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화. 第三十九章 준비(準備) (3)
침상에 몸을 눕히면 일시 몸이 나른해진다.
큰 걱정이 없을 때, 일과를 편안하게 마쳤을 때, 모든 일이 술술 풀려나갈 때는 더 나른해진다.
침상에 눕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고 느껴진다.
이부상서(吏部尚書) 류장촌(劉莊村)은 축시정(丑時正:오전 2시)가 다 되어서야 침상에 몸을 눕혔다.
겨울을 앞두고 인사이동이 크게 있다.
사람을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것도 힘들지만, 내 사람을 꽂아 넣기는 더 힘들다.
어떻게든 요직에 내 사람을 넣어야 한다.
매우 골치 아픈 일이지만 다행스럽게도 별다른 장애 없이 슬슬 풀려나가고 있다.
“아함!”
이부상서는 길게 기지개를 켰다.
그때, 침상 속에 벌레가 기어들었는지 뭔가가 엉덩이 부근을 따끔 깨물었다.
“음?”
그는 이불을 거둬 내고 침상을 살펴보려고 했다. 하지만 몸이 움직이지 않는다. 이미 사지가 마비되었다.
‘암습!’
퍼뜩 느껴지는 게 있다.
정이품관(正二品官)쯤 되면 원한이 없어도 암습을 받을 때가 있다. 하물며 자신은 원한도 많다. 누군가가 암습을 걸어와도 하등 이상하지 않다.
류장촌은 눈을 끔뻑거렸다.
상대가 즉시 죽이지 않고 몸을 마비시킨 것은 그에게 할 말이 있다는 뜻이다. 뭔가 타협 거리를 제시할 것 같은데, 그러면 목숨에는 지장이 없다.
스읏!
누군가가 침상 밑에서 기어 나왔다.
여인이다. 젊은 여인에게서 풍기는 상큼한 분 내음이 콧속을 간질인다. 매우 좋은 냄새다.
“누구냐!”
류장촌이 위엄 있게 물었다.
“방금 찌른 것은 홍화사(紅花蛇)의 독인데, 사지를 마비시키는 데는 아주 완벽히 그만이에요.”
침상 밑에서 기어 나온 여인이 나긋나긋한 음성으로 말했다.
“누가 보내서 온 거냐!”
“공부 허도기.”
“뭐? 후후후! 장난하지 말고 말해라. 이실직고하면 목숨은 보장해 주마.”
“어멋? 지금 누가 누구 목숨을 잡고 있는데 그런 말씀을.”
여인이 기막히다는 듯 말했다.
“원하는 게 뭐냐?”
“잠깐만요. 나리, 몸 좀 덥혀 드리고. 이건 열양단(熱陽丹)이라고 하는 건데, 이걸 복용하면 몸이 따뜻해지실 거예요. 억지로? 아니면 그냥 드실래요?”
“……”
류장촌이 미간을 찌푸린 채 여인을 쳐다봤다.
여인은 매우 아름답다. 다소 차가운 듯하지만 눈웃음을 보면 화가 사르르 가라앉는다.
여인이 섬섬옥수를 들어서 검은 단환을 입안에 넣었다.
단환은 매우 맛이 좋았다. 보약을 먹을 때처럼 입에 넣자마자 구수한 맛이 혀끝을 간질였다.
“자, 입은 헹구셔야지.”
여인이 류장촌의 머리를 받쳐 들고 입에 물잔을 댔다. 그리고 살살 물을 흘려 넣었다.
“뭐하는…… 흑!”
류장촌은 물을 마신 후, 여인을 보고 물었다. 하지만 곧 안색이 딱딱하게 경직되면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으으으……”
그가 신음을 흘렸다.
여인은 침착하게 류장촌을 침상에 눕혔다. 그리고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이불까지 정돈했다.
“후우욱!”
이부상서가 깊은숨을 토해 냈다.
이승에서 내뱉는 마지막 숨이다.
홍화사의 독은 한 시진 후면 자연 소멸한다. 침을 찌른 곳도 항문이기 때문에 발각될 우려가 없다. 항문에 박힌 미세한 점 하나를 찾아낼 사람은 흔치 않다.
열양단 또한 흔적 없이 사라진다.
하지만 독과 단이 체내에서 만나면 혈행(血行)이 무척 빨라진다.
심장이 버티지 못한다.
침상 밑은 미리 닦아 두었다. 누가 뒤져 봐도 아무런 흔적을 찾을 수 없을 것이다.
사사는 마지막으로 창문을 활짝 열고 환기를 시켰다.
자신의 냄새를 지운다.
스읏!
사사는 바깥 동정을 살펴봤다.
이부상서는 고관대작이라서 부리는 하인이 무척 많다. 군졸이 경비도 선다. 하지만 무공이 높지는 않다. 아니, 거의 기초적인 수준에 불과하다.
이런 저택에 잠입했다가 사라지기는 무척 쉽다.
스으으읏!
사사는 어둠 속으로 신형을 쏘아 냈다.
암살이 시작되었다.
최대한 눈치채지 않게끔 시간을 충분히 갖고 암살을 진행할 생각이다.
허도기에게는 무인 백 명을 잃는 것보다 고관 한 명을 잃는 게 더 타격이 크다.
‘사오일에 한 명꼴로 죽이면 네다섯 명은 죽일 수 있어. 그다음은 의심할 것이고…… 본격적인 암살은 한 달 후쯤에 시작하면 돼. 한 번에 확 몰아치는 거야.’
암살은 곧 발각된다.
지금처럼 은밀히 스며들어 갔다가 무사히 빠져나오는 예는 없어질 것이다.
하지만 그때쯤이면 허도기는 이미 상당히 많은 수족을 잃은 후다.
‘천천히. 급한 것 없어.’
몽설은 자신을 다독였다.
* * *
“이부상서 류장촌 대감께서 돌아가셨다는 보고입니다.”
적위군장 사구정이 보고했다.
“류 대감이? 언제, 어떻게?”
“어젯밤에 침소에 드셨다가 깨어나지 못하셨습니다. 심장마비로 돌아가셨습니다.”
“심장마비? 그 양반 심장 튼튼했는데?”
허도기가 눈살을 찌푸렸다.
“타살을 염두에 두고 시신을 세밀히 확인해 봤습니다. 깨끗했습니다. 심장마비라면 독을 사용했을 텐데, 중독 증상도 없고 독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침입 흔적도 없었겠지?”
“네.”
“네 판단은 뭐야?”
“심장마비로 추정됩니다.”
“추정?”
“세상에는 알려지지 않은 비책이 많이 있는지라…….”
“뭔가가 있는데 네가 발견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는 말이군.”
“네.”
“음……!”
허도기가 침음했다.
“그 양반도 참…… 이렇게 바쁠 때 죽으면 어쩌란 얘긴가. 곧 사람 배치를 끝내야 하는데. 그 사람도 참 대책이 없군.”
허도기가 혀를 찼다.
이부상서 류장촌은 중요한 인맥이다.
그가 황궁 사람들을 관리하고 있다. 그가 죽었으면 당장 지부사(知部事)가 임무를 대행할 텐데, 지부사는 허도기 사람이 아니다. 오직 군왕에게 충성한다.
“조문 가셔야죠?”
“가야지. 준비해.”
“넷!”
사구정이 물러났다.
적위군장 사구정은 조심스럽게 말했지만, 적위군이 확인했다면 심장마비로 죽은 게 확실하다.
적위군은 이미 이부상서의 집도 샅샅이 수색했다.
아마 모르긴 해도 기왓장까지 모두 들춰 봤을 것이다.
하인, 하녀들을 비롯한 집안사람들 모두에게 이상 여부를 타진했을 것이다.
침입자가 없다는 말을 믿어도 좋다. 심장마비로 죽었다는 말도 믿는다.
“왜 하필 이때 죽어서는. 평소 건강 좀 신경 쓰지 않고.”
허도기는 미간을 깊이 찡그렸다.
이번 인사에서 병권을 완전히 틀어쥐려고 했는데,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 * *
적위군장 사구정이 또 들어섰다.
사구정은 아주 중요한 일만 보고한다. 그렇지 않은 보고는 문서로 대체한다.
“자네 오늘 자주 들어오네?”
“좋지 않은 소식입니다.”
“또 누가 죽었는데?”
허도기는 암살을 떠올렸다. 이부상서에 이어서 또 다른 사람이 죽었다면 틀림없이 암살이다.
사구정이 말했다.
“구군 호금연이 죽었습니다.”
“뭣!”
허도기가 깜짝 놀라서 사구정을 쳐다봤다.
“사구정이 아걸을 찾아갔던 모양입니다. 당했습니다.”
“흐음!”
허도기는 의자에 몸을 깊이 묻었다.
“아걸은?”
“전혀 손해가 없습니다.”
사구정이 차분하게 말했다.
“그럴 리가 있나? 호금연이…… 호금연이 검 한 번 긋지 못하고 죽었다는 말이야?”
“사실입니다.”
“허어!”
허도기가 크게 탄식했다. 탄식을 터트리는 도중에도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 역력했다.
사구정이 다른 보고를 했다.
“또 하나 보고드릴 게 있습니다. 활검문에서 호금연의 시신을 수습했는데, 성검문으로 운구하지 않고 시신 처리 여부를 묻는 전갈만 보냈습니다.”
팟!
허도기의 눈에서 기광이 일렁거렸다.
“운구를 안 해?”
“네.”
성검문 문도가 외지에서 죽으면 인근 문파가 수습해서 본문으로 운구하는 것이 관례였다. 이 일은 지금까지 한 번도 깨지지 않은 무림 불문율이었다.
그것을 활검문이 깼다.
활검문은 아걸 때문에 손해를 많이 봤다. 십검 중 두 명이 죽고 문도도 많이 잃었다.
한데 성검문은 일절 보상하지 않았다. 그 정도는 예하 문파가 당연히 해야 한다는 태도였다. 앞으로도 그 정도 일은 하라는 무림에 대한 통보이기도 했다.
그 일이 많이 섭섭했던 것 같다.
활검문이 운구하지 않고 소식을 전한 것은 성검문이 직접 와서 수습해 가라는 뜻이다.
성검문의 위상이 많이 떨어졌다.
“사구정.”
“네.”
“활검문에 송조덕이라고 있다. 꽤 강하지. 그 밑에 십검이 있어. 날 흉내 낸 것 같아. 소축십검을 본떠서 십검을 길러 냈는데, 무공이 쓸만해. 인근 일대에서는 꽤 강한 검으로 통하지.”
“네.”
“나가 봐.”
“네.”
사구정이 머리를 숙였다.
허도기는 일체 다른 명령을 내리지 않았다. 하지만 숨은 명령은 분명했다.
이쯤에서 무림을 다시 한번 정비할 필요가 있다.
한 놈을 박살 내서 다른 문파들이 딴생각하지 못하게끔 단속한다.
저벅! 저벅!
사구정이 물러갔다.
“으음!”
허도기는 인상을 심하게 찡그렸다.
호금연이 아걸에게 당해? 그럴 리 없다. 호금연은 잠기일력타를 세 번이나 연속으로 쳐 낼 수 있다. 지척에서 섬광 세 번이 터진다면 누구도 피하지 못한다.
그런데 당했다. 아걸은 전혀 손해가 없다. 검이 스치지도 않았다. 완벽하게 이겼다.
‘이건 불가능해.’
허도기는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도대체 아걸은 어떤 칼을 사용한 것일까? 자신에게 펼쳤던 일홀도라면 이런 결과가 나올 수 없다. 분명히 다른 칼을 썼기 때문에 호금연이 당했다.
아걸 주변에 은자들이 많이 있다.
일찍이 무림을 등지고 은거했던 자들인데, 신분조차 파악되지 않는 자가 태반이다.
아걸이 이놈들과 희한한 짓거리를 하고 다닌다는 보고는 들었다.
아걸이 어디 있는지는 알고 있다. 무슨 짓을 하고 다니는지도 안다. 아걸이 은거 무인을 찾아다닌다는 사실은 이미 비밀도 아니다. 많은 사람이 알고 있다.
아걸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비무를 하고 다닌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전쟁터에 뛰어들어서 칼춤을 추는 게 낫다. 악귀가 되면 칼이 처절해진다.
아걸은 자신에게 검을 네 번이나 맞고도 언제 암살 같은 게 있었냐는 듯이 돌아다닌다. 찾아올 테면 찾아오라는 듯이 정체를 환히 드러내 놓고 다닌다.
허도기는 아걸을 죽이지 않는다.
아걸을 이용할 수 있다. 그래서 일부러 살려 두고 있다.
그런데 놈의 무공이 폐관 수련을 통해서 두 배 이상 강해진 호금연을 누를 정도로 강하다면…… 문제가 된다.
“하! 이놈 정말 계륵이네.”
허도기가 인상을 찡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