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화. 第三十九章 준비(準備) (5)
아걸은 계속 움직였다.
성검문주와 비무를 보름 앞둔 병인년 사월 초하루에는 초도성에서 백여 리 떨어진 선암(仙巖)에 도착했다.
남은 시간이 보름이다. 보름 동안 백여 리만 이동하면 되니, 지척이라고 할 수 있다. 성검문의 눈과 귀가 사방에 쫙 깔린 성검문의 절대 영역이다.
“제게는 별호가 하나 더 있습니다.”
“혈도비자 말고?”
“명부판관이라고 합니다.”
“며, 명부판관!”
아걸을 쫓아오던 사람들도 명부판관이라는 말에는 깜짝 놀라서 되물었다.
“그럼 사월 보름에 있다는 비무가……?”
“제 비무입니다.”
“맙소사!”
은거 무인들은 입을 쩍 벌렸다.
“이거 뜻하지 않게 큰 싸움에 휘말렸는데.”
손승이 중얼거렸다.
이러려고 아걸을 쫓아온 것은 아니다. 이런 상황은 정말 예상하지 못했다.
사실, 약간 당혹스럽다.
아걸이 허도기와 비무를 할 것이라는 사실까지는 생각했다. 하지만 그 싸움이 바로 온 세상의 이목이 쏠리는 싸움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아걸은 혈도비자와 명부판관이라는 별호를 동시에 가지고 있다.
혈도비자와 명부판관은 성격이 전혀 다르다. 혈도비자는 악이고 명부판관은 선이다. 칼을 휘둘러서 거침없이 사람을 죽이면 혈도비자이고, 죄지은 사람을 징계하면 명부판관이다.
두 사람이 결코 한 사람일 수 없는데…… 호금연을 죽인 아걸과 비무하는 아걸이 전혀 다르듯이, 전혀 상반된 별호가 한 사람에게 집중되어 있다.
“큭큭! 명부판관. 좋네.”
“해 주실 일이 있습니다.”
“뭔데?”
“소문을 내 주세요. 제가 도착했다는.”
“비무하러 왔다고 동네방네 떠들어 달란 말이지? 큭큭! 그래야지. 그럼 허도기도 기어 나오지 않을 수 없겠네. 이 싸움, 어림없다고 생각했는데, 정말 벌어지네?”
쌍겸이 말했다.
* * *
아걸은 행색에 약간의 변화를 주었다.
얼굴이 드러나지 않게 깊은 방갓을 썼다. 옷도 칠흑처럼 어두운 흑의를 입었다.
손에 반철도까지 드니 영락없이 명부판관이다.
은거 무인들은 한 사람이 마을 하나씩을 맡아서 소문을 퍼트렸다.
“명부판관이 선암에 왔다는데, 들었소?”
“기어이 왔네. 그 정도 분탕질 쳤으면 됐지, 기어이 문주님하고 칼을 섞으려고 하네. 에이!”
“성검문주님께 야단맞으러 왔다는데 뭘 성을 내.”
“문주님이 오죽 바쁘신 분이야? 공사다망하신 분한테 찝쩍거리니까 그렇지.”
“그런가?”
“좌우지간 이번에는 다리 몽둥이를 분질러 놔야 해. 두 번 다시 헛짓거리 못 하게.”
소문을 들은 사람들은 대부분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성검문 영역에서 성검문을 공격하는 사람은 적이다. 아주 못된 사람이다.
명부판관은 먼저 싸움에서 소축십검인 독안혈검 전가성을 죽였다.
비무 도중에 일어난 불상사이기 때문에 양쪽 모두 책임지거나 추궁할 문제는 아니다.
그래도 사람들은 명부판관을 욕했다.
명부판관은 이번에 공부 허도기에게 도전해서 허도기가 왜 도전받아야 했는지, 세상에 어떤 잘못을 했는지 말해야 한다. 세상은 그것을 궁금해한다.
만약 명부판관이 그 부분에 대해서 침묵한다면 허황된 명예심 때문에 성검문을 공격한 것이 된다.
명부판관은 잘못한 사람만 벌한다는 인상이 무너진다.
“그런가? 그래도 명부판관이 문주님께 비무를 청할 때는 이유가 있지 않겠어?”
“이유는 무슨…….”
사람들은 이 부분에서만큼은 꼬리를 내렸다.
명부판관이 너무 뚜렷하게 발자취를 남겨 놨다. 확실하게 죄지은 사람만 처벌했다.
그런 과거 때문에 무조건 성검문 편만 들지 못한다.
은거 무인들은 명부판관이 도착했다는 소문을 만천하에 알렸다.
스무 명이 일사불란하게 사방으로 퍼져서 하루에 서너 명씩의 얘기를 한다. 얘기를 들은 사람들은 곧바로 다른 사람들한테 말하게 되어 있다.
소문은 급속히 퍼져 나갔다.
* * *
“명부판관이 기어이 오네.”
“공판까지 세워 놓은 약속인데 오지 않을 리 없지. 올 줄 알았어.”
“그때 상당히 심하게 당했는데 다 나았나 보지?”
“무인들의 몸은 무쇠 덩어리라니까. 듣자 하니 이번에는 길을 오는 중에도 비무를 한대. 그만큼 절박하다는 거지. 아무래도 상대가 천하제일인이잖아.”
“그런데 공부가 비무에 응할까? 공부가 비무에 나선 적은 한 번도 없잖아.”
“그래도 약속했는데 나서겠지. 제자까지 죽었는데, 당장 복수하지 못한 게 한일걸?”
사람들이 수군거렸다.
어떤 사람은 무모한 도전이라고 했다.
어떤 사람은 이번에야말로 전가성의 복수를 해야 한다고 했다.
온갖 추측이 난무한다. 하지만 성검문은 어떠한 입장 표명도 하지 않았다.
분명한 것은 성검문은 지금까지 어떠한 비무도 거절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성검문이 탄생한 이래 정도인이든 마도인이든 누가 도전해 오던 다 받아 주었다.
싸움은 이루어질 것이다.
실제로 사월 보름에 벌어질 비무를 보고자 중원 각지에서 무인들이 몰려들고 있다. 일생에 한 번 보기 힘든 큰 비무인 만큼 안목을 넓힐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는 것이다.
혈무대 주변에 거적때기를 깔고 숙식하는 사람도 생겼다.
상황이 이 정도면 허도기가 나서지 않을 수 없다. 명부판관이 싸우지 않을 방법도 없다.
누군가가 중얼거렸다.
“누가 됐든 둘 중의 하나는 인생 끝나겠군.”
* * *
“부탁합니다.”
아걸이 반철도를 들었다.
“이게 정말 의미가 있는 건가?”
아걸은 대답하지 않고 반철도를 힘주어 잡았다.
그와 맞서 싸우는 사람은 무려 다섯 명이나 된다. 비무자를 두 명에서 세 명으로, 네 명으로 늘리더니, 이제는 다섯 명이 한꺼번에 공격하라고 요구한다.
“또 다섯?”
“네.”
그러지 비무를 하지 않는 열네 명은 사방으로 흩어져서 사방을 감시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사람들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길을 막았다.
아걸이 비무하는 모습을 보여 주지 않으려는 것이다.
아걸은 상관없다고 했지만, 은거 무인들의 생각은 다르다.
아걸은 자신의 칼을 보여 주고 있다. 대체로 칼을 보여 주면 연구를 하게 된다. 파해 방법을 찾게 된다. 아무것도 모르고 싸우는 것과 상대방의 칼을 환히 알고 싸우는 것은 완전히 다르다.
하물며 상대는 허도기다.
허도기 같은 경우, 아걸의 검을 한 번만 보면 파해 방법을 즉시 찾아낼 것이다.
아걸은 정말 형편없다. 너무 형편없어서 정말 이런 칼로 허도기와 싸울 수 있는지 의문스럽기까지 하다.
누구라도 아걸이 비무하는 모습을 보면 그런 생각을 하지 않는 사람이 없다.
겸사겸사 아걸이 싸우는 모습을 감춘다.
“좀 살살 때려. 불쌍해서 못 봐주겠어.”
아직 검상에서 회복되지 않은 비석 장태전이 바닥에 누운 채로 말했다.
타타탁! 타타타탁!
둔탁한 소리가 울렸다.
사방을 경계하는 무인들에게는 이미 익숙한 소리다.
각종 병기가 아걸을 난타한다. 칼등으로, 검집으로, 헝겊으로 둘둘 감은 쇠뭉치로…… 온갖 병기가 머리를 제외한 모든 부위를 사정없이 강타한다.
옆으로 스치듯 지나가는 병기도 있다.
아걸을 격중시키지 못한 것이 아니라 일부러 때리지 않으려고 병기를 틀었다.
하지만 그래도 역시 쇠붙이, 한 대씩 강타할 때마다 아걸은 뼈가 부러지는 듯한 충격을 받는다.
아걸은 한 명하고 비무할 때도 얻어맞았다. 두 명하고 싸울 때는 더 얻어맞았다. 다섯 명하고 손속을 겨루니 아예 제대로 된 반격조차 하지 못한다.
타타탁! 타타타탁!
사방에서 두들겨 댄다. 마치 동네북을 두들길 때처럼 사정없이 후려친다.
왜 이런 비무를 계속하자는 것인지 모르겠다.
아걸의 몸을 난타하는 소리가 다듬이 소리처럼 맹렬하게 번져 나갔다.
“세 분만 더 부탁합니다. 가능하겠습니까?”
아걸이 기가 막힌 소리를 했다.
다섯 명만 해도 온몸이 골병들 정도로 얻어맞으면서 거기에 세 명이 더 가세해 달란다.
여덟 명이 한 사람을 둘러싸면 그야말로 사람으로 원을 그리게 된다. 그리고 여덟 명이 일시에 공격하는 것도 비효율적이다. 진법이 짜여 있다면 모를까.
은거 무인들은 각기 병기가 다르다. 짧은 병기, 긴 병기, 줄에 이어진 승표도 있다. 합공만 한다고 능사가 아니다. 공격을 시도하다가 서로 손발이 엉키면 하지 않느니만 못하다.
“생각한 것이 있으니까 합공을 요청하는 것이겠지. 우선 우리끼리 손발 좀 한 번 맞춰 보고.”
손승이 고개를 끄덕였다.
여덟 명은 가상의 적을 가운데 두고 서로 합공을 펼쳐 봤다.
각기 공격할 시간을 노려서 치고 들어갔다.
쒜에에엑! 타타타탁!
확실히 서로 엉킨다.
쌍겸은 아예 낫을 쓰지 못한다. 던지지도 못하고, 달려들어서 근접전을 펼치지도 못한다. 쌍겸을 던지면 아군이 맞는다. 안으로 파고들어서 낫으로 찍으려고 하면 다른 사람이 펼친 공격을 아걸 대신 받아 내는 형국이 된다.
결국, 멍청하게 서 있는 수밖에 없다.
“넷씩 나누지. 네 명이 치는 거야. 동서남북에서 네 명이 치고, 치자마자 빠져. 그 사이, 다른 네 명이 즉시 쳐들어가. 공수 전환이 무척 빨라지는 거야.”
“해보지.”
쒜에에엑! 타타타탁!
네 명이 먼저 공격하고, 그들이 빠지는 동안에 다른 네 명이 공격해 들어간다.
한 번 치고는 유감없이 빠져나와야 한다.
초식 전환은 불가능하다. 한 번씩밖에 치지 못하기 때문에 일격 필살만 노린다.
드디어 빈 곳을 찾아냈다.
자신이 공격해 들어갈 공간이 생겼다.
다섯 명으로 합공을 펼친 적도 있다. 한 명이 죽어서 네 명이 공격하니 공간이 훨씬 넓어서 좋다.
공격은 배로 빨라지고, 위력은 한층 강해졌다.
“이거 좋은데? 이건 막기 힘들어.”
공격하는 사람이 소축십검 여덟 명이다. 그들이 네 명씩 나눠서 합공을 펼친다.
“아걸이 이걸 막을 수 있을까?”
“당연히 못 막지. 뭘 물어?”
예상했던 대로 아걸은 정신없이 두들겨 맞았다.
반철도는 거의 무용지물이다. 장난감이다. 장식용으로 들고 있을 뿐 쓸 생각을 하진 못한다.
타타타탁!
네 명이 사방에서 몰아쳐 갔다. 일격을 두들기고는 즉시 빠졌다.
그들이 물러서는 동안, 곁을 스쳐서 공격해 들어가는 사람들이 느껴졌다.
합공을 연습해 볼 때와 실전 사용은 느낌이 전혀 다르다.
퍼억!
둔탁한 소리가 터졌다.
아걸의 이마가 깨져서 피가 흘러내렸다.
“머리는 치지 마. 피나잖아!”
쾌검을 잘 쓰는 나통이 소리쳤다.
“제길! 몸뚱이는 때릴 데가 있고? 어깨며 옆구리며 온통 멍투성이라서 때릴 수가 없잖아.”
그들이 병기를 쳐 낼 때마다 아걸은 인상을 찡그리면서 몸을 웅크렸다. 반철도를 쓰려고 사력을 다하지만, 여덟 명은 칼을 들어 올릴 틈조차 주지 않았다.
표두 대신 쇳덩이를 매단 승표가 칼 든 손을 쳤다.
손등이 얼얼해지면서 검붉게 물들었다. 한 대만 맞고도 벌써 멍이 들었다. 그러니 병기를 들어 올린다는 것은 꿈도 꾸지 못한다. 반격? 생각하지도 못한다.
쒜에에엑! 퍼퍼퍼퍽! 쒜에엑! 퍼퍼퍽!
몸뚱이에 병기가 작열했다.
이것이 실전이었다면 아걸은 시신조차 남아 있지 않았을 것이다. 잘 다져 놓은 고기처럼 육신이 잘게 썰려 있을 것이다.
“하아!”
아걸이 깊은숨을 토해 내면서 반철도를 축 늘어뜨렸다.
오늘 비무는 끝났다.
아걸은 선 채로 눈을 감았다.
지금까지 벌인 비무를 복기하는 것으로 판단된다.
그러자 은거 무인들이 일제히 뒤로 물러섰다. 더는 공격하지 않았다. 그리고 발걸음 소리를 죽이면서 조용히 사라졌다.
은거 무인들은 이 시간을 방해하지 않는다.
아걸이 오늘의 비무를 정리하는 시간이기 때문에 최대한 주의를 기울여 준다.
아걸은 아직 일홀도를 얻지 못했다.
이 상태로 싸우면 백전백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