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1화. 第三十五章 신전(新戰) (1)
몽설은 숲을 걸었다.
이른 새벽에 시작된 싸움이 정오를 지나서 오후로 들어서고 있다.
당연히 숲에 쓰러진 사람들이 한눈에 들어왔다. 숲에 있는 나무가 그들이 흘린 피를 빨아먹는다.
처참한 광경이다.
‘소앵(小櫻). 창화(窓和)…….’
몽설은 죽은 살수들의 이름을 되뇌었다.
소앵은 부모에게 버림받았다.
아비는 돈 몇 푼 받고 그녀를 팔순 넘은 노인의 포단처(蒲團妻)로 팔아버렸다.
노인이 동녀(童女)를 안고 자면 양기가 회춘한다는 속설이 있다.
그래서 돈 받은 여인들이 이제 방년도 되지 않은 여인을 침상으로 끌어들이는데, 이것을 포단처라고 한다.
잠자리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보지 않아도 뻔하다.
포단처는 노인에게 희롱당하다가 노인이 죽으면 같이 생매장된다. 노인 곁에 찰싹 달라붙어서 저승에서도 양기를 일으켜주라는 의미이다.
소앵은 노인을 죽이고 도망쳤다. 원래는 기절만 시킨다고 목침으로 뒷머리를 가격했는데, 그만 죽고 말았다.
그녀는 도망치다가 붙잡혔고, 월영에게 구함을 받았다.
그 길로 취화원 살수가 되어서 정말 활기차게 살았다. 취화원에서 생활하는 게 가장 좋다고 했다.
그녀가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다.
죽은 여인들은 모두 소앵 정도의 사연을 안고 있다.
어느 사람도 평범하지 않다. 살인이 좋아서 살수가 된 사람은 한 명도 없다.
‘용서해.’
몽설은 죽은 살수들에게 일일이 미안함을 전했다.
이 싸움은 피할 수 있었다. 취화원이 정동만 공격하지 않았다면 애꿎은 죽음은 일어나지 않았다.
사박! 사박!
몽설은 피로 물든 숲을 걸었다.
몽설의 모습이 매우 고요하게 평화로워 보인다.
손에 검만 들고 있지 않았다면 숲을 산책하는 모습으로 보였을 것이다.
“이건 뭐야!”
인도부가 냅다 칼을 쳐왔다.
숲에 있는 모든 사람이 죽여야 할 사람이다. 여자는 반드시 죽여야 한다.
인도부의 칼에는 인정이 담겨 있지 않았다.
몽설이 매우 위태로워 보였다. 금방이라도 머리가 잘려 나갈 듯했다.
순간, 몽설의 어깨가 출렁거렸다.
마치 어깨를 위로 추켜올려서 칼등을 밀어내려는 듯한 모습처럼 비쳤다.
어림도 없는 소리다. 어떻게 어깨로 칼을 쳐낼 수 있나.
“컥!”
몽설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갑자기 달려오던 인도부가 비명을 토해냈다.
왼쪽 어깨의 출렁거림은 오른손을 쓰려는 예비 동작이다.
오른손이 불쑥 솟구쳐서 인도부가 달려오는 길목을 막았다. 인도부가 피할 틈도 없었다. 갑자기 얼굴 앞에 뭔가가 불쑥 나타났다. 그리고 미간을 꿰뚫었다.
빠아아악!
검이 머리뼈를 부수면서 들어오는 소리가 나중에 울렸다.
몽설이 전개한 초식은 매우 깨끗했다. 일절 잡다한 행동을 배제하고 오직 죽음만 불렀다.
몽설은 처음부터 검을 들고 있었는데, 인도부가 스스로 검에 뛰어든 모습이다. 제가 왜 검으로 달려드나 하는 마음이 들 정도로 자연스러운 죽음이다.
“취, 취화원주다!”
“혈검이다!”
몇몇이 혈검을 알아보고 소리쳤다.
한두 명 알아본 게 아니다. 상당히 많은 사람이 몽설이 쓴 검을 보고 당장 혈검이라고 말했다.
당금 무림에서 취화원주가 몽설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거의 없다. 몽설이 혈검경을 수련했다는 사실도 알지 못한다. 한데 인도부는 상당수가 알고 있다.
이미 취화원에 대한 정보가 이들 귀에 들어갔다.
츠츠츠츳! 스스스스!
주위에 차가운 바람이 일어났다. 빠른 움직임…… 인도부가 몽설을 포위했다.
사박! 사박!
몽설은 자신을 포위한 인도부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너희와는 볼일이 없어.’ 하는 듯이 보였다.
사박! 사박!
그녀가 검을 축 늘어트리고 걸었다.
쒜에에엑!
인도부가 즉시 몽설의 허리를 갈라쳤다. 다른 자는 등을 노리며 달려들었다.
스읏!
몽설이 아주 작게 움직였다. 일시 움직임을 멈추는가 싶더니 어깨를 꿈틀거렸다.
그녀가 검무를 춘다.
쉬이이잇!
검이 부드럽게 출렁거렸다. 아니, 어느 한순간 벼락보다도 빠르게 한 점을 찔렀다.
“으악!”
옆구리를 쳐오던 인도부가 손으로 눈을 잡고 물러섰다.
그의 두 눈에서는 핏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스륵! 쒝!
검이 다시 움직였다. 마치 쇠붙이가 아니라 면사(綿絲)를 흔들어 대는 것처럼 부드럽다. 한데,
“컥!”
등을 공격한 자가 가슴을 움켜잡고 비틀비틀 물러섰다.
검이 어느새 가슴을 찔렀다. 매우 깊이 찔러서 핏물이 시냇물처럼 콸콸 쏟아진다.
몽설의 검무는 매우 느리다.
검공을 수련할 때, 일부러 느리게 검초를 전개하는 예도 있다. 평소 자연스럽게 펼칠 때보다 십 분의 일 정도로 느리게 초식을 전개한다. 지렁이가 기어가듯이 아주 느리게.
그러다 보면 검이 흐르는 궤적이 정확하게 보인다.
지금 몽설의 검무는 꼭 그 정도다. 매우 느리다. 너무 느려서 움직이지 않는 것 같다. 한데 특정 구간에서는 어떤 검보다도 빠르다. 번갯불이 번쩍 쏟아진다.
무엇인가가 번쩍 지나가고 나면 죽음이 일어난다.
그녀가 일으킨 섬광을 본 사람이 없다. 언제 어떤 식으로 검이 흘러왔는지 보이지 않았다.
스읏!
몽설이 피 묻은 검을 들어 올려 또 춤을 추었다.
“으악!”
앞을 가로막던 인도부가 배를 움켜쥐고 뒤뚱뒤뚱 물러섰다.
그의 바지는 배에서 쏟아진 피로 흥건히 젖었다. 지금도 배를 막은 두 손 사이로 핏물이 꾸역꾸역 쏟아져 나온다.
사박! 사박!
몽설이 걸었다.
그녀의 뜻은 명확했다. 앞을 막는 자는 죽는다. 일부러 쫓아가서 죽이지는 않는다. 너희는 취화원 살수들이 충분히 죽여줄 것이다. 그러니 내 길만 막지 마라.
그런데 그녀의 이런 위용이 취화원 살수들에게 엉뚱한 호승심을 불러일으켰다.
“죽엇!”
취화원 살수들이 거칠게 인도부를 공격했다. 철저하게 숨어서 암습을 가해야 한다는 사실을 깜빡 잊었다. 원주까지 나섰으니 다 이긴 싸움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인도부는 아직도 그들을 죽일 수 있다.
“흐흐! 이런 어린 것들이!”
인도부가 확 돌아서며 일곡 살수들을 맞이했다.
하지만 곡주들도 이미 이런 상황을 예견했다. 취화원 살수들은 살행 경험이 없어서 자칫 흥분할 수 있다는 점을 항상 생각하고 있었다.
쉬이이잇!
곡주들이 인도부 앞을 가로막으며 검을 쳐냈다. 취화원 살수들을 철저히 보호했다.
창창! 창창창!
격렬한 병기 부딪침이 일어났다.
“냉정!”
팔 장로가 버럭 일갈을 내질렀다.
그녀의 일갈 속에는 창룡음(蒼龍音)이 가미되어 있어서 숲 전체에 쩌렁 울렸다.
싸움할 때는 어떤 상황에서도 감정에 좌우되면 안 된다. 상황이 나쁠 때도 냉정해야 하지만, 좋을 때도 냉정해야 한다. 냉정을 잃으면 죽는다.
사박! 사박! 사박!
몽설은 정동을 향해 걸었다.
그녀를 가로막는 인도부는 없었다. 몇몇 인도부가 격살당하는 모습을 본 후에는 싸울 생각을 하지 못했다.
몽설은 인도부와는 차원이 다른 고수였다.
* * *
갈 곳이 있다.
몽설은 목적지를 향해 걷는다. 무작정 걷는 게 아니다.
정동의 주인인 광도수를 찾아간다.
정동 인도부를 이끄는 자가 광도수라는 사실은 얼마 전에야 알았다. 그전에는 정동에 어떤 자들이 있는지, 몇 명이나 있는지, 무공은 어느 정도인지 세부적인 것들을 전혀 알지 못했다.
광도수가 인도부와 무뇌자를 총괄 관리한다. 서리형개 다음으로 막강한 권력을 지녔다.
광도수를 죽여야 이 싸움이 끝난다.
광도수를 죽이는 순간 취화원은 공식적으로 정동을 이긴 것이 된다. 광도수를 죽이지 않으면 치명적인 손해를 입혔지만, 멸문은 시키지 못한 게 된다.
저벅! 저벅!
앞쪽에서 누군가가 걸어왔다.
‘광도수.’
몽설은 상대를 단번에 알아봤다.
광도수는 매우 침착하다. 정동이 심각한 타격을 받았는데도 눈 하나 까딱하지 않는다.
‘강자다!’
몽설은 광도수를 보는 순간, 서리형개와 마주쳤을 때의 느낌을 받았다.
광도수가 일홀도는 아니다. 하지만 일홀도에 근접한 칼인 것만은 틀림없다.
그가 진작 나타나서 취화원 살수들을 공격했다면 무척 힘들었을 것 같다.
쌍거치반선진? 광도수가 나타나면 단번에 무너진다. 수전 살수? 광도수는 그들이 숨은 곳을 단박에 파악했다. 강 밑바닥에 엎드려 있어도 안다.
광도수는 그만한 감각을 가진 고수다.
한데 그런 그가 왜 잠자코 있었을까? 수하들이 죽는 모습을 보면서도 칼을 들지 않은 이유는 뭔가?
‘아걸을 의식한 거야!’
몽설은 이유를 즉시 알았다.
광도수를 만난 순간, 몽설도 아걸이 풍기는 칼 냄새를 맡았다.
아걸에게 끼어들지 말라고 당부했고, 그는 끼어들지 않았다. 하지만 칼 냄새를 피우고 있다. 코가 뚫린 사람만 맡을 수 있는 비린내 나는 쇠 냄새다.
광도수는 아걸과 기세 대결을 펼치느라 다른 곳에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내가 제법 강한 놈들을 키웠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무너질 줄은 몰랐네. 후후!”
광도수가 먼저 말을 걸었다.
스읏!
몽설은 말을 섞을 필요가 없다는 듯 조용히 검을 들어 올렸다.
“이번 싸움은 우리 둘만 하지. 제삼자 개입 없이.”
역시 맞다. 광도수는 아걸을 의식하고 있다.
아걸이 나타나면 당장 싸울 것이다. 광도수는 자신이 아걸에게 진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아걸과 몽설이 합공을 펼치는 것은 자신 없어 한다.
“잘못 생각했어. 이 싸움은 정동과 취화원 싸움이야. 정동 인도부라면 누구든 당신 편에서 공격할 수 있어. 또 취화원 사람이면 누구든 내 편에서 싸울 수 있지. 우린 무예를 겨루는 게 아니라 서로의 목숨을 노리는 거니까.”
“좀 비겁한데?”
“아! 당신 말속에 숨겨져 있는 사람이 아걸이라면 그것도 잘못 생각한 거야. 아걸은 취화원 사람이 아냐. 이번 싸움에는 손끝 하나 내밀지 않을 거야.”
“그러면 다행이고.”
스릉!
광도수가 칼을 뽑았다.
“난 네가 칼까지 맞아가면서 무뇌자들을 빼돌렸을 때, 참 의아했어. 이게 무슨 짓이지? 이 여자가 미쳤나? 인도부를 건드린다면 몰라도 무뇌자를 왜 건드려?”
“…….”
“후후! 그 이유를 싸움이 시작된 후에야 알았네? 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리다고 했나? 무뇌자가 없으니 인도부 앞을 막아줄 게 없지 뭐야. 무뇌자를 앞에 세우기만 했어도 인도부가 매우 활발하게 움직일 수 있었을 텐데.”
“당신은 수하를 그렇게 써?”
“그럼 어떻게 사용할까? 사람마다 제 몫이 있는 법이거든. 무뇌자가 인도부 자리를 꿰찰 수는 없지. 그러니 무뇌자는 살수를 끌어내는 미끼가 딱 맞아. 하! 미끼가 없으니 직접 낚싯대로 고기를 때려죽이는 수밖에 없잖아. 낚지를 못하고.”
“그렇군. 그게 정동 방식이군.”
스릇!
몽설이 검을 움직였다.
두 팔을 들어 올리고 살짝 어깨를 떤다. 들고 있는 검이 파르르 경련을 일으킨다. 안에서 일어난 진기가 검자루를 퉁! 치자, 검 끝이 살짝 움직였다.
니환일검도 곧추세워졌다.
몽설은 광도수를 쳐다봤다.
먼저 시작해.
몽설이 도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