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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홀도-200화 (200/600)

#200화. 第四十章 음계(陰計) (5)

짹! 째액! 짹짹!

산새들이 우짖는다.

아걸은 몸이 얼어붙을 정도로 차가운 공기를 느끼면서 눈을 떴다.

봄이라고는 하지만 말만 그렇지 아직도 아침 공기가 한겨울처럼 차갑다.

“아아!”

아걸은 몸을 일으켜서 길게 기지개를 켰다.

뼈마디가 욱신거린다. 밤새 잔뜩 웅크리고 자서인지 몸이 딱딱하게 굳어 있다.

아걸은 몸을 움직여서 경직된 전신 근육과 뼈를 풀었다.

“그러니까 객잔에 투숙하자니까.”

손승이 말했다.

“편하게 잘 잤잖아요.”

“편하게? 이게 편한 거야? 생고생도 이런 고생이 없지. 멀쩡한 집 놔두고 웬 고생인지.”

쌍겸도 투덜거렸다.

성검문은 비무 도전자에게 객실을 내준다. 수행원도 열 명까지는 숙식 제공을 허락한다. 초도성에서 제일 큰 객잔, 가장 편안한 침상을 내준다.

“끄윽! 어휴! 이거 콧물이 다 나네.”

지당검이 코를 훌쩍이면서 비석 장태전을 살폈다.

“괜찮냐?”

“괜찮기는. 얼어 죽지 않은 게 다행이다. 한여름에도 사람이 얼어 죽는다기에 무슨 소리인가 했더니 이제 이해하겠어. 사월 봄바람에 얼어 죽는 줄 알았다니까.”

장태전이 투덜거리면서 몸을 움직였다.

장태전은 아직 거동하지 못한다. 그래서 두 명이 달라붙어서 그를 부축하며 움직였다.

“그러나저러나 조용하니 좋긴 좋다. 객잔에서 잤으면 이렇게 편히 자지는 못했을 거야.”

나통이 말했다.

그들은 성검문 뒷산, 가산에 은신했다. 저들의 심장 뒤편에 찰싹 달라붙어서 밤을 보냈다.

세상 사람들은 설마 아걸이 성검문 한복판에 있을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할 것이다. 허도기조차도 예상하지 못한 기막힌 침입이다.

그래서 불도 피우지 못했다.

추운 밤을 오로지 온기 하나만 가지고 버텼다. 하지만 그 정도에 불평을 늘어놓을 사람은 없다.

“어떻게, 아침 몸 좀 풀어 볼래?”

손승이 말했다.

“오늘은 비무 날이에요. 몸 좀 만들어야죠. 멍투성이가 되어서 갈 수는 없잖아요.”

“아쉽군.”

“아쉬워요? 뭐가요?”

“때리는 맛이 장난 아니었는데. 이제 막 손맛을 알았다 싶었는데 쏙 빠져나가네.”

“하! 사람들이 양심도 없어. 아예 때리는 데 맛을 들였네.”

“그래. 맛 들였다. 때리다 보니까 아주 좋던데?”

아걸과 손승이 농담을 주고받았다.

“그런데 네 몸, 무쇠 덩어리냐? 어떻게 그렇게 맞고도 버텨? 밤에 끙끙 앓는 소리 한 번 안 내고.”

“맞아. 나도 그게 궁금했어.”

쌍겸이 손승 말을 거들었다.

아걸은 빙긋 웃으면서 말했다.

“사람 몸도 맞다 보면 단단해진다니까. 내 몸이 궁금하면 딱 나만큼만 맞아 보면 되는데. 어때요? 도와줘요?”

“관둬라! 관둬!”

쌍겸이 손을 휘휘 내저었다.

해가 떠오른다. 지난밤에 몹시 추워서인지 햇살이 무척 반갑게 느껴진다.

“좋네.”

아걸은 온몸을 햇살에 맡기며 중얼거렸다.

은거 무인들은 계곡물을 떠서 미숫가루를 타 먹었다.

미숫가루 한 그릇으로 아침 식사를 대신한다.

그리고는 그들도 차분히 앉아서 운공조식을 취했다.

비무는 정오에 시작된다.

오늘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아무도 모른다. 어쩌면 성검문과 전면전을 벌이게 될지도 모른다.

아걸이 허도기를 이길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기적을 바란다. 지금까지 해 온 비무가 효험이 있어서 기적처럼 허도기를 눌러 줄 수 없을까?

비무에서 아걸이 패한다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어쩌면 아걸 한 명 죽는 것으로 끝날 수도 있다.

기적이 일어나면 그때부터는 문제다.

후폭풍이 만만치 않을 것이다. 성검문이 결코 아걸을 놓아주지 않을 것이다.

기적은 완벽하게 일어나지 않는다. 기적이 일어나려면 아걸은 사지 중 몇 개는 떼어 놓아야 한다. 최소한 그 정도의 피해는 예상하고 싸운다.

모순되게도 기적이 일어날 경우, 은거 무인들은 상당히 바빠진다. 혈투를 벌여야 한다. 비석을 제외하고 싸울 수 있는 사람 열아홉 명 중 몇이나 살아남을지 모르겠다.

여러 가지 생각할 게 많다.

우선은 최상의 몸을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필요할 때 마음대로 쓴다.

“시간 다 됐네.”

손승이 말했다.

가산을 내려가는 데 일다경이 걸린다. 성검문 안쪽에서부터 밖으로 걸어 나가 대문을 거쳐 혈무대에 오른다.

관중들을 거치지 않는다.

성검문 무인들이 깜짝 놀라서 길을 막을 것이다. 그러면 은거 무인들이 처리한다.

사실, 그때부터 싸움이 시작된다.

성검문 무인들이 길을 막지 않을 수도 있다. 어디서 나타났는지 궁금하겠지만 길은 열어 주지 않을까 한다.

“시간이?”

“오시초(午時初: 오전 11시)네. 그만 가야 해.”

아걸은 가부좌를 풀고 일어섰다.

* * *

“와! 성검문주다!”

“문주님! 만세!”

성검문주 허도기가 모습을 드러내자 혈무대를 둘러싼 관중들이 함성을 내질렀다.

허도기는 손을 들어서 그들의 함성에 답했다.

허도기 뒤로 월극을 든 청년이 따라나섰지만, 신경 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초도성 사람들조차 처음 보는 얼굴이다.

사람들은 오로지 허도기에게만 열광했다.

허도기는 검도 지니지 않은 채 느긋하게 뒷짐을 지고 혈무대 계단을 밟았다.

시종들은 모두 뒤에 남고 월극을 든 청년만 뒤따라서 올라갔다.

혈무대 위에는 먼저 온 사람을 위해서 의자가 준비되어 있었다.

“우리가 먼저 왔군.”

“이것도 괜찮습니다. 주인이 먼저 와 있어야죠.”

“그렇지? 자, 앉지.”

허도기가 조경에게 자리를 권했다.

“아!”

몽설은 탄식했다.

우려하던 싸움이 기어이 벌어졌다.

허도기와 함께 월극을 든 청년이 혈무대에 오른다. 비무 대상이 바뀌었다.

‘이건 아니야. 이 싸움은 말려야 해. 도대체 오빠는 도대체 어딨는 거야.’

취화원 모든 살수가 아걸을 수소문했다. 하지만 아걸은 땅으로 꺼진 듯, 하늘로 솟구친 듯 세상에서 완전히 사라져버렸다. 도무지 찾을 수가 없다.

적랑대도 마찬가지다.

적랑대가 아걸을 찾았다면 벌써 소식을 보내왔을 것이다.

“아걸이 혈무대로 오르기 위해서는 인파를 뚫고 나가야 해. 아니면 지붕을 통해서 움직이던가. 지붕마다 두 명씩 숨어서 지켜봐. 나머지는 사람들 사이에 섞여 있어. 팔을 뻗으면 닿을 수 있는 위치까지 간격을 좁혀.”

아걸이 어느 쪽에서 나타나든지 취화원 살수들에게 걸리게끔 살수를 배치했다.

“누구든 아걸을 보면 발목을 붙잡아야 해. 절대 이 비무를 하게 만들면 안 돼.”

“넷!”

살수들이 뿔뿔이 흩어졌다.

* * *

성검문 안쪽에서 한 사람이 총총히 달려 나왔다. 그는 빠르게 단 위로 올라와서 허도기에게 보고했다.

“명부판관이…… 가산에서 내려오고 있습니다.”

“뭐! 가산에서?”

허도기가 기가 막힌다는 듯 입을 쩍 벌렸다.

설마 아걸이 성검문 심장 한복판에 들어와서 밤을 새웠을 거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그러잖아도 성검문이 전력을 기울여서 찾던 참이다.

초도성을 이 잡듯이 뒤졌지만, 그림자도 찾지 못해서 어디에 있나 궁금하던 차이다.

“정말 기가 막힌 놈이지 않나?”

허도기가 조경을 보며 말했다.

“가산이라면 저 산 말입니까?”

조경이 전각들 뒤에 우뚝 서 있는 뒷산을 가리켰다.

허도기가 고개를 끄덕였다.

“저기로 가려면 성검문을 통과하는 수밖에 없는데, 하하! 거의 스무 명 넘게 성검문을 통과했는데도 까마득히 몰랐군. 하하! 이거 성검문 꼴이 말이 아니야.”

조경은 마른 웃음을 흘렸다.

아걸이 제대로 뒤통수를 쳤다.

‘이놈, 장군으로 써도 될 놈이야.’

조경은 이상하게도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걸은 기습전의 정수를 보여주었다. 만약 그가 기습을 생각했다면 틀림없이 성공했다. 목표가 허도기였다면 지난 밤에 싸움이 벌어졌을 것이다.

아걸은 기습 대신에 안식을 취했다.

적의 심장에 앉아서 편안하게 안식을 취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배포가 대단해야 한다. 죽음 같은 것은 염두에 두지 않아야 가능하다.

조경은 아걸을 조금은 안 듯한 생각이 들었다.

삐걱!

성검문 대문이 열렸다. 그리고 아걸이 모습을 보였다.

조금 전에 허도기가 나왔던 문을 통해서 아걸이 태연하게 걸어 나온다. 은거 무인 스무 명도 각기 병기를 쥔 채 아걸을 호위하듯이 좌우에서 둘러싸고 있다

조경은 아걸을 처음으로 봤다. 그리고 처음으로 자신이 이 싸움에서 질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상관없다는 생각이다.

허도기가 진공부에서 떠난다고 했으니, 나라가 안정된다. 아버지의 근심 걱정이 한순간에 덜어진다.

좌우시랑이 허도기의 사직서와 인장을 갖고 장군가로 향했다.

지금쯤이면 사직서가 아버지의 손에 쥐어져 있을 것이다. 어쩌면 벌써 성검문을 향해 오고 계실지도 모른다. 허도기가 큰 결심을 한 만큼 아버지도 상응하는 예의를 갖출 것이다.

‘좋은 싸움이 되면 더 좋고. 후후!’

월극을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갔다.

군사 천여 명을 이끌고 이만 대군을 향해 돌진할 때와 같은 기분이다. 투지가 끓어오르고, 생사가 머릿속을 떠나는 극도의 흥분상태가 일어난다.

이런 상태는 매우 차분한 모습으로 표현된다.

조경은 얼음처럼 차가워진 눈으로 아걸을 쳐다봤다.

허도기가 가산에서 눈을 돌리며 말했다.

“명부판관, 천부적인 싸움꾼이네. 조심하시게.”

“걱정하지 마십시오.”

조경이 월극을 꽉 잡았다.

“이거 미치고 팔짝 뛰겠네. 왜 저기서 나오지?”

취운이 아걸을 먼저 보고 깜짝 놀라서 말했다.

“그러게? 왜 저기서 나오지?”

팔 장로 역시 할 말을 잃고 멍하니 쳐다보기만 했다.

아걸이 전혀 예상치 못했던 곳에서 나온다. 팔 장로가 힘들게 들어갔다가 빠르게 빠져나온 곳에서 스무 명 넘는 사람들이 태연자약하게 걸어 나온다.

“하아!”

몽설은 너무 기가 막혀서 한숨을 내쉬는 것도 잊어버렸다.

아걸이 나타나면 제일 먼저 달려가기 위해서 지붕 위를 선점했다. 높은 데에 올라서 언제든 뛰어내릴 준비를 끝냈다. 한데 지금은 달려갈 수도 없다.

“그럼 어젯밤에 성검문에 있었던 거야? 뭐 저런 놈이……. 아니, 저런 분이 다 있어?”

월영이 부지불식간 ‘놈’이라는 말을 썼다가 급히 정정했다.

물론 몽설은 그런 말조차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놈이면 어떻고, 분이면 어떤가? 이제 어쩔 것인가?

“성검문의 초빙을 받은 건가? 그렇지 않고서야 성검문에서 나올 리가 없잖아.”

월영이 말했다.

“아걸이 초빙을 받겠어?”

“그건 그런데…….”

“그럴 리 없어. 성검문도 어제 밤새도록 찾았잖아?”

“맞아. 성검문도 어제 밤새도록 사방을 뒤지고 다녔으니까. 그럼 성검문 경계가 이렇게 허술했나? 저 많은 사람이 숨어 있는데도 몰랐다고?”

월영은 여전히 이해할 수 없었다.

그녀뿐만이 아니다. 지금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어떻게 연락할 방법이 없지?”

“연락할 방법이 없는 거죠?”

취운과 팔 장로가 서로 동시에 말했다.

모두 속수무책이다. 연락을 취할 방법이 없다. 이미 늦었다!

지금은 소리조차 지를 수가 없다. 소리를 지른다고 해도 많은 사람의 함성에 휘감겨서 듣지 못할 것이다.

“와! 명부판관이다!”

관중들이 함성을 질렀다.

명부판관을 지원해서 함성을 지르는 것이 아니다.

그가 나타났기 때문에, 정말로 싸움이 벌어질 것이기 때문에 함성을 지른다.

무인 스무 명이 좌우로 갈라섰다.

아걸이 혈무대를 향해 계단을 밟으면서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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