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일홀도-197화 (197/600)

#197화. 第四十章 음계(陰計) (2)

사월 초닷새가 되자 성검문에서 고용한 석수장이 십여 명이 일제히 혈무대를 점검했다.

혈무대는 원래 튼튼하게 만들어졌다. 하지만 혹시 중간에 불상사가 일어나지 않도록 다시 한번 점검한다.

성검문은 도전을 많이 받았다. 하지만 혈무대를 점검하는 것은 개문 이래 처음이다. 하기는 성검문주가 직접 나서서 비무를 한 적도 없었다.

타앙! 탕! 탕!

석수장이들이 돌망치로 석판을 두들기며 다녔다.

“이봐! 돌판만 두들기고 말고 받침돌까지 빠짐없이 점검해. 이건 튼튼하겠지 하는 생각을 버리고.”

“그렇게 하고 있어요.”

혈무대에 석수장이가 나타나자, 혈무대 주변은 더욱 난장판으로 변했다.

이제 싸움 냄새가 본격적으로 풍긴다.

“야! 여기 내 자리야!”

“무슨 소리야! 내가 그제부터 맡아 놓은 자린데.”

“인마! 여기 스무 냥이나 주고 산 자리야. 어디서 헛수작질이야, 너 죽어 볼래!”

비무를 구경하려는 사람끼리 자리다툼이 치열해졌다.

혈무대 바로 앞에 있는 자리는 은자로 스무 냥씩에 거래가 되었다. 그것도 구하려는 사람은 많고, 팔려는 사람은 없어서 날이 갈수록 값이 치솟았다.

그만큼 이번 싸움은 사람을 긴장시킨다.

평생 구경하지 못할 것 같던 천하제일인이 직접 검을 들고 나선다지 않나. 또 명부판관은 먼저 비무에서 허도기의 첫 번째 제자를 죽인 전력이 있다.

싸움의 결과는 쉽게 예상된다. 명부판관이 죽을 것이다.

“앉아 계신 분들, 모두 일어나세요.”

“십 장 밖으로 물러나세요.”

성검문 무인들이 혈무대 주변을 정리했다.

치열하게 자리다툼을 하던 사람들도 성검문도의 말은 순순히 따랐다.

지금 성검문은 바짝 독이 오른 독사다. 명부판관에게 전가성이 죽었기 때문에 더 독이 올라 있다. 비위라도 상하게 하면 당장 검을 뽑아 들 기세다.

이런 자들을 건드려서 좋을 게 하나도 없다.

“비무 시작 전에 줄을 치울 겁니다. 그전에는 일체 접근을 불허합니다. 혈무대가 손상되거나 나쁜 의도로 장난질 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니 따라주기를 바랍니다.”

성검문 무인들이 혈무대에서 십 장 정도 떨어진 곳에 빙 둘러 가며 새끼줄을 쳤다.

모두 성검문도가 하는 말을 알아들었다.

혈무대에 장난질을 친다면…… 천하제일인이 그럴 리는 없고, 명부판관이 수작질을 칠 수 있다. 그러니 비무 날까지 혈무대를 통제하겠다는 게 이해된다.

“그런데 공부님은 나오시는 겁니까?”

“이번에도 소축십검이 싸우는 건 아니죠?”

사람들이 성검문 무인에게 물었다.

“그걸 우리가 어떻게 알아요!”

새끼줄을 치던 무인들이 퉁명스럽게 말했다.

* * *

정국장군 조경은 사월 열나흘, 비무를 하루 앞두고 초도성에 도착했다.

초도성은 성문에서부터 경계가 삼엄했다.

성검문 무인들이 초도성 곳곳에 깔려 있다.

위압적인 모습을 보이거나 공포를 일으키지는 않는다. 부드럽게 웃으면서 사람들을 통제한다.

그렇다고 자유를 통제하는 것은 아니다.

마음껏 움직이게 하되 질서 있는 행동만 요구했다.

싸움이나 다툼이 일어나면 적극적으로 개입해서 다툼을 말린다.

“내일까지만 참아 주실 수 없으십니까?”

큰 목소리를 내는 사람이 있으면 즉시 성검문도가 다가가서 정중하게 요청했다.

그러면 대다수 사람은 이해하고 받아들였다.

성검문 무인들은 조용하고, 부드러우며, 예의 바르다. 사람들을 매우 질서정연하게 유도한다.

“성검문 위세가 이 정도였나? 공부를 다시 봐야겠는데?”

조경이 눈살을 찌푸렸다.

“그래봤자 일개 무가 아닙니까.”

왕성강이 심드렁하게 말했다.

“아니. 잘 봐. 이 초도성은 일반인만 성검문을 따르는 게 아니야. 관군까지 협조하고 있어. 이미 이 성 전체를 허도기가 장악했다고 봐야 해.”

“성검문 본문이 있는 곳이잖아요. 당연하죠.”

당경위도 크게 대수로운 눈치가 아니었다.

조경은 성검문 무인들을 주의 깊게 봤다.

일단, 성검문 무인은 정명(正明)하다. 사악한 기운이 전혀 엿보이지 않는다. 두 눈에 분노는 가득 실려 있지만, 피에 굶주린 늑대로 보이지는 않는다.

또 성검문도는 탐욕도 없다.

공부 허도기가 보여준 음침한 야욕도 없다.

이들만 살펴봐서는 공부와 성검문도가 완전히 분리된 상태로 읽힌다.

조경은 잠시 혼란스러웠다.

조경은 숙소를 일부러 한적한 곳에 잡았다.

성안에 머물되 성검문 눈에 띄지 않도록 가장 허름하고 조용한 곳을 빌렸다.

현재 초도성 객잔은 만석이다. 돈이 있어도 방을 구할 수가 없다. 그래서 평소 숙박과는 전혀 상관없던 일반인들까지 돈을 받고 방을 내준다.

사정이 이러니 낯선 사람이 와서 방을 쓰자고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

“어디야?”

“저기 골목만 꺾으면 나옵니다.”

“이렇게 으슥한 곳은 어떻게 알고 구한 거야?”

“다 구하는 재주가 있죠.”

흑곰 왕성강이 어깨를 으쓱거렸다.

하지만 조경은 골목을 꺾자마자 곧바로 발걸음을 멈춰 세웠다.

이맛살이 저절로 찌푸려졌다.

그들이 머물기로 예약했던 집에서 성검문 무인으로 보이는 젊은 검수 두 명이 걸어 나왔다.

‘상당한 고수!’

조경은 두 사람을 보자마자 손끝에서 자르르 전율이 일어났다. 강적을 만나면 제일 먼저 월극이 울어 대는데, 지금은 월극을 들고 있지도 않은데 손끝이 저렸다.

더욱이 두 검수는 대단히 사악한 기운을 흘린다.

허도기는 음흉하지만 사악하지는 않다. 절대로 사악한 검은 아니다. 검에 피를 묻히고 다니는 혈검도 아니다. 사실 허도기는 검을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한데, 다가오는 두 사람은 굉장히 사악한 검을 쓴다.

상대방을 죽이기 위해서라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암수도 펼칠 수 있으면 펼친다. 합공은 물론이고 독 같은 마물도 거침없이 사용한다.

이들은 그런 인간이다.

그들은 조경 앞으로 다가와서 정중하게 포권지례를 취했다.

“저는 이뢰라고 합니다. 강호인들은 진개, 쓰레기라고 부르죠. 소축십검 중 네 번째입니다. 이쪽은…….”

“다섯째, 점박이 오진복입니다.”

오진복에 목에 있는 커다란 점을 가리켰다.

‘음! 역시!’

조경은 초도성을 방문하면서 성검문 눈길을 피할 수 없으리라 생각했다.

그 생각이 옳았다. 자신들이 예약한 집까지 알고 찾아왔을 정도면 온 사방에 눈과 귀가 깔려 있다고 봐야 한다. 어디로 가든 숨지 못한다.

진개가 말했다.

“사부님께서 모셔오라고 하십니다.”

“됐다. 초도성에는 비무만 보려고 왔으니까 공부를 뵐 필요까지는 없겠지. 호의는 고맙지만 조용한 곳에서 편히 있고 싶으니까 여기서 지내겠다고 전해라.”

“숙식 때문이 아니라 급히 드릴 말씀이 있다고, 꼭 모셔오라는 분부셨습니다.”

진개가 강경하게 말했다.

마치 말을 듣지 않으면은 검을 뽑겠다는 그런 투로 들렸다.

싸움이 두려운 건 아니다. 하지만 이상하다. 굉장히 이상하다. 허도기 제자라는 자들이, 그것도 이미 일정 경지를 이룬 소축십검이 왜 이렇게 사악한 기운을 보이지?

성검문의 진공, 조명천검은 잘 알고 있다.

백만대군이 수련하는 무공, 정천검법의 근본이 조명천검인데 모를 수가 없다.

절대로 사악한 무공이 아니다. 정종 무공이다. 수련하면 할수록 근골에 힘이 붙고 정신이 맑아진다.

대체 이들은 어떤 무공을 수련한 것인가!

어쨌든 허도기가 기필코 대화를 나누겠다면 피할 방법은 없다.

“안내해라.”

조경이 차분하게 말했다.

* * *

“미안하네. 모른 척하고 비무만 보여 줄 생각이었는데, 워낙 급한 일이라서. 불쾌했다면 이해하게.”

공부 허도기는 직접 대문까지 마중 나왔다.

‘무슨 일이기에?’

조경은 허도기의 표정에서 매우 어두운 그림자를 읽었다. 지금까지 허도기를 보면서 처음으로 일그러진 표정을 봤다고 하는 편이 맞을 것이다.

“이 사람들, 공부의 제자가 맞습니까?”

조경이 진개와 점박이에 관해서 물었다.

“이놈들이 실수라도 했습니까?”

“아니, 실수한 건 아니고……. 성검문과 기질이 사뭇 다른 거 같아서요.”

“하하! 성검문을 오랫동안 돌보지 않았더니 이 모양이 되었군요. 안으로 드시죠.”

허도기는 그 어느 때보다도 정중했다.

정국장군은 종이품(從二品)이다. 실직(實職)이다. 반면에 허도기는 공부직을 하사받았다. 왕족과 버금가는 대우다. 하지만 허직(虛職)이다.

굳이 직분으로 따진다면 조경이 받들어야 한다.

하지만 허도기는 모든 사람에게 하대하지 않았다. 존대는 하지 않아도 온말이라도 사용했다. 그러니 중요 직책을 맡은 사람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런데 오늘은 더 정중하다.

“느낌이 좋지 않습니다. 돌아가시죠.”

왕성강이 말했다.

“여기까지 왔는데 그냥 돌아갈 수는 없지. 무슨 말을 하는지 들어나 보자고.”

“난 이대로 돌아갔으면 좋겠는데…….”

왕성강이 머리를 긁적거렸다.

허도기는 조경을 잘 가꿔진 장원으로 안내했다.

장원 안에는 다탁이 준비되어 있었다. 확 트인 조망 앞에 단둘만 앉을 수 있게 의자가 놓였다.

두 사람은 의자에 앉았다.

“차 드세요. 독은 안 탔습니다.”

“하하! 그때 그 말을 아직도 염두에 두고 계십니까?”

조경은 찻잔을 들어 차를 마셨다.

공부도 차를 마셨다.

“거두절미하고…… 제안을 할까 합니다.”

허도기가 불쑥 말했다.

“제안이요?”

“내일 비무 약속, 저 대신 해 주시겠습니까?”

“뭐, 뭣! 뭐라고요? 하하! 공부, 아직 여름도 오지 않았는데 더위 먹었습니까? 농이 지나치십니다.”

조경이 기가 막힌다는 표정으로 허도기를 쳐다봤다.

허도기는 전혀 웃지 않았다.

‘괜히 해 보는 말이 아니다. 진심이다!’

허도기는 미간을 잔뜩 찡그린 채 담담히 차를 마셨다. 그리고 찻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휴우! 명부판관이라는 별호가 지닌 의미, 저한테 도전하는 이유. 모두 알았지 뭡니까.”

허도기가 괴로운 듯 머리를 숙이며 말을 이었다.

“명부판관, 전대 성검문주이자 제 형님인 이초결검 허도강의 서출입니다.”

“네에?”

조경은 너무 놀라서 눈만 끔뻑거렸다.

“서출이라면……?”

“서출이라고는 하지만 분명히 삼촌과 조카. 혈육 간에 서로 칼질을 할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명부판관이 누군지 여기 와서야 알았으니. 허어!”

허도기가 한숨을 내쉬었다.

“이런 사실을 진작 알았다면 결코 이 비무를 받지 않았을 텐데. 성검문에 연관된 사람이 많으니 마음대로 정리할 수도 없고. 장군께서 내일 비무를 해 주시면, 제가 진공부를 떠나겠습니다.”

“……!”

조경은 너무 놀라 눈을 부릅떴다.

“진공부를 떠나신다고요?”

“정천검법은 이미 널리 알려졌고, 교두도 많이 생겼어요. 굳이 제가 없어도 군무(軍武)는 이어질 겁니다. 하하하! 솔직히 말할까요? 나는 진공부보다 조금 더 높은 곳을 쳐다보고 있었죠. 어쩌면 멋진 꿈을 이룰 수도 있겠다 생각했고.”

“짐작하고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그런 욕심이 없었는데, 점점 아는 사람이 많아지고 권력이라는 게 생기다 보니까 저도 모르게 욕심이 나지 뭡니까. 그래서 여기까지 오기는 왔는데…….”

허도기가 말을 이었다.

자신의 검은 사검(死劍)이다. 검을 뽑으면 생명이 끊어진다. 그러니 자신이 나설 수는 없다.

소축십검은 명부판관을 상대하지 못한다.

독안혈검 전가성이 명부판관에게 죽었다. 무공으로 상대가 되지 않았다.

명부판관은 아홉째 호금연도 죽였다. 그러니 소축십검과는 악연이 쌓일 대로 쌓였다. 지금은 죽이지 못해서 안달이 날 정도로 원한이 깊다.

“저 둘이 제 제자냐고 물었죠? 물은 이유를 압니다. 사기 때문에 그렇지 않습니까? 저놈들이 원래는 저러지 않았는데, 제가 없는 동안에 손대지 말아야 할 무공을 손대고 말았어요. 그것은 제가 남아서 정리를 할 것이고.”

허도기가 조경을 쳐다봤다.

“서출이라도 핏줄은 핏줄, 저렇게 나타났으니 잘 가르쳐 볼 생각입니다. 마침 제게 후사도 없으니 성검문을 이어가라고 형님이 보내 주신 게 아닌가 싶어요. 어떻습니까. 제 제안 받아들이겠습니까?”

조경은 허도기를 쳐다봤다.

허도기의 표정은 고통으로 얼룩져 있다. 늘 얼굴을 마주칠 때마다 느꼈던 탐욕도 보이지 않는다.

‘진심인가?’

조경은 눈살을 찌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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