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4화. 第三十五章 신전(新戰) (4)
귀적칠흔은 사냥개로 키워졌다.
추적에 관한 모든 것을 배웠다.
무공도 추적에 필요한 부분만 습득했다. 신법은 뛰어나다. 하지만 권각술은 어이없을 정도로 형편없다.
당연히 은신술도 상당하다.
귀적칠흔은 한 자리에서 사흘이고 나흘이고 머물 수 있다. 눈에 띄지 않게 대도읍을 들락거릴 수 있다. 무인들의 회합을 염탐할 정도로 잘 숨는다.
아침에 눈을 뜨면서부터 잠들 때까지 모든 사고가 오직 추적에 맞춰져 있다.
이들은 내시처럼 양물도 거세했다.
추적 중에 한눈을 팔면 안 되기 때문에 쾌락에 대한 본능을 물리적으로 차단한다.
술도 마시지 못한다.
술을 마시면 구역질이 치밀도록 체질을 변화시켰다.
그러면서 매일 독단을 복용한다.
지금 무엇을 하는 것인가, 이게 인간이 할 짓인가, 나는 끝내 무엇이 되고자 하는가 등등 자존감이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요소를 차단하는 단환이다.
독단을 복용하면 환각에 빠진 듯 몽롱해진다. 오직 추적에 관한 신경만 남는다.
그렇게까지 하고도 사로잡힐 경우를 대비해서 혀를 잘랐다.
귀적칠흔은 일곱 명이 함께 움직인다. 여기에도 이유가 있다.
염탐하다 보면 강력한 적을 만나서 사로잡힐 가능성이 항상 열려 있다.
그럴 경우, 여섯 명이 순차적으로 목숨을 내놓는다.
여섯 명이 목숨을 내놓는 대가로 최대한 늘일 수 있는 거리는 대략 십 리쯤이다.
십 리를 달리기 위해서 여섯 명이 죽는 것이다.
그래서 귀적칠흔은 십 리마다 염탐한 것을 전할 수 있는 장치를 해놓는다.
사람을 대기시켜 놓거나, 밀마를 전하는 도구를 마련해 놓거나, 전서구를 준비해 놓는다.
귀적칠흔은 언제든 죽을 준비를 하고 있다.
아니, 이들에게는 삶과 죽음에 관한 생각 자체가 없다. 무조건 특정 상황에 부딪히면 훈련받은 대로 실행한다. 결과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쉬이이잇! 쉬이잇!
귀적칠흔이 움직였다.
‘대단하네. 어쩌면 저렇게 조용히 움직일까?’
아걸은 솔직히 감탄했다.
저들이 움직이는 모습을 보면 꼭 원숭이가 나무를 타는 것처럼 부드럽다. 바람도 움직이면 소리를 흘리는데, 저들은 일절 소리를 내지 않는다.
옷은 몸에 찰싹 달라붙은 가죽옷이다.
매미 날개처럼 얇고 가벼우면서 살과 옷 사이에 공간을 남기지 않는다. 그래서 몸의 윤곽이 무척 뚜렷하게 드러난다. 마치 옷을 안 입은 것처럼.
귀적칠흔은 항상 이런 모습이기 때문에 타인 앞에 나서지 않는다.
쉬이이잇! 쉬이잇!
아걸은 부지런히 귀적칠흔을 쫓았다.
그는 몰안을 최고 상태까지 끌어냈다. 전신 감각이 저들에게 초집중되었다.
싸울 때 이외에는 몰안을 이런 정도까지 끌어낸 적이 없다.
싸움은 잠시면 끝나지만, 귀적칠흔은 끝없이 움직인다. 그러니 항상 몰안을 유지해야 한다.
진기를 밑도 끝도 없이 끌어내고 있는 것과 같은 현상이다.
아걸은 이토록 오랫동안 몰안을 유지한 적이 없다. 그래서 어떤 부작용이 나올지도 알지 못한다.
매 순간이 싸움의 연속이다. 한순간이라도 감각을 잃어버리면 저들을 놓친다. 특히, 귀적칠흔은 추격자를 따돌리는 데 능숙하다. 그러니 더욱 세심하게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아주 색다른 경험이다
쉬이잇! 슷!
귀적칠흔이 움직임을 멈췄다.
아걸도 신법을 풀었다. 하지만 여전히 몰안은 유지했다. 저들을 집중해서 지켜봐야 한다.
아걸과 귀적칠흔 사이의 간격은 백 장 정도다.
상당히 먼 거리다. 단지 눈으로 보고, 귀로 들어서 쫓아가기에는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거리다.
이정도의 거리를 벌여놓고 추격했기 때문에 따라올 수 있었다.
“휴우!”
아걸은 한숨을 토해냈다.
이건 적산검을 칠 때보다 더 힘들지 않은가.
쉬잇! 쉬이잇!
저들이 다시 움직였다.
‘아!’
아걸은 즉시 따라붙으려다가 우뚝 멈춰 섰다.
움직인 자가 두 명뿐이다. 다른 자들은 움직이지 않은 채 대기하고 있다.
여기서 뿔뿔이 흩어지나? 아니면 두 명만 다른 볼일이 있나?
아걸은 차분히 기다렸다.
쉬잇! 쉬이잇!
두 명이 또 떠났다. 지극히 은밀하게, 전혀 소리를 내지 않고 사라졌다.
‘네 명. 세 명.’
떠난 자가 네 명, 남은 자가 세 명.
갈등이 치민다. 많은 숫자를 따라가야 하나?
지금 떠난 두 명을 쫓아간다고 해도 먼저 떠난 자와 같은 곳으로 간다는 보장이 없다.
귀적칠흔이 왜 뿔뿔이 흩어지지?
쉬이잇! 쉬잇!
두 명이 또 떠났다. 그리고 마지막 한 명만 남았다.
아걸은 끝까지 기다렸다. 최후로 남은 한 명도 귀적칠흔이다. 그러니 이들은 다시 합류할 것이다. 뿔뿔이 흩어진 이유는 모르겠는데, 다시 뭉치는 것은 확실하다.
째액! 짹! 짹!
산새가 우짖었다.
일곱 번째 귀적칠흔은 좀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한순간, 아걸은 자신이 ‘한 명을 놓쳤나?’ 하는 의심이 들었다.
귀적칠흔이 이미 모두 떠나고 없는데, 괜히 기다리고 있는 게 아닌가 싶기도 했다.
스읏!
몰안을 유지했다. 초집중 상태가 되어서 인기척을 살폈다.
아무 느낌도 없다. 누군가가 존재한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아무 소리도 나지 않는다.
‘이렇게 놓친 건가?’
아걸은 쓴웃음을 흘렸다.
몰안을 유지해서 끝까지 따라붙을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뜻밖에도 실패하고 말았다.
아걸은 몰안을 풀면서 일어서려고 했다. 그때,
쉬잇!
마지막 남은 한 명이 움직였다.
‘하아!’
아걸은 깜짝 놀라서 가는 한숨을 토해냈다.
까딱 잘못했으면 정말 놓칠 뻔했다. 무심코 신형을 드러낸 채 걸었다면 당장 눈치챘을 것이다.
‘참 지독한 놈들!’
아걸은 마지막 귀적칠흔을 따라붙었다.
마지막 남은 한 명이 이토록 오랫동안 기다렸다가 떠날 줄은 미처 알지 못했다.
쉬이잇! 쉬이잇!
앞서가는 귀적칠흔이 확실히 느껴졌다. 지금까지처럼 백 장 간격을 유지한 채 쫓아갈 수 있게 되었다.
그때 문득, 아걸은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나름대로 자신은 상당한 고수다. 특히 감각 면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감각망기술을 머리에 적용하면 몰안이 된다.
몰안으로 지켜보면 떨어지는 빗방울까지 쫓을 수 있다.
아걸은 몰안을 심상(心象) 영역까지 확대했다. 그 결과, 감각까지도 느낄 수 있다.
그런 자신이 귀적칠흔을 참 힘들게 쫓고 있다.
옛날에도 귀적칠흔과 부딪친 적이 있지만, 지금처럼 힘들지는 않았다. 그때는 취화원 살수와 엇비슷한 정도였다. 혀를 자른 것 외에는 특별히 주의해야 할 이유가 없었다.
지금은 매우 당황스럽게 만든다.
실제로 적산검을 벤 것보다 더 힘들게 쫓고 있다.
이 정도로 신형을 숨길 수 있다면 누구인들 염탐하지 못할까. 혹시 이자들, 서리가헌이나 서리형개에게 쓸 목적으로 특별 수련시킨 자들은 아닐까?
아걸은 귀적칠흔이 일홀문을 겨냥해서 만들어진 사냥개라는 의심이 부쩍 치밀었다.
광도수에게도 야망이 있을 수 있다.
그의 무공은 일홀도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상당한 수준이었다. 그 정도의 칼이라면 나름대로는 일홀도와 부딪쳐도 승산이 있다는 자신을 가졌을 법하다.
만약 정말로 귀적칠흔이 서리형개에게 사용할 목적으로 수련시킨 것이라면…… 서리형개는 이들의 존재를 모른다. 광도수가 말할 리 없다.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아걸은 더 곤혹스러웠다.
서리형개가 이들의 존재를 모른다면 그럼 이들은 누구에게 보고하는 거지? 지금까지는 서리형개에게 보고하는 줄 알았는데 어디로 가는 거지?
아걸은 더욱 진한 흥미를 느꼈다.
귀적칠흔을 반드시 따라가야겠다. 이들이 누구에게 보고하는지 알아야겠다.
귀적칠흔을 잡아서 고문하는 것은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
아걸은 가장 잔인한 고문 방법을 알고 있다. 할배가 가르쳐 준 방법으로. 적랑대 제일 고문 수법이다.
단언하건대 뼈마디가 자디잘게 부서진다는 분근착골(分筋錯骨)보다 훨씬 강력한 고통을 준다. 누구라도 입을 열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귀적칠흔은 입을 열지 않는다. 본인들이 입을 열지 않겠다는 의지로 혀까지 잘랐는데 종이에 글을 쓰겠나.
오직 쫓아가서 찾아내는 수밖에 없다.
쉬이이잇! 쉬이잇!
아걸은 최대한 주변에서 일어나는 소리에 집중했다. 티끌만 한 움직임도 찾아냈다.
이건 마치 일홀도를 펼치기 직전의 심정이다.
스읏!
귀적칠흔이 움직임을 멈췄다.
잠시 쉬어가나? 그런 건 아닌 것 같다. 귀적칠흔이 아예 자리를 잡고 눕는다.
‘여긴 어디지?’
아걸은 눈살을 찌푸렸다.
귀적칠흔은 대도읍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산만 내려가면 상당히 큰 성이다.
얼핏 봐도 집이 일만여 호는 넘는 것 같다.
이 정도면 지도에 도읍 이름이 적혀 있을 것이다. 결코, 외진 곳이 아니다.
그런데도 아걸은 도읍이 어딘지 알아내지 못했다.
할배와 함께 세상을 참 많이 돌아다녔다. 그래서 웬만한 곳은 다 안다. 하지만 산 아래 보이는 도읍은 무척 낯설다. 어디인지 짐작조차 안 된다.
귀적칠흔은 편하게 누워서 잠을 잤다.
‘밤이 되기를 기다리고 있어.’
저들은 사람이 활동하는 낮에는 도읍에 들어갈 생각이 없다. 밤이 되어도 은밀히 잠입할 것이다.
아걸은 가부좌를 틀고 앉아서 진기를 일으켰다.
몰안을 너무 깊게 펼쳤다. 스스로는 느끼지 못하지만, 뇌가 터지기 직전일 수도 있다. 아직은 아무런 증상도 없으니 해가 없을 수도 있다.
몰안을 이렇게 오랫동안 펼친 적이 없어서 일단은 쉰다.
날카롭게 곤두섰던 신경을 가라앉히고, 맑은 공기도 음미하면서 편하게 쉰다.
날이 어두워지기 전까지는 잠을 자도 괜찮을 것이다.
* * *
귀적칠흔은 상당히 끈기 있게 기다렸다.
밤이 되자 도읍에 불이 밝혀졌다. 일만여 호나 되는 집에서 등불을 밝혔다.
도읍은 낮보다도 더 활기를 띤다.
그러다가 드디어 등불이 하나씩 꺼지기 시작했다.
시간이 자정을 넘어섰다. 등불이 거의 꺼지고 몇몇 집에서만 가는 불빛이 새어 나온다.
쉬이이잇!
귀적칠흔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번 움직임에도 순서가 있다. 한 명이 움직이고, 두 명이 움직이고, 또 한 명이 움직였다. 움직이는 인원은 각기 다르지만, 낮과 같은 방식을 사용한다.
먼저 움직인 사람은 맨 마지막 사람이 올 때까지 천천히 이동한다. 끊임없이 이동하지만 속도를 늦춘다. 분산 이동을 하는 목적이 추격자를 탐지하는 것이니.
일곱 번째 귀적칠흔이 움직였다.
아걸은 즉시 따라붙었다.
백 장이라는 거리는 여전히 유지했다. 성으로 들어가면 조금 거리를 좁힐 수도 있겠지만, 산에서는 위험하다. 충분히 거리를 벌려놓고 쫓아간다.
귀적칠흔은 도읍에 익숙한지 발걸음이 매우 빨라졌다.
스슷!
그들이 성벽 앞에 이르렀다. 하지만 잠시도 머뭇거리지 않고 단숨에 성벽을 타고 올라갔다.
타타타타탁!
나무를 올라가는 다람쥐처럼 치달리듯 성벽을 올라간다.
“하!”
아걸은 감탄했다.
진정 저들처럼 빠르게 성벽을 올라가는 자들은 처음 봤다.
‘이거 자신 없는데? 성벽을 타본 적이 없어서…….’
아걸은 미간을 찌푸렸다.
시간이 충분하다면 성벽인들 타지 못할까. 하지만 계속 따라붙으려면 아걸도 저들만큼 빠르게 올라가야 한다.
일단 정신집중을 하고, 성벽 사이사이 틈이 갈라진 곳에 손가락을 찔러놓고 몸을 튕겨냈다.
슈웃!
그는 귀적칠흔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성벽을 올라갔다.
귀적칠흔은 이미 지붕에서 지붕으로 건너뛰는 중이다.
조금만 늦게 성벽을 올랐어도 저들을 놓칠 뻔했다.
아걸은 귀적칠흔을 쫓아서 지붕에서 지붕으로 건너뛰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귀적칠흔이 싹 사라졌다. 정말 감쪽같이 한순간에 사라졌다.
‘놓쳤나?’
아걸은 잠시 멍청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