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2화. 第三十五章 신전(新戰) (2)
아걸은 계속 한 곳을 주시했다.
정동은 매우 위험한 곳이다. 하지만 특히 위험한 곳이 있다. 매우 위험해서 쳐다보기만 해도 솜털이 곤두선다.
고수가 있는 곳.
그가 어느 정도의 고수인지 확인하려면 직접 칼을 맞대봐야만 안다. 다만 굉장한 도기(刀氣)가 뻗쳐온다는 느낌을 감지했고, 그래서 지켜볼 뿐이다.
예전에는 이런 기운도 읽지 못했다.
언제나 상대방과 부딪쳐 본 다음에야 고수인지 아닌지 판단이 되었다. 사전에 도기를 읽는다거나, 어떤 느낌이 들어서 소름이 끼친다거나 하지는 않았다.
지금은 은연중에 느껴진다.
‘위험해. 맹수야.’
지켜보지 않으려고 해도 본능적으로 눈길이 한 곳을 향했다. 그가 움직이면 취화원 살수들이 무척 많이 살해될 것을 알기 때문에 더 관심을 쏟았다.
시간이 흐르자, 도기와 도기가 얽혔다.
상대방이 흘려낸 도기와 아걸의 도기가 중간에서 얽히며 서로를 탐색했다.
말은 탐색이라고 하지만 사실은 그냥 지켜보는 것이다.
움직이느냐, 움직이지 않느냐 하는 점만 느낄 수 있다. 다른 것은 읽을 수가 없다.
드디어 그가 움직였다.
사실, 아걸은 그가 움직이기 전에 정체를 이미 알아냈다.
정동 총괄 책임자인 광도수다.
몽설이 숲에서 나와 그가 있는 전각으로 걸어가고 있다. 그래서 알았다.
아걸이 주시하던 전각은 정동 중심이었다.
아걸은 몽설이 걱정되었다.
몽설의 무공이 어느 정도인지 잘 안다. 혈검경의 이름을 먹칠하지 않을 고수다. 하지만 상대방도 무시할 수 없는 고수라서 자연스럽게 걱정이 치민다. 그때,
스스슷! 스슷!
아걸은 인기척을 감지했다.
저들은 발걸음 소리를 죽이려고 매우 애를 쓴다. 실제로 거의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그런데도 아걸은 걸어오는 발걸음 소리가 똑똑히 들렸다.
상대는 여섯 명이다.
저들이 자신을 알고 찾아오는 것일까? 아니면 우연히 지나가는 길일까?
아걸은 관심을 돌려서 몽설을 지켜봤다.
어떻게 할까? 광도수는 굉장히 강하다. 일홀도가 주시해야 할 만큼 강하다. 소축십검에 비해서도 전혀 손색이 없다. 아니, 조금 더 강한 것 같다.
소축십검보다 강한 자!
‘몽설.’
아걸은 몽설이 한 말을 떠올렸다.
-이 싸움은 취화원과 정동 싸움이야.
정동의 수두는 광도수다. 취화원의 원주는 몽설이다. 그러니 몽설과 광도수의 싸움은 불가피하다. 양쪽이 병기를 맞댄 이상, 반드시 승패를 보고 넘어가야 한다.
광도수는 전적으로 몽설에게 맡겨야 한다.
“이번에는 정말로 도와줄 게 없네. 사람을 완전히 무기력하게 만들었어.”
아걸은 웃었다.
그런데……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발걸음 소리가 자꾸 신경에 거슬린다.
저들은 매우 은밀히 걸어오고 있다.
우연히 지나가는 길이 아니다. 분명히 자신을 노리고 찾아온 불청객이다.
‘이곳에서 나를 찾아왔다면 인도부일 텐데.’
아걸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자신은 그 누구도 모르게 움직였다. 취화원 살수들조차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모른다. 그런데 이들은 어떻게 알고 찾아왔나? 경계망이 뛰어났나?
정동은 취화원의 침입조차 알지 못했다.
경계 무인들을 세워놨지만, 제대로 경계를 서지 않았다. 강한 자들이 모여있다는 자부심, 누가 감히 이곳을 엿볼 수 있냐는 자신감이 경계심을 흩트렸다.
취화원 살수조차 잡아내지 못했는데, 자신을 잡을 리 없다.
아걸은 반철도를 들고 일어섰다.
싸움을 피할 생각이다. 정동 무인들은 철저하게 취화원에 맡긴다. 자신은 이 싸움에 가담하지 않는다.
저벅! 저벅!
아걸은 산길을 걸어 올라갔다.
* * *
아걸은 삼십 장 정도 걸은 후, 걸음을 멈췄다.
스으읏!
앞에 한 사람이 나타나 길을 가로막았다. 손에 검까지 들고 확실히 길을 막았다.
불청객 여섯 명 중 가장 강하게 느껴지던 자다.
스읏! 스읏! 스스슷!
다른 다섯 명은 뒤를 막았다. 두 명은 검을, 세 명을 칼을 들었다.
“산적이냐!”
아걸은 애써서 모른 척했다. 정말로 이번 싸움에는 가담하지 않을 생각이다.
“우리가 산적처럼 보이나?”
앞을 막은 자가 눈빛을 싸늘하게 굳히며 말했다.
‘……아!’
아걸은 비로소 확연히 느껴지는 것이 있었다.
이들이 앞뒤를 가로막을 때, 지금까지는 전혀 감지하지 못했던 또 다른 인기척을 찾아냈다.
인기척은 일곱 곳에서 일어났다.
소리가 지극히 미비해서 사람이 흘리는 소리로 들리지 않았다. 기껏해야 다람쥐의 움직임처럼 들렸다. 아니면 바람이 쓸고 지나가는 소리거나.
인기척이 한두 곳에서만 일어났다면 미처 눈치채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무려 일곱 곳이다. 그것도 거의 동시에 약속이라도 한 듯 비슷한 소리가 울렸다.
정동에는 일곱 명이 한 조로 해서 움직이는 자들이 있다.
귀적칠흔!
이들은 귀적칠흔이다. 종적을 귀신처럼 감춘다고 해서 귀적이라고 한다. 추적에 관한 한 귀신 뺨친다는 달인들이다. 정보 보호를 위해서 혀까지 뽑았다.
귀적칠흔까지 나타나자 아걸은 비로소 이들이 온 뜻을 알았다.
이들은 광도수가 서리형개에게 보내는 마지막 선물이다. 광도수는 죽음을 각오하고 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이들을 자신에게 보낸 것이다.
귀적칠흔이 자신과 이들의 싸움을 자세히 지켜본다. 그리고 서리형개에게 보고한다.
마찬가지로 광도수와 몽설의 싸움을 지켜보는 귀적칠흔도 있을 것이다. 그들은 두 사람이 흘리는 호흡까지 헤아릴 것이다. 숨을 몇 번 쉬고 공격했는지까지 파악한다.
‘내가 흘린 도기를 읽고 찾아왔어. 역시 광도수.’
아걸은 고개를 끄덕였다.
죽으러 온 자라면 죽여준다. 일홀도를 보겠다면 보여준다. 일홀도는 거침이 없다. 숨기지 않는다. 그런데도 일홀도를 아는 사람이 없는 것은 일홀도를 본 사람은 모두 죽었기 때문이다.
마침 생각나는 것이 있었다.
그래서 정동 싸움이 끝나는 즉시 한적한 곳을 찾아서 시험해 볼 생각이었다.
“싸우러 왔다면 싸워야지.”
아걸이 반철도를 들어 올렸다.
“우리가 누군지 알았군.”
“알 필요도 없어. 죽을 테니까.”
“후후후!”
앞을 막은 자가 빙글 몸을 돌렸다. 그리고는 검을 탁! 내리쳤다. 아걸을 공격한 것이 아니다. 내리치는 시늉만 했다. 그리고는 또 빙글 돈다.
빙글! 탁! 빙글! 탁!
회전하고 내리치기를 반복한다.
무인의 검을 본 사람은 ‘세상에 별 미친놈도 다 있네’ 하고 웃어넘길 것이다.
잘못된 생각이다. 무인이 회전을 두 번만 하면 검에 쌓인 힘은 배가 된다. 이미 상대하기 어려운 검인데, 세 번 돌면 그만큼 더 강해진다. 네 번 돌면 잠력(潛力)까지 모두 끌어올려진다.
회전은 진기를 중첩하는 과정이다. 검을 내리치는 시늉은 모인 진기를 검 끝으로 옮기는 작업이다.
“적산검.”
아걸이 중얼거렸다.
적산검은 성검문의 잠기일력타만큼이나 강력한 검공이다.
앞을 막은 자는 정동 이인자 적산검 두모다. 광도수의 제일 측근이자 정동에서 두 번째로 강한 자다.
아걸은 적산검이 진기를 충분히 중첩하도록 내버려 두었다.
“타앗!”
적산검이 우렁찬 일갈을 내지르며 달려들었다.
순간, 아걸의 등 뒤에 있던 자들도 득달같이 공격해 왔다. 다섯 명이 나란히 서기에는 비좁은 산길이었는데 벌써 네 명이 합공을 전개했다.
한 명은 등을 쳐온다. 두 명은 좌우로 갈라져서 칼을 뻗어온다. 또 한 명은 앞서가는 자의 어깨를 밟고 뛰어올라 허공에서 칼을 내리찍는다.
마지막 한 명은 보이지 않는다.
아걸은 숨은 자의 숨결을 읽었다. 등을 노리는 자의 뒤에 바싹 붙어있다.
아걸은 순간적으로 몰안 상태에 진입했다.
나와 칼이 연결된다. 내 의식은 사라지고 오직 반철도만 남아서 번뜩인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반철도가 적산검의 심장과 직통으로 연결되었다.
다른 때 같으면 여기서 사대문주의 탄궁도를 펼쳤다.
탄궁도는 일초무적도다. 마치 강궁에서 화살이 쏘아진 것처럼 강력하게 심장을 쪼개간다.
그러나, 이번에는 이대문주의 목도일참을 운용했다.
탄궁도를 펼쳐서 쏘아가는 대신에 적산검이 다가올 때까지 차분히 기다렸다. 뒤에서 공격해 오는 다섯 명이 반철도 사정거리 안에 들어서기를 기다렸다.
아걸은 망부석처럼 꼼짝도 하지 않았다.
“죽엇!”
적산검의 얼굴의 희미한 미소가 일렁거렸다.
지금 아걸이 보인 태도는 매우 오만하다. 적산검에게 검의 거리를 내주고도 무사할 수는 없다.
이제 검권 안으로 들어섰으니 어떤 방식으로든 부딪쳐야 한다. 그리고 격돌이 일어나는 순간, 진기 중첩이 무엇인지 똑똑히 알게 될 것이다. 그런데,
슛! 파앗!
왼손 위에 올려진 반철도가 느닷없이 밑으로 뚝 떨어졌다.
‘하향도, 상향도!’
밑으로 떨어진 칼이 적산검을 피해서 위로 솟구쳤다.
적산검은 아걸 전면을 모두 장악했다고 생각했는데, 틈이 있었다. 밑에서 위로 솟구치는 칼을 막지 못한다. 적산검보다 두 배 이상 빠르게 칼을 쓰면 허점이 자연스럽게 보인다.
퍼억!
아걸은 심장을 찌르지 않았다. 반철도로 거칠게 쳐올렸다. 적산검의 살이 찢어지고, 심장이 갈라졌다.
“커억!”
적산검이 비명을 내질렀다.
그는 비명을 지르는 순간에도 왜 두 병기가 부딪치지 않았는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일홀문 이대문주는 평생 병기끼리 부딪친 적이 없다. 상대보다 한 호흡만 빨라도 병기 격돌을 피할 수 있다. 물론 상대가 쳐오는 병기의 궤적을 한눈에 파악해야만 가능하다.
아걸에게 진기 중첩은 전혀 상관없었다.
검에 진기가 태산만큼 집중되어도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 어차피 병기끼리 부딪치지 않을 것이니.
진기 중첩은 검을 매우 빠르게 만든다. 섬광이다. 번쩍! 하는 사이에 몸을 가른다.
몰안은 그 순간에 적산검의 궤적을 파악했고, 검이 날아오지 않는 곳을 쳤다. 하향도에 이은 상향도로 검의 궤적과는 완전히 다른 부분으로 흘러갔다. 그리고 몸을 쳤다.
적산검이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아걸은 적산검을 등지고 홱 돌아섰다.
순간, 네 곳에서 몰아쳐 오는 병기의 궤적이 한눈에 들어왔다.
스읏!
오른쪽으로 반보 내디뎠다. 그리고 우측에서 공격하는 자를 가로로 쭉 그었다.
“컥!”
목도일참에는 여든한 가지 참도가 있다.
이름은 다양하지만, 칼이 흐르는 궤적을 분류해 놓는 것이다.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참도만 두 가지다. 직참도와 하향도가 있다. 방금처럼 칼을 떨구기만 하면 하향도가 된다. 내리쳐서 반으로 갈라버리는 데 역점을 두면 직참도라 부른다.
칼의 궤적도 중요하지만, 칼을 쓰는 목적도 생각한다.
휘리링!
칼이 빙글 휘돌려졌다.
살상을 목적으로 하는 회선도다. 칼을 크게 휘둘러서 다수의 적을 격살한다.
퍽! 퍽!
뒤에서 공격하던 자와 왼쪽에서 공격하던 자가 동시에 쓰러졌다.
여기까지가 목도일참이다.
아걸은 반철도를 두 손으로 잡고, 이미 쓰러지기 시작한 가운데 무인을 다시 쳐올렸다.
쫘아아악!
“으악!”
비명이 처절하게 터졌다.
아걸이 공격한 자는 이미 회선도에 맞아서 절명했다. 이번에 비명을 지른 자는 그의 등 뒤에 찰싹 달라붙어서 암습을 가하려던 자다. 그는 가장 강력한 칼, 십대문주의 천력도에 격타당했다.
슈르릉!
반철도가 급히 회전했다.
순식간에 땅에서 도화(刀花)가 피어났다. 칼의 움직임이 만든 꽃송이가 활짝 피어났다.
꽃송이는 잠시 흔들거리더니 허공으로 툭 던져졌다.
퍼억!
허공에서 칼을 내리치던 자가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털썩 쓰러졌다.
쿵! 쿵쿵쿵! 쿵쿵!
여섯 명이 동시에 쓰러졌다.
적산검이 쓰러지는 것과 제일 마지막으로 구대문주의 십이살환도에 맞아서 죽은 자가 같은 순간에 쓰러졌다.
쉿! 쉿쉿!
숲에서 조용한 바람이 일어났다.
귀적칠흔은 사라지고 있다. 방금 본 것을 누군가에게 보고하러 가는 것이다.
아걸은 잠시 정동을 지켜봤다.
몽설과 광도수가 막 싸움을 벌이려고 한다.
‘미안. 끝까지 보지 못하네. 한성에서 봐.’
쉬이잇!
아걸은 귀적칠흔을 쫓아서 신형을 쏘아냈다.
귀적칠흔에게 보고를 받는 자, 서리형개를 만나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