챘다.

팔 장로도 바로 달려왔다.

팔 장로는 등자에 손을 대고 몽설의 발을 잡았다. 몽설이 쉽게 내릴 수 있도록 두 손을 받쳤다.

몽설은 사양하지 않고 팔 장로의 도움을 받으며 말에서 내렸다.

팔 장로가 피로 얼룩진 옷을 벗겨냈다.

옷이 피에 찌들어서 상처에 달라붙은 바람에 물을 뿌려서 조심스럽게 떼어냈다.

겉옷이 벗겨지고, 속옷도 찢어냈다.

몽설은 속곳만 입은 채 좌정했다.

사사가 따뜻한 물을 가져와 탁자에 놓았다.

몽설은 두 손으로 물잔을 잡고 천천히 물을 마셨다.

팔 장로가 미지근한 물로 상처를 씻어내기 시작했다. 말라붙은 피를 닦아내고, 상처를 소독했다.

몽설이 물을 마시다 말고 말했다.

“내일 아침에 공격한다고 했으니까. 오늘 밤 축시(丑時)부터 이동을 시작해.”

“공격 방법은 어떻게 정했어요?”

월영이 물었다.

“전면전.”

몽설이 생각할 것도 없다는 듯 바로 말했다. 등 뒤에서 상처를 치료하던 팔 장로의 손도 움찔거렸다.

인도부들은 하나같이 싸움 귀신들이다. 그들의 상대로 이제 막 수련을 마친 어린 살수들을 투입한다. 누가 봐도 상대가 안 되는 무모한 공격이다.

고수 이백이십 명 대 신출내기 삼백 명.

굳이 이렇게까지 무모한 싸움을 할 필요가 있을까? 전멸이 빤히 보이는데?

일이삼사곡 곡주는 간신히 살수 삼백 명을 양성해 냈다. 그것도 구절곡에서부터 준비한 것이다. 중도 탈락자도 있고, 죽거나 다친 자도 많았다.

이들 삼백 명은 나름대로는 정예다.

하지만 인도부들을 상대할 수 없다. 그래서 세 명이 한 명과 싸우는 삼령검을 수련시켰지만, 기습이 아닌 전면전이라면 상황이 달라진다. 세 명이 한 명과 싸울 수 없다. 저들이라고 빤히 구경만 할 리는 없다.

취화원은 다른 방법으로도 싸울 수 있다.

사생락을 능숙하게 구사하는 사람이 구곡주와 팔 장로, 열 명이나 된다. 원주는 사생락을 훨씬 뛰어넘는 혈검을 사용한다. 절정 고수가 열한 명이다.

열한 명이 야습을 감행하면 하룻밤 새에 최소한 한 명당 두 명씩, 스물두 명은 죽일 수 있다.

이렇게 야금야금 인도부들의 살을 깎아 먹는다.

닷새만 공격하면 절반을 죽일 수 있다. 전면전을 펼칠 생각이면 그다음에 나서도 된다.

모두 그런 공격 방식을 예상했다.

지금 취화원 세력이나 상황으로는 오직 기습만이 인도부들을 꺾을 수 있다.

인도부들은 가장 준비가 잘 되어 있다. 만반의 준비를 한 채 기습을 기다리고 있다. 자신들이 기습당할 것에 대비해서 경계도 철저히 선다.

아무래도 정면으로 부딪치는 것은 무리다.

“원주님, 제 의견입니다만 지금은 암살도 좋아 보일 것 같은데요. 우리가 가장 잘하는 것이기도 하고.”

취운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모두 같은 생각으로 몽설을 쳐다봤다.

몽설이 말했다.

“일동, 이서, 삼남, 사북. 동서남북에서 동시에 공격해. 육칠팔구 곡주는 임시로 일이삼사 곡의 부곡주를 맡아. 전력을 네 곳으로 집중시키고…… 오곡주는 일이 곡을, 팔 장로님은 삼사 곡을 지켜보시다가 힘들다 싶은 곳을 도와주세요.”

결국, 전면전이다. 몽설은 전면전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

스읏!

팔 장로가 다시 치료를 이어갔다.

“인시말(寅時末) 동틀 무렵에 시작해. 그럼 해산.”

몽설이 미지근하게 식은 물을 단숨에 들이켰다.

* * *

“정말 이대로 싸워도 좋을까?”

화요가 말했다.

“원주님을 믿어야지. 내일 해가 서쪽에서 뜬다고 해도 믿어야 해. 이런 말 하지 말고 쉬자. 축시에는 출발해야 하니까 지금밖에 쉴 시간이 없어.”

월영이 말했다.

구곡주는 내일 암영검만 사용할 생각이다.

사생락을 펼칠 수 있지만, 수하들이 암영검만 배운 상태라서 생사를 같이하기로 했다.

이것은 구곡주의 공통된 생각이다.

수하들과 똑같은 상태에서 똑같이 움직인다.

수하들이 불공평하다고 생각하지 못하게 선두에서 싸운다. 모두 하나라는 생각이 들어야 한다. 구곡주가 살수였을 때, 뒤에 취화원이 있다는 생각이 들 때가 가장 든든했다.

취화원은 자신들을 버리지 않는다. 끝까지 같이 간다.

이 생각을 수하들에게도 심어줄 생각이다.

“싸움이 끝나면 저들 중 몇 명이나 볼 수 있을까?”

몽설이 중얼거렸다.

“전멸할 겁니다. 그러니 지금이라도 밀리시는 게…….”

“아니.”

몽설이 고개를 내둘렀다.

“내일 우리가 전멸당한다면 그것도 좋아. 이대로 끝내. 어차피 쫓기다가 한 명씩 잡혀 죽는 것이나, 한꺼번에 죽는 것이나 매한가지야.”

취운은 몽설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듣지 못했다. 하지만 몽설이 일생일대의 도박을 하고 있다는 사실만은 분명히 알겠다. 그것도 승산이 대단히 적은.

“언니.”

몽설이 취운을 보며 말했다.

‘언니’라는 호칭은 사적으로 대한다는 뜻이다. 취화원과는 상관없이 취운과 몽설로 만난다.

“언니, 나 최선을 다했어.”

“그럼 됐어.”

취운이 다가와서 몽설의 손을 꼭 잡았다.

“너 최선 다한 것, 알아. 모두 알아. 네가 왜 이런 싸움을 하는지는 몰라도, 이게 최선이란 건 알아. 그러니까 모두 군소리 없이 움직이잖아.”

“내일 잘못되면…….”

“쉿! 싸움 전에 불길한 말은 하는 게 아니야. 말이 씨 돼. 난 이제 가볼게. 일이곡 뒤를 잘 보살필게. 누구도 다치지 않도록 열심히 뛰어다녀볼게.”

몽설이 고개를 끄덕였다.

취운이 반걸음 더 다가와서 몽설을 꼭 껴안았다. 그리고 이내 신형을 날려 어둠 속으로 사라져갔다.

몽설은 밤하늘을 쳐다봤다.

팔 장로가 상처 치료를 잘해주었다.

붕대도 깨끗한 것으로 감아주었다. 또 새 옷도 주었다. 그래서인지 겉보기에는 전혀 다친 것 같지 않다.

하지만 겉만 멀쩡하지 속은 엉망진창이다.

몽설은 취화원이 지금의 자신과 똑같은 상태라고 진단했다.

취화원은 대별산에 운집하면서 다시 조직 체계를 추슬렀다. 살수를 선정해서 수련시켰다. 정보망은 활발하게 가동된다. 점차 살수 문파의 면모를 갖춰가는 중이다.

겉모습은 깨끗해 보인다. 하지만 속은 엉망진창이다.

이리 쫓기고 저리 쫓기면서 난도질을 당한 기억이 뇌리에 남아 있다. 몸에 남은 상처는 세월이 지나면 낫지만 취화원의 전력은 변화가 없는 한 계속 남아 있다.

취화원이 안고 있는 상처는 세월로 치료할 수 없다.

계속해서 공포가 일어날 것이다. 위험을 감지하면 도주부터 생각할 것이다.

전멸하는 한이 있어도 공포감을 떨쳐내야 한다.

이 싸움으로 취화원을 부활시킬 것이다. 아주 강한 문파로 탈바꿈시킬 것이다.

‘꼭 이겨야 해. 물러설 곳은 없어.’

몽설은 눈을 가늘게 뜨고 밝디밝은 달을 노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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