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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홀도-196화 (196/600)

#196화. 第四十章 음계(陰計) (1)

툭! 텅! 따앙!

전쟁이라도 일어난 듯 요란한 소리가 산을 울린다.

족히 삼천 명은 넘어 보이는 많은 사람이 산을 빙 둘러싸고 나무를 벤다.

우르르릉!

나무들이 넘어가면서 넓을 길을 드러냈다.

사람들은 산을 빙 돌려서 길을 냈다.

사람이 워낙 많아서인지 길은 순식간에 만들어졌다. 그러자 대기하고 있던 사람들이 무너진 나무 위에 마른 짚을 쌓았다. 유황이나 초석도 뿌렸다.

사람들은 산을 불태울 생각이다.

“오늘은 날씨가 좋아서 불이 잘 붙을 겁니다.”

기골이 장대해서 곰과도 힘을 겨룰 수 있을 것 같은 청년이 산을 쳐다보며 말했다.

임시로 만든 천막 안에는 청년 세 명이 앉아 있었다.

상석에 앉은 청년과 좌우에 앉은 두 명은 말린 과일을 안주 삼아 독한 화주를 마셨다.

두두두두!

말 탄 사람이 급히 달려와서 보고했다.

“준비 끝났습니다.”

“산불이 번지지 않도록 단단히 주의시켰어?”

상석에 앉은 청년이 말했다.

“넷!”

말을 타고 온 중년인이 허리를 숙여 반례를 취하며 대답했다.

“그럼 시작해.”

“넷! 바로 시작하겠습니다.”

보고는 마친 중년인이 다시 말을 타고 돌아갔다.

“자, 마셔! 오늘은 취하는 날이라고!”

청년이 유쾌한 듯 술잔을 들었다.

화르르르륵! 화르륵!

산을 빙 둘러서 불길이 솟구쳤다,

사방에서 일어난 불길이 일시에 산 전체를 휘감아 버린다.

화라라락! 화라락!

불길은 거침없이 산 깊은 곳으로 파고들었다.

사람들이 방화 진화선을 구축해 놨고, 불길이 흐르는 모습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

불길이 번질 것 같으면 즉시 마중 불을 놓는다.

이번 산불은 성공적이다.

안으로만 파고들 뿐, 바깥으로 번져 나오지 않는다. 오직 산 안쪽으로만 집중되어 있다.

산속에는 산불을 유인하는 마른 짚이 놓였다. 불길이 끊길 만한 곳에는 기름도 깔려 있다.

후두두두둑!

산불에 놀란 새들이 거칠게 날아올랐다.

원숭이 무리가 갈 곳을 몰라 이리 뛰고 저리 뛴다. 사슴이 달려 나오려다 불길을 보고는 다시 안쪽으로 들어간다. 멧돼지도 새끼 돼지를 데리고 달려 나오다가 방향을 틀어 다시 올라갔다.

온갖 동물들이 갈 곳을 몰라 갈팡질팡한다.

와! 와! 와!

사람들이 함성을 질렀다.

특정한 소리는 아니다. 그저 내키는 대로 아무 소리나 질렀다.

그러자 마치 천군만마가 질주하는 듯 엄청난 굉음이 되어서 산 전체를 쩌렁 울렸다.

타타타탁! 타탁!

불길은 걷잡을 수 없이 번져서 빠르게 산을 집어삼켰다.

날개가 없어서 하늘로 도망가지 못한 짐승들은 산불에 갇혀서 타 죽었다.

따각! 따각! 따닥!

공부 허도기가 말을 타고 임시 천막으로 다가갔다.

“공부께서 오셨습니다.”

천막 앞에서 경계를 서던 군졸이 즉시 소리쳤다.

그가 소리치기도 전에 임시 천막 안에 있던 세 청년은 이미 허도기를 봤다.

“저 인간은 왜 온 거야?”

“쉿! 조용히.”

상석에 앉은 청년이 주의를 환기하였다.

그러자 두 청년이 즉시 입을 다물었다.

“잠시 들어가겠습니다.”

허도기가 먼저 말을 하고는 천막 안으로 들어섰다.

청년은 허도기를 흘깃 쳐다본 후, 이내 산으로 눈을 돌렸다.

“이런 데는 취미가 없으신 줄 알았는데요? 편하게 계시지 뭐하러 찬 바람을 맞으시는지.”

말투는 정중했다. 하지만 내용은 날카로운 가시가 박혀서 듣기 거북했다.

“하하하! 그래도 사직에 고하는 제사 아닙니까. 중요한 의식이니 당연히 와 봐야지요.”

청년이 눈짓을 했다.

그러자 하단에 앉아 있던 청년이 빈 잔에 화주를 따라 허도기에게 건넸다.

허도기는 술잔을 받아 들고는 단숨에 들이켰다.

청년이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훗! 독이라도 들었으면 어쩌시려고.”

“저 같은 야인은 워낙 목숨이 질겨서 웬만한 독쯤은 그저 몸보신한다 생각하고 먹지요.”

“하하하!”

청년이 웃었다.

“흠! 산불 냄새가 여기까지 풍깁니다. 사냥은 뭐니 뭐니 해도 겨울 사냥 아닙니까? 여름 사냥이나 가을 사냥도 내키지 않고, 딱 겨울 사냥이 좋지요.”

청년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짐승을 죽이는 게 목적이 되면 곤란하죠. 제를 지내기 위해서, 아니, 그보다는 백성과 소통하는 기회를 만들고자 이러는 것 아니겠습니까?”

공부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저는 태생이 무인이라서 칼을 쓰고 활을 쏘는 사냥만이 사냥처럼 여겨집니다. 하하!”

허도기가 웃었다.

사냥의 목적은 사직에 제사를 지내기 위해서다. 계절에 따라서 사냥 방법이 달라진다.

봄 사냥은 수(蒐)다. 산이나 들에 불을 놓아 짐승을 잡는다. 화전(火田)으로 사냥한다. 여름 사냥은 묘(苗)다. 수레를 써서 몰이하여 사냥한다. 수레 사냥이다. 가을 사냥은 선(獮)으로 그물을 치거나 던져서 잡는다. 겨울 사냥은 수(狩)라고 부른다. 사냥감을 가리지 않고 취한다.

말을 타고 달리면서 활을 쏘아서 잡는 겨울 사냥을 수렵(狩獵)이라고 한다.

공부 허도기가 말했다.

“사실 공자님도 이런 화전 사냥보다는 겨울 사냥이 더 맞지 않습니까? 공자님의 창술이 일절(一絶)이라는 말을 들었는데, 언제 한번 보여 주시죠?”

“후후! 무림제일인 앞에서 무공을 자랑하라는 말입니까?”

청년은 ‘무림’이라는 말에 힘을 줬다. 공부 허도기가 무림인이라는 사실을 각인시켜 주려는 듯.

“저야 시정잡배들 속에서 잔재주를 드러낸 것일 뿐, 어찌 장군(將軍)의 팔군창법(八皸槍法)에 견주겠습니까.”

“무림 말이 나와서 말인데, 도전을 받으셨다고요? 초도성에 가 보셔야 하지 않습니까?”

순간, 허도기는 눈에 기광을 번뜩였다.

역시 정국장군(定國將軍) 조경(趙耿)은 무림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무림에는 관심이 없을지 모르지만, 자신과 연관된 일은 예의 주시한다.

허도기는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 태연하게 말했다.

“추한 소문을 들으셨습니다. 하하! 그러잖아도 제자가 덜컥 약속을 잡는 바람에 골치 아파 죽겠어요. 무림을 등진 지 언제인데, 아직도 도전인지 모르겠다니까. 하하하!”

“도전한 상대가 명부판관이라면서요? 무슨 잘못을 단단히 저지르신 거 아닙니까? 하하!”

조경도 웃었다. 역시 비웃는 말투다.

“명부판관이 뭐 대수롭나요? 명부판관은 한낱 강호인의 별호일 뿐이죠. 설마 명부판관이 하늘의 명을 대신하는 자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신지?”

“하하하하!”

정국장군 조경은 웃기만 했다.

하늘의 아들은 천자(天子), 하늘을 대신해서 세상을 다스리는 사람, 곧 황제다.

명부판관이 하늘의 명을 대신한다고 말하면 바로 역모가 된다.

그렇다고 명부판관이라는 별호에 담긴 상징성도 놓치기 싫다. 그래서 웃기만 한다.

‘너, 뭘 그렇게 잘못했어?’ 하는 추궁이다.

“성검문은 무림을 영도하는 문파라서 도전을 많이 받습니다. 한 달에 두세 번씩은 도전을 받고 있는데, 명부판관도 무림인. 제 검을 꺾고 싶은 욕심이 있을 겁니다.”

허도기는 시종일관 정중했다.

“그럼 초도성에 가 보셔야겠군요.”

“가 봐야지요. 제자가 약속한 비무지만 성검문 명예가 있으니. 장군께서도 시간 나시면 한번 들리시죠. 전쟁터의 검과 무림의 검이 어떻게 다른지 확인하시는 것도 좋지 않겠습니까?”

“무림의 검이라면 곁에 많이 있어서.”

“하하하! 좌우시랑(左右侍郎)도 꽤 하긴 하죠.”

허도기가 빙긋이 웃으면서 하단에 앉아 있는 두 청년을 쳐다봤다.

좌우시랑, 그들의 눈가에서 금방이라도 발작할 듯 진한 노기가 뿜어져 나왔다.

허도기는 그들을 주시하면서 또박또박 말했다.

“좌우시랑은 덩치는 크지만 둔해서……. 저들의 검은 진짜 무림의 검에 비하면 고양이 수준이죠. 고양이가 호랑이 가죽을 뒤집어쓰고 호랑이 흉내를 낸다고 해서 호랑이가 되겠습니까?”

“뭣이!”

우측에 있던 청년이 벌떡 일어서며 검을 잡았다.

허도기는 웃으면서 술잔을 들었다.

“그래도 명부판관은 제 검을 감당하겠다고 도전한 자입니다. 호랑이는 못 되어도 표범 정도는 되는 자죠. 한번 오세요. 심심풀이로 구경이나 하게. 하하하!”

허도기는 반 시진쯤 농을 늘어놓다가 돌아갔다.

“술맛 버렸군.”

조경이 술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흑곰. 공부의 검을 몇 초나 받을 수 있나?”

“죄송합니다.”

“무슨 대답이 그래?”

“……죄송합니다.”

흑곰이라고 불린 자, 우측 청년이 머리를 숙였다.

“설마 일 초도 못 받는다는 거야?”

“죄송합니다.”

흑곰이 다시 머리를 숙였다.

“그런데 왜 일어섰어?”

“상대는 안 되더라도 모욕은 참을 수 없지 않습니까?”

흑곰이 다시 머리를 숙였다.

흑곰 왕성강(王成江)은 무공이 상당히 강하다.

종남파(終南派)에서 무공을 수련한 후, 곧바로 조경 휘하로 들어와서 무림에 이름이 알려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지금 당장 검을 들고 무림에 나가도 초고수 소리는 들을 수 있다.

그런 왕성강이 일 초도 받지 못한다고 시인한다.

좌측 청년 당경위(黨經緯)가 말했다.

“공부가 음흉한 늑대이긴 하지만 검은 정말 뛰어납니다. 천하제일인 소리를 괜히 듣겠어요? 무림에서 공부의 검을 받아 낼 사람은 없는 것으로 압니다.”

“무림에 없으면 우리도 없는 거야.”

“무공만 가지고 논한다면 그럴 겁니다.”

당경위가 침중하게 말했다.

허도기는 그토록 강한 무공을 지니고 있지만, 여전히 검은 야욕을 숨기고 있다.

아직도 발톱을 잔뜩 숨겨 놓았다.

황궁에는 호황위(護皇衛)라고 부르는 비밀 고수가 있다.

비밀 고수인지 아니면 비밀 수호대인지 알 수 없지만, 나라가 위험에 빠졌을 때 즉각 전세를 역전시킬 수 있는 아주 강력한 힘이 존재한다.

호황위의 무공은 한 나라의 운명을 짊어질 만큼 가공하다고 한다.

옛날에는 성검문에도 호황위와 같은 존재가 있었다.

일홀문은 성검문주가 위급할 때 항상 앞장서서 위기를 타개해 주었다.

그와 같은 관계가 황궁에도 존재하는 것이다.

공부는 호황위라는 존재를 눈치챘다. 그래서 발톱을 숨기고 있다. 천하에 거칠 것이 없는 허도기이지만, 무인 본능이 호황위를 견제한다.

또 하나, 허도기는 군부에 무공을 지도하는 관계로 깊은 신망을 얻었다. 그렇다고 군권을 장악한 것은 아니다. 군권은 정국장군의 아버지이자 정일품(正一品) 광록대부(光祿大夫)인 조위(趙偉) 대감이 쥐고 있다.

조위는 황상이 직접 ‘온 세상이 칼을 들고 달려들어도 딱 다섯 명만은 내 앞을 막아설 것이다’라고 말한 오방충신(五方忠臣) 중 한 명이다.

허도기가 백만대군에게 무공을 전수할 때, 허도기와 조위는 아주 돈독한 관계였다. 매일 얼굴을 맞대지 않은 날이 없을 만큼 서로 의지했다.

하지만 공부가 의심 가는 행동을 시작하자, 당연히 관계가 소원해졌다. 그리고 지금은 일거수일투족을 경계하고 감시하는 사이가 되었다.

공부가 조위 대감을 무너트릴 것이라는 소문은 진작에 났다.

그런데도 움직이지 않는 것은 오직 하나, 호황위가 누군지 알아내지 못해서다.

“공부가 그렇게 강해?”

“천하제일인입니다.”

“음! 그럼 이번 기회에 공부 무공을 보는 것도 좋겠지. 상대가 표범이라니 쉽게 당하지는 않을 거고.”

“안 가시는 게 좋습니다. 공부는 음흉한 자입니다.”

“수작 부릴 것도 없어. 허도기가 아무리 음흉해도 대낮에 일을 벌이지는 못해.”

조경이 만류를 일축했다.

“함정일 수도 있습니다.”

당경위가 재차 만류했다.

“너희가 날 지켜. 그리고 내 무공, 그렇게 약하지 않아.”

“공부는…….”

황성 강이 말을 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정국장군 조경이 수련한 팔군창법은 장군과의 창법이다.

창날 아래 목숨을 떨군 자가 수백 명이라서 그가 사용하는 월극(鉞克)을 원혼월극(冤魂鉞克)이라고 부른다.

팔군창법은 허도기가 나타나기 전까지는 최강의 무공이었다. 싸움에서 한 번도 패한 적이 없는 극강 무공이다.

조경이 불타는 산을 쳐다봤다.

산불이 꺼지고 나면 백성들은 저 산을 뒤질 것이다. 불에 타 죽은 짐승들을 수거해서 제사를 지내고 잔치를 벌인다. 백성과 함께 술을 마시고 취한다.

화전으로 잡은 짐승은 제사로 사용하고, 동원된 백성을 위해서 돼지 이백 마리를 가져왔다.

이미 한쪽에서는 돼지를 잡고 있다.

공부가 봄 사냥에 온 것은 우연이 아니다. 성검문으로 초대하는 것이다.

‘네놈이 어떤 꿍꿍이를 꾸미던…….’

조경이 말했다.

“아버님한테는 얘기하지 마라. 살짝 가서 구경만 할 생각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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