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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홀도-173화 (173/600)

#173화. 第三十五章 신전(新戰) (3)

몽설은 광도수에게서 자신과는 전혀 다른 칼을 보았다.

느낌이 그렇다. 혈검은 조용한 가운데 만물을 포용하고 그 속에서 파괴를 일으킨다. 느림과 빠름의 조화를 중시하며, 느림은 빠름을 위한 준비다.

광도는 말 그대로 광도다. 미친 칼이다. 처음부터 광풍이 미친 듯이 휘몰아칠 것이다.

두 사람의 무공은 완전히 극성이다.

광풍에 휘말리면 혈검은 순간적인 발검을 이뤄내지 못한다.

중심이 꽉 잡혀 있어야 검을 쳐낼 수 있다는 것은 이제 갓 검을 든 초심자도 안다.

몽설과 광도수 같은 고수의 싸움에서도 이런 기본은 승패를 좌우하는 중요 요소가 된다. 모든 무공은 돌고 돌아서 기본으로 정착된다.

광도는 중심을 빼앗을 것이고, 혈검은 중심을 지켜야 한다.

광풍에 휘말려서 이리 치이고 저리 밀리다 보면 반격할 기회조차 잡지 못한다.

광도 역시 기본을 지켜야 한다.

미친 듯이 휘몰아치는 것은 좋은데, 그러다가 조그마한 틈이라도 내주면 싸움은 바로 끝난다. 혈검이 그 틈을 놓치지 않고 파고들 게 뻔하다.

두 사람은 서로 보기만 했는데도 어떻게 싸워야 하는지 싸움 양상을 읽어냈다.

쉬링! 쉬링! 쉬링! 쉬리링!

광도수가 광도를 이끌기 시작했다.

칼을 가볍게 휘둘러 대는데 거센 바람이 나뭇잎을 훑는 듯한 거친 기세가 일어났다.

몽설은 춤을 추듯이 꿈틀거렸다.

그녀가 추는 춤은 격렬하지 않다. 조용하고 차분하다. 움직임이 적어서 매우 약해 보인다.

처음부터 몽설이 광도에게 밀린다.

겉보기에는 그렇다. 구경하는 사람들 눈에는 광도는 거침이 없고, 몽설은 크게 위축된 듯이 보인다. 광도는 자신만만하고, 몽설은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것 같다.

물론 무공이 어느 경지에 이른 사람은 두 사람이 사이에 팽팽한 긴장감이 흐르고 있다는 것을 안다.

광도는 광풍을 제대로 일으키지 못하고 있다.

몽설은 움직임만 일으킬 뿐, 검무를 제대로 추지 못한다.

두 사람 모두 제 무공을 펼치지 못하고 있다. 상대방이 던진 견제에 막혔다.

‘아걸!’

몽설은 아걸을 떠올렸다.

몽설은 일홀도와 맞선 적이 있다. 진심으로 전력을 다해서 혈검을 펼쳤다.

아걸이 지금 일홀도를 얻기 위해서 발버둥 쳤다.

하지만 길이 없다. 아걸은 꽉 막힌 곳에서 탈출하기 위해 발버둥 쳤지만 뚫고 나갈 길이 보이지 않았다. 누군가를 죽이지 않고는 탈출할 수 없는 막다른 곳에 갇혔다.

몽설은 아걸을 공격했다.

당시, 자신의 죽음은 생각하지 않았다. 오직 아걸이 일홀도를 얻으면 좋겠다는 생각만 했다. 싸움의 결과가 어떻게 되리라는 것은 예측하지 않았다.

한 가지, 아걸이 자신의 검에 죽을 리가 없다는 것만 확신했다.

자신은 죽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걸은 최소한 무사하다. 잘되면 일홀도를 얻는다.

몽설은 진심으로 살기를 뿜어냈다. 가짜 공격은 통하지 않는다. 오직 진짜만 통한다. 그래서 정말로 아걸을 죽인다는 생각으로 혈검을 펼쳤다.

결과는 둘 다 다치고 말았지만…… 그때, 최고의 혈검을 펼쳤다.

아걸은 일홀도를 얻었고, 자신은 혈검을 얻었다. 죽음 직전에서 얻은 검이 진짜 검이다.

그렇다. 광도수는 아걸이다. 광도수를 아걸로 생각하고 최고의 검을 펼친다.

광도수에게 지금보다 더 높은 경지를 깨우치게 도와준다.

광도수가 일홀도만 얻을 수 있으면 죽어도 좋다는 심정으로 검을 쓴다.

몽설은 광도수를 쳐다봤다.

광도수에게 일홀도를 얻게 해준다는 마음을 갖자, 그가 떨쳐내는 광도가 미흡해 보였다.

칼이 날카롭지 않다. 조금 무뎌 보인다.

진기 조절을 잘해서 완급을 더하면 훨씬 노련해질 텐데. 너무 사납기만 해서는 제 위력이 나오지 않는데.

광도를 혈검의 이치로 보자 허점이 눈에 띄었다.

‘그래, 저 부분을 고쳐보는 거야. 저것만 고쳐도 지금보다 훨씬 강한 칼을 쓸 거야.’

고칠 부분까지 보이자 더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철렁!

검이 흔들렸다.

몽설은 엄지와 검지, 두 손가락만으로 검을 잡았다.

광도 같이 거친 칼과 맞서면서 검을 꽉 잡아도 모자랄 판에 손가락으로? 이렇게 잡는다면 광도와 살짝 부딪치기만 해도 검이 날아가지 않겠나.

쉿! 쉬이이잇! 쉿!

몽설은 손가락으로 잡은 검을 가볍게 휘둘렀다.

검은 제법 날카로운 소리를 내면서 흔들리기 시작했다.

몸이 움직이고, 팔이 움직이고, 그다음에 검이 움직인다.

몸이 약간 움직이고, 팔은 조금 더 많이 움직이고, 검은 거세게 움직인다.

몸이 살짝만 움직여도 칼은 아주 빨리, 아주 강하게, 아주 먼 거리를 이동한다.

몽설이 펼치던 혈검이 아니다.

그럴 수밖에! 몽설은 광도에 장단을 맞추고 있다. 광도가 움직이는 숨결을 파악하고, 자신의 검을 맞춘다. 빠르게, 느리게, 느리게, 빠르게.

‘됐어!’

몽설은 광도와 호흡을 맞췄다. 그러자 자신도 모르게 ‘됐다!’라는 생각이 일어났다.

광도수도 마찬가지 심정이다.

파락! 파라락! 파라락!

광도에서 광풍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몽설이 검으로 장단을 맞춰주니 칼을 쓰기가 훨씬 편했다. 몽설 스스로 광도에 광풍이 일어나게끔 유도해 주었다. 혈검이 꽉 막힌 부분을 뚫어주었다.

광도수는 진기를 충만하게 끌어올렸다.

양쪽이 모두 최고의 상태다.

몽설이 먼저 공격해 들어갔다. 광도의 흐름과 호흡을 맞춘 상태라서 검을 쓰기가 편했다.

사박! 사박!

몽설이 광도수를 향해 걸어갔다.

걸어가는 중에도 검은 계속 휘둘렀다. 손가락으로 잡고 빠르게, 느리게 장단을 맞췄다.

광도수도 몽설을 향해 다가왔다.

파르릉! 파릉! 파르르르릉!

광도에서 일어나는 소리가 완전히 달라졌다. 매우 사납고 거칠다.

두 사람은 점점 거리를 좁혔다. 그리고 드디어 검권을 한 발만 남겨두었다.

파라라라랑!

광도에서 돌풍이 일어났다.

한 발만 앞으로 내디디면 바로 살공을 전개할 수 있다. 곧장 싸움으로 돌입한다.

순간, 몽설이 망설임 없이 검을 쳐냈다. 느리게, 느리게 움직이다가 화살 날리듯 앞으로 쭉 뻗어냈다.

쒜에엑!

손가락만으로 잡은 검은 매우 유약해 보이지만, 탄력을 제대로 받으면 무척 빨라진다.

광도수는 즉시 옆으로 피하면서 미친 듯이 연달아 사도를 떨쳐냈다.

창창창!

검과 칼이 순식간에 세 번이나 격돌했다. 광도는 네 번째 칼로 몽설의 팔을 잘라 왔다.

순간, 몽설의 어깨가 출렁거렸다. 검은 밑으로 뚝 떨어졌고, 칼은 허공을 그었다.

몽설은 칼을 피하려고 검을 떨군 것이 아니다. 방어와 공격이 동시에 이루어진다. 최선의 방어는 최고의 공격이다. 검을 밑으로 떨구면서 순간적으로 발목을 쳤다.

광도수가 살짝 발을 들어서 검을 피했다.

한 번의 격돌이 일어난 후, 두 사람은 다시 서로를 노려보며 빙빙 돌았다.

파라라랑!

광도에서 살기 깃든 광풍이 일어났다.

몽설은 여전히 검을 빙글빙글 돌렸다. 느리게, 빠르게, 또 빠르게, 그리고 느리게. 그러다가 불쑥 검이 튀어나왔다. 섬광처럼 빠른 검이 광도수의 안면을 노렸다.

광도수는 한 번 경험이 있어서인지, 이번에는 다르게 반격했다.

차앙!

첫 번째 격돌로 검을 밀어냈다. 동시에 검권 안으로 몸을 밀어 넣었다. 빙글 휘돌면서 회전하는 힘까지 보태서 강한 칼로 몽설의 어깨를 내리찍었다.

몽설은 광도수와 반대 방향으로 몸을 회전시켰다. 딱 반 바퀴만 돌았다. 동시에 광도수의 옆구리를 쳤다.

이번에는 광도수가 칼을 내려 검을 막았다.

순간, 몽설의 검이 변했다. 옆구리를 찌르지 않고 얼굴을 찔렀다.

광도수는 칼을 거두지 않았다. 검이 얼굴을 찔러오지만, 여전히 칼을 뻗었다.

몽설은 미처 검을 끝까지 뻗어내지 못하고 중간에서 회수했다.

양패구상을 피하기 위해서는 공격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안 그러면 얼굴을 찌를 수 있지만, 자신도 두 다리를 잃는다. 광도는 한 다리만 잘라내는 데서 그치지 않을 것이다.

그녀가 원하는 것은 광도수가 한 단계 발전하는 것이다. 결코, 양패구상이 아니다. 자신이 죽는 한이 있어도 일홀도를 얻게 해줄 것이다. 그러자면 최고의 검을 펼쳐야 한다.

‘반드시 일홀도를 만들어 줄게.’

광도수는 죽여야 할 자가 아니다. 죽인다는 생각을 갖지 않는다. 오직 지금보다 강한 칼을 얻게 해준다는 신념으로 검초를 펼쳐낸다. 목숨을 잃을까 봐 염려하지도 않는다.

지금까지는 최상의 검초를 펼치지 못했다.

방금만 해도 그렇다. 만약 두 다리를 잃어서 광도가 일홀도를 얻는다면 검을 거두지 않았다.

광도는 아무것도 얻지 못할 칼을 썼다. 괜히 두 사람만 다친다. 그래서 검을 거뒀다. 두 다리를 내줄 가치만 있었다면 흔쾌히 내주었을 텐데.

휘리리링!

몽설은 니환일검에 집중했다.

니환궁에 곤두세워진 혈검이 광도를 읽었다. 광도의 진기를 읽고, 의도를 읽었다.

츠읏!

몽설은 모든 움직임을 멈추고 검을 앞으로 내밀었다.

니환궁에서 터지는 함성, 최고의 감각으로 혈검을 펼치려고 한다.

광도수가 죽을 수도 있고, 자신이 죽을 수도 있다.

분명한 것은 니환일검을 상대하면 광도 역시 한 걸음 더 나아갈 것이라는 점이다.

광도수 역시 이번 공격이 마지막 공격이라는 점을 직감했다.

몽설이 혈검을 펼치는 중이다.

광도수는 광도는 신경질적으로 휘둘렀다.

파라라랑! 파라랑! 파라라라랑!

전신에서 거센 도기(刀氣)가 일어났다. 칼이 일으킨 광풍에 흙먼지가 풀풀 날렸다.

광도의 절정이다.

광도수는 이 무공을 펼친 적이 없다. 나중에 서리형개 혹은 소축십검에게 펼칠 생각이었다. 적수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던 취화원 원주에게 펼칠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다.

“타앗!”

광도수가 고함을 지르며 달려왔다.

빠가가각! 빠가각!

공기가 뜯어진다. 칼이 허공을 가르는 것이 아니라 쪼개고 있다.

한순간에 공기가 압축되었다가 터지는 현상이다.

광도수는 모든 진력을 광도에 모아서 떨쳐냈다. 몽설이 어떤 변화를 보이든 상관하지 않는다. 오직 몽설을 박살내겠다는 심정으로 달려든다.

한순간, 광도수는 생각을 잃었다. 그래서 죽음에 대한 공포가 없다. 실패에 대한 염려도 없다. 대신 무인의 감각은 팽팽하게 살아서 움직인다.

어디 죽일 수 있으면 죽여봐라. 나도 널 죽이겠다!

광도는 미친 칼이다. 광도를 왜 광도라고 부르는지 확실히 알 수 있는 칼이 쏟아졌다.

순간, 몽설은 혈검 제사식 일검무적을 펼쳤다.

첫 번째, 도첨, 칼끝을 따라잡는다. 검첨과 도첨이 정점에서 만난다. 부딪치지는 않는다. 굳이 딱 만날 필요도 없다. 도첨이 향하는 방향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데 목적이 있다.

도첨을 따라잡기 위해서 수련해야 할 공부는 심검부동(心劍不動)이다. 니환일검이 흔들리지 않고 도첨을 지켜봐야 한다. 어떠한 미동도 일으켜서는 안 된다.

여기서 승부는 끝난다.

두 번째는 무적을 확인하는 과정일 뿐.

두 번째, 검은 도첨을 지나 도신(刀身)을 따라 흐른다. 환격(還擊)이다.

광도가 상반신을 쳐왔다.

특별히 어디를 노린 것이 아니다. 어디로 피하든 즉각 변형시킬 준비가 되어 있다. 어쨌든 마지막 목표는 상반신이다.

몽설은 광도의 도첨을 찾았다. 즉시 니환일검을 동원해 따라붙었고, 칼이 흐르는 모습을 봤다.

스으읏!

혈검이 환격에 나섰다.

광도의 칼과 비켜 지니겠다. 도첨과 검첨이 스쳐 지나갔다. 도신과 검신이 마주 보며 흘렀다.

슈아아아악!

광도의 칼이 몽설의 머리카락을 베며 귀밑으로 지나갔다.

몽설은 검으로 광도의 미간을 찍었다. 정확하게 눈과 눈 사이에 또 하나의 눈이 생겼다.

혈검이 광도수의 니환궁을 파괴했다.

광도수는 풀썩 쓰러졌다.

“지금보다 더 강한 칼을 가졌으면 했는데, 미안하게 됐네. 일홀도를 안겨주지 못했어.”

광도수는 이미 절명했다. 검을 맞는 즉시 정신이 똑 떨어졌다. 그러니 당연히 몽설이 하는 말을 듣지 못했다. 설혹 들었다고 해도 말뜻을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스읏!

몽설은 검을 빼냈다.

불가능하게 생각되었던 정동 싸움…… 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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