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8화. 第三十四章 무모한 싸움 (3)
정동은 전형적인 배산임수(背山臨水)의 지형이다.
삼 면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고, 앞에는 흑천(黑川)이라는 강이 흐른다.
산세도 거칠지 않다. 아름답고 우아하다. 정상까지 두 시진밖에 걸리지 않는다.
강은 보기만 해도 시원하다. 강 밑에 검은 돌들이 깔려 있어서 흐르는 물빛이 검게 보인다. 그래서 흑천이라고 부를 뿐, 물이 탁한 것은 아니다.
정동은 대단히 아름답다.
월영은 정동 동쪽을 맡았다.
동쪽은 산이다. 큰 산은 이미 넘어왔고, 야트막한 구릉만 넘으면 곧바로 정동이다.
구릉과 정동 사이에는 나무가 빼곡히 자라있다. 하지만 거리는 오십여 장밖에 되지 않는다. 구릉으로 오르는 경사도 완만해서 빨리 달리면 열 호흡 정도면 닿을 수 있다.
“너무 가까이 온 거 아냐?”
화요가 염려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가깝기는 한데…….”
월영도 살며시 미간을 찡그렸다.
가깝지만 어쩔 수 없다. 멀리 떨어질수록 안전하지만, 공격 효율성은 떨어진다.
지금이 딱 적당하다.
정동에는 아주 큰 마을이 들어서 있었다.
삼 층 이상 되는 전각만 이십여 채에 이르렀다. 거주용으로 보이는 작은 초가까지 합치면 거의 오백여 채에 이르렀다. 마을이 아니라 도읍이다.
월영은 지도를 펼쳐놓고, 지도와 눈에 보이는 마을 풍경을 대조해나갔다.
“정확하네.”
화요가 말했다.
정동 지도는 오곡에서 수집해서 각 곡주에게 나눠주었다.
지도를 받아들었을 때는 반신반의했다. 정동에 대한 정보가 이토록 자세하게 드러날 리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현장에 와서 보니 똑같다.
지도를 건넨 간자가 신분을 속인 채 정동에 숨어있거나, 아니면 정동에 물자를 대는 사람일 것이라고 추측된다.
“취운, 굉장하네. 정말 대단한 것 같아.”
화요가 감탄했다.
월영도 고개를 끄덕였다.
“지도가 이렇게 정확하면 우리가 생각한 게 통할 수도 있어. 준비해!”
월영이 자신을 가지면서 말했다.
일곡 일령 휘하의 살수는 일흔두 명이다.
그중 서른 명이 무겁게 들고 온 짐을 앞에 내려놨다. 그리고 몇 명이 앞으로 나서서 그들 앞에 장작더미를 쌓았다.
땀을 뻘뻘 흘리면서 힘들게 짊어지고 온 것은 화살이다.
화살촉 뒤에 기름먹인 솜을 붙이고, 화살대에 화약통을 매달았다.
불화살을 쏠 생각이다.
일흔두 명이 한 사람당 화살 삼백 대씩 이천여 대를 가지고 왔다. 물론 활을 가져온 서른 명만 쏜다. 마흔두 명은 서른 명을 암중 보호한다.
월영은 어차피 잠입은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다.
그녀는 취화원 장로들이 인도부에게 가차 없이 죽어 나갔던 광경을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취화원 살수들에게는 하늘같아 보이던 장로님들이 인도부에게 도륙당했다. 서리형개도 아니고, 서리형개의 휘하에 있는 인도부에게 장난감 취급을 당했다.
장로들이 합공을 취한 결과가 그랬다.
결국, 원주님까지 나섰지만 역시 마찬가지, 무참하게 패했다.
때맞춰서 아걸이 나타나지 않았다면 아마도 취화원 사람들은 지금 이 자리에 서 있지 못할 것이다.
그런 자들에게 풋내기를 던지면 어떻게 되겠나?
일곡 살수들은 암영보를 꽤 높은 수준까지 수련했다. 하지만 정동으로 진입하는 순간 기척이 드러난다. 몇 걸음 걷지도 않아서 집중 공격을 받는다.
그럴 바에는 아예 진입하지 않는다.
몽설은 공격하라고만 했지, 어떤 식으로 공격하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자신에게 유리한 싸움을 한다. 반드시 이길 수 있는 싸움을 만든다.
“인시말이 되면 말해줘.”
월영이 말했다.
“우리가 불화살을 쏘면 다른 데서 지장이 없을까? 은밀히 잠입하는 쪽도 있을 거 아냐?”
화요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월영은 단호했다.
“지금부터는 각기 자기 판단대로 움직이는 거야. 나는 내가 맡은 방향만 철저하게 짓이기면 돼. 여기서부터 여기까지 완전히 초토화할 거야.”
월영이 손가락으로 지도를 쭉 그었다.
“다른 데까지 신경 쓰기에는 내 능력이 너무 부족해. 내가 맡은 곳만 치기에도 힘들어. 모두 같은 심정일 거야. 그러니 내가 어떤 짓을 해도 우리 형제들, 이해해 줄 거야.”
“휴우!”
화요가 한숨을 내쉬었다.
“왜? 무슨 의미의 한숨이야?”
“너, 많이 변한 거 같아. 옛날에는 이렇게까지 야무지지 않았는데. 어느새 싸움꾼이 되었네?”
“내가 수하들의 목숨을 칼날 위에 세우는 위치라서 그럴 거야. 그게 내가 하는 일이니까. 일이 사람을 만드는 것 같아. 우리 둘이 하는 일을 바꾸면 너도 나처럼 될걸?”
“그럴까?”
“그래. 틀림없어.”
월영과 화요가 서로를 보면서 웃었다.
“인시말이야.”
화요가 하늘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아직 어느 쪽에서도 공격하는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사방은 쥐 죽은 듯 조용하다.
“공격해!”
월영이 공격 명령을 내렸다.
순간 한 명이 불붙은 횃불을 들고 군데군데 쌓아놓은 장작더미에 불을 붙였다.
살수 서른 명이 일제히 화살에 불을 댕겼다.
살수들은 이미 자신이 화살을 쏠 곳까지 선정해 놓았다. 첫 번째 화살을 어디에 쏘고, 두 번째는 어디로 쏠 것인지. 스무 대까지는 계획적으로 쏘고, 그다음부터는 무작위로 날린다.
쒜에에에에엑!
불화살 서른 대가 일시에 하늘을 날았다.
살수들은 화살을 쏘자마자 다시 다른 화살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불을 붙인 후, 재차 쏘았다.
쎄에에에에엑!
먼저 쏜 화살이 날아가고 있는데, 바로 뒤를 이어서 두 번째 화살이 날아간다.
살수들은 쉬지 않고 화살을 잡았다.
저들이 구릉으로 달려오기 전까지 최소한 화살 스무 대를 쏘아야 한다.
퍽퍽퍽퍽! 꽈아앙! 꽈앙! 꽈아앙!
화살이 떨어지면서 거센 폭음이 울렸다.
정동은 한순간에 불바다가 되었다. 하늘에서 불벼락이 떨어지고 있다.
월영은 정동 상황을 주시했다.
정동에서 무인들이 분분히 뛰쳐나왔다. 그리고 화살이 쏘아지는 구릉을 향해 치달려 온다.
월영은 그들이 올라오는 길목을 파악했다.
“이진(二陣) 준비!”
월영 뒤에 기립해 있던 살수 마흔두 명이 명령이 떨어짐과 동시에 재빨리 신형을 날려 은신했다.
구릉으로 달려오는 무인들을 요격한다.
일곡 공격 성패는 여기에 달렸다.
마흔두 명이 저들을 막아내면 공격은 성공한다. 마흔두 명이 뚫리면 실패다.
화살을 쏘는 살수들은 자신들 앞에 놓인 화살이 동날 때까지 싸움에 개입하지 않는다. 목에 칼이 들어와도 활에 재운 화살을 쏘아낼 것이다.
철저하게 맡은 임무에 충실한다.
월영이 화요를 쳐다봤다.
“잘 부탁해!”
“알았어. 걱정하지 마. 최선을 다할게.”
화요가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이 싸움은 마흔두 명의 요격에 승패가 걸렸다. 또 마흔두 명의 요격은 월영과 화요가 얼마나 빨리 움직이느냐에 따라서 성패가 좌우된다.
분명히 마흔두 명은 인도부들을 습격한다. 하지만 이들의 습격은 잘 먹히지 않을 것이다. 인도부들이 즉시 되받아칠 것이고, 무척 곤란해진다.
그때 월영과 화요가 저들을 쳐주어야 한다.
인도부에게 적이 마흔두 명만 있는 게 아니라 또 다른 자가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어야 한다. 그래야 손발이 어지러워지고, 마흔두 명에게 집중하지 못한다.
쒜에엣!
월영이 나무 위로 올라갔다.
화요도 즉시 뒤따라서 나무 위로 솟구쳤다.
쒜에에에엑! 꽈아앙!
화살이 계속해서 꼬리를 물고 날아가 정동을 후려쳤다.
* * *
“월영답네. 안전한 방법을 택했어.”
이곡주 소호가 말했다.
“우리는 너무 무모한 거 아니야?”
적화가 박쥐 날개옷, 비복의(飛蝠衣)를 만지작거리면서 말했다.
“맞아. 무모해. 하지만 나중에 싸움이 끝나고 나면 우리가 제일 강해져 있을 거야.”
소호가 이를 꽉 깨물며 말했다.
소호는 몽설의 뜻을 읽었다. 몽설이 무모하게 정동을 공격하고자 하는 이유를 가장 깊이 꿰뚫었다.
그래서 돌아가지 않는다. 직접 부딪치는 타격전을 벌인다.
“준비됐냐!”
소호가 말했다.
이곡 살수는 여든여덟 명이다. 그들이 일제히 대답했다.
“넷!”
그들은 모두 비복의를 입었다.
수달 가죽을 촘촘히 엮어서 박쥐 날개처럼 활짝 펼칠 수 있는 옷을 만들었다. 낭떠러지에서 신형을 날리면 박쥐처럼 부드럽게 날 수 있다.
그들은 모두 철과(鐵撾)를 들었다.
소호가 택한 병기다. 살수에게 검은 적당한 병기가 아니다. 오히려 멀리서 타격할 수 있는 암기 종류가 좋다.
그래서 주요 병기는 암기로 하고, 근접전에서 사용할 병기로 과를 선택했다.
과는 일종의 조창(爪槍)이다. 원래 길이는 이 장 사 척이지만 손에 쥐기 편하게 이 척으로 변형시켰다. 앞부분에는 날이 없고, 철조 세 개가 붙어있다.
걸치고, 긁고, 후려치는 데 좋다.
“가!”
소호가 명령했다.
여든여덟 명의 살수는 일제히 절벽에서 신형을 날렸다.
쒜에에엑!
그들이 박쥐가 되어서 하늘을 날았다.
꽈앙! 꽝! 꽝! 꽝! 꽝!
정동 마을에 때아닌 폭음이 연신 터졌다. 하늘에서 뚝뚝 떨어지는 화약 더미가 집이며, 도로며, 무인들을 연신 타격했다.
비복의를 입은 살수들이 지니고 있던 화약을 떨궜다.
정동 서쪽은 순식간에 잿더미가 되었다. 쑥대밭이라는 표현이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동쪽에서는 불화살이 날아오고, 서쪽에서는 하늘에서 화약이 떨어진다.
비복의의 단점은 체공 시간이 길지 않다는 점이다. 또 착지할 때, 일정한 거리가 필요하다. 사뿐히 착지하지 못하고 십여 걸음 정도를 달려가야 한다.
그 점은 보완하기 위해서 일부가 하늘에 좀 더 머문다. 밧줄을 내려트려서 다른 살수들이 밧줄을 잡고 내려가게 만든다.
츅! 슈아아앗!
비복의를 접고 밧줄을 잡은 살수들이 재빨리 땅으로 내려섰다.
일차 선발대 십 명이다.
순간, 사방에서 인도부들이 쏟아져 나왔다.
“죽엇!”
그들은 무섭게 칼을 휘둘러 댔다. 살수들이 미처 중심도 잡기 전에 몸뚱이를 난타했다.
“크윽!”
“꺼어억!”
일차 선발대는 땅에 내려서기 무섭게 도륙당했다.
하지만 그들의 죽음은 헛되지 않았다. 인도부가 우르르 나타날 때, 선발대가 죽어갈 때…… 그들의 머리 위로 하늘에서 불벼락이 떨어졌다.
꽝! 꽈아아앙!
인도부들은 미처 피하지 못하고 폭풍에 휩쓸렸다.
그사이에 이차 공격대가 땅에 내려섰다. 그들은 모두 마흔 명이다.
마흔 명은 비교적 안전하게 내려섰다. 그들도 공격을 받았지만, 일차 때처럼 무차별로 당하지는 않았다.
인도부들이 먼젓번의 경험이 있어서 쉽게 달려들지를 못했다.
이차 공격대가 일제히 몸을 숨겼다. 암영보를 펼친 것이다. 취화원의 살수비기를 사용해서 어둠 속으로 스며들었다.
나머지 서른여덟 명은 밧줄을 이용하지 못한다. 이미 체공 시간이 한계에 이르러서 뚝 떨어져 내리는 중이다.
타타타탁! 타타탁!
그들은 선택의 여지도 없이 땅에 내려섰다.
“이 잡것들이!”
인도부들이 쏟아져 나오며, 미처 비복의를 정리하지 못한 살수들을 들이쳤다.
퍼억! 퍽!
취화원 살수들이 추풍낙엽처럼 쓰러졌다.
그때, 숨었던 살수들이 기습을 가했다.
살수들은 세 명이 한 명에게 달려들었다. 두 명이 전면에 사납게 철과를 휘둘렀다. 무공은 별것 없지만, 기세가 너무 사나워서 잠시 움찔하게 만든다.
“하아!”
인도부가 가소롭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런데,
써어어억!
느닷없이 등이 썰렸다. 척추뼈가 잘렸다.
“으아악!”
인도부는 처절하게 비명을 내질렀다.
뒤에서 공격한 자는 어떠한 기척도 흘리지 않았다. 앞에서 눈을 가려준 사이, 뒤에서 암격을 시행했다.
삼령검이다.
스스스슷!
삼령검을 쓴 자들이 다시 어둠 속으로 숨어들었다. 이차 공격대 덕분에 여유를 돌린 삼차 공격대도 비복의를 벗어던지고 암영보를 펼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