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화. 第三十九章 준비(準備) (2)
쒜에엑!
다짜고짜, 일언반구 말도 없이 검이 날아들었다.
일체 군더더기가 없는 직사광류다. 직사광류에 실린 힘은 잠기일력타다.
전신의 모든 힘이 검 한 자루에 실렸다.
원래 잠기일력타는 한 번 사용하고 나면 한동안 운신을 하지 못한다. 전신의 모든 진기를 공격 한 번에 쏟아부었기 때문에 일시 탈진 증상이 일어난다.
회복 시간은 내공에 따라서 차이가 난다. 하지만 아무리 못해도 일다경 정도는 손가락조차 들어 올리지 못할 정도로 무력해진다. 검조차 놓아 버리고 축 늘어진다.
그래서 소축십검은 잠기일력타를 매우 신중하게 사용한다.
그런데 호금연은 다짜고짜 잠기일력타를 쳐 냈다.
쒜에에엑!
검이 날아들었다.
순간 반철도가 핑그르르 돈다 싶더니 강력한 회전력을 일으키면서 검을 마주쳐 갔다.
삼십오 대 문주의 회륜도다.
아니다. 엄밀히 말하면 이제 회륜도가 아니다. 회륜도 형식만 빌려 온 전혀 다른 도법이다.
아걸은 도두(刀頭)에 있는 둥그런 환(環)을 적극적으로 사용했다.
환에 검지를 넣고 반철도를 휘돌린다.
젓가락을 돌리듯이 손가락만 까딱거리면 반철도가 크게 한 바퀴 원을 그린다. 원을 그리는 손가락에 탄력을 붙이면 반철도는 더욱더 거세게 휘돈다.
토탄사의 비석탄을 날리는 수법과 비슷하다.
회전력이 극성에 이르면 힘의 집중점과 타격 집중점을 고려해서 칼을 쳐 낸다.
엄밀히 말하면 초식의 흐름을 쫓아서 궤적을 그리는 도법이 아니다. 오직 손끝 움직임과 힘의 집중점을 잘 파악해서 감각으로 잡아채는 감각도다.
쒜에엥! 까아앙!
허공에서 검과 반철도가 부딪쳤다.
순간, 반철도가 검력(劍力)에 떠밀려 허공으로 쑥 날아갔다.
잠기일력타를 실은 검과 진기를 사용하지 않고 감각으로 쳐 낸 반철도는 힘의 차이가 크게 난다.
“칼!”
아걸이 입을 열자마자 손승이 재빨리 자신의 애병인 월도를 던져 주었다.
아걸은 월도를 받아들고 호금연을 겨눴다.
월도 중간을 한 손으로 잡고, 도두는 겨드랑이 사이에 끼었다.
월도를 들고 있는 모습이 무척 어색했다.
월도는 아걸의 병기가 아니다. 반철도와 월도의 사용법은 확연히 다르다. 반철도는 한 손으로 사용하는 병기고, 월도는 두 손으로 사용해야 한다.
칼의 무게도 다르고 길이도 다르다. 칼날의 형태만 같지 쓰는 용법도 완전히 다르다.
호금연이 다시 검을 들어 올렸다.
방금 잠기일력타에 전신의 모든 힘을 쏟아부었는데, 그런데도 또다시 검을 들었다.
진기가 모이고 있다! 어떻게 된 일인가!
호금연의 안색이 새파랗게 질렸다. 검을 쥔 손은 차갑게 얼어붙은 듯했다.
“사검을 수련했군.”
아걸이 중얼거렸다.
“그건 너도 마찬가지 아니냐. 사술을 수련했군. 크큿!”
“사술이 아닌데? 피나는 노력이 보이지 않는 모양이군.”
“후후! 주둥이는 여전히 살았어.”
스스스! 스슷!
호금연이 옆으로 반보씩 움직이면서 기회를 엿봤다.
호금연이 보기에는 아걸이 매우 이상하다.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을 벌였다.
잠기일력타는 빠르기가 빗살을 능가한다.
그뿐만 아니라 진기가 한 점이 밀집되기 때문에 어떤 병기도 단숨에 파괴해 버린다. 내공이 천하제일이라고 해도 막지 못할 정도로 파괴적이다.
원래 잠기일력타는 필살 검이다.
전신의 모든 진기를 쏟아붓기 때문에 반드시 죽이지 않으면 내가 당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매우 신중하게 사용한다.
아걸도 예전에는 지금처럼 편안하게 잠기일력타를 받아 내지 못했다. 몸이 꿰뚫리는 치명타를 입었다.
물론 심장이 뚫리지는 않았다.
잠기일력타는 전문적으로 심장만 노리는데, 검이 몸을 쑤시기는 했지만, 심장을 찌르지는 못했다.
호금연이 사검을 수련한 것도 아걸 영향이 컸다. 아걸이 잠기일력타를 당하고도 일어서는 모습을 보았으니 대책을 생각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그래서 두 번, 세 번 사용할 수 있는 사검을 수련했다.
사검은 생명을 소진시킨다.
두 번 다시 검을 쓰지 못할 수도 있다.
단전을 완전히 망가뜨릴 정도로 진기가 폭풍처럼 터져 나오기도 한다.
모든 부작용이 다 열려 있다.
하물며 지금 아걸 모습은 어떤가? 아주 멀쩡하다.
사실 호금연의 잠기일력타는 아걸이 막은 게 아니다. 반철도가 막았다.
호금연이 던진 직사광류는 아걸의 손을 떠난 반철도를 후려쳤다.
아걸이 칼을 잡고 있어야 칼을 통해서 진기를 충격할 수가 있는데, 검과 아걸을 연결하는 칼이 연결을 끊어 버린 상태라서 아걸을 타격하지 못했다.
잠기일력타의 맹점이다.
아걸은 잠기일력타에 타격당하지 않는 방법을 찾아냈다.
잠기일력타로 펼치는 직사광류에 이런 맹점이 있다는 것은 미처 알지 못했을 것이다.
물론 맹점을 찾아내는 것과 사용하는 것은 별개 문제다. 하지만 분명히 찾아냈고, 사용했다. 앞으로 잠기일력타는 아걸에게 피해를 주지 못할 것이다.
스스스슷!
호금연이 검에 진기를 집중시켰다.
“그 검 쓰면 넌 죽어.”
아걸이 차분하게 말했다.
하지만 아걸의 눈은 호수처럼 가라앉아서 호금연의 검을 쫓아갔다.
호금연 같은 자를 상대하면서 진기를 전혀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안공을 일으킨다. 몰안을 일으킨다. 검의 흐름을 본다.
진기 사용은 딱 거기까지다.
병기를 사용하는 것은 비무를 하면서 터득한 진기 없이 칼 쓰는 법을 사용한다.
쒝!
아주 짧은 파공음이 터졌다.
호금연이 신형을 띄웠다. 화살처럼, 섬광처럼, 빗살처럼 빠르게 날아온다.
순간, 아걸은 몸을 빙 돌렸다.
몸이 돌고, 겨드랑이에 붙들린 월도가 따라서 휘돈다.
월도를 잡은 것은 손이지만, 사실 힘을 가하는 곳은 겨드랑이다. 겨드랑이에 끼워 둔 도두를 통해서 육신의 힘이 월도에게 전달된다.
아걸이 작게 원을 그리지만, 월도는 크게 원을 그린다.
힘의 집중점! 힘을 터트릴 지점!
타격 집중점은 호금연의 검이다. 검을 치기 위해서는 어디에다가 힘을 쓰면 좋을까?
타앗! 쒜에에엑!
아걸의 몸을 떠난 월도가 섬광처럼 짓쳐들어오는 호금연을 향해 날아갔다.
호금연은 월도를 무시하지 못했다.
월도가 너무도 정확하게 그를 향해 쏘아져 왔다. 아걸을 치는 정 중앙에 월도가 들어선다.
쒜에에엑! 까앙! 깡깡깡깡깡!
호금연은 검으로 월도를 쳐 냈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월도가 앞을 가로막기 때문에 피해갈 수가 없다.
이 순간, 호금연의 잠기일력타가 월도를 무차별적으로 가격했다.
까앙! 깡깡깡!
일 점 집중 타격이다. 타격이 이루어지는 순간 전신 진기가 쫙 풀려나갔다.
월도를 사정없이 후려쳤다.
월도를 치는 게 의미가 없는데, 이미 아걸의 몸을 떠난 병기인데, 잠기일력타가 터져 나갔다. 호금연조차도 중간에 거둬들일 수 없는 힘이다.
그때, 아걸이 어느새 땅에 떨어진 반철도를 주워 들고 호금연의 옆구리를 스쳐 지나갔다.
퍼억!
둔탁한 파육음이 터졌다.
뭔가 묵직한 몽둥이가 쌀가마니를 후려치는 듯한 소리였다.
“큭!”
호금연이 비명을 흘렸다.
이번에도 아걸은 초식을 쓰지 않았다. 신법을 사용해서 호금연의 몸 곁을 스치듯 지나갔다.
팔은 몸에 붙어 있고, 칼은 손에 잡혀 있다. 몸이 움직이니 칼도 움직인다. 칼을 일부러 사용하지 않았다. 저절로 칼이 움직이게 했다.
“끄으윽!”
호금연이 짙은 신음을 흘리면서 쓰러졌다.
아걸은 무표정하게 호금연의 시신을 쳐다봤다.
일말의 동정심도 느끼지 않는다.
어떤 죄책감도 일어나지 않는다.
호금연이 잠기일력타를 두 번째 쓰는 순간, 그는 이미 정상적인 상태가 아니었다.
그는 호금연으로 죽지 않았다. 사인으로 죽었다.
아걸은 땅에 떨어진 월도를 집어서 손승에게 돌려주었다.
“월도가 많이 상했습니다.”
“이까짓 것 갈면 되지.”
아니다. 결코, 갈아서 해결되지 않는다. 호금연의 검이 월도를 갈기갈기 찢어 놨다. 도신이 삶은 감자처럼 썰려 있다. 어떤 곳은 절반 이상이나 패였다.
“이게 성검문의 검입니다.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손승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모두 마찬가지다. 아걸의 싸움을 지켜본 사람들은 누구도 입을 열지 못했다.
호금연이 보여준 빠름은 인간의 것이 아니다.
두 사람이 격돌했는데, 창피한 말이지만 격돌 순간을 정확하게 보지 못했다.
아걸이 사용한 무공은 자신들에게 썼던 게 분명하다. 하지만 호금연을 상대할 때는 거의 열 배 정도는 빨라진 듯했다. 사람이 이렇게도 빨라질 수 있구나 싶었다.
이 사람들은 자신들의 상대가 아니다!
“지금 그 칼로 허도기를 상대하면 어떻게 되나?”
나통(羅通)이 물었다.
나통은 쾌검의 달인이다.
정통 도문(道門)인 청성파(淸城派)의 문하로, 도인(道人)이기도 하다. 지금은 환속해서 도복을 벗었지만, 한때는 능허자(陵虛子)로 불리기도 했다.
당연하지만 그의 무공은 청성파 검학인 사전절광검(射電絶光劍)이다. 빠르기가 벼락을 쏘아 낸 것과 흡사하다고 무림 전체가 인정한 정통 검학이다.
나통은 비무를 통해서 아걸을 수십 번도 넘게 후려쳤다.
물론 목검을 사용했다. 진검을 썼다면 아걸의 영혼은 걸레가 되어서 너덜거렸을 것이다.
모두 나통과 같은 경험이 있다.
그들은 아걸을 이겼다. 아걸이 진기를 사용해서 진짜 무공을 펼친다고 해도 쉽게 지지 않을 자신도 있었다. 아걸이 이 정도라면 허도기도 별것 아니지 않나 하는 생각까지 치밀던 참이다.
그런데 지금 진짜 싸움을 보니 모든 게 터무니없는 망상이었다.
“지금 이 칼로 허도기를 상대한다면…… 글쎄요? 옷깃도 스쳐보지 못하고 심장이 뚫릴 것 같은데요? 하하하. 예전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아직 멀었어요.”
아걸이 피식 웃으면서 걸어갔다.
모두 침묵했다.
아걸이 악귀들의 싸움이라고 했다. 인간이 설 자리는 없다고 했다.
그 말이 맞는다.
아걸이 자신들을 꿀벌이라고 했다. 소축십검을 말벌이라고 했다.
그 말이 맞는다.
지금까지 무림 명숙들이 왜 성검문에 꼼짝하지 못했는지 이유를 알겠다. 이런 검을 봤기 때문에 그렇다. 솔직히 호금연의 검을 봤다면 자신 있게 나서서 싸우겠다고 할 사람이 몇이나 될까.
수많은 사람이 성검문에 비무를 청했지만 모두 무너진 이유도 알 것 같다.
혈무대에서 성검문 무인들이 보여 준 무공은 대단히 정제된 것이다. 많은 사람이 지켜보는 앞에서 검을 썼기 때문에 상당히 정중하게 상대했다.
실제로 이들이 아귀처럼 변하면 지금과 같은 검이 된다.
오직 상대방을 죽이고자 하는 검, 빠르고 강한 검, 악랄한 검.
이런 검을 탓할 수는 없다. 원래 싸움이란 이런 것이다. 오직 죽이는 것이다.
어떻게 할까? 자신들은 아걸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아걸도 그런 점을 알고 있어서 따라오지 말라고 하는 것이다. 계속 쫓아가면 자신들은 떠먹기 좋은 밥이 될 뿐이다.
“난 그래도 따라가야겠어. 아직 칼을 만들지 못했다잖나. 계속 비무 상대라도 해 줘야지. 나를 제일 먼저 찾아왔으니까 끝까지 가 볼 생각이다.”
손승이 말했다.
“큭큭! 난 더하지. 목숨값까지 빚졌잖아. 꼼짝없이 뒈지는 건데. 빚을 졌으면 갚아야지. 그런데 내가 정말 이해하지 못해서 그러는데, 아걸 같은 고수가 왜 우리 같은 놈들과 비무를 하는 거지? 그 이유, 아는 사람 있어?”
쌍겸이 말했다.
상수에게는 배울 게 많다. 수십, 수백 번 비무를 해도 계속 배운다. 하지만 하수에게 하수와 무공 수준을 맞춰서 비무를 하면 배울 게 없다. 도대체 뭘 배우겠다는 것일까?
모두 대답이 없자, 쌍겸이 ‘끄응!’하고 이 앓는 소리를 냈다.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모두 마찬가지다.
손승이 말했다.
“자, 그럼 떠날 사람은 떠나고 남을 사람은 남자고. 지금까지처럼 이건 모두 알아서 하지.”
손승이 일어섰다.
그때 쌍겸이 말했다.
“이봐! 자네 뭐 좀 깨끗하게 살았던 거 같은데, 난 꽤 지저분하게 살았어. 그래서 서로 상종하지 못할 부류인 건 알겠는데, 그래도 같이 머물기로 했으니까. 어때? 오늘 저녁 같이 먹는 게?”
“하하하!”
손승이 웃으면서 쌍겸에게 손을 내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