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6화. 第三十六章 제일쾌검(第一快劍) (1)
쒜에에엑!
반철도가 허도기의 심장을 노리고 쏘아 갔다.
허도기의 심장이 크게 보인다. 화살 표적만큼이나 큼지막하게 드러나 있다.
반철도가 정확하게 가슴을 파고든다.
허도기가 칼을 피하려고 꿈틀거린다. 어깨를 들썩이는 것처럼 보였다.
허도기는 칼이 날아오는 것을 지켜본 후에 피할 생각이었나 보다. 하지만 늦었다. 허도기가 아무리 빨라도 가속까지 붙어 버린 반철도보다는 빠르지 않다.
쎄에에엑!
반철도의 움직임이 허도기의 움직임을 압도한다.
허도기는 느리다. 반철도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다. 움직이기는 하지만 이미 심장을 내준 상태다.
쒜에엑! 퍼억!
반철도가 심장을 후려쳤다.
아니다! 반철도는 아무것도 치지 못하고 허공을 찔렀다. 손에서 타격감이 느껴져야 하는데, 허공을 쭉 찢고 지나간다. 순간,
퍼억!
이상한 소리가 울렸다.
‘맞았다!’
검에 맞는 것과 동시에 느낌이 일어났다.
칼을 워낙 많이 맞다 보니 이제는 몸에 강한 충격이 일어나면 느낌이 확 살아난다.
물론 통증이 곧바로 찾아온다.
숨을 쉴 수 없을 정도로 혹독한 통증이 찾아오고, 몸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게 된다.
아걸은 통증이 일어나기 전에 알아챈다.
사실 싸움 중에는 칼을 맞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위험하다는 느낌도 없다. 반드시 죽이겠다는 의지도 싸움 전에나 있는 것이지, 싸움 중에는 머리가 텅 빈다.
아무 느낌도 없을 때, 어쩌면 ‘됐다!’하고 생각했을 때 일격이 가해진다.
“하악……!”
아걸은 한숨을 토해 냈다.
배에서 창자가 끊어지는 듯한 통증이 일어났다.
아걸은 그제야 배를 쳐다봤다.
배에서 피가 뭉클뭉클 쏟아지고 있다. 쩍 벌어진 살이 보인다. 살을 비집고 계곡물 쏟아지듯 피가 흘러나온다.
아걸은 허도기를 봤다.
허도기는 검을 뽑지도 않았다. 검이 여전히 검집에 들어가 있다. 허도기는 여전히 엄지와 검지, 두 손가락으로 검을 잡고 있다.
‘빠르다……!’
아걸은 모골이 쭈뼛 곤두설 정도로 놀랐다.
그동안 빠른 칼을 정말 많이 보아 왔다. 워낙 많은 강자와 싸웠기 때문에 면역도 되었다. 이제는 웬만큼 빠른 칼은 그저 ‘빠르구나!’ 하고 담담히 넘겨 버린다.
빠른 칼에 당하는 것도 적응이 되어 버렸다.
상대방이 상상 이상으로 빨라서 몸이 찢겨도 큰 숨 한 번 들이쉬고 다시 칼을 잡는다.
하지만 허도기 검은 경악을 금치 못한다.
이게 인간의 검인가? 언제 뽑았다가 다시 넣었지?
검을 뽑자마자 바로 베고 다시 넣었다는 것인데, 왜 어떤 동작도 보지 못한 거지?
“훗!”
아걸은 웃었다. 그리고 숨을 크게 들이마시며 반철도를 빙글빙글 휘둘렀다. 그리고 다시 꽉! 고쳐 잡았다.
스읏!
아걸은 반철도를 머리 위로 들어 올렸다.
다시 공격 준비를 한다.
허도기는 죽은 듯이 담담하다. 싸움을 하는 사람 같지가 않다. 나무 같다고 할까? 약간 움직임이 있는 것 같은데, 전체적인 움직임은 없다.
조용히 기다린다. 움직임이 일어나고, 가까이 다가올 때까지 기다린다. 그러다가 즉시 들이친다.
엄청난 발검술이다.
발검술 자체가 하나의 무공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직접 보여 주고 있다.
허도기의 검초에는 조명십해가 모두 녹아 있다.
삼륜축첩공, 은장재계이살, 잠기일력타(潛氣一力打) 등등 소축십검이 펼쳤던 검법 정해가 일시에 터진다.
허도기의 전신 진기 일체가 검에 집중되었다.
아걸은 조금씩 조금씩 앞으로 접근했다. 하지만 곧 물러섰다. 뚫고 들어갈 틈이 없다.
이번에는 옆으로 움직여 본다.
어떻게든 칼이 들어갈 길을 만들어야 한다. 굳건하게 버티고 있는 허도기를 흔들어야 한다.
하지만 허도기는 산전수전 다 겪은 무인이다. 아걸의 의도를 모를 리 없고, 하찮은 움직임에 흔들리지도 않는다. 오히려 허도기가 아걸을 흔들고 있다.
꼼짝도 하지 않으니 마음이 불안해진다.
허도기가 아걸을 흔들고 있다는 증거다. 싸움할 때 꼭 움직여야만 상대를 흔들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어떤 때는 허도기처럼 꼼짝하지 않고도 흔들 수 있다.
‘후우!’
아걸 역시 허도기의 뜻을 읽는다. 그래서 오히려 반대로 차분해진다. 조급해지라는 주문을 거절한다.
츠으읏!
마음이 명경지수처럼 맑아졌다.
어차피 이 자리에는 자신과 허도기 단 둘밖에 없다.
급할 이유가 전혀 없다. 어차피 둘 중 한 명은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괜히 바쁘게 서두르다가 한 방 맞았다.
지금과 같은 상태에서는 방금 한 방 맞은 게 치명적인 장애가 될 수 있다.
아픔, 통증은 정신 집중을 방해한다.
의지는 집중해야 한다면서 신경을 바짝 곤두세우지만, 이미 육신이 무너지고 있다.
피가 다량으로 흘러내리면 많은 현상이 일어난다. 현기증이 치민다. 몸이 중심을 잡지 못한다. 검이 흔들리고, 눈이 흐려지고, 자연스럽게 행동도 둔해진다.
싸우기도 전에 무너진다.
시간이 흐를수록 아걸 상황이 나빠진다.
아니다. 이런 마음도 허도기가 원하는 것이다. 마음이 급해지도록 유도하고 있지 않나.
스읏!
아걸은 차분하게 앞으로 발을 내디뎠다.
그러자 허도기가 자세를 풀고 벌떡 일어섰다.
허도기는 옆으로 두어 걸음 옮긴 후, 다시 다리를 낮게 구부리면서 장검을 잡았다.
위치를 바꿨다.
무엇인가 검을 쓰기가 불편했거나, 아걸의 공격 순간을 흐트러트릴 목적이다.
스읏!
아걸도 옆으로 움직이면서 경직된 근육을 풀었다. 그리고 다시 공격 자세를 잡는다.
아걸은 대치 상태가 길어지고 있는데도 안으로 파고들지 못했다.
허도기를 노려보면서 빙빙 맴돌기만 한다. 달려들려고 꿈지럭거렸다가 다시 물러선다.
공격할 때 몸이 긴장되어 있으면 안 된다. 그러니 제일 먼저 긴장부터 풀어라.
긴장이 풀려야 검이 자유롭게 움직인다.
몸이 딱딱하게 굳어 있으면 검도 딱딱하게 흐른다. 속도도 높고 파괴력도 약하다. 몸이 물처럼 바람처럼 자유로울 때 검도 최고 속도로 펼쳐진다.
무공입문자들에게 해 주는 말이다.
허도기는 긴장하지 않는다. 아걸은 무섭게 긴장한다.
허도기가 자세를 풀고 벌떡 일어섰다. 이번에도 옆으로 옮겨서 다시 자세를 잡나?
허도기가 아걸을 향해서 성큼성큼 걸어왔다.
아걸은 자신도 모르게 뒤로 물러섰다. 허도기를 뚫어지게 노려보면서, 기회를 엿보면서.
‘아!’
아걸은 순간적으로 탄식을 쏟아 냈다.
물러서는 와중에 와락 느껴지는 바가 있다.
이미 기세에 눌렸다. 이 싸움은 졌다.
그때다! 문이 덜컹 열리면서 한 사람이 들어섰다.
“공부!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방안으로 들어선 무인이 정중하게 포권지례를 취했다.
싸움이 방해를 받았다.
허도기가 부리는 수하 중에 싸움을 방해할 만큼 어수룩한 자는 없다. 그 정도로 무공이 낮은 자는 쓰지도 않는다. 그리고 지금 어떤 상황인지 모르는 자도 없다.
허도기의 인상이 와락 구겨졌다.
“네놈이……!”
허도기가 사나운 눈길로 무인을 쳐다봤다.
스릉!
무인이 검을 뽑았다.
“공부, 죄송합니다. 제가 죽고자 합니다. 미친놈이라고 생각하시고 가볍게 검 한 번 써 주시길.”
순간, 방안으로 십여 명이 쏟아져 들어왔다.
앞에 선 사람은 적위군장 사구정이다.
사구정과 적위군 무인들은 제삼자가 나타나자 즉각 공부를 호위하기 위해 나섰다.
허도기를 향해 검을 뽑은 무인은 황랑원(黄浪原)이다.
사구정 휘하에 있는 적위군이며, 공부 허도기에게 직접 무공을 배우고 있다.
그런데 왜 이 시점에서 공부를 향해 검을 겨눈 것일까?
허도기는 짚이는 게 있는 듯 눈을 가늘게 뜨고 물었다.
“너, 적랑대야?”
허도기가 물었다.
“그렇습니다.”
무인이 담담하게 말했다.
“풋! 그놈의 적랑대. 황랑원! 모래알처럼 흩어져 버린 적랑대보다 내 품이 좋지 않아?”
적위군은 이미 출세가 보장되어 있다.
개개인의 무공이 상당한 경지에 이르렀기 때문에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할 수 있다. 무림에 남아서 문파를 창건할 수도 있고, 군대로 돌아가서 장군이 될 수도 있다.
이제 부와 명예를 누리는 일만 남았다. 그런 길을 버리고 칼을 뽑았다.
“공부께서는 이해하지 못하시겠지만, 의리라는 게 있습니다.”
“의리가 쌀을 줘, 밥을 줘? 뭐, 받아먹은 게 있으니까 목숨도 내놓는 것이겠지만.”
“준 것은 이미 받았고, 제가 줄 것만 남았습니다.”
“목숨 거래야?”
“거래는 아닙니다. 적랑대를 위해서 죽을 생각도 없었습니다만, 상황을 보니 죽을 자리군요.”
“후후! 그래. 그럼 죽여야지.”
허도기가 아걸을 쳐다봤다.
“이놈이 널 살리자고 나선 것 같은데, 도주하고 싶으면 해. 원래 죽음 앞에서는 제일 먼저 무너지는 게 자존심이거든. 다 이해해. 하지만 정말 빨리 도주해야 해. 이놈은 오래 버티지 못하거든. 일 초? 반 초? 그 안에 튈 수 있으면 튀어 봐.”
슷!
허도기가 검을 잡았다.
허도기의 전신에서 진득한 살기가 흘러나왔다.
황랑원이 허도기를 막아서는 시간은 찰나에 불과하다. 아니, 황랑원은 허도기를 막지 못한다. 그저 베인다. 살고 싶으면 베이는 시간 동안 도주해야 한다.
만약. 아걸이 도주하지 않고 끝까지 버티면 황랑원은 개죽음을 당한 게 된다.
아걸은 아삼을 떠올렸다.
아삼은 오늘 같은 날이 있을 줄 알고 허도기 곁에 적랑대를 심어 두었다.
황랑원은 할배의 안배다.
‘할배, 끝까지 사람 비참하게 만드네. 내 이래서 시작하지 말자고 했지! 준비 안 됐다고!’
아걸은 반철도를 꽉 쥐었다.
허도기가 말했다.
“너희는 물러서. 이놈이 목숨으로 막겠다니 어떻게 막는지 보지. 아니, 이놈 죽음을 똑똑히 봐둬. 이렇게만 죽을 수 있다면 내 사람으로서 손색이 없다. 네놈, 날 위해서 이렇게 죽어 줬으면 참 고마웠을 텐데.”
“공부님도 지금과 똑같은 마음으로 모셨습니다.”
“알아. 네놈을 오랫동안 보아 왔는데 모를까. 하지만 배신은 배신이지. 배신한 놈한테 충성 어쩌고 하는 말은 듣고 싶지 않아. 그냥 죽어.”
스읏!
황랑원이 자세를 낮추고 검을 겨눴다.
조명천검 직사광류 기수식이다.
슷! 쒜에에엑!
허도기가 신형을 쏘아 냈다. 허도기가 노리는 목표는 황랑원이 아니다. 아걸이다.
허도기가 아걸이 서 있는 쪽을 향해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자신은 아걸을 죽일 테니, 너는 네 목적을 달성해 보라는 주문이다.
쒜에에엑! 쒜엑! 쒜에엑!
허도기가 신형을 쏘아 냄과 동시에 방 안 공기가 출렁거렸다.
허도기를 향해 단검 십여 자루가 쏘아졌다. 단검은 허도기가 이렇게 움직일 줄 알았다는 듯, 정확하게 허도기 앞으로 날아갔다.
허도기가 신형은 우뚝 멈췄다.
쎄에에에엑!
단검이 간발의 차이로 앞가슴을 놓쳤다.
그가 멈췄는데 상반신에 요동이 없다. 신형을 쏘아 내기 전에 멈출 것을 예상했다.
운이 좋거나 반응이 빨라서 단검을 흘려보낸 게 아니다. 정확한 시간에, 딱 알맞은 위치에서 멈췄다. 단검이 앞가슴을 스치고 지나가도록 만들었다.
그 정도만 피해도 충분하다는 거다.
쉿!
허도기는 단검이 지나가자마자 다시 움직였다. 역시 목표는 아걸이다.
그때, 황랑원이 허도기 앞을 막아섰다. 직사광류를 펼쳐서 화살처럼 내리꽂혔다.
쉿! 착! 퍽!
바람 가르는 소리, 검이 검집으로 들어가는 소리, 그리고 살이 베이는 파육음이 동시에 울렸다.
예의 발검술이 터졌다.
황랑원의 머리가 몸에서 분리되어 둥실 떠올랐다.
허도기는 발을 들어서 분수처럼 피를 뿜어내고 있는 황랑원의 가슴을 차 냈다.
피 분수 너머로 아걸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