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일홀도-188화 (188/600)

#188화. 第三十八章 암살(暗殺) (3)

암살은 반드시 표시가 난다.

아무리 자연스럽게 위장해도 허도기는 금방 눈치챌 것이다. 그러니 가장 잃으면 안 되는 사람, 없으면 타격을 많이 받을 사람처럼 죽여 나간다.

‘없어서는 안 될 사람부터. 허도기가 일하는 데 꼭 필요한 사람부터 제거해야 하는데. 그러자면 허도기 목적을 분명히 알아야 해. 뭘 원하는지.’

허도기는 황궁을 노린다고 했다.

그러면 정말로 황상을 원하는가? 그건 너무 큰 일이다. 허도기가 제아무리 명성이 자자하다고 해도 쉽게 시행할 수 없다. 무공으로 정치를 할 수는 없다.

허도기가 무엇을 원하는지 정확하게 알아야 한다.

암살을 결행하면 취화원은 무림 역사 전면에 본격적으로 등장하게 된다.

얌전하게 살기는 틀렸다.

허도기와 정면 승부를 가려야 할지도 모른다.

‘오빠. 어떻게 해.’

몽설은 아걸을 생각했다.

이 결단은 한 가족을 풍파 속으로 넣는 일이기도 하다. 그러니 아걸도 알아야 하고 의견을 말할 권리가 있다.

허도기가 쥔 권력이라면 취화원 식솔 전부를 역적 무리로 몰아 버릴 수도 있는데, 그 속에는 아걸도 포함된다. 아무것도 모른 채 하루아침에 역적이 되면 얼마나 억울할까.

몽설은 좀처럼 결단을 내리지 못했다.

서리형개의 지시를 받다가 정동처럼 쓰러져 가느냐, 서리형개를 딛고 나아가서 허도기에게 복수를 하느냐.

아걸은 무조건 후자다.

지금도 아걸은 허도기를 향해 맹렬히 달려가고 있다. 다만 아걸은 무인으로서 달려간다.

무공 대 무공으로 허도기를 꺾으려는 것이다.

자신은 취화원 대 성검문으로 싸운다. 전력을 기울여서 허도기가 가진 모든 힘과 부딪친다.

스읏!

몽설은 밀지 한 장을 들어 올렸다.

‘……이 사람부터.’

몽설은 침소로 가기 위해서 몸을 일으켰다. 하지만 한 걸음도 움직이지 못했다.

등 뒤에 맹수가 서 있다.

조금이라도 움직인다면 당장 달려들어서 물어뜯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움직임도 자신보다 빠르고, 힘으로도 당할 수 없는 아주 강한 맹수다.

“으음…….”

몽설은 꼼짝도 하지 못한 채 나직이 신음을 흘렸다.

그때, 맹수가 말을 걸어왔다.

“암살을 계획하는 모양인데, 너희들만으로 충분하겠니?”

‘서리가헌!’

몽설은 음성을 듣고서야 맹수가 서리가헌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맹수가 서리가헌이라면 거리낄 것이 없다. 서리가헌이나 서리형개나 전혀 두렵지 않다.

그녀가 뒤돌아섰다.

“우리 취화원이 이렇게 엉망인 줄 몰랐네. 여기가 개나 소나 다 들락거리는 곳인가?”

서리가헌은 천장 대들보에 누워 있다. 왼팔 옷소매가 밑으로 축 늘어져 있다. 한데, 눈으로 보고 있는 지금도 숨소리조차 감지하지 못하겠다.

몽설은 그가 잠입한 사실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서리형개를 보고 서리가헌을 직접 대면하자 일홀도가 정말 무서운 칼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서리가헌이 차분하게 말했다.

“성질부리지 마라. 꼬맹이.”

서리가헌도 몽설이 누군지 안다.

철저하게 계획해서 취화원에 숨겼지만, 딱 여기까지다. 지금까지 숨긴 것도 많이 숨겼다.

“날 죽이러 온 것 같지는 않은데, 무슨 일이야?”

“후후! 네 나이 또래 여자 중에서 나에게 반말을 하는 사람은 너밖에 없을 거다.”

“반말이 듣기 싫으면 오질 말았어야지.”

“넌 내 칼이 두렵지 않니?”

“패하기만 하는 칼이 두려울 리 있어? 허도기에게 패하고, 아버지에게 패하고, 아걸에게 패하고. 싸우는 사람마다 모두 지고 있잖아. 그밖에 또 싸운 사람 있어?”

“그런가? 하하하! 그렇군. 그러고 보니 패하기만 하는 칼이야. 하하하!”

서리가헌이 재미있다는 듯이 웃었다.

휘익!

그가 일어나 앉았다.

천정에서 내려오지는 않고 대들보에 두 발을 걸친 채 앉아서 몽설을 내려다봤다.

“내 자리 있니?”

서리가헌이 불쑥 말했다.

“무슨 자리가 있냐는 거야?”

“형개하고 해결할 일은 네가 알아서 해. 그건 내가 상관할 일이 아니니까. 나, 칼을 팔려고 하는데 사주겠니?”

“……”

몽설은 미간을 찌푸린 채 서리가헌을 쳐다봤다.

서리가헌이 무슨 의미에서 이런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 무인이 타락하면 칼을 파는 정도는 애교로 봐줄 수 있지만, 서리가헌은 그런 처지도 아니다.

“무슨 뜻이야?”

“깊게 생각하면 골 아프지. 허도기를 친다고 하지 않았니. 허도기를 무림으로 불러내겠다고. 그 일을 돕겠다는 것이지. 일을 시작해 보면 알겠지만, 허도기 입김이 장난 아니지. 문관 몇 명 죽이는 것으로는 어림도 없어.”

“대가는?”

“숙식.”

“그거면 돼?”

“하하, 하하하!”

서리가헌이 웃었다.

서리가헌은 돈이 많다. 풍도곡 전체가 서리가헌과 서리형개 두 사람 것이다. 농지를 소작 줘서 거둬들이는 돈만 해도 해마다 오십만 석이 넘는다.

돈이 없어서 숙식을 해결해 달라는 것이 아니다.

“단, 내가 죽이는 자들은 내 이름으로 죽이겠어. 암살 같은 것 하지 않고. 취화원과는 상관없이 죽이는 것이니, 꼬맹이 네게는 이게 더 낫겠지?”

“꼬맹이라고 부르지 마.”

“넌 꼬맹이야. 우리에게는. 설혹 내 목에 검을 꽂는다고 해도…… 꼬맹이지. 후후후!”

쉬익!

서리가헌이 대들보에서 내려왔다.

“객잔에 있을 테니 필요하면 연락해. 오늘부터 숙식 알아서 해결해 주고.”

“이러는 이유가 뭐야? 이유를 알아야 편하게 쓰지.”

“후후후! 그놈, 그놈이 허도기에게 갔잖니. 허도기 검을 네 번이나 맞고도 살았다고? 그건 죽기 살기로 덤볐다는 이야기고, 그런데도 죽이지 못했다는 거잖니.”

서리가헌이 아걸 이야기를 하고 있다.

“뭐라고 할까? 내 칼이 일홀도라는 점을 알았다고나 할까? 나뿐만이 아니라 형개도 자극을 받았을 건데. 이거 아니? 일홀도는 하나뿐이라는 거.”

“……”

몽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서리가헌은 서리형개와 싸울 생각을 한다. 아걸과도 싸울 것이다. 세 명 중 한 명만 남는다. 허도기를 베기 전이든, 벤 후이든 이 일은 반드시 일어난다.

“아까 이야기했지? 어렵게 생각하지 말라고. 일홀도를 알면 날 마음껏 부릴 수 있어. 안심하고 부려.”

저벅! 저벅!

서리가헌이 대청을 걸어 나갔다.

‘전쟁이 시작됐어.’

몽설은 부르르 치를 떨었다.

일홀도 전쟁이다. 일홀도 중에서 한 사람만 남는 전쟁이다. 이 전쟁은 일홀도 혹은 일홀도를 능가하는 자만 참가할 수 있다.

서리가헌 역시 허도기를 무림으로 불러낼 생각이다.

공부 허도기가 아니라 성검문주 허도기가 되어야 일홀도 싸움을 할 수 있다.

“한성 서문으로 가. 사람이 찾아갈 거야. 그 사람을 따라가면 조용한 집을 내줄 거야.”

서리가헌이 뒤도 돌아보지 않고 고개만 끄덕였다.

* * *

무림은 늘 시비가 잦은 곳이다.

내가 잘못을 하지 않아도 칼을 들고 싸워야 하며 목숨을 잃을 때가 왕왕 있다.

하물며 지금은 당금 무림에서 가장 강한 칼 두 명이 다녀갔다.

“아슬아슬하네.”

이곡주 소호가 말했다.

“허도기를 무림에 불러들인다는 것은 호랑이를 안방으로 불러들인다는 소리잖아. 정말 괜찮을까?”

팔곡주 소명이 불안한 듯 말했다.

허도기라는 이름은 구곡주가 감히 입에 올리지도 못하던 저 높은 하늘에 떠 있는 구름이었다. 이름을 부르기는커녕 옷깃이 닿을 인연도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은 적으로 생각한다.

“허도기는 호랑이가 아니야. 원주님의 적이고, 아걸의 적이야. 그러면 우리에게도 적일 뿐이야.”

취운이 냉정하게 말했다.

“이 싸움이 어디까지 갈까? 어느 한쪽이 죽어야 끝나겠지? 허도기와 그의 사람들, 원주님과 우리.”

소명이 착 가라앉은 음성으로 말했다.

정동을 칠 때까지만 해도 취화원 복수였다. 정동 무인이 취화원을 멸절시켰기 때문에 복수하는 건 당연했다.

정동이 무너지는 것으로 복수는 끝났다.

정동을 움직인 사람이 있다. 서리형개가 움직였고, 허도기가 입김을 불어 넣었다. 소축십검도 움직였다. 당금 무림에서 제일 강한 자들이 모두 가담되어 있다.

이 부분은 역부족이다. 감히 복수할 엄두도 나지 않는다.

그런데 몽설은 치려고 한다.

취운이 말했다.

“내가 너희를 다 모은 것은 특별히 할 이야기가 있어서야. 내 생각에 지금부터는 취화원 복수가 아냐. 그러니 굳이 취화원이 나설 필요가 없어.”

“무슨 소리야!”

월영이 눈살을 찌푸리며 취운을 쏘아봤다.

“개별적으로 움직여도 좋을 것 같아서. 취화원을 보존하고 싶은 사람은 원주님께 말해서 빠져. 여기 있는 사람 중에서 한 명이라도 빠진다면 남은 사람은 취화원 이름을 쓰지 마. 취화원을 보존하는 것도 존중하자는 거지.”

“넌 어떻게 할 건데?”

사사가 물었다.

“이건 상의하면 안 돼. 그럼 서로에게 강요가 되는 거야. 깊이 생각해서 빠질 사람은 여기서 빠지자.”

취운이 말했다.

* * *

풍도곡은 성검문 휘하다.

풍도곡은 아니라고 강변할 수 있지만, 누구나 그렇게 생각한다. 적자도 아니고 서자다. 본가 출생이 아니기 때문에 직위도 얻지 못하고, 무림에서 대우도 받지 못한다.

늘 찬밥 취급을 당한다.

하지만 칼이 강하다는 것만은 인정한다. 그래서 풍도곡이라는 큰 지역을 내준 것이다.

그런데 정동이 무너진 후, 풍도곡과 성검문 사이에 이상한 기류가 흐른다. 정동은 취화원이 무너트렸는데, 협력 관계이던 두 곳이 삐걱거린다.

사이가 완전히 틀어졌다고 봐도 무방하다.

서리가헌과 서리형개가 본격적으로 칼을 세웠다.

서리형개는 서리가헌이 팔 하나를 잃은 후부터 본격적으로 움직이는 것 같다.

원래 서리형개는 서리가헌에게 대들지 못했다. 대들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은 아무런 상의도 없이 독단적으로 허도기 인맥을 조사한다.

서리형개가 서리가헌을 넘어서고자 한다.

다른 때 같으면 서리가헌도 가만있지 않았다. 서리형개에게 경고했거나, 아니면 당장 칼로 압박했을 것이다.

이번에는 무관심하다.

서리가헌 역시 이번에는 아래를 내려다보지 않는다. 위, 허도기를 쳐다본다.

그 역시 팔을 잃은 것이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 같다.

팔을 잃고 다시 일홀도를 쳐들면서 옛날 산속에 움막을 짓고 살면서 칼을 다듬던 서리가헌으로 돌아갔다.

두 팔이 멀쩡했다면 아직도 어떻게 언제 칼을 뽑아야 할지 시기를 조율하고 있을 것이다.

하나를 잃었기 때문에 하나를 얻었다.

그렇다고 허도기가 주는 압박감이 다르지는 않다. 아직도 조명십해를 이길 자신이 없다. 그래서 시간을 벌면서 일홀도를 다듬되, 늘 허도기 곁에 붙어 있으려고 한다.

허도기에게 칼을 들면 허도기도 서리가헌을 노린다.

그래서 자신의 이름으로 허도기 측근을 죽이겠다고 말한 것이다.

서리가헌은 죽음을 생각하고 있다.

서리형개는 아직은 그렇게까지 생각하지 않는다. 그의 정신은 여전히 풍도곡에 머물러 있다.

허도기에게 반격을 취하지만, 칼로 싸우지는 않는다. 세력으로 싸울 생각이다. 정동 생존자를 수습했을 것이고, 어쩌면 허도기조차 알지 못하는 조직을 구축했을 수도 있다.

서리형개는 귀문과 정동, 두 조직을 잃었다.

그것도 모두 취화원에 잃었다. 그런데도 전혀 화를 내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을 위해서 일하라고 한다. 하지만 그 말조차도 간절함 같은 것은 엿보이지 않는다.

그에게 취화원은 언제 소멸시켜도 좋은 존재다.

풍도곡이 모두 허도기에게 칼을 들었지만 두 사람의 생각은 전혀 다르다.

몽설이 차분하게 말했다.

“서리가헌에게 밀실 딸린 집을 줘. 언제든 수련할 수 있는 장소여야 해. 후미진 곳이나, 지하 공동이 있는 집, 아니면 가산이 딸린 집도 괜찮고.”

“넷!”

“필요한 것이 있다면 다 해 줘. 오랜 방황 끝에 일홀문으로 돌아온 사람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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