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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홀도-183화 (183/600)

#183화. 第三十七章 신련(新練) (3)

휘리릭! 휘릭! 휘리리리릭!

젓가락이 손을 중심으로 사방을 휘젓는다. 위, 아래는 물론이고 좌우까지 모두 젓가락 그림자로 만들어 놓는다.

십오 대 문주의 만완도다.

만완도는 손목 사용을 극대화한 변도(變刀)다.

변화의 폭이 크고, 속도가 빨라서 대처하기가 쉽지 않다.

아걸은 이번 젓가락 수련을 통해서 또 하나의 무리를 완벽하게 습득했다.

진기의 집중점을 다시 찾았다.

병기를 사용하는 무공에는 집중점이 두 개 있다.

타격의 집중점과 진기의 집중점이다.

칼로 나무를 치면, 타격의 집중점은 칼과 나무가 맞닿은 부분이다.

그곳에서 가장 강한 힘이 터져야 한다. 한데, 진기를 바로 타격 부분에 집중시키면 가장 큰 힘이 생기지 않는다.

진기의 집중점은 타격 집중점보다 앞서서 일어난다.

진기가 최선을 다해서 쳐내면 그 힘을 받은 칼이 가속을 일으키면서 나무를 친다.

타격 집중점이 나무에 생기는 순간이다.

타격 집중점은 개인 편차가 있을 수 없다. 목표를 타격할 때, 제일 빠르고 강해야 한다.

진기의 집중점, 진기를 어느 지점에서 최강으로 쳐내느냐는 개인 편차가 매우 크다. 창을 사용할 때와 칼을 사용할 때도 진기 집중점이 다르다.

이것은 오직 개인 스스로 찾아내야 한다.

아걸은 이런 무리를 알고 있다. 알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미 몸에 녹아 있다.

칼을 떨쳐내면 자연스럽게 진기의 집중점에서 진기가 터진다.

이번 수련을 통해서 진기 집중점을 조금 더 정확하게 찾았다.

만완도 같은 변도는 집중점 차이가 가장 크게 벌어진다.

진기 집중점은 천중(天中)인데, 타격 집중점은 지중(地中)에서 일어난다.

칼의 무게, 가속력, 낙하력, 회전력, 반탄력이 어우러진다.

칼이 땅에 떨어졌을 때는 사력을 다해서 진기로 쳐냈을 때보다 배는 강해져 있다.

십오대 문주는 변도의 달인이 아니다. 칼의 속성을 가장 잘 이해한 분이다. 만완도, 변도는 칼의 속성을 정확하게 이해하기만 하면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부산물이다.

* * *

아걸은 백궁일혈 탁수민을 생각했다.

진평 싸움을 시작할 때, 혈도비자라는 별호를 얻은 싸움에서 초고수를 만났다.

궁술의 달인!

소축십검에 못지않은 고수였고, 진정 무도를 아는 사람이었다. 혈도비자를 죽이기 위해서 싸움에 나선 것이 아니라 일홀도와 싸우기 위해서 나섰다.

세상에는 일홀문과 소축십검만 있는 게 아니다. 중원 무림에는 고수가 많다.

백궁일혈 탁수민은 명성이 자자한 고수다. 무공만큼 명성이 알려지지 않은 상황에 해당한다.

그처럼 중원에는 이름이 거의 알려지지 않은 고수가 있다.

무공을 사용하면 안 되거나, 무림에 실망했거나…… 어떤 이유에서건 초야에 묻혀 버린 고수들이다.

이들은 무림에 관심이 없어서 무림에서 무슨 일을 벌이든 상관하지 않는다.

아걸은 취화원이나 적랑대 같은 살수 문파가 이들을 특별히 주시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귀문에서도 이들에 대한 정보가 나왔다.

살수 문파라면 어디를 막론하고 이들 초고수에 대한 신상 내력을 확보하고 있다.

혹여 청부가 들어왔을 때, 이들과 얽힌 일이면 숙고해야 한다.

명성이 자자한 무인 같으면 당장 알겠지만, 초야에 묻힌 고수들은 모르기 쉽다. 덜컥 청부를 받았다가는 나중에 곤란한 일이 생길 수 있다.

문제는 이들의 무공이 증명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무공을 자주 사용하는 사람들이 아니기 때문에 확인할 방법도 딱히 없다.

그래서 주의 깊게 살핀다.

아걸은 호북성(湖北省) 풍주(渢州)로 왔다.

호북성 사람치고 풍주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 풍주는 큰 도읍이라서 풍주 땅을 밟아 보지 않은 사람도 풍주가 어디에 있는지는 알고 있다.

아걸은 풍주에서 대부산(大浮山) 방향으로 곧장 남하했다.

풍주에서 대부산 사이에 에조리(曀早里)라는 마을이 있다. 일 년 열두 달 항시 음산한 구름이 낀 것처럼 안개가 많아서 에조리라고 부른단다.

“에조리를 아십니까?”

“에조리? 잘 모르겠는데? 내가 여기서만 육십 년을 살았는데 에조리라는 마을은 처음 듣네.”

“안개가 많다고 하던데요?”

“그럼 대부산 부근이겠구먼. 대부산에 안개가 많이 껴서 산이 위로 붕 뜬 것 같거든. 아마 그쪽일 거야.”

아걸은 만나는 사람마다 에조리에 관해서 물었다.

에조리에 손승(孫繩)이라는 사람이 산다.

칼을 잘 쓴다고 한다.

장도 한 자루를 들고 전장을 누빈 장군이었다는 말도 있고, 단신으로 비적 이백 명을 도륙했다는 소문도 있다. 살인을 저지르고 도망 다닌다고도 한다.

어떤 말이 맞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아걸이 그를 찾아가는 이유는 딱 하나, 지리적으로 가장 가까운 곳에 있어서다.

“에조리? 저기 저 산 보이쇼? 저 산 옆 줄기를 타고 위로 쭉 올라가면 깊은 골이 있는데, 거기가 에조리요. 산이 깊어서 찾기가 영 어려울 텐데.”

드디어 에조리를 아는 사람이 나타났다.

휘릭! 휘리릭! 휘릭!

아걸은 젓가락을 돌리면서 관도를 걸어갔다.

급한 것은 전혀 없다. 매일 매 순간 무공수련을 한다. 일홀도를 수련하고 또 한다. 숨 쉬는 시간, 걸어가는 시간, 편히 누워서 하늘을 올려다보는 시간에도 수련은 멈추지 않는다.

에조리는 생각 밖으로 찾기가 쉬웠다.

앞마을 사람이 알려준 대로 산허리를 돌자 골짜기로 들어가는 소로가 나타났다.

길을 따라서 쭉 걸으니 인가 십여 호가 나타났다.

- 에조리(曀早里)

바위에 마을 이름을 새겨 있다.

이제 손승이라는 사람을 찾으면 되는데, 별로 어려울 것 같지 않다. 마을이라 봐야 십여 호밖에 되지 않고, 그중에서 칼 쓰는 사람을 찾기는 쉬워 보였다.

아걸은 마을로 들어갔다.

“여기 손승이라는 사람이 어디 살지?”

동네 골목길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에게 물어봤다.

어떤 아이는 모르겠다는 듯 멀뚱멀뚱 쳐다보기만 했다. 어떤 아이는 물음보다는 낯선 사람에 대한 호기심 때문에 아걸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이 마을에 손승이라는 사람이 살지?”

“그런 사람 없는데요?”

열 살쯤 되어 보이는 꼬마가 말했다.

“그래?”

아걸은 꼬마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그런데 그건 왜 돌리는 거예요?”

꼬마에게도 젓가락 돌리는 모습이 신기하게 보인 것 같다. 사방으로 휘돌리는데 손에서 떨어지지 않으니 마치 요술처럼 보일 수도 있다.

“장난. 심심해서.”

아걸은 씩 웃고는 마을 골목을 걸었다.

안내자 없이 혼자서 사람을 찾는 것은 상당히 비능률적이다. 찾기도 어렵고, 시간도 오래 걸린다.

생각 같아서는 금방 찾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영 힘들다.

자신 대신 찾아 주는 사람이 필요하다. 그러자면 적랑대나 취화원에 도움을 청해야 한다. 그들은 비밀 관리자를 주시하고 있으니 쉽게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의 싸움에서 배제했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찾기 어렵더라도 차분히 찾아 나갈 생각이다.

아걸은 텅 빈 마을을 두 바퀴나 돌았다.

집에 사람이 없다. 모두 일하러 간 것 같은데…….

아걸은 마을 사람들이 수호신처럼 떠받드는 고목 아래로 가서 앉았다.

휘릭! 휘리리릭! 휘릭!

젓가락을 돌리면서 사람들이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지금 이 시각, 가만히 앉아 있지만 수련 중이기 때문에 전혀 아깝지 않다.

아걸은 한 사람과 마주쳤다.

산에서 약초를 캐고 왔는지 등에 진 망태기에는 알지 못할 풀들이 가득했다.

아걸이 그를 알아본 게 아니다. 그가 아걸을 알아봤다.

정확하게는 아걸이 돌리고 있는 젓가락을 보자마자 걸음을 우뚝 멈춰 세웠다.

휘릭! 휘릭! 휘리리릭!

사내의 눈길이 젓가락으로 향했다.

아걸은 사내를 쳐다봤다.

두 사람은 마주 보고 있지만 쳐다보는 곳이 달라서 눈길이 마주치지는 않았다.

사내가 먼저 말했다.

“날 찾아온 것 같은데?”

“손승입니까?”

“맞네.”

“칼을 잘 쓰신다고 들었는데요.”

“이게 칼로 보이나?”

사내가 호미를 들어 보였다.

“찾는 게 있습니다. 도와주시겠습니까?”

“자네 정도면 이미 찾은 것 같은데. 뭘 찾나?”

“허도기를 이길 수 있는 도법.”

순간, 사내의 눈에서 귀광이 번뜩였다.

“방금 허도기라고 들은 것 같은데?”

“맞습니다.”

“……미쳤군.”

아걸은 묵묵히 웃옷을 들어 보였다.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은 검 자국이 생생하게 찍혀 있었다. 그것도 매우 심해 보였다.

“허도기 칼인가?”

“예. 대책 없는 검이더라구요.”

“자네 칼도 대책 없기는 마찬가지 아닌가. 자넨 이미 나 같은 건 무시해도 좋을 칼이야. 그래도 굳이 겨루겠다면 비무보다는 살인을 염두에 두고 있겠지. 나한테 원한 있나?”

“말씀드렸듯이 찾는 게 있을 뿐입니다. 준비하시죠.”

사내가 아걸을 쳐다봤다.

무인의 싸움은 거절할 수가 없다. 지금처럼 무조건 싸우자고 하면 물러설 곳이 없다.

“허도기와 싸웠다면 자네 역시 무명소졸은 아닐 텐데, 강호에서는 뭐라고 부르나.”

“혈도비자.”

순간, 사내의 눈가에 미미한 떨림이 일어났다.

혈도비자를 안다. 에조리 촌마을에 숨어 살지만, 강호에서 벌어진 일을 들은 것 같다.

“따라오게.”

사내가 앞장서서 걸어갔다.

* * *

손승의 칼은 월도(月刀)다.

손잡이가 창처럼 길다. 칼은 둥근 반달을 두 개 겹쳐 놓은 모양으로, 두껍고 날카롭다.

스읏! 부우웅!

손승이 월도를 두 손으로 잡고 머리 위로 풍차처럼 빙글 돌렸다.

단지 칼을 휘둘렀을 뿐인데, 거센 바람이 몰아쳐 온다.

스읏!

아걸은 반철도를 들었다.

오체진감, 감각망기술, 몰안이 순식간에 일어났다. 칼과 몸이 하나가 되었다.

이 순간, 아걸의 칼은 살도(殺刀)다.

원래 칼을 만든 목적은 사람을 죽이는 데 있다. 방어용이 아니라 공격용 무기다. 날카롭고, 흉맹하고, 강할수록 좋은 칼이라는 소리를 듣는다.

일홀도는 살도다.

조명천검, 조명십해도 살검이다.

아걸은 반철도와 사내의 심장을 연결했다. 가장 빠른 길을 찾아냈다. 몰안으로 집중된 눈이 오직 한 길, 방금 찾은 길만 노려보고 있다.

순간, 아걸은 일홀도를 탁! 풀었다.

자신의 일홀도는 조명십해에 무너졌다. 허도기의 옷자락도 건드리지 못했다.

그런 무공으로 상대를 아무리 많이 벤다고 한들 무슨 소용인가.

이 싸움을 왜 하나? 손승 같은 강자를 찾아온 목적이 무엇인가? 허도기에게 패한 무공으로 죽이기 위해서인가? 아니면 무공 자랑을 하려고 왔나?

파앗!

몰안이 지워졌다.

육신의 감각이 다시 살아났다. 정신집중이 흩어지면서 허점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쒜에에에엑!

월도가 빈틈을 노리고 거침없이 쏘아져 왔다.

손승은 강자다. 서리가헌이나 서리형개에 비교할 수는 없지만, 칼을 매우 매섭게 쓴다.

스읏! 파라랑! 타앙!

아걸은 삼십오 대 문주의 회륜도를 펼쳤다.

진기를 쓰지 않는다. 몰안도 일으키지 않는다. 도신일체를 사용하지 않는다. 몸과 칼이 저절로 도신일체가 되도록 만든다. 일부러 진기를 이용해서 만든 도신일체는 버린다.

타앙! 탕탕탕! 타아아앙!

월도와 반철도가 허공에서 부딪쳤다.

손승은 월도에 진기를 실었다.

아걸은 오직 반철도가 지닌 순수한 칼의 힘만으로 싸운다. 하지만 타격력이 워낙 강해서 진기를 싣지 않았다고 믿기 어렵다. 진기를 사용한 초식 같다.

두 칼은 서로 상대의 맛을 봤다.

팽팽하다. 어느 한쪽도 밀리지 않는다. 혈도비자가 압도적으로 우세할 줄 알았는데, 그렇지 못하다. 강하기는 하지만 겨우 월도를 막아 내는 수준이다.

“소문보다 못하군.”

쒜에에엑!

손승이 자신감을 얻었는지 거침없이 칼을 던져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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