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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홀도-179화 (179/600)

#179화. 第三十六章 제일쾌검(第一快劍) (4)

아걸은 빠르게 회복했다.

허도기의 검은 매우 빨랐다. 서리형개나 소축십검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강하고 빨랐다.

하지만 몸에 가하는 타격은 다른 칼이나 똑같다.

서리형개에게 일격을 당했을 때나, 소축십검에게 잠기일력타를 맞았을 때나, 그리고 허도기에게 사 검을 맞은 지금까지 모든 상처가 목숨을 위협한다.

칼은 각기 다르지만, 몸이 받아들이는 충격은 어느 것 하나 약하다고 할 수 없다.

아걸은 살아난 게 용하다고 했다.

회복력은 더 용하다. 하루가 다르게 상처가 아문다.

“맞는 것도 이골이 났나 보네.”

할배가 중얼거렸다.

“남 말 하시네. 할배도 나만큼 당했으면서 뭘 그래? 괜찮은 칼에 맞은 것도 아니고 동박? 그런 칼에 맞아서는…… 어휴! 적랑대 대주님. 창피하지도 않으시나?”

“요놈 말하는 거 봐라? 죽을 놈 기껏 살려 놨더니.”

“나는 그래도 천하제일인에게 당했다고. 당할 만하잖아? 허도기 정도면 패배한 것도 자랑거리야. 칼을 맞댔다는 것만으로도 존경의 눈으로 쳐다볼걸?”

“존경은 염병! 네놈이 허도기 검만 맞았냐? 이놈 저놈한테 숱하게 깨지고 다녔잖아!”

“그걸 알아?”

“내가 왜 몰라! 인마! 내가 앉아서 삼천리다.”

“그러세요?”

아걸이 비꼬았다.

“주둥아리 나불대는 거 보니까 낫긴 낫나 보네.”

할배가 아걸의 상처에 녹선마황의 즙을 확! 뿌렸다.

즙을 뿌려도 이제는 아프지 않다. 상처가 그만큼 많이 아물었다는 뜻이다.

“칼을 이렇게 맞고 다니다가는 제명에 못 죽겠지?”

“괜찮아. 계속 맞아. 네놈은 어차피 제명에 죽기는 틀린 놈이니까, 계속 맞아도 돼.”

“아냐. 이젠 그만 맞아야겠어. 오장육부가 제발 좀 살려 달라고 아우성이야.”

“괜찮다니까 그러네. 대충 낫거든 어서 일어나서 칼 맞으러 가. 이번에는 여기, 이마에 한 대 맞아라. 무인이면 자고로 얼굴에 검상 하나쯤은 새겨 놓고 다녀야지.”

“하! 못 본 사이에 악담이 더 늘었네.”

“멍청한 놈 같으니라고. 그렇게 조심하라고 해도 칼이나 처먹고 다니고. 내 너 이 꼴이 날 줄 알았어. 아주 배부르겠다, 이놈아! 칼 많이 처먹어서.”

할배가 속상해서 말했다.

“취화원에 연락 좀 해 주지? 걱정하고 있을 텐데.”

“이놈 정말 나았나 보네. 계집 생각까지 하는 걸 보니. 이놈아! 벌써 했어!”

“취화원에? 거기 찾기가 쉽지 않을 텐데?”

“크크큭! 이놈아. 살수에게는 냄새라는 게 있는 거야. 어디로 숨었든 간에 냄새는 숨길 수 없어. 아무리 숨겨도 피 냄새가 풀풀 풍기거든. 네놈, 여기 있다고 말해 놨다.”

“고마워.”

“웃기는 놈이네. 제 목숨 살려 놓을 때는 고맙다는 말 벙끗도 안 하더니, 제 계집에게 연락해 주니까 고맙다고 하네. 이래서 사내새끼는 키워 봤자 쓸모없다는 거야.”

“내가 애완동물이야? 키우게.”

“그러나저러나 취화원도 많이 컸어. 어떻게 정동을 깨부수냐? 정동이 떨어져 나갈 줄은 꿈에도 몰랐네.”

“후후…….”

“웃을 일이 아니야, 인마! 이번 일로 서리형개가 기반을 잃었는데 가만히 있겠냐? 네놈도 난리 났지만, 저쪽도 난리 났어. 단단히 각오해야 할 거야.”

“아!”

아걸은 번쩍 정신이 들었다.

잠시 그쪽 일을 잊어버리고 있었다.

정동이 무너졌으니 서리형개가 이를 갈 것이 뻔하다. 귀적칠흔이 왜 허도기에게 갔느냐 하는 문제는 나중 문제다. 당장 급한 것은 취화원이 서리형개의 목표가 되었다는 것이다.

“할배, 나 좀 가 봐야겠어.”

“그 몸으로 어딜 가, 이놈아! 그리고…… 네가 지금 아무 데나 나돌아 다닐 수 있는 몸인 줄 알아? 네놈이 벌집을 쑤셔 놓는 바람에 모두 너 잡겠다고 난리야!”

아걸은 문득 적랑대도 다쳤을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여기는 괜찮나? 허도기가 적랑대로 노릴 텐데.”

“걱정하지 마라. 이놈아. 우린 이런 데 이골이 나서 낌새가 이상해지자마자 바로 숨었다.”

“도망 다니는 삶도 별로 좋지는 않네.”

“네놈 눈에는 우리가 숨어 사는 것 같냐?”

“아니야?”

“이놈아, 세상일이라는 게 그렇게 간단하지 않아. 쥐는 고양이만 나타나면 도망가지? 그럼 세상은 고양이 세상인가? 쥐 세상이기도 한 거야. 고양이가 나타난 곳을 제외한 모든 지역이 쥐 세상이다, 이 말이야. 고양이가 나타났을 때 슬쩍 피해 주기만 하면 돼. 악착같이 고양이와 싸워서 이기려고 할 필요가 없어. 혼자 왕 노릇 하라고 내버려 두는 거지.”

“하하!”

아걸은 웃었다.

할배가 말하는 쥐 세상은 적랑대 세상이다.

일홀도 세상은 다르다. 고양이가 덤비면 벤다. 호랑이가 덤벼도 벤다. 무조건 뚫고 나간다.

할배가 말했다.

“적랑대는 네놈보다 쉽게 살아. 네놈 눈에는 안쓰러워 보여도 할 것 다 하면서 사니까 걱정할 필요 없다. 사실, 이것도 막상 해 보면 되게 쉬워.”

할배가 피식 웃었다.

* * *

사내는 차기 적랑대 대주다.

이름은 임지정(林祉呈).

별호는 없다. 무림에서 병기를 들어본 적이 전혀 없다. 또한, 적랑대는 공식적으로 멸문한 문파다. 적랑대주 임지정은 별호를 얻은 기회조차 없었다.

하지만 사내는 적랑대를 움직인다.

대주 아삼이 적랑대에 신경을 쓰지 못할 때 실질적으로 적랑대를 이끌기도 했다.

아삼은 웬만해서는 사내를 직접 움직이지 않는다.

차기 대주를 움직여서 잘못되기라도 하면 자칫 적랑대 전체에 아주 큰 손해를 끼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번 경우는 어쩔 수 없었다.

아삼은 아걸이 허도기에게 가고 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바로 일이 잘못되었다고 판단했다.

‘아직은 안 돼!’

아삼의 판단으로는 백전백패다.

아걸이 강해진 것은 안다. 서리가헌의 팔을 잘라 낸 사실도 보고받았다.

참 대견했다. 풋내를 풀풀 풍겼는데, 어느새 서리가헌을 밟을 정도로 성장했나.

처음 반철도를 손에 쥐여줄 때만 해도 불안했다. 서리가헌이나 서리형개는 상대할 엄두도 내지 못했고, 기껏 동박과 싸우는 게 고작이었다.

아걸은 얼마 되지 않는 짧은 기간에 급성장했다.

그리고 허도기에게 간다?

‘이건 아니야!’

아삼은 즉시 임지정을 움직였다.

“허도기 곁에 밀자(密者) 둘이 있다. 그들이 아걸을 구해서 노수(澇水)로 올 거야. 노수에서 기다렸다가 아걸을 빼내 와라.”

굉장히 위험한 명령이다.

적위군 중 물에 능한 자가 있으면 당장 쫓아왔을 것이다. 자칫했으면 임지정이 위험할 뻔했다.

그런 일을 맡겼다.

아걸을 어느 정도나 생각하는지 알 수 있다.

아걸은 아삼에게 친아들이자 친손자다. 제자이며, 벗이다.

아삼은 임지정을 불렀다.

“날씨 좋네. 수고했어. 자네는 인제 그만 돌아가.”

“네.”

“참! 이거.”

아삼이 품에서 철패를 꺼내 임지정에게 건네주었다.

“대주님, 이건……! 받을 수 없습니다.”

임지정이 한 발 뒤로 물러섰다.

“받아. 저놈이 왔으니 나는 이제 적랑대에서 손을 떼는 게 맞아. 앞으로는 네가 이끌도록 해.”

아삼이 철패를 내밀었다. 그러자 임지정이 뒤로 두 걸음이나 물러섰다. 한사코 받지 않으려고 하다.

“저놈 목숨이 파리 목숨이야. 저놈하고 붙어 다니면 같이 파리 목숨이 돼. 언제 죽을지 모르는 몸이라 이런 물건은 귀찮기만 해. 무겁기도 하고.”

“대주님을 지켜 드리겠습니다. 그러니 이건 받을 수 없습니다.”

“내 마음 편해지자고 하는 일이니까, 받아.”

아삼은 억지로 사내 손에 철패를 쥐여 주었다.

“이 늙은이하고 안면을 생각한다면 가끔 무림 정보나 내줘.”

“…… 알겠습니다. 최선을 다해서 보필하겠습니다.”

임지정이 머리를 숙였다.

“그럴 거 없다니까.”

아삼이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이제 이 늙은이는 잊어버리고 적랑대 갈 길을 가. 저놈이 어떤 놈도 해내지 못한 일을 상당히 해낼 거야. 적랑대도 숨통이 트이겠지. 그 틈에 어떻게 일어설 발판을 마련해 봐.”

“꼭 일어서겠습니다.”

아삼이 빙긋 웃었다.

아삼의 표정은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듯 무척 홀가분해 보였다.

* * *

아걸은 감각망기술을 습관처럼 펼쳤다.

눈만 감으면 검광이 번쩍 빛난다. 자신을 향해 검이 쏘아진다. 몸을 꿰뚫는다.

쾌검이 주는 함정이다.

쾌감에 당한 사람은 좀처럼 그 검을 잊지 못한다.

그 검은 실제보다 빨라진다. 점점 더 빨라진다. 생각 속에서 빠름을 먹고 자란다. 나중에는 손쓸 사이도 없을 만큼 빨라진다. 검이 번쩍이면 죽는다.

이런 생각을 자주 하다 보면 어떤 방법을 쓰더라도 이길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이것이 바로 쾌검의 함정이다.

쾌검의 함정에 빠지지 않는 가장 좋은 방법은 말할 필요도 없이 쾌검에 당하지 않는 것이다. 만약 당했다면 빨리 잊어야 한다. 전혀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나중에는 생각해야 하겠지만, 상처가 완전히 회복되고 자신 있게 칼을 잡을 때까지는 생각하면 안 된다.

다행히도 아걸에게는 좋은 무기가 있다.

감각망기술을 일으킨다. 모든 감각을 잃어버린다. 생각도 일으키지 않는다.

감각망기술이 이루어졌으면 이제 시각을 밝힌다. 다른 감각은 모두 죽이고 시각만 키운다. 눈이 맑아진다. 다른 감각에 소용되는 힘까지 시각에 모인다.

몰안이 밝은 등불이 되어서 주위를 밝힌다.

아걸은 천장을 쳐다봤다.

작은 점 하나를 봤다. 작은 점이 점점 커진다. 점점 더, 점점 더, 점점 더 커진다.

깨알만 하던 점이 사람 얼굴만 하게 커진다.

아걸은 손으로 점을 찍었다.

슈웃! 퍽!

일홀도가 터졌다.

이 일홀도는 소축십검과 싸울 때 완성되었다. 잠기일력타를 당할 때, 자신은 일초무적도 탄궁도를 펼쳤다. 그때 펼친 탄궁도는 사대문주의 탄궁도가 아니라 자신의 일홀도다.

서리가헌과 싸울 때는 또 다른 일홀도를 사용했다. 여기서 한 단계 발전한 일홀도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허도기와 만나자 탄궁도가 펼쳐졌다.

더 강한 일홀도를 펼쳐야 하는데, 자신도 모르게 탄궁도가 쏟아져 나왔다.

이것이 자신에게는 가장 익숙한 일홀도다.

그렇다면 굳이 앞으로 나갈 필요가 없다. 탄궁도에서 승부점을 찾아내야 한다.

사대문주는 탄궁도만으로도 무적도객으로 군림했다.

그런데 자신은 왜 부족하다고 생각하나? 왜 선조의 무공을 버리고 새로운 도법을 찾나?

두 가지 오판이 있었다.

하나, 일홀문도는 무조건 자신만의 도법을 창안해야 한다는 문규에 너무 집착했다.

일홀문은 삼십육 대를 이어져 왔다. 서른여섯 가지의 일홀도법이 탄생했다. 칼 한 자루 휘두르는 게 도법인데, 그 방법이 무려 서른여섯 개다.

서른여섯 개의 도법은 제각각 자신이 천하제일이란다.

엄청난 모순이다.

또 한 가지의 오판은 아걸 스스로 만들어 냈다.

자신이 서른여섯 개의 일홀도를 알고 있는 것은 사부가 시연해 주었기 때문이다.

시전 방법은 모르고 외형만 습득했다.

칼을 쓰는 초식만 수련했다고 보는 편이 맞다. 그래서 머릿속에 들어 있는 일홀도를 믿지 못하는 것이다.

‘칼이 강한 게 아니야. 사람이 강한 거야.’

일홀도가 강한 게 아니다. 어떤 칼을 썼건 간에 칼을 쓴 도객이 강했다.

새로운 도법이면 어떻고, 선조의 도법이면 어떤가.

실제로 세상 모든 문파는 조사가 창안한 무공을 그대로 물려받아서 수련한다.

일홀문에서 일홀도를 만들라는 말은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적어도 선대보다는 강해져라.

현재에 안주하지 말고 계속 전진해라.

이 두 가지만 염두에 두면 일홀도가 아니라 조명천검을 사용해도 무방하다고 본다.

더욱이 자신이 펼친 탄궁도는 사대문주의 탄궁도와는 완전히 다르다.

사대문주는 진기를 바탕으로 탄궁도를 펼쳤다.

자신은 몰안에 중점을 둔다. 진기보다는 감각 상실에 우선을 두고 펼친다.

완전히 다른 도법이다.

모든 도법을 다 버린다. 또 모든 도법을 전부 사용한다.

처음 마음 그대로 감각을 초식으로 바꾸는 실전 도법, 일홀사도(一忽死刀)의 길을 간다.

허도기를 상대하려면 그 방법밖에 없다.

“이번에는 내가 졌다. 하지만 다음에 보면…… 조심해야 할걸.”

아걸은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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