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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홀도-198화 (198/600)

#198화. 第四十章 음계(陰計) (3)

명부판관은 하늘을 대신해서 죄지은 사람을 벌한다.

허도기는 명부판관이 자신을 노리는 이유도 말해 주었다.

명부판관은 허도기가 전임 성검문주의 죽음, 그리고 일가족의 몰살에 간여했다고 믿는다.

말도 안 되는 오해다.

전임 성검문주는 병으로 죽었다. 만천하가 다 아는 사실이다.

현정부인은 성검문주가 죽는 날 곧바로 자진했다. 다른 사람이 말릴 사이도 없었다.

문주의 세 아들이 기습을 받은 것은 오해받기 쉽다.

하지만 소축 사람들은 마인들의 침입 사실을 뒤늦게야 알았다. 소축 무인들이 변괴를 눈치채고 즉각 달려왔지만, 모든 사단이 끝난 후였다.

이게 어떻게 허도기 잘못인가.

서출로 본분을 드러내지도 못하고 객지를 떠돌다 보니 오해가 생긴 것 같다.

비무에 나서면 생사 문제를 거론할 수 없다.

될 수 있으면 손속에 사정을 남겨 주면 좋겠지만, 명부판관 역시 독안혈검을 죽일 정도의 고수이니 나쁜 상황이 벌어진다고 해도 어쩔 수 없다.

아무리 생각해도 지금 사정을 봐주면서 싸울 수 있는 사람이 장군뿐이다.

“궁에서 물러나신다는 약속, 믿어도 됩니까?”

조경이 차분하게 말했다.

“그렇다고 하면 믿어 주겠나?”

“…….”

“하하하! 내가 그래도 말의 무게는 지켜왔는데, 어떤 말을 해도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인 걸 보니 영 헛살았나 봐. 하하하! 지금, 이 순간부터 나는 진공부에서 물러나네.”

허도기가 품에서 서신을 꺼내 건넸다.

조경이 서신을 펼쳤다.

공부 허도기가 황상께 올리는 사직서다. 분명히 허도기가 자필로 작성했고, 공부의 인장까지 찍혀 있다.

“가져와라.”

허도기가 뒤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그러자 장원 뒤쪽에서 대기하고 있던 사람이 목함을 들고 총총걸음으로 다가왔다.

허도기가 조경에게 받으라고 눈짓했다.

“이건 뭡니까?”

“내 인장들이네.”

“인장이요?”

“공직을 사직하니 인장도 반납해야지. 진공부에도 해산 명령을 내려놨네. 아직 수습할 것들이 있어서 적위군이 철수할 때까지는 시간이 걸릴 테지만, 철수할 거네.”

조경은 허도기의 진심을 읽었다.

허도기는 진심으로 모든 요직을 내려놓고 성검문으로 낙향할 생각이다.

“이것들, 아버님께 보내도 되겠습니까?”

“그러라고 준 것 아닌가. 내 사직 문제는 이번 일이 끝난 후, 직접 황상께 요청할 생각이네. 이건 약속 보장용이지. 내가 약속을 어기면 조대감이 직권으로 처리하라고 주는 것이야.”

“……그동안 제가 오해한 게 많았습니다. 다음에 아버님하고 같이 와서 술 한잔 올리겠습니다.”

“그럼 다시 조카로 돌아온 건가?”

“네. 다시 돌아왔습니다. 아버님도 이 사실을 아시면 무척 기뻐하실 겁니다.”

“그 사람이야 당연히 좋아하겠지. 노상 하는 말이 인제 그만 집으로 가라. 이거 아니었나. 하하하!”

“팔군창법은 사납습니다. 명부판관을 죽일 수도 있어요.”

“후유! 그거야 어쩌겠나. 비무인 것을.”

“좋습니다. 내일 제가 대신 싸우죠.”

“도와줘서 고맙네. 나도 옆에 있을 것이야.”

허도기가 조경 손 위에 자신의 손을 올려놓고 톡톡 손등을 두들겼다.

* * *

“안돼! 이건 안 돼!”

적랑대주 임지정은 깜짝 놀라서 벌떡 일어섰다.

허도기가 아걸 비무 상대로 정국장군 조경을 초빙했다.

정적이나 다름없는 조경이 이 말도 안 되는 요구를 승낙했다. 내일 있을 비무에 나설 가능성이 매우 크다.

성검문 심장부에 심어 놓은 간자가 신분 노출까지 생각하지 않고 급하게 보내온 정보이니 확실하다.

조경은 오방충신 정일품 광록대부 조위의 아들이다.

일인지하(一人之下) 만인지상(萬人之上)의 위치에 있는 절대 권력자의 혈육이다.

조경은 종이품 정국장군이다.

당장 호각만 불어도 군사 삼만 명이 모여든다.

무공 고하가 어찌 되었든 아걸은 조경 몸에 손가락 하나 댈 수 없다. 만약 생채기라도 낸다면 아걸은 이 나라 전체로부터 쫓기는 신세가 된다.

허도기가 쫓는 게 아니다. 나라가 쫓는다.

황상이, 국법으로 아걸을 쫓을 것이다.

“대주님! 대주님! 어디 계셔!”

임지정이 버럭 일갈을 내질렀다.

“초도성에 계시는데요.”

“빨리 연락해! 이건 안 돼! 취화원! 취화원에도 연락해!”

임지정은 단언컨대 이번처럼 다급한 적이 없었다.

후드득! 후두두!

전서구가 힘차게 날아올랐다.

전서구는 중간에 탈이 날 수 있다. 매나 독수리에게 잡혀서 먹히기도 한다.

그래서 만일에 대비해 전서구를 세 번이나 겹쳐서 날렸다.

임지정은 인편으로도 소식을 전했다. 적랑대가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연락망을 총동원해서 전임 대주 아삼과 취화원주 몽설에게 소식을 전했다.

* * *

“어! 이게 뭔 소리야?”

아삼은 비스듬히 누워서 발가락을 까딱거리면서 전서를 읽다가 깜짝 놀라서 벌떡 일어섰다.

“정국장군 조경이 여기 와 있어? 내일 비무에 조경이 나선다고? 이, 이게 가능해?”

아삼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런 낭패가 있나! 왜 비무 대상이 허도기에서 조경 장군으로 바뀐 거지?

허도기와 조경 장군, 조위 대감은 서로 가장 강력한 정적이다.

이 사실은 이미 알만한 사람은 모두 다 안다. 겉으로는 웃으면서 말하지만, 속으로는 칼을 품고 있다.

아무리 생각해도 현재 상황이 이해가 안 된다.

아삼은 혹시 전서 내용이 잘못된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임지정이 잘못된 정보를 건네주었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 정도로 내용이 믿기 어려웠다.

“이, 이놈! 이놈은 정국 장군이야. 절대로 이 자를 베면 안 돼! 아걸! 아걸은 어디 있어?”

아삼이 아걸 행방을 물었다.

“모르겠습니다.”

“모르겠다니! 무슨 소리야!”

“그제까지만 해도 뒤를 쫓았는데, 어제부터 감쪽같이 사라졌습니다. 지금도 백방으로 찾고는 있습니다만.”

“음!”

아삼은 침음했다.

아걸은 정말 희한한 재주가 있다.

아걸은 아무것도 없는 빈 바닥에서 굉장히 강한 사람들을 끌어모았다.

아삼이 생각해도 기가 막힐 정도로 강한 자들이다.

이름이나 무명이 알려진 자들은 아니지만, 무공만큼은 기가 막힐 정도로 강하다. 개개인이 소축십검과 비교해도 전혀 손색이 없을 정도다.

그런 자를 무려 스무 명이나 모았다.

원래는 스물한 명이었는데, 한 명은 무림에 나온 지 얼마나 되었다고 벌써 죽었다.

아걸이 그들을 통제하고 이끄는 것은 아니지만, 그들 모두 아걸을 아주 가까운 사람으로 여기고 있다.

물론 그들이 다가서는 데는 어느 정도 한계가 있다.

조경 장군을 죽이고, 나라 전체가 아걸을 쫓는다면 아마도 그들은 떨어져 나갈 것이다.

어쨌든 그들이 숨으려고 작심했다면, 적랑대가 아무리 눈이 많다고 해도 찾기 어려울 것이다.

“아걸을 찾아! 빨리! 빨리 찾아야 해! 몽설! 몽설에게도 연락을 보내. 지금 이 사실을 모두 알려 주고, 정국 장군을 죽인 다음에 벌어질 일에 대해서 대책을 세우라고 해!”

아삼이 급히 소리쳤다.

상황이 매우 급하게 됐다.

허도기하고 싸워서 과연 이길 수 있을까 하는 게 지금까지의 고민이었다. 한데 이 순간, 그런 고민은 온데간데없어지고 전혀 다른 걱정이 생겼다.

“하! 이런 미친 짓이. 도대체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아삼은 상황을 어떻게 수습해야 할지 아무 생각도 떠오르지 않았다.

* * *

몽설은 초도성에 들어와 있었다.

아걸이 사월 보름에 비무를 치르는데 아내가 보지 않는다면 말이 되지 않는다.

상대는 천하제일인 허도기다. 아걸은 이미 그와 싸워서 검을 네 번이나 맞은 경험이 있다.

그런 강적과 싸우는데 어떻게 보지 않을 수 있나.

어쩌면 이것이 이승에서 아걸을 보는 마지막 모습일지도 모르겠다.

아걸을 보게 되면 어떻게 할까? 활짝 웃으면 다가갈까? 안길까? 싸우지 말자고 할까? 아니다. 자신이 나타나는 것만으로도 아걸을 흔들 수 있다.

아걸이 보이더라도 나서지 말고 가만히 지켜보기만 하자.

취화원 살수들도 아걸 눈에 띄면 안 된다. 그들이 보이면 아걸이 당장 눈치챌 것이다.

철저히 숨어라!

절대 눈에 띄지 말고 아걸을 지켜보라!

아걸이 죽으면 시신을 묻어 주고. 아걸이 이기면 달려가서 눈물을 펑펑 쏟자.

몽설은 그런 심정으로 초도성에 들어왔다.

취화원 살수들에게도 단단히 주의하라고 경고하고 매복시켰다.

“붉은 달이 뜨면 늑대가 울지요.”

몽설 앞에 이상한 말을 하는 사람이 나타났다.

“역시 적랑. 은밀히 숨어들었다고 생각했는데 적랑 눈은 속이지 못했네요. 어떻게 알았어요?”

“초도성을 빠져나가신 일이 있으셨습니다.”

“그게 왜요?”

“침입할 때는 빠져나간 순서 거꾸로. 아마도 몽설 님께서 초도성으로 들어오신다면 그쪽이 아닐까 싶어서 주시하다가, 몇몇 분이 들어오시는 것을 봤습니다.”

“호호! 그렇군요. 그걸 깜빡했네요. 다음부터는 그 점을 염두에 둬야겠어요.”

몽설이 웃으면서 적랑대 밀자를 맞이했다.

“할아버지께서 보내신 거예요?”

밀자는 대답 대신에 품에서 서신 두 통을 꺼냈다.

“이건 전임 대주님 것, 이건 현임 대주님이 전하라는 서신입니다.”

밀자가 서신 두 통을 내밀었다.

몽설은 의아한 표정으로 서신을 받았다.

무슨 일이기에 적랑대주와 할아버지가 동시에 연락을 취해 왔을까?

아삼은 밀서를 보내오지 않는다. 적랑대주는 더더욱 연락할 일이 없다.

서신을 펼쳐 보기도 전에 불길한 예감이 소록소록 치밀었다.

‘왜 갑자기 밀서들이 밀어닥치지?’

몽설은 먼저 할아버지가 보내온 서신부터 읽었다.

아삼은 비무가 허도기가 아니라 조경 장군을 대상으로 진행될 것이며, 아걸이 조경 장군을 죽였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지에 대해서 대충 언급했다.

문제는 빠져나가는 방식이다.

나라 전체가 아걸을 쫓는다면 도주하기도 만만치 않다. 그러니 지금 당장 대비책을 세우라고 쓰여 있다.

‘이게 무슨 일이야?’

몽설은 깜짝 놀라서 적랑대주가 보내온 밀서를 읽었다.

적랑대주는 허도기와 조경 장군이 나눈 대화를 요약해서 보내왔다.

몽설은 비로소 어떻게 된 사정인지 알았다. 앞으로 벌어질 일도 예상했다.

“이런 나쁜 사람이! 이 사람은 정말 안 되겠네!”

몽설은 서신을 읽자마자 화부터 치밀었다.

허도기는 정말 나쁜 사람이다. 최소한 무인으로서의 긍지마저 버린 사람이다.

허도기는 이번 기회에 정적의 아들을 제거하려고 한다. 그리고 조경 장군의 죽음이 조위의 몰락으로 이어지기를 바란다. 아니, 바라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되도록 일을 꾸밀 것이다.

조경 장군은 아걸의 적수가 되지 않는다.

아걸은 일홀도의 전인이다. 지금은 어떤 무공을 받아들였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예전에 지녔던 일홀도만 사용해도 조경 장군을 죽일 수 있다.

조경 장군의 무공이 어떤 것인지 모르겠지만 아걸을 상대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정반대의 경우는 어떨까? 조경 장군이 아걸을 죽이면 문제가 되지 않을까? 그쪽은 모르겠다. 생각이 거기까지 돌아가지 않는다. 아걸이 장군을 죽였을 경우만 생각난다.

“장로님, 성검문 뚫을 수 있겠어요?”

“해 보겠습니다.”

팔 장로가 대답했다.

“조경 장군을 만나 보세요. 내일 비무에 나서면 안 된다고 설득해 보세요.”

“알겠습니다.”

“성검문을 돌파하시다가 힘들면 즉시 빠져나오세요. 무리해서 들어가지 말고. 절대 무리하면 안 돼요.”

“제 걱정은 하지 마세요, 원주님.”

팔 장로가 빙긋 웃었다.

“그때 그 사건에 대해서 사실대로 알려 주세요. 허도기가 어떤 짓을 했는지. 사실대로 말하면 내일 나서지 않을 테지만, 그래도 확인해 보시고요.”

“네. 그러겠습니다.”

“비무가 시작되면 아걸이 장군을 죽일 거예요. 기분 상하지 않게 잘 말해 주세요.”

“네.”

“장군은 상대가 안 돼요. 그리고 아걸은 평생 쫓기는 신세가 되겠죠? 허도기는 장군도 죽이고 아걸도 쫓아내고 일거양득이에요. 이런 말, 꼭 좀 전해 주세요.”

팔 장로가 신형을 날려 사라졌다.

“오빠는 찾았어요?”

“아직.”

취운이 난감한 표정으로 말했다.

“오빠는 도대체 어디 있는 거야! 내일 싸우면 안 되는데.”

몽설은 애가 타서 발만 동동 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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