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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홀도-191화 (191/600)

#191화. 第三十九章 준비(準備) (1)

‘조명천검!’

아걸은 상처만 보고도 검법을 알아봤다.

혈사창과 장태전의 몸을 뚫은 검법은 분명히 성검문의 검공, 잠기일력타다.

아걸의 몸에는 잠기일력타에 당한 상처가 두 개가 새겨져 있다.

잠기일력타를 축검시켰다는 삼륜축첩공의 검흔도 뚜렷하게 패여 있다.

이런 검을 알아보지 못한다면 그게 더 이상하다.

‘조명천검 직사광류를 잠기일력타로 쳐 냈다. 혈사창은 일 초에 즉사. 고통은 길지 않았을 거야.’

장태전은 다행히 목숨을 부지했다.

잠기일력타에 당하고도 목숨을 부지할 수는 없다.

아걸이 특이한 변종이라서 살아남은 것이지 다른 사람은 죽음을 면치 못한다.

장태전은 옷 속에 가죽 갑옷을 덧대 입었다.

토탄사 패장들은 언제든 뛰쳐나갈 수 있게 승복 속에 갑옷을 입고 다녔다.

장태전은 정말 조상 덕분에 목숨을 구했다. 만약 그런 전통이 없었다면 그 역시 죽었다. 흑무 따위는 잠기일력타를 막지 못한다. 또 잠기일력타에 당하면 곰도 쓰러진다.

“성검문이 아니고서야 우리를 이렇게까지 몰아붙일 사람이 없는데. 혹시…… 허도기인가?”

손승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소축십검입니다.”

아걸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소축십검? 소축십검이 이렇게 강해? 혈사창이 단숨에 목숨을 잃었는데?”

손승이 믿지 못하겠다는 투로 말했다.

그들은 자신들이 소축십검과 비교할 수 있을 정도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니다. 혈사창을 죽인 자가 정말 소축십검이라면 자신들보다 두어 수 윗길이다.

아걸이 아예 쐐기를 박았다.

“허도기는 이 검보다 세 배는 빠릅니다. 절대 아녜요.”

“뭐, 뭣!”

아걸이 말하자 검객을 직접 상대해 봤던 장태전이 깜짝 놀라서 되물었다.

검객도 빠른데, 허도기는 더 빨라?

기가 질린다. 하지만 다른 사람도 아니고 아걸이 말한 것이니 믿지 않을 수도 없다.

“모두 돌아가세요. 절 따라오면 위험합니다.”

“세상이란 문 나서는 순간부터 위험한 거야. 그러나저러나, 이렇게 되면 우리도 가만히 못 있지.”

쌍겸이 낫을 혀로 핥으며 말했다.

“벌을 기르는 벌치기한테 가장 무서운 적이 뭔지 압니까?”

말벌이다. 그걸 몰라서 묻는 게 아니다. 아걸은 물음 속에 이미 답을 담아 놨다.

벌집 한 통이 말벌 한 마리 때문에 도륙이 난다.

꿀벌 수십, 수백 마리가 무리를 지어서 달려들어도 말벌 한 마리를 당하지 못한다.

아걸이 누구를 말벌로 칭하는지는 묻지 않아도 안다.

그 정도인가? 그렇게나 무공 차이가 나나?

아걸이 은거 고수들을 무시해서 하는 말이 아니라는 것쯤은 알아듣는다.

복수하겠다고 무리를 지어서 몰려가면 되레 죽임을 당한다.

“이자하고 싸울 건가?”

“절 보고자 왔으니 만나 봐야죠.”

“이길 자신 있어?”

황열(黃閱)이 말했다.

그는 아걸과 여덟 번째로 만났다. 승표(繩標)를 아주 잘 쓴다. 그가 사용하는 표두(標頭)는 무게가 추(錘)에 버금가서 타격하는 물체를 부숴 버린다.

당시, 아걸은 그와 싸우면서 쩔쩔맸다.

날아오는 표두를 막아내기는 했지만, 정확하게 타격하지 못하고 뒤로 물러서는 횟수가 잦았다.

황열은 그런 모습을 봤기 때문에 걱정하는 것이다.

물론 아걸이 전력을 다하지 않았다는 사실도 안다. 진기를 사용하지 않고 무거운 반철도를 끌어냈다는 것도. 하지만 진신 무공을 본 적이 없어서 걱정할 수밖에 없다.

아걸이 말했다.

“지금부터는 아귀들의 싸움입니다. 사람은 끼어들 자리가 없어요. 그러니 그만 돌아가세요.”

아걸은 항상 돌아가라고 말했다.

자신의 싸움은 구경거리가 아니라고 하면서 떠날 것을 권유했다. 그래도 따라오는 사람은 말리지 않았다. 떠나는 것도 따라오는 것도 철저히 자유의사다.

이들이 어디 한두 살 먹은 어린아이인가? 행동하고 책임지면 된다.

아걸은 또 한 번 경고했다.

사람들의 싸움이 아니다. 아귀들의 싸움이다. 사람은 돌아가라.

아걸은 사람들을 남겨 두고 휘적휘적 걸어갔다.

스물한 명 중 한 명이 죽고, 한 명이 중상이다. 남은 사람은 열아홉 명, 그들 중 떠난 사람은 없다.

아걸이 성검문 소축십검과 싸운다.

최소한 그 싸움을 본 다음에 마음의 결정을 내려도 늦지 않다.

당장 내일 아침에 급습을 받아서 또 죽는 자가 나올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기다린다.

“이제부터는 좀 바꿔야겠어. 뿔뿔이 흩어져 있는 것도 좋지만 뭉칠 때는 뭉치자고.”

손승이 말했다.

“뭉쳐 봤자 벌이라잖아. 저놈은 말벌이고.”

쌍겸이 툭 쏘아붙였다.

“그렇다고 흩어져 있으면 더 쉽게 사냥당하지. 꼭 떨어져 있고 싶다면 어쩔 수 없겠지만 말야.”

모여 있을 사람은 모여 있고, 흩어질 사람은 흩어진다.

어떤 경우에도 자유의사에 따라서 행동한다. 판단이 잘못되면 목숨으로 대가를 치러야 하므로 누구도 강요할 수 없다. 모여 있다고 해서 죽지 않는 것도 아니고.

* * *

‘아직 칼을 만들지 못했는데.’

아걸은 사방이 확 트인 바위 위에 앉아서 꿈쩍도 하지 않았다.

무릎 앞에 반철도가 놓여 있다. 온종일 쥐고 살아서 육신처럼 느껴진다.

그렇게 소축십검을 기다렸다.

검을 쓴 자가 누군지 모르지만, 나타날 것이다.

이상한 점이 있다.

소축십검은 강하지만 혈사창도 강했다. 한두 초식 만에 쓰러질 사람이 아니었다. 사형들이 칼을 들었다면 가능할까? 소축십검이 단 일 초에 혈사창을 쓰러트린다는 것은 극히 어렵다.

십검의 검을 직접 맞아본 사람이 있다.

일 초에 승부가 갈렸다고 했다. 토탄사의 비석탄은 자신도 상대해 봤지만 쉬운 무공이 아니다. 특히 잠기일력타를 쓰기에는 거리가 맞지 않는다.

비석탄은 원거리 공격법이다.

방법은 하나, 서로의 거리를 급격하게 좁혔다면 가능하다.

실제로 십검은 그렇게 했다. 눈 깜짝할 사이에 다가왔고, 흑무 사이로 검을 쳐 냈다.

소축십검이 무척 강해졌다. 적어도 일홀도 못지않게 강해졌다.

그래서 이런 생각도 해 본다. 이번 공격은 허도기가 명령을 내린 게 아닐 거라는.

소축십검 단독 행동이다.

아걸은 눈을 감았다. 조용히 숨을 가다듬고 소축십검이 나타나기를 기다린다.

* * *

스읏!

숲에서 불쑥 사람이 튀어나왔다.

“웃!”

쌍겸은 즉시 낫을 들고 일어섰다.

나타난 자가 누군지 즉시 짐작된다. 혈사창을 죽이고, 비석을 찌른 자다.

“재수 없게!”

쌍겸은 낫 두 자루를 가슴 앞에서 엇갈려 잡았다.

혈사창과 비석 모두 심장을 찔렸다. 비석은 가죽 갑옷 덕분에 목숨은 건졌지만, 상처가 무척 깊다.

심장만 노리는 놈이다.

“너 소축십검이라며? 잘하는 짓이다. 소축십검이라는 놈이 사람이나 죽이고 다니고.”

“응? 이게 무슨 말이야? 사람을 죽이다니?”

사내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다른 놈인가? 어제저녁에 혈사창을 죽인 놈이 너 아냐?”

“아! 그놈. 그게 사람이었어? 난 개인 줄 알고 죽였지. 난 개돼지는 가차 없이 죽여.”

스릉!

사내가 검을 뽑았다.

쌍겸은 사내가 희롱을 해도 마주 대꾸하지 못했다. 지금은 특히 그랬다.

파앗!

사내가 살기를 토해 내는데…… 바다 한가운데서 거친 폭풍을 만난 느낌이다. 숨을 쉴 수가 없다. 사내는 보이지 않고 귀기 어린 파란 검만 보인다.

‘선수!’

쌍겸도 혈사창이나 비석과 똑같은 생각을 했다.

사내는 상대하기가 무척 어렵다. 여기서 선수까지 놓치면 그야말로 대책이 없다.

쒜에에엑!

쌍겸은 즉시 공격을 시도했다.

왼쪽에 든 낫으로 발등을 내리찍었다. 오른손에 든 낫으로는 내리찍는 것과 정반대 방향, 사내의 하물(下物)을 향해 올려쳤다. 급소를 노렸다.

탕! 탕!

사내가 장난하듯이 검을 쳐 냈다.

너무도 가볍게 휘두른 검에 낫 두 자루가 밀렸다. 좌겸은 왼쪽으로, 우겸은 오른쪽으로 쳐졌다.

쌍겸은 양팔을 좌우로 쫙 벌린 형국이 되었다.

“아!”

부지불식간 탄식이 새어 나왔다.

머리, 가슴, 몸통…… 가운데가 텅 비었다.

천지분착(天地紛錯)이라는 초식이 이처럼 무력하게 갈라질 줄은 몰랐다. 자신이 한 번 움직일 동안 사내는 검을 두 번이나 쳐 냈다. 그리고도 여유가 남아 있다.

스읏!

검은 이미 천중(天中)으로 올라가 있다. 방어막이 전혀 없는 텅 빈 머리를 향해 떨어지기만 하면 끝난다.

타악!

쌍겸은 두 발로 땅을 박차며 뒤로 물러섰다.

이것이 최선이다. 내리치는 검이 더 빠르면 갈라진다. 쫓아와서 심장을 찌르면…… 어쩔 수 없다. 꿰인다.

천지분착에 전력을 쏟았는데, 옷자락조차 건드리지 못하다니.

아! 성검문 무공이 이랬구나.

아걸이 이런 검에 도전하는 거구나. 아니, 이것보다 세 배 빠른 검에 도전한다고 했지.

쒜에에엑!

검이 찔러 왔다. 쌍겸이 피하는 것보다 더 빠르게 심장을 노리면서 달려들었다.

터엉!

쌍겸은 철판교(鐵板橋)를 펼쳐서 상체를 땅에 눕혔다.

이제는 정말 방어책이 없다. 뇌려타곤(懶驢打滾)을 펼쳐서 옆으로 데굴데굴 구르는 수가 있지만, 소축십검이 웃으면서 놔줄 때나 가능하다.

‘이판사판!’

쌍겸은 몸이 찢길 각오를 하면서 재빨리 몸을 굴렸다.

십검은 검을 쓰지 않았다. 대신 히죽 웃으면서 멸시 어린 눈초리로 말해 왔다.

“그렇게 살고 싶어? 별짓을 다 하네?”

“그럼 살고 싶지 죽고 싶냐! 이 미친놈아!”

쌍겸이 버럭 고함을 내질렀다.

“그렇게 악쓰지 마. 어차피 죽을 수밖에 없다는 것, 이제는 스스로 느끼고 있잖아.”

“그래! 너 잘났다. 하지만 내가 곱게 죽을 줄 알아! 몇 푼이라도 목숨값을 받아야지.”

쌍겸이 낫을 들어 올렸다.

이 순간, 그는 마음속으로 깊이 후회했다.

어제, 손승이 같이 있자고 할 때 있을 것을. 뭐가 그리 잘났다고 혼자 떨어져나와서 공격을 받나.

사내가 웃으면서 말했다.

“자, 이번에는 어제 죽은 놈들과 똑같은 초식. 사흔 봤지? 목표는 심장이야. 막아 봐.”

스읏!

시내가 검을 들어 올렸다.

성검문 조명천검 중 직사광류!

한 줄기 빛이 심장을 향해 섬광처럼 쏘아질 것이다. 막거나 쳐 낼 수 없는 빠름으로.

쌍겸은 낫을 꽉 움켜잡았다.

검을 보지 않는다. 오직 상대방의 몸만 본다. 검을 보지 않으면 몸이 사라지는 일도 없다. 검을 위로 들고 있으니 허리 아래만 내려다본다.

‘새끼! 같이 죽자!’

쒜에에엣!

사내가 움직였다. 두 발이 땅에서 떨어졌다. 그런데…… 아! 사내가 사라졌다.

스읏!

어느새 다가온 검이 눈앞에서 번뜩 빛났다. 날카로운 쇠붙이가 심장에 닿았다. 너무 빠르다. 피하고 말고 할 틈도 없다. 차가운 감촉이 살을 파고든다.

‘제길! 재수 없어!’

쌍겸은 이를 꽉 깨물었다. 그때,

까앙!

매우 날카로운 금속성이 울리면서 가슴을 짓눌렀던 검이 옆으로 치워졌다.

쌍겸은 즉시 옆으로 피해서 검권을 벗어났다.

방금 죽음의 문턱을 넘어갔다가 돌아와서인지 정신이 하나도 없다. 그저 멍하다.

스읏!

쌍겸은 아걸이 그를 스치면서 앞으로 나설 때야 비로소 어떻게 된 영문인지 알았다.

아걸이 목숨을 구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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