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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홀도-177화 (177/600)

#177화. 第三十六章 제일쾌검(第一快劍) (2)

서리가헌과 서리형개가 비겁자라고 생각했다. 일홀문도가 아니라고 여겼다.

이제는 그들 심정이 이해된다.

저 검에는 맞설 수 없다!

허도기는 물체를 베지 않는다. 찰나를 벤다. 시간을 가른다.

저 검에 맞설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일홀도는 물론이고 어떤 무공도 베인다.

‘……멍청한!’

아걸은 스스로 일갈했다.

허도기의 검을 막은 사람이 있다. 그것도 두 명이나 있다.

전임 성검문주, 아버지가 막았다. 삼십육 대 일홀문주, 사부가 찍어 눌렀다.

두 사람이 살아 있을 때, 허도기는 숨죽였다. 야욕을 조금도 드러내지 못했다. 성검문조차도 넘보지 못했다. 오직 소축에 머무는 것으로 만족했다.

허도기는 형이 죽을 때까지 일어서지 못했다.

사형들이 사부에게 삼인독을 먹이고 독효가 퍼진 후에야 비로소 사부 앞에 섰다.

허도기의 검은 절대 검처럼 보인다. 하지만 절대 검은 없다. 존재하지 않는다. 허도기의 검에도 분명히 약점이 존재한다. 찾지 못할 뿐이다.

‘절대’라는 말을 누리고 살던 서른여섯 명의 일홀문주도 죽임을 당했다. 병사한 분도 있지만, 거의 타살당했다. 암살당하거나, 결전 중에 죽었다.

더욱 웃긴 것은 일홀문주를 죽인 사람들조차 이름이 전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일홀도를 꺾은 자들은 얼마나 강할까.

하지만 그들 역시 ‘절대’가 아니다. 그들 또한 누군가에게 암살당하거나 결전을 벌이다가 죽었다. 그리고 그들이 사용하던 무공조차 실전되었다.

허도기 검은 무적이 아니다.

맞설 수 있다. 일홀문도가 아닌가. 내 칼 위에 다른 칼이 있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내 칼보다 강한 칼이라고 인정한 순간, 일홀도는 사라진다.

아걸은 반철도를 꽉 움켜잡았다.

그때, 무인이 나타났다.

무인은 어차피 죽는다. 이래도 죽고 저래도 죽는다. 사는 방법은 나타나지 않는 거였다. 나타난 이상은 죽는다. 허도기에게 죽지 않아도 사구정이나 적위군에게 죽는다.

허도기는 배신자를 절대로 살려 주지 않는다.

황랑원의 죽음을 애도할 시간이 없다. 할배가 왜 이런 짓을 했는지 책망할 시간도 없다. 지금은 황랑원도 자신도 죽음밖에 남은 게 없다.

한 사람이 목숨을 걸고 막아섰지만, 아주 크게 잘못 생각한 것이 있다. 일홀문은 물러서지 않는다. 꺾고, 꺾고, 꺾고…… 계속 꺾으면서 나아가는 칼이 일홀도다.

황랑원은 개죽음을 당했다.

아걸은 황랑원이나 허도기가 생각한 것처럼 도주하지 않았다. 물러설 생각이 처음부터 없었다.

허도기가 단검을 피한 순간, 황랑원이 허도기 앞을 가로막은 찰나, 아걸도 일홀도를 일으켰다.

온 정신을 반철도에 집중시켰다. 온갖 감정을 밀어냈다. 특히 죽음에 대한 공포, 허도기에 대한 분노, 원한 등등을 밀어냈다. 그러자 아걸은 사라지고 반철도만 남았다.

쓔웃!

아걸이 허도기를 향해 달려들었다.

황랑원의 머리가 잘려서 허공에 떠올랐다. 황랑원이 발길에 차여 옆으로 튕겨 나갔다.

반철도가 핏물로 이루어진 무지개를 갈랐다. 순간,

까앙!

반철도와 검이 부딪쳤다. 그리고 강한 충격이 손아귀를 타고 어깨로, 뇌로 전달되었다.

“큭!”

아걸은 신음을 쏟아 냈다.

아걸은 거센 충격을 받았다. 영원히 부서지지 않는 철벽을 후려친 것처럼 손아귀가 얼얼했다. 반철도가 반탄력에 떠밀려 손에서 튕겨 나가는 줄 알았다.

허도기의 검은 충돌에서 멈추지 않았다.

번쩍!

옆구리 쪽에서 섬광이 터졌다.

검기가 느껴지지 않는다. 검풍도 들리지 않는다. 검에서 새어 나온 검광만 번뜩였다.

퍼억! 퍼어억!

날 선 검이 옆구리를 두 번이나 타격했다.

“크으으윽!”

아걸은 정신없이 밀려났다. 중심을 잡으려고 두 손을 허우적거렸지만, 중심이 잡히지 않았다.

누가 봐도 싸움은 끝났다.

쿵!

아걸은 벽에 부딪힌 후에야 몸을 추슬렀다.

“제길! 되게 아프네. 좋아. 다시!”

아걸이 반철도를 허공에 휙 휘둘렀다.

아걸은 이미 싸울 수 있는 상태가 아니다. 두 다리는 술 취한 듯 휘청거리고, 반철도를 들고 있는 손은 밑으로 툭툭 떨어진다. 칼을 들어 올리지만, 계속 떨어진다.

“그렇지. 그래야 용골이지? 한데 아무리 용골이라고 해도 내 검을 세 번이나 맞고도 죽지 않는 건 너무하잖아. 아니다. 내가 많이 녹슨 건가?”

허도기가 검을 잡았다.

이제 아걸은 누구라도 벨 수 있다. 적위군장이 아니라 적위군 무인 중 누구라도 죽일 수 있다.

그런데도 허도기가 검을 잡았다.

허도기는 용골의 강인함을 알고 있다. 그래서 아걸이 용골이라는 사실을 안 순간부터 살려 보낼 생각이 없었다. 적으로 나타난 용골은 반드시 죽여야 발 뻗고 잠잔다.

그때, 천장 위에서 작은 물체가 뚝 떨어져 내렸다.

펑!

연무탄(煙霧炭)이 바닥에 떨어지면서 검은 연무를 확! 피웠다.

검은 연기 속에서는 속을 긁는 매캐한 냄새도 섞여 나왔다. 매우 고약한 냄새다.

군대에서 사용하는 흑사탄(黑死炭)이라는 것이다.

연기는 시야를 가려 준다. 그뿐만 아니라 신경을 마비시키고 죽음에까지 이르게 만드는 독 가루도 섞여 있다.

“후웁!”

“훕!”

적위군은 즉시 흑사탄을 알아보고 숨을 막았다.

“어딜!”

호통 소리가 울렸다. 동시에 새파란 검광이 흑사탄을 반으로 쩍 갈랐다.

허도기는 아걸을 노렸다.

절대로 놓칠 수 없다. 이번에 반드시 죽여야 한다. 반드시 후환이 될 놈이다.

그런데 어느새 허공에서 밧줄이 내려와 있었다.

앞을 둥글게 말은 포승줄은 단숨에 아걸을 휘리릭 휘감았다. 그리고 허공으로 쭉 끌어 올렸다.

올가미를 다루는 솜씨가 무척 뛰어나다.

아걸이 힘을 못 쓰는 상태라지만, 순순히 묶일 사람이 아닌데, 힘없이 올가미에 묶였다.

그만큼 허도기가 안겨 준 타격이 컸다.

퍼억!

허도기는 아걸을 쳤다. 네 번째 검을 찔러 넣었다. 동시에 절대 죽을 수밖에 없게끔 검을 확 비틀었다.

뿌아악!

검이 살을 찢으면서 나왔다.

그 순간, 아걸은 이미 지붕 위로 빨려 올라갔다.

휘이익!

아걸을 지붕 위로 끌어 올린 자는 지체 없이 신형을 날려 사라졌다.

“쫓아!”

사구정이 벼락같이 소리를 질렀다.

하필이면 지붕 위를 지키던 적위군이 황랑원 때문에 모두 내려와 있는 상태였다.

쉬이잇! 쉬잇!

적위군이 분분히 지붕 위로 솟구쳐 올라갔다.

지붕 위에서 아걸을 낚아챈 자는 이미 삼십여 장 앞을 치닫는 중이었다.

“집안에 쥐새끼가 많았군.”

허도기가 중얼거렸다.

이번에 아걸을 낚아채 간 자도 적위군이다. 아걸을 낚아챌 때 잠깐 봤는데, 진래군(陳來君)인 것 같다.

“죄송합니다.”

사구정이 고개를 숙였다.

“이렇게 쥐새끼가 많았는데. 왜 모르고 있었을까? 내가 멍청한 거야, 적랑대가 뛰어난 거야?”

허도기가 사구정을 쳐다봤다.

“죄송합니다.”

사구정은 머리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다. 적위군은 사구정과 함께 전장을 누빈 전우들이다. 황랑원이나 진래군이나 모두 사구정에게는 무슨 일이든 맡길 수 있는 수족이었다.

그들이 배반할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적랑대 뿌리가 너무 깊어. 캐내야겠어.”

허도기가 눈빛을 번쩍 빛냈다.

* * *

도주는 성공하지 못한다.

아걸이 너무 많은 피를 쏟고 있다. 몸에서 흘러내린 피가 ‘우리 이리로 갔다’라고 말을 해 주고 있다.

혈흔이 남지 않게 하려면 지혈을 해야 하는데, 적위군은 그만한 시간을 주지 않는다. 삼십 장이라는 거리는 먼 거리가 아니다. 금방 따라잡힌다.

쉬이이잇! 쉬이잇!

진래군은 최선을 다해서 신형을 쏘아 냈다.

사실, 오늘 이런 일이 벌어질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죽은 황랑원도 마찬가지다.

황랑원이나 자신이나 아걸을 발견하고 앞에 설 때만 해도 죽일 생각이었지 구할 생각은 없었다. 지붕 위에서 아걸을 포위한 무인 중에 두 사람도 있었다.

그때, 아걸을 겨눈 검은 살검이었다.

침입자이니 가차 없이 죽이겠다는 살의가 가득했다.

아걸이 방으로 들어가고. 공부와 만날 때도 살의가 변하지는 않았다. 아걸은 여전히 죽일 놈이었다.

그 마음을 공부가 직접 바꿔 놨다.

- 용골이군.

- 후일, 용골이 위기에 처하면 한 번만 구해 줘. 아마도 죽는 날까지 용골을 만날 기회는 거의 없을 거야. 어쩌면 내 말은 공연한 빈말이 될지도 모르겠군. 평생 용골만 기다릴 수는 없으니 마흔까지만 하지. 마흔 살이 될 때까지 용골이 위기에 처하지 않으면 우리 거래는 끝난 것으로.

아걸이 위기에 처했을 때, 진래군은 자신이 나설 생각이었다. 그런데 황랑원이 한발 빨랐다.

진래군은 황랑원도 적랑대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

반 시진도 안 되는 짧은 시간 동안에 인생이 완전히 바뀌었다. 반 시진 전만 해도 동료였던 자에게 쫓기고 있다. 서로 만나면 검을 겨눠야 한다.

‘약속…… 지켰어.’

진래군은 땀이 비처럼 쏟아지는 것도 잊어버린 채 전력을 다해서 질주했다.

* * *

턱!

아걸이 거칠게 던져졌다.

작은 배다. 너무 낡아서 강심까지나 나갈 수 있을까? 조금만 움직여도 물이 새어 들어올 것 같다.

“내 역할은 여기까지다. 여기서부터는 당신이 알아서 살아가. 살지 못해도 어쩔 수 없다.”

진래군이 싸늘하게 말했다.

아걸이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뱃전에 등을 기댔다.

허도기에게 당한 상태가 상당히 심하다. 몸을 움직이지 못하겠다. 눈도 자꾸 감긴다. 의식을 잡으려고 애를 쓰지만, 고개가 밑으로 툭툭 떨어진다.

“…… 남으면 당신도 죽잖아. 같이 가자.”

“공부를 배신할 생각이 없었다. 용골을 구해 주는 일이 공부를 배신하는 일이라면…….”

“용골이 뭔데?”

“……!”

진래군이 화난 표정으로 아걸을 쳐다봤다. 하지만 곧 고개를 돌려서 어둠에 묻힌 길을 쳐다봤다.

피부로 선연히 느껴진다. 동료들이 왔다.

진래군이 빠르게 말했다.

“내가 막아 줄 수 있는 시간은 차 한잔 마실 시간밖에 안 돼. 그 안에 피하면 살고, 피하지 못하면 죽는다. 약속은 지켰으니…… 개인적인 바람이라면 네가 잡히길 바란다. 아니, 내 친구들이라면 틀림없이 널 잡을 거야.”

진래군이 발을 들어서 배에 댔다. 그리고 힘껏 발길질했다.

쭈우우욱!

배가 강심으로 밀려갔다.

진래군은 낡은 배를 밀어내자마자 재빨리 움직여서 옆에 있는 배들을 침몰시켰다.

아걸이 잡히기를 바라지만 약속을 지키는 데도 최선을 다한다.

* * *

배가 강 한복판으로 흘러갔다.

“음!”

아걸은 신음을 흘리면서 뱃전에 벌렁 드러누웠다.

노를 저을 힘이 없다. 배에 구멍 두 개가 뚫렸다. 가슴이 깊게 찢어졌고, 마지막 검은 등에서부터 옆구리까지 맹수가 뜯어내듯 난폭하게 찢어 냈다.

어떻게 살 수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상처가 심해 보인다. 하지만 치명적인 상처는 아니다. 치명적인 상처가 아니다? 이렇게 심한데? 맞다. 아니다.

아걸의 일홀도는 공방(攻防) 양쪽 부분에서 발전하고 있다.

방어 쪽에서는 진동이 주를 이룬다.

병기가 치명적인 요혈을 공격하는 순간, 요혈에서 진동을 일으킨다. 병기가 살을 뚫을 때, 진동이 병기가 묻은 상대방의 진기에 달라붙는다. 그리고 슬쩍 옆으로 밀어낸다.

간신히 죽음에 이르는 살수만은 피하는 것이다.

하지만 중상인 것만은 맞다. 치료를 제대로 하지 않으면 죽는 것도 맞다.

“후욱!”

아걸은 정신이 아득해져서 눈을 감았다.

의식을 굳건히 하려고 했는데, 눈이 저절로 감겼다. 그리고 뱃전에 풀썩 쓰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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