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일홀도-180화 (180/600)

#180화. 第三十六章 제일쾌검(第一快劍) (5)

근래 들어 성검문은 많은 타격을 받았다.

무엇보다도 혈무대 비무에서 독안혈검 전가성이 명부판관에게 패배한 것이 치명적인 타격이다. 혈도비자에게 당한 것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타격이 크다.

전가성은 정당한 비무 끝에 죽었다.

온갖 암계를 동원하고, 사용할 수 있는 모든 병기를 사용하는 싸움과는 달리 비무는 오직 자신의 애병만 사용한다. 평소 갈고 닦은 무공으로 싸운다.

그런 싸움 끝에 졌다.

성검문 조명천검이 명부판관의 무공에 패했다.

실질적으로 소축십검 중 딱 절반인 다섯 명이 죽었는데, 그중에서도 전가성의 패배가 가장 아프다.

이제 무림은 성검문을 천하제일 문파로 생각하지 않는다.

아니, 아직도 천하제일 문파인 것은 맞다. 하지만 감히 넘볼 수 없는 문파라고까지는 생각하지 않는다. 노력하면 부술 수 있는 무공이라고 생각한다.

무적 문파 성검문의 위상이 많이 추락했다.

“이번 달 월직이 누구야?”

“월직? 월직 없어진 지 오래되지 않았나? 모두 폐관 수련 들어가고 남은 사람이 있어야지.”

“폐관을 끝냈다는 소리가 있어서.”

“폐관을 끝내도 남은 사람이 있어야 뭐 돌아가면서 하든가 하지. 이제 겨우 다섯 명 남았잖아. 그것도 한 명은 황궁에 있고. 네 명이면 월직 같은 것 정해 놓고 할 수 없을걸?”

“그럼 닥치는 대로 하나?”

“뭐가? 뭘 닥치는 대로 해?”

“비무 말이야. 비무가 들어오면 싸워야 할 거 아냐. 월직이 없으면 누가 싸워?”

“누가 도전이라도 했어?”

“회륜참사(廻輪斬死)가 도전했다는 말도 있고.”

“회륜참사가? 회륜참사는 아직 힘들지 않을까? 그가 아무리 광동 제일 고수라고 해도…… 힘들 것 같은데?”

“혈무대 비무는 목숨 걸고 하는 거니까. 자신 없는 사람이 제 목숨을 걸겠어?”

초도성 주민들은 수군거렸다.

“비무 날짜가 언젠데?”

“내일.”

“내일? 내일인데 왜 난 아무것도 몰랐지? 내일이면 벌써 비무장을 내걸어야 했잖아?”

“오늘 걸었어. 오늘 도전해 왔대.”

“오늘 도전해서 내일 싸우자고 했다고? 사전 연통도 없이? 하! 성검문을 완전 개무시했네.”

원래 혈무대 비무는 대략 보름 전에는 사전 약속을 잡는다.

성검문에 대한 예의다.

그런 예의조차 필요 없다는 사람은 당일 도전을 하기도 한다. 물론 그때는 비무가 아니라 결전이 될 가능성이 크다. 나도 죽일 테니, 너도 죽이라는 거다.

회륜참사가 그런 식인 것 같다.

“하! 내일 볼 만하겠네. 성검문 쪽에서는 누가 나온대?”

“아직 모르지. 그건 안 적혀 있으니까. 남은 소축십검 중 누군가 나오겠지. 뭐.”

* * *

회륜참사는 풍화륜(風火輪)의 달인이다.

풍화륜은 원형 고리에 아지랑이 모양의 날이 다섯 개 박혀 있다. 보통은 날을 세 개 박는데, 회륜참사는 다섯 개를 박은 대신 날의 크기를 줄였다.

한쪽에 손으로 쥘 수 있는 손잡이가 만들어져 있어서 치고, 베는 단병(短兵)으로도 사용한다. 또 원형륜(輪)이기 때문에 비륜(飛輪)으로도 쓴다.

풍화륜은 대체로 두 개, 한 쌍을 사용한다.

풍화륜은 매우 빠를 뿐만 아니라 예상에서 벗어난 공격법이 주를 이룬다.

회륜참사는 풍화륜으로 상대방의 병기를 낚아채서 빈손으로 만든 후, 천천히 죽이는 것으로 유명하다.

저벅! 저벅!

회륜참사가 혈무대를 향해 걸었다.

혈무대에는 이미 소축십검 중 목에 커다란 점이 있는 점박이 오진복이 올라와 있었다.

오진복은 혈무대에 의자를 놓고 앉아 있다.

검은 허벅지 위에 올려놨고, 두 손은 검 위에 나란히 얹혀 있다.

오진복이 조용히 기다린다.

회륜참사가 걸어오고 있지만 눈길도 주지 않는다. 보지도 듣지도 못하는 사람처럼, 조용히 검만 쳐다본다.

“오군이 변한 것 같지 않아?”

“폐관 수련을 했다더니 그래서 그런가? 사람이 왠지 삭막해진 것 같지?”

“회륜참사, 잘못 건드린 거 아냐? 요즘 성검문이 독기가 바싹 올랐는데.”

“내 생각에도 잘못 건드린 것 같아. 전가성이 죽었는지도 얼마 되지 않았는데 오죽 화나겠어? 이번에도 지는 것은 용납할 수 없을 거고. 요즘 같은 때는 건드리지 않는 게 좋은데.”

“그래도 회륜참사라고 하면 광동 무림에서는 최강자이니까. 그 정도면 뭐 도전할 만하지.”

“내 생각에는 회륜참사가 쉽지 않을 것 같은데.”

“쉽지는 않겠지. 뭐 회륜참사도 만만치 않을 것 같은데? 저자도 자기가 천하제일이라고 공공연히 떠들고 다니잖아? 양쪽 다 피 튀길 것 같아.”

사람들이 수군거렸다.

어느 싸움이 쉽겠나. 모든 싸움이 어렵다.

사람들은 회륜참사가 강하다는 걸 인정하면서도 승패는 성검문이 쥐었다고 생각한다.

아직도 사람들 마음속에는 성검문 무공이 천하제일이다.

특히 초도성에 사는 사람들은 더 그렇다.

초도성 사람들은 성검문이 지는 것을 싫어한다. 성검문에 도전하는 사람이 많을수록 좋지만, 그들 모두 혈무대에서 내려오지 못하기를 바란다.

저벅! 저벅!

회륜참사가 혈무대 위로 올라왔다.

“오군. 광동 무림 회륜참사입니다. 이렇게 한 수 겨루게 돼서 영광입니다.”

오진복은 회륜참사가 인사를 건네 와도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여전히 칼만 쳐다보고 있다.

화륜참사는 무시당했다는 생각이 강하게 일어났다. 분해서 얼굴까지 붉으락푸르락해졌다.

오군은 분명히 자신을 무시하고 있다.

비무대 위에 올라왔는데도 의자의 앉은 채 일어서지도 않고 있다. 인사에 응대하기는커녕 쳐다보지도 않는다.

“나! 회륜참사! 성검문에 도전하러 왔다고!”

회륜참사가 소리를 질렀다.

그래도 오군은 검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묵묵히 검집을 쳐다보면서 뭐라고 중얼거렸다.

그가 중얼거리는 소리는 너무 낮아서 다른 사람은 들을 수 없었다.

“사람이 좋게 말하니까! 야!”

회륜참사가 오군을 ‘야’라고 불렀다.

그러자 오군 오진복이 조용히 고개를 쳐들었다.

츠읏!

오진복의 눈에서 살기가 쏟아져 나온다. 귀신이 감정 없는 눈으로 쳐다볼 때처럼 삭막하다. 눈길만 봤는데도 등줄기에서 소름이 쫙 끼친다.

회륜참사는 깜짝 놀라서 풍화륜 두 개를 빼 들었다.

오진복은 아직도 의자에 앉아 있는데 회륜참사를 풍화륜을 움켜잡고 잔뜩 긴장한 채 노려보고 있다.

‘잘못 건드렸다!’

회륜참사의 얼굴에 난감한 표정이 떠올랐다.

오진복과 마주 선 순간, 이 자는 지금까지 상대했던 무인들과는 질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

성검문 무공이 천하제일이라는 말은 들었다. 하지만 인정하지 않았다. 성검문 무공이 아무리 강해도 풍화륜에는 버티지 못할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이런 강자도 있었구나!

오진복이 허벅지에 얹힌 검을 쓰다듬었다 그러면서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성검문이 무림에 잘못 전한 게 있다면, 이 검이 살인 흉기가 아니라고 말한 것이지. 인의(仁義)를 지키는 도구라고 말한 게 잘못된 거야. 이건 살인 병기야. 이게 사람을 겨눴을 때는 뭘 지키려는 게 아니야. 베려는 거지. 베기 위해서 검을 뽑는 거야. 인의를 지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걸 잘못 알려 줬어.”

오진복이 살기를 흘렸다. 분명히 살기다.

회륜참사는 급히 풍화륜을 휘둘렀다. 절초 풍화륜 이십팔 식을 전개했다.

상대가 마주쳤을 때, 위축감이 들 때가 있다.

특히 강호 초출에서 그런 경우가 많다. 검을 맞댄 사람이 실전 경험이 풍부한 사람이라면 자연히 위축된다. 싸워 보지도 않았는데, 상대가 강해 보인다.

지금이 그런 것 같다.

이럴 때는 가장 자신 있는 절초를 휘둘러서 자신감을 회복하는 게 급선무다.

쒜에에엑! 쒜에엑!

풍화륜이 전신을 휘감았다.

“됐어. 건방지게 주둥이나 긁어 대지 말고 일어나지! 이게 성검문이 무림을 대하는 태도야?”

회륜참사가 고함을 쳤다.

그러자 비로소 오진복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스릉!

그가 검을 뽑았다. 그리고 검집은 조용히 자신이 앉았던 의자 위에 올려놨다.

그가 검만 들고 돌아섰다.

회륜참사를 향해 걷는다. 한 걸음, 한 걸음 걸어온다. 묵직한 바위가 굴러온다. 강맹한 병기로 수십 번을 내리쳐도 부서지지 않을 것 같은 바위가 다가온다.

너무 거대해서 무조건 몸을 피해야만 할 것 같다.

‘치잇! 너 역시 살과 뼈로 이루어진 인간!’

회륜참사는 기운에 눌릴 수 없어서 다시 한번 풍화륜을 떨쳐 냈다.

쉬리리리링!

풍화륜이 허공을 찢는다. 허공 찢는 소리가 잠시 움츠러들었던 자신감을 끌어 올려 준다.

회륜참사는 즉시 오군을 향해 신형을 쏘아 냈다.

쒜에에에엑!

풍화륜이 머리를 가격했다.

물론 반격을 가해 올 것이다. 검이 왼쪽 머리와 어깨 사이로 들어온다. 그쪽만 허점을 열어 두었다.

스읏!

오군의 검이 왼쪽 머리 쪽으로 흘렀다.

예상대로! 검이 날아오면 즉시 풍화륜 날과 날 사이로 검날을 낚아챈다. 그리고 힘껏 비틀면 검신이 뎅겅 부러진다. 그때 단숨에 머리를 친다.

이 수는 수십 번에 걸친 비무에서 한 번도 실패하지 않았다. 그에게 회륜참사라는 별호를 안겨준 초식이기도 하다. 참사는 베어서 죽인다는 뜻이다. 풍화륜 날로 관자놀이를 베는 것이다.

쒜에에엑!

오군이 머리와 어깨 사이를 쳐왔다.

‘걸렸어!’

회륜참사는 즉시 풍화륜을 들어서 검신을 낚아챘다.

풍화륜 두 개로 오군의 검을 막는 척하면서 날과 날 사이에 검신을 끼워 넣었다. 동시에 오른손에 든 풍화륜을 슬쩍 움직여서 오군의 관자놀이를 베었다.

회륜참사의 움직임은 한순간에 이루어졌다.

순간, 회륜참사의 눈앞에서 검광이 번쩍 터졌다.

“컥!”

회륜참사는 자신도 모르게 격한 비명을 토해 냈다.

육신이 뜨거운 기름에 덴 듯 전신 감각이 일시에 꼿꼿이 곤두세워졌다. 그리고 바로 경직되었다. 두 다리가 의지와는 상관없이 파르르 떨렸다.

휘릭!

회륜참사는 오군이 검을 허공에 휘둘러서 검에 묻은 피를 털어 내는 모습을 봤다.

쿵!

회륜참사는 바닥에 떨어졌다.

그가 마지막으로 본 것은 무심히 걸어가는 오군의 모습이다. 그의 신발과 자신이 흘린 핏물이다.

오진복은 의자로 돌아와서 검집에 검을 꽂았다. 그리고 회륜참사는 돌아보지도 않은 채 성검문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사람들은 가가 질려서 말을 잇지 못했다.

성검문 조명천검이 완전히 살인검으로 변했다.

오진복은 처음부터 비무를 할 생각이 없었다. 무공을 비교한다는 것은 의미가 없었다. 그는 오로지 상대방을 죽이겠다는 살심만 가지고 검을 썼다.

오진복의 검은 예전보다 훨씬 강해졌다.

그가 언제 검을 뽑았고, 어떻게 공격했는지도 보지 못했다. 검광이 번쩍 빛나는 순간, 회륜참사가 쓰러졌다. 맹렬하게 공격하다가 뚝 떨어졌다.

마치 예전의 공부 허도기를 보는 듯한 느낌이다.

허도기의 검은 철저한 살인검이다. 검이 검집에서 풀려나오면 사람이 죽는다.

방금 오진복의 모습에서 허도기가 보였다.

“성검문이 아예 작정했네.”

“명부판관을 노리는 거겠지? 명부판관, 완전히 작살나겠는데? 이제는 안 되겠지?”

“검이 완전히 달라졌잖아. 이거는 안 돼.”

“소축십검이 또 있잖아? 다른 사람도 이런 검으로 변했으려나? 모두 동시에 폐관 수련에 들었잖아.”

“아예 이를 갈고 들어갔어. 다들 이럴 거 같아.”

“이러면 예전 소축십검이 있을 때보다 훨씬 강해진 것 같은데? 공부가 다섯 명이 있는 셈이잖아. 물론 공부보다는 한참 떨어지지만, 검이 비슷하니.”

“당연하지. 비교도 안 될 만큼 강해졌어. 이제 비무를 신청할 사람도 없겠는데. 목숨을 거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죽을 각오를 하고 나서야 하잖아.”

“조금 있으면 명부판관 비무가 있잖아. 공부님하고. 그건 열리겠지?”

“열려 봤자지 뭐. 이제는 안 돼. 끝났어. 저 검 봤잖아. 명부판관이 열 명이라도 안 돼.”

초도성 사람들이 쑥덕거렸다.

혈무대 위에 회륜참사가 쓰러져 있지만, 혈무대 위에 올라가서 상세를 살피는 사람은 없었다.

의원도 올라가지 않았다.

척 봐도 죽음이다. 도저히 살아날 수 없는 검이다.

회륜참사에게서 흘러나온 피가 혈무대를 지나 밑으로 뚝뚝 떨어져 내렸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