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0화. 第三十四章 무모한 싸움 (5)
도와주고 싶다.
사람이 죽어가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기만 한다는 게 상당히 괴롭다.
여인들이 비명을 흘리지 않으려고 이를 꾹 악문 채 죽어간다.
귀문 구절곡만 시절만 해도 살수는 사내들뿐이었다. 그것을 아홉 살수가 귀문을 장악하는 과정에서 거의 추살했다. 그리고 다시 살수를 채웠는데, 이번에는 여인이 주력이다.
원래 취화원은 여인 살수 문파다.
그런 점에 익숙해서 구절곡을 버리고 대별산으로 오면서부터는 완전히 여인들로 탈바꿈했다.
취화원에 남자 살수는 없다.
남자가 있기는 하지만 오곡 후반에 배치된다. 물품을 조달하거나, 정보를 수집하거나 하는 취화원을 유지하는 데 부수적으로 따라붙는 일을 한다.
인도부들은 상대가 여자인데도 가차 없이 살도를 휘두른다. 일말의 인정도 없다.
사실, 병기를 맞대고 목숨을 겨누는 상황에서는 남녀 구분이 있을 수 없다. 죽이지 않으면 자신이 죽기 때문에 서로 이를 악물고 죽일 뿐이다.
인도부만 인정이 없는 게 아니다. 취화원 살수들도 손속에 사정을 담지 않는다.
양쪽이 거세게 충돌했는데, 확실히 인도부들이 유리하다. 워낙 무공 차이가 크게 벌어진다.
취화원 살수들이 속절없이 죽어 나간다.
병기를 맞댔다 하면 죽는 것은 취화원 살수다. 그나마 암습으로 득을 취하고 있지만, 여간 어렵지 않다.
어떻게 해야 하나? 정말 보고만 있어야 하나?
아걸은 움직이지 않았다. 지금 도와주면 안 된다.
몽설이 아걸에게 빠져달라고 한 것은 살수들을 아끼지 않아서가 아니다.
취화원은 언젠가는 한 번, 반드시 죽음을 딛고 일어서야 한다.
취화원이 평범한 조직체였다면 굳이 이런 과정은 필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취화원은 살수 조직이다. 일 년 열두 달, 언제 어디서나 죽음을 안고 산다.
몽설은 살수로써는 경륜이 미비하다. 이제 겨우 살행 몇 번 한 것이 전부다. 하지만 그녀는 살수 조직의 생리를 환히 꿰뚫어 보고 있었다.
여기서 한 번 딛고 일어서지 않으면 항상 쫓기는 문파가 된다.
몽설 생각이 옳다.
아걸은 손에 힘을 풀었다.
저들이 전멸하는 한이 있어도 도와주면 안 된다. 물론 지켜만 보는 데는 한계가 있다. 정말로 저들이 전멸할 때까지 손 놓고 있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 싸움은 졌다고 판단될 때, 이제 도저히 안 된다고 생각될 때는 나서야 한다.
아걸은 미간을 찡그린 채 싸움을 지켜봤다
* * *
싸움은 상당히 불리하다.
월영은 정동으로 쳐들어가지 않고 저들을 숲으로 끌어들였다. 불화살이 있는 곳으로 유인했다. 그리고 숲에서 전형적인 매복 기습을 취했다.
일곡 살수들의 살법은 매우 뛰어나다.
매복과 기습에 관한 한 취화원 제일이다. 사곡중 제일 정통파에 가깝다.
월영은 취화원 살법의 정수를 전승했다.
살수의 기본은 잘 숨는 것이다. 그리고 이유 불문하고 목표를 죽이는 것이다.
일곡 살수들은 숲에서 암영검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하지만 완벽하기 이를 데 없는 살법이 인도부에게는 통하지 않는다.
인도부들은 기습 전에 기척을 감지한다. 기습을 가할 때쯤에는 이미 반격을 시도하고 있다.
그래서 세 번째 살수! 삼령검으로 공격했다.
처음에는 삼령검이 통했다. 인도부들이 힘없이 무너졌다. 이대로만 가면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이 들었다. 하지만 저들은 곧 삼령검을 눈치챘다.
전면에서 두 명이 공격해 오면 배후부터 감시한다. 오히려 전면을 노리지 않고 배후를 타격한다.
물론, 그럴 때는 인도부의 움직임이 완전히 달라진다.
전면에 있는 두 검을 쳐내는 일이 무척 매우 급해진다. 빠르고 사나워진다.
배후를 공격하려니 손이 급해진 것이다.
이럴 때 무심히 공격을 가하다가는 목숨을 잃는다.
물고 물리는 악전이다. 즉시 상대방의 수를 읽고, 대처해야 한다. 한 수만 늦어도 죽는다.
쌍방 간에 희생자가 많이 나오고 있다.
일곡 살수도 많이 죽었지만, 인도부도 많이 쓰러졌다.
월영과 화요의 활약은 눈부시다. 구곡주는 이미 예전의 그녀들이 아니다.
그녀들은 약속한 대로 암영검만 사용한다.
살법을 전개하는 데 반드시 사생락이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암영검만으로 충분하다. 나중에 기회가 닿으면 사생락도 전수할 것이다. 지금은 사용할 수 있는 것을 사용하라. 암염검도 대단히 훌륭한 살법이다.
하지만 사생락을 터득하면서 암영검도 서너 단계는 훌쩍 뛰어넘었다. 지금의 그녀들이라면 과거 취화원 장로들이 일시에 합공을 취해도 막아낼 수 있다.
은밀히 숨었다가 불쑥 밖으로 나온다.
슈웃!
검이 대단히 예리하다.
기척을 전혀 흘리지 않고 불쑥 나타나기 때문에 방비하기가 힘들다.
일공일사(一攻一死), 공격 한 번에 한 명이 죽는다.
월영과 화요는 끊임없이 인도부를 암살했다.
그 덕분에 일곡이 유지하고 있다.
불화살이 동난 후에는 그녀들까지 기습에 가담했다.
양쪽 모두 밀릴 수 없는 싸움이다.
이곡은 희생이 크다.
그들은 가장 먼저 정동에 뛰어들었다. 그리고 거침없이 인도부를 공격했다.
하룻강아지가 범한테 대들었다.
그 결과는 혹독했다. 땅에 쓰러져 있는 자는 대부분 철과를 들고 있다. 이곡 살수라는 거다.
희한한 것은 이곡 살수들의 움직임이 시간이 흐를수록 빨라진다는 것이다.
은밀해지고 빨라진다. 점점 더 강해지고 있다.
싸움에 익숙해졌다!
처음에는 인도부들이 절대적으로 우세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들도 곤란해지고 있다.
이곡 살수를 쉽게 찾아내지 못한다. 기습을 제대로 피하지 못하는 모습이 번번이 보인다. 하지만 반격은 여전히 매섭다. 이곡이 치면 정동도 친다.
삼곡은 가장 끈끈한 싸움을 한다.
삼곡은 흑천을 완벽하게 틀어막은 채, 인도부들을 기습 공격한다.
잠깐만 방심하면 물에서 두세 명이 불쑥 튀어나와 독침을 쏜다.
독침에 집중하면 그것도 실수다. 어디선가 훅! 쏘아낸 독침이 하반신에 꽂힌다.
인도부들이 흑천을 포기하고 물러설 것 같으면 삼곡이 일제히 기어 나오며 독침을 쏜다.
쫓아가면 물속으로 기어들어 가고, 물러서면 쫓아온다.
처음 흑천으로 달려온 인도부는 십여 명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자 삼십여 명으로 불어났다.
그들 모두 늪에 걸렸다.
인도부들은 암기를 준비했다. 물에서 불쑥 튀어나오면 격중시킬 생각이다.
그 생각을 읽었는지, 삼곡 살수들은 튀어나오지 않았다. 얄밉게도 물속에서 검은 대롱만 살짝 드러내놓고 독침을 쏜다.
탁탁! 탁탁탁!
여기저기서 용수철 퉁겨지는 소리가 울렸다.
사곡도 희생이 크다.
규화와 사사가 난전을 벌이고 있지만, 인도부들이 여간 강한 게 아니다. 일 대 일이면 승산이 확실한데, 여러 명이 합공을 펼치니까 쉽지가 않다.
인도부들은 두 여살성의 검을 피하면서 쌍거치반선진을 향해 암기를 던졌다.
암기를 던질 때마다 사곡 살수가 나가떨어졌다.
그러자 쌍거치반선진도 변했다. 도리깨를 거두면서 그냥 거두지 않고 허공을 한 바퀴 휘젓는다.
그러면 날아오는 암기를 막을 수 있다.
쌍거치반선진도 발전했다.
규화가 가르친 쌍거치반선진이 아니다. 진형이 자가발전했다. 생존을 위해서 진형 자체가 스스로 변형된 것이다. 누가 가르쳐 준 것이 아니고 진을 펼치는 사람들이 싸움에서 얻은 경험을 바탕으로 스스로 변형시킨 것이다.
진은 시간이 흐를수록 강해진다.
취화원에 절진이 탄생한 순간이다.
도리깨가 인도부를 휘감았다.
인도부는 즉시 몸을 빼냈다. 그 순간, 다른 도리깨 대여섯 개가 한꺼번에 달려들었다.
무인은 급히 검을 들어서 막았다.
하지만 도리깨는 그냥 철사를 달아놓은 게 아니다. 검날을 박아놓은 듯 날이 날렸다.
촥! 촤라라락! 퍽퍽퍽퍽!
인도부는 도리깨의 검날에 칭칭 감겼다.
그의 몸은 곧 난자되었다. 멀쩡했던 사람이 한순간에 혈인이 되어서 나가떨어졌다.
정동무인이 밀린다.
쌍거치반선진은 조금씩 전진하고 있다. 인도부들을 흑천으로 밀어 넣는 중이다.
취운과 팔 장로는 일곡이 위치한 숲으로 뛰어들었다.
일곡이 매복 기습을 펼치고 있는 숲은 정동 싸움에서 가장 사나운 격전지가 되었다.
쌍거치반선진과 흑천의 수전 살수는 인도부도 쉽게 뚫지 못했다. 생각할 시간이 있다면 뚫지 못할 것은 없지만, 지금은 생각 없이 오직 행동만 취할 때다.
남쪽이 꽉 틀어막히고, 북쪽에서 쌍거치반선진이 밀고 내려오자, 인도부들은 동쪽 아니면 서쪽으로 움직여야만 했다.
그런데 서쪽은 철과를 쓰는 자들이 매복해 있다.
그들은 아마도 사곡 중 개인 무공에서는 가장 뛰어난 것 같다.
서쪽에 있는 무인들이 가장 많이 쓰러졌다. 가장 많이 죽이기도 했지만, 쓰러지는 숫자도 많았다.
서쪽은 아주 지독한 늪지대다.
결국, 인도부들은 그나마 쉽게 상대할 수 있는 일곡으로 몰려들었다.
몽설은 취운과 팔 장로에게 각기 이 곡씩을 맡겼지만 그런 구분은 의미가 없어졌다.
일곡이 집중 공격당하고 있다.
쒜에에엑! 퍼억!
취운의 검이 인도부를 꿰뚫었다. 그러자 옆에 있던 자가 취운을 공격하려고 했다. 그 순간, 어둠 속에서 불쑥 튀어나온 검이 무인의 심장을 찔렀다.
“크윽!”
“컥!”
무인 두 명이 거의 동시에 쓰러졌다.
팔 장로가 검을 쓸 무렵, 취운은 이미 어둠으로 스며들었다.
이런 식으로 두 사람은 함께 협공을 펼쳤다.
취운이 나타나면 팔 장로가 숨는다. 팔 장로 뒤는 취운이 돌봐준다. 서로 뒤를 지켜준다.
그녀들도 사생락은 펼치지 않았다. 살수들에게 보란 듯이 암영검만 펼쳤다.
삼곡과 함께 움직였던 팔 곡주 소명도 달려왔다.
곡주 네 명과 팔 장로까지, 사생락을 익힌 고수 다섯 명이 일곡을 막았다.
그런데도 인도부들은 다른 곳을 뚫으려고 하지 않는다.
저들은 오직 일곡으로만 달려온다. 처음에는 ‘일곡이 약하다’라는 정도만 인식했는데, 지금은 오직 일곡을 뚫지 않으면 안 된다는 식으로 달려든다.
사고가 마비되었다.
우습게 여겼던 공격인데, 뜻밖에도 강력하게 충돌하자 당황한 듯했다.
이들은 인도부다. 무뇌자 시절을 거치면서 온갖 싸움을 다 해봤다. 죽인 사람도 꽤 많다. 그런 만큼 자신도 언젠가는 죽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런데도 당황하고 있다.
완벽한 절망이 아니라 어설픈 어둠이 밀려왔기 때문에 그렇다.
살길이 전혀 없다면 이들은 아주 사나운 맹수가 되어서 날뛸 테지만, 지금은 일곡을 뚫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래서 공포에 젖은 상태가 되어 칼을 쓴다.
희망이 오히려 인도부를 약화시켰다.
굉장한 난전이다.
일곡에 압력이 집중된다. 인도부가 어떻게든 일곡을 뚫고 나가려고 발버둥 친다.
일곡은 필사적으로 막고 있다.
일흔두 명에 이르렀던 살수들이 거의 쓰러졌지만, 그래도 악착같이 버틴다.
‘치열하게 싸웠어. 이제 됐어.’
몽설은 울음 섞인 웃음을 흘렸다.
마음은 울고 싶은데 얼굴은 웃는다.
싸움은 이겼다. 이제는 희생을 강요할 필요가 없어졌다. 얻을 수 있는 것은 전부 얻었다.
하지만 완벽한 자신감은 완벽한 승리에서 나온다.
정동은 반드시 무너트려야 한다. 지금 이 기세를 빌어서 중원에서 가장 강한 살수 문파로 등장한다.
“이제는 싸움을 정리할 때야.”
스릉!
몽설은 검을 뽑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