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일홀도-184화 (184/600)

#184화. 第三十七章 신련(新練) (4)

“또?”

손승이 질린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아걸과 이틀 연속으로 싸웠다.

결과는 언제나 무승부다. 아걸도 손승도 승기를 잡지 못한 채 칼을 거뒀다.

물론 아걸이 봐준 결과다.

아걸은 진기를 사용하지 않았다.

진기를 사용해서 전력으로 몰아친다면 벌써 승패가 났을 것이고, 자신은 살아 있지도 못할 것이다.

한 마디로 상대가 안 된다.

아걸보다는 분명히 하수다.

그런데도 아걸은 이틀이나 비무를 한 것도 모자라서 삼 일째 되는 날, 또 찾아왔다.

무공과는 상관없이 비무 상대를 원하나? 나무나 돌을 상대하는 것보다는 낫다고 여기는 건가? 이런 비무 상대라면 굳이 산속에 처박혀 있지 않아도 된다. 산만 벗어나도 비무 상대가 널려 있다. 결전도 마찬가지다. 상대가 많다.

“한 번 더 부탁합니다.”

아걸이 정중하게 말했다.

손승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아걸을 쳐다봤다.

“내 밑천은 이미 다 드러났는데, 뭘 더 보자는 것인지 모르겠군. 그만 돌아가지. 나도 일해야 먹고 살지. 계속 칼질만 하면 굶어 죽기 딱 좋아.”

“부탁합니다.”

손승이 투덜거렸으나, 아걸은 물러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아저씨, 또 싸워요?”

지나가던 꼬마들이 호기심 어린 눈으로 물어왔다.

“아니다. 오늘은 안 싸울 거야. 밭에 가니?”

손승이 아이에게 말했다.

“피이! 또 싸울 거면서. 안 싸울 거면 이 아저씨 왜 안 가요? 지금도 싸울 준비를 하는 것 같은데.”

아이가 아걸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그때, 아이 엄마인 듯한 사람이 부리나케 달려와서 아이를 떠메고 달려갔다.

두 사람이 싸우는 소리는 마을 사람들 모두가 들었다.

비록 사람이 없는 산속 공지에서 싸웠지만, 칼이 부딪치는 소리는 계곡 전체를 쩌렁 울렸다.

마을 사람들은 손승이 칼잡이라는 사실을 몰랐다.

에조리에 들어와서 터를 잡은 게 벌써 십여 년이 훌쩍 넘는다. 그동안 칼 쓰는 모습을 한 번도 보지 못했다. 집안에 월도가 있다는 사실도 몰랐다.

아걸 덕분에 칼잡이라는 사실이 발각되었다.

처음, 마을 사람들은 모두 긴장했다. 한동네에서 어깨를 부딪치며 살던 무뚝뚝한 사내가 알고 보니 무서운 칼잡이였다. 외지에서 사람이 찾아왔고, 싸움이 벌어졌다.

원수가 찾아왔나?

손승이 죄를 짓고 숨어들어 온 범죄자인가?

하지만 결전이 아니라 비무일 뿐이다. 그것도 비무가 끝나고 서로 편히 쉬고, 또 비무를 했다. 그리고 다시 돌아와서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생활했다.

손승은 밥을 지어 먹었다.

아걸은 산에서 나무 열매를 따 먹었다. 풀잎을 베어서 잠자리를 만든 후, 아주 편하게 잠들었다.

손승은 십몇 년 만에 칼을 들었는데, 그동안 철저히 칼을 숨겨온 사람답지 않게 결과가 싱겁다.

마을 사람들은 더는 긴장하지 않았다.

하지만 손승이 칼잡이인 이상 아무렇지도 않은 듯 살 수는 없다. 사람들은 손승도 떠나가 주기를 바란다.

“자네 때문에 나까지 쫓겨나게 생겼어.”

“죄송합니다. 한 번 더 부탁합니다.”

아걸이 정중하게 거듭 요청했다.

* * *

“정말 오늘이 마지막이네.”

손승이 숲속 공지로 걸어가며 말했다.

“네.”

“그런데 그건 왜 이렇게 돌려대고 있나?”

손승이 빙글빙글 돌리고 있는 젓가락을 보면서 말했다.

“심심풀이입니다.”

“속일 사람을 속여야지. 그게 심심풀이가 아닌 건 누구라도 알겠는데, 뭘 속이고 있어.”

“그게 보입니까?”

“필사적으로 돌리고 있잖아. 심심풀이가 아니라는 거지.”

터엉!

아걸은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자신을 젓가락을 몸에 붙이려고 했을 뿐, 필사적으로 노력한 적이 없다. 한데 한순간도 쉬지 않고 돌리려다 보니…… 어느새, 필사적인 마음이 생겼다.

조금 더 자연스러워야 한다. 노력을 기울이지 않아도 스스로 일어나는 자연스러움 속에 도신일체가 생긴다.

“눈치채지 못했습니다. 좋은 걸 배웠습니다.”

“비무는 안 해도 되나?”

“아뇨. 한 수 부탁드립니다.”

“이런 식으로 싸우면 승부가 안 나. 꼭 승부를 내겠다면 사흘 정도는 밤낮으로 싸워야겠지. 진기가 소진되고, 손발의 힘이 다 빠지고, 손가락 하나 들어 올릴 힘조차 남아 있지 않을 때, 누가 이게 강하냐에 따라서 한 번 더 칼을 날릴 수 있겠지.”

“그 정도까지 가 볼까요?”

아걸이 반철도를 들어 올렸다.

“좋지!”

쒜에에엣!

손승이 월도를 날려 왔다. 허공으로 붕 떠올라서 바위를 쪼개듯이 힘껏 내리쳤다.

월도에 깃든 경력이 너무 강하다. 바람 소리만 듣고도 일단은 피해야겠다는 생각부터 일어난다.

스읏! 쒜에엑!

아걸도 반철도를 휘둘렀다.

아걸이 펼치는 도법은 이십오 대 문주의 수신도다.

반철도가 빠르게 몸 주위를 휘돈다. 몸 주위에 철옹성처럼 단단한 강벽을 쌓아 준다.

타앙! 탕탕! 타아앙!

반철도와 월도가 부딪쳤다.

아걸은 수신도를 사용하되, 진기를 일으키지 않았다. 몰안이나 감각망기술도 쓰지 않았다. 자신의 장점을 모두 버리고 오직 반철도만 의지했다.

순수한 칼, 칼이 지닌 쇳덩이의 무게만으로 수신도를 펼친다.

병기는 쇠로 만들어졌다. 당연히 아주 많은 힘을 일으킨다. 빙글 휘돌리면 원심력이 일어난다. 속도와 파괴력이 증가한다. 위에서 떨어트리면 낙하력이 일어난다. 내리치는 힘에 가속이 붙어서 제어할 수 없는 빠름이 된다.

칼을 떨어뜨리다가 중간에서 멈추려고 하면 본래 힘보다 네다섯 배는 더 강한 힘이 필요하다.

쇳덩이 무게만 이용해도 굉장히 강한 칼이 된다.

타격점과 힘의 집중점, 그리고 반철도의 무게만을 이용해서 수신도를 펼친다.

이런 도법은 사실상 초식이 필요 없다.

있으면 도움이 되지만, 없어도 딱히 아쉬운 것은 없다.

아걸처럼 고수가 아니어도 무방하다. 각기 자신에게 무게가 맞는 병기를 휘두르면 된다. 열 살짜리 꼬마는 나무 작대기를 쓰면 되고, 황소를 들어 올릴 수 있는 자는 손승이 사용하는 월도를 들어도 굉장한 파괴력을 보일 수 있다.

타격점과 힘의 집중점, 그리고 병기의 무게가 조화만 이룬다면 그 자체가 무공이다.

따앙! 따앙! 땅땅땅!

월도와 반철도가 불똥을 일으키며 부딪쳤다.

‘대단한 무공!’

손승은 기가 막혔다.

그 자신 역시 무공 귀재라는 소리를 들었다. 칼에 귀신이 들렸다는 말도 들었다.

그런 칼을 새파란 젊은이가 진기도 사용하지 않고 맞받아 낸다.

아니, 꼭 진기를 사용하는 것 같다. 어떤 때는 약한데, 어떤 때는 굉장히 강하다.

손승도 헷갈린다.

아걸은 승부를 보기 위해서 싸우는 게 아니다.

그는 정말로 무엇인가를 찾고 있다. 그래서 진기를 사용하지 않는다. 사정을 봐주고 있다.

허도기를 상대했던 칼이지 않나.

보통 사람은 허도기 검을 한 번만 맞아도 즉사한다. 허도기 정도 되는 무인은 절대 실수하지 않는다. 일격필살이 아예 몸에 배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온다.

그런 검을 네 번이나 맞았다.

아걸은 허도기가 살검을 네 번이나 써야 할 정도로 무공이 탁월하다. 최소한 허도기가 살초를 네 번이나 퍼부었다. 사초 이상 접전을 벌였다.

그런 자가 십 년 이상 칼을 잡지 않은 자신을 이기지 못해서 쩔쩔맨다는 것은 믿을 수 없다.

까앙!

서른 번째인가, 마흔 번째인가?

손승은 두 칼이 부딪치는 힘을 이용해서 펄쩍 물렀다.

“후욱!”

손승의 월도를 다시 고쳐 잡으며 말했다.

“자네 칼은 참 이상해. 일단 기수식에 전혀 힘이 들어가지 않았어. 초반 몇 수도 마찬가지야. 어린애가 작대기를 들고 있는 것 같아. 난 이미 그 틈을 봤네.”

“보실 줄 알았습니다.”

“그쪽을 공격하려다가 너무 비열한 것 같아서 참았는데, 이게 생사를 건 싸움이라면 절대 놓치지 않을 틈이야.”

아걸이 고개를 끄덕였다.

“차차 보완할 생각입니다.”

진기를 사용하면 처음부터 강력한 칼을 들 수 있다. 하지만 칼의 무게, 칼의 속성만을 이용할 때는 오히려 힘을 완전히 빼야 한다. 칼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가면 근육이 경직되어서 속도가 나지 않는다. 몸이 낭창거릴수록 좋다.

진기를 쓸 때와는 힘을 쓰는 시작점이 완전히 달라진다.

손승 같은 무인에게는 절대 놓칠 수 없는 허점이다. 소축십검과 마주 섰다면 칼을 드는 순간 베인다. 하물며 허도기는 말할 것도 없다. 즉시 베일 것이다.

쒜에에엑!

손승이 월도를 휘두르며 달려들었다.

까앙! 깡깡깡깡!

월도와 반철도가 아걸 몸 주위에서 부딪쳤다.

벌써 삼 일째 비무……. 이틀 동안은 승부가 나지 않았는데, 사흘째가 되자 어느덧 결과가 보인다.

아걸이 밀린다.

수신도가 강벽 역할을 충실히 해주지만, 진기 실린 월도를 막기에는 부족해 보인다.

당장 힘에서 밀린다.

칼 무게만 이용해서 월도를 쳐내기에는 손승이 너무 강하다. 말의 머리를 단숨에 잘라 버리는 칼이지 않나. 격돌이 일어날 때마다 손목이 시큰거린다.

타앙! 탕탕! 타아앙!

회전력이 조금이라도 약해지면 당장 월도가 파고든다. 수신도가 깨진다.

아걸은 땀을 뻘뻘 흘렸다.

오로지 육신의 힘만으로 쳐내는 칼이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호흡이 거칠어졌다. 손발이 중심을 잡지 못하고 휘청거렸다. 거의 탈진 지경이다.

손승이 처음 했던 말처럼 이제 기력이란 기력은 모두 빠져나갔다. 남은 것은 정신력이다. 악착같이, 이번 한 번만 더 막아 보자는 심정으로 버틴다.

휘리리리릭!

월도가 큰 변화를 보였다.

‘결정타!’

손승을 진기를 월도에 모았다. 순간, 손승이 사라지고 월도만 남았다. 월도가 두 배, 세 배로 커졌다. 세상 모든 풍경이 사라지고 월도만 보였다.

파아앗!

월도가 승천하는 용마처럼 하늘로 날아올랐다.

아걸은 반철도는 머리 위로 들어 올렸다.

타격점은 하늘이다. 힘의 집중점은 발밑이다.

발을 향해 전력으로 반철도를 쳐내면 가속 붙은 쇳덩어리가 하늘로 솟구친다.

칼은 팔에 매달려 있다.

팔이 움직이는 궤적대로 움직인다. 어깨가 회전하는 방향으로 움직인다. 아래를 치면 위로 솟구친다. 거기에 칼의 무게가 더해져서 속도와 힘을 보탠다.

이때, 몸이 흔들리지 않아야 한다. 칼이 마음껏 궤적을 그릴 수 있도록 굳건히 버텨 주어야 한다.

‘지금!’

생각은 곧 행동으로 이어졌다.

쒜에에엑! 타아앗!

반철도가 산악처럼 밀려오는 월도와 부딪쳤다.

까앙!

쇳소리가 울렸다.

손승의 손에는 본신 진기가 밀집되어 있다. 아걸은 가장 가볍게 칼을 잡았다.

터엉!

반철도가 월도를 이기지 못하고 하늘 높이 튕겨 나갔다. 아걸 또한 엄청난 충격에 비틀거리며 물러섰다.

“우욱!”

아걸은 입으로 피까지 토해냈다.

순간적이지만 일홀도가 튀어나올 뻔했다. 그랬다면 손승은 죽었을 것이다.

“괜찮나?”

손승이 월도를 거두며 말했다.

“……도법 수련 좀 하셔야겠어요. 그동안 너무 노셨나 봅니다.”

“뭐? 하하하하!”

손승이 크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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