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화. 第四十一章 누명(陋名) (1)
아걸이 허도기를 쳐다봤다.
허도기도 아걸을 쳐다봤다. 얼마 전에 일전을 부딪쳤으면서도 전혀 내색하지 않는다.
“우리 사이에 말은 필요 없겠지.”
스읏!
아걸이 반철도를 들어 올렸다.
그때, 허도기가 손을 들어 아걸을 제지했다.
“우리 사이라니? 우리가 아는 사이인가?”
“…….”
“우선 네 무공부터 보지. 내 검을 뽑게 할 수 있을 만한 칼인지 증명해야겠어.”
아걸이 시선을 돌렸다.
혈무대에 오를 때부터 월극을 들고 있는 청년이 눈에 거슬렸다.
한눈에 봐도 굉장히 강한 고수다. 화원에서 기른 화초가 아니라 들판에서 핀 잡초 냄새가 강하다.
피를 많이 본 자다.
“여긴 조경이라는 분인데, 나이를 떠나서 나도 존경하는 무인이지. 먼저 자격을 증명해 봐.”
“얼마든지.”
아걸이 곧장 혈무대 중앙에 섰다.
“부탁하네.”
허도기가 조경을 쳐다보며 말했다. 하지만 굳이 말할 필요도 없었다.
이 순간, 조경의 눈빛이 활활 타오르고 있다.
늑대는 늑대를 알아본다. 강자는 강자를 느낀다.
승패를 점칠 수 없는 강자의 등장은 묘한 흥분과 두려움을 동시에 안겨 준다.
조경은 아걸을 보자마자 들끓는 투지를 일으켰다.
월극은 창과 도끼를 합쳐 놓은 장병(長兵)이다.
창날 밑부분에 도끼를 붙여 놓았다. 창대도 무기다. 강철로 만들어서 후려치면 타격이 크다. 창대 끝부분에는 철환을 박아 놓았다. 힘껏 내리찍으면 바위도 으깨 버릴 수 있을 만큼 큰 충격을 일으킨다.
월극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전체가 병기다.
월극은 다수의 적을 죽여야 하는 전쟁터에서 매우 뛰어난 장점을 보인다.
창이나 칼보다 효용성이 더 높다.
정통 창법을 구사하는 것보다는 마구잡이로 찌르고, 찍고, 휘둘러서 죽인다.
조경이 구사하는 팔군창법도 전쟁이 아니었으면 탄생하지 않았을 아수라 창법이다.
“누구냐.”
아걸이 청년을 보며 물었다.
“나 조경이다.”
“이름은 아까 들었다. 뭐 하는 사람이냐고. 소축십검은 아닌 것 같고, 성검문 문도도 아닌 것 같은데?”
“칼 들고 마주 섰으면서 일일이 상대를 확인하고 싸우나? 그건 칼 들기 전에 할 일이지. 지금은 죽이기 위해서 최선을 다해야 하는 순간이야.”
“이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죽이기 위해서인가?”
“하하! 그래.”
조경이 웃으며 대답했다.
“그런데 왜 저런 인간을 위해서 목숨을 내놓지? 이해가 안 되어서 묻는 말이야. 돈이 궁한 것 같지도 않은데.”
“누가 목숨을 내놓은 것인지는 싸워 봐야 알겠지. 널 죽이는 거는 안타깝다만 그만한 가치가 있으니까. 죽더라도 억울해하지는 마라.”
“생각이 아주 다르네. 난 당신이 저런 인간을 위해서 죽는 게 안타까워서 한 말인데.”
“너 하나가 죽으면 많은 사람이 산다. 혼란도 가라앉을 수 있지.”
아걸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지금 조경이 하는 말은 도대체 이해할 수 없다. 하지만 조경이 무인이 아니라는 것, 그리고 허도기와 조경 사이에 어떤 내막이 있다는 것만은 어렵지 않게 짐작된다.
아걸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 서로 목적이 다르군.”
아걸도 반철도를 들어 올렸다.
양쪽 모두 피할 수 없는 일전이 되어 버렸다.
두 사람이 마주 섰다.
조경의 모습은 누가 봐도 굳건하다.
두 발은 어깨너비로 벌리고, 두 손으로 월극을 가볍지만 굳건하게 움켜잡았다.
창끝은 아걸의 머리를 향했다.
취릭! 취릭! 취리릭!
창끝이 빙글빙글 돌았다.
정방향으로 휘돌다가 역방향으로 틀어진다. 그러다가 다시 방향을 바꾼다.
손가락 한 마디로 창끝을 자유롭게 움직인다.
창은 현란하게 움직인다. 하지만 중심점, 창을 든 몸은 땅에 붙박아 놓은 듯 단단하다.
‘죽음만 아는 창이다.’
아걸은 조경의 창에서 죽음의 냄새를 맡았다.
피가 튀고 살이 찢어지는 곳에서 악귀를 먹으며 탄생한 창은 생사에 민감하다.
무인의 병기와는 무엇인가 조금 다른 처절함이 읽힌다.
조경은 무인이 아니다. 허도기가 데리고 있는 군부 장수들처럼 전쟁터를 전전하는 자다.
“후욱!”
아걸은 긴 숨을 토해 냈다.
그는 싸울 생각이 없는 듯 반철도를 쭉 늘어뜨리고 있다. 칼을 잡은 손에도 힘이 들어가 있지 않다. 하지만 두 눈은 강렬한 투지로 활활 불타오르고 있다.
휘릭!
아걸이 칼을 휘두르며 왼쪽으로 돌기 시작했다.
조경은 오른손잡이다. 당연히 오른발이 앞으로 나오고 상반신은 왼쪽으로 열려 있다.
아걸이 오른쪽으로 돌면 그는 등 쪽으로 돌아야 한다. 왼발, 뒷발을 움직여야 하니 당연히 불편하다. 단순히 돌기만 할 때는 상관없지만, 돌면서 빠르게 공격해 오면 즉시 대응하기가 쉽지 않다.
물론 그는 원의 중심에 있다. 아걸은 원 밖에 있다.
아걸이 두 걸음을 움직일 동안, 그는 살짝 몸의 방향만 바꾸면 된다. 움직임이 적다는 이점 때문에 역방향으로 돌고 있어도 불편함을 느끼지 못한다.
나는 자유롭게, 상대는 부자연스럽게.
모든 무인이 이와 같은 방식으로 싸운다. 너무 당연해서 눈여겨볼 필요도 없다. 사실 고수들 간의 싸움에서는 이런 움직임 따위는 잘 통하지 않는다.
아걸은 매우 신중하게 왼쪽으로 움직였다.
하수들끼리 싸우는 모습으로 가장 밑바닥 기본부터 충실히 다져 나간다.
스읏! 스스슷!
아걸이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걸은 혈무대를 폭넓게 사용한다. 병기와 병기 간의 거리만 생각한 것이 아니다. 상대방이 뛰어들어서 창을 찔러 낼 거리까지 계산하면서 움직인다.
다닥! 다닥! 다다닥! 다다닥!
아걸이 달리기 시작했다.
조경의 움직임도 빨라졌다. 아걸은 원을 그리면서 돌고, 조경은 역으로 돌고 있지만, 월극이 반철도를 놓치지 않고 따라붙는다. 그것도 무척 여유롭게.
쉬잇!
아걸이 얼음판에서 미끄러지듯이 쭈욱 미끄러지면서, 두 발로 조경의 다리를 걸었다. 동시에 반철도는 언제든지 위로 쳐올릴 수 있도록 준비해 두었다.
이것은 일홀문 문주들의 무공이 아니다.
쌍겸이 낫으로 발등을 찍는 모습을 보고 그림 하나를 그려보았다.
칼이 아닌 두 발로 다리를 걸면, 상대는 피하지 않는다. 당장 병기를 휘둘러서 다리를 잘라버리던가, 아니면 훌쩍 뛰어오른 후에 즉시 반격해 온다.
이 외에도 반격할 방법은 많다. 하지만 절대로 물러서지는 않는다.
칼이 아닌 두 다리로 공격하는 이상, 반드시 역공을 취해 온다는 데 손가락을 건다.
쉬이잇!
조경은 훌쩍 뛰어오르면서 월극으로 사정없이 바닥을 내리찍었다.
타타탁! 타타타탁!
월극이 아걸을 예닐곱 번이나 찍었다.
하지만 이때, 아걸은 이미 일어났다. 조경이 두 발을 오므리면서 펄쩍 뛸 때, 같이 따라서 움직였다.
쉬이이익!
아걸은 내리찍는 월극을 간발의 차이로 피하면서 옆구리를 타격했다.
아걸의 움직임은 크지 않다. 아주 좁고 작다.
조경이 옆구리로 다가서는 반철도를 의식해서 옆으로 반걸음 비켜서며 창을 내질렀다.
쉿! 쒜에엑!
아걸은 얼굴을 옆으로 홱 돌렸다.
순간, 월극이 아슬아슬하게 머리를 스치며 지나갔다.
지켜보는 사람이 간을 졸일 정도다. 당하는 줄 알고 벌떡 일어서는 사람도 있었다.
순간, 팔군창법의 정화가 터졌다.
머리에서 가슴으로, 가슴에서 다시 머리로 그리고 복부로, 허벅지로……. 창이 위아래를 동시에 찌르는 것처럼 보인다. 변화가 너무 빨라서 어지럽다.
조경이 젊은 나이에 장군직을 맡고 전쟁터를 누빈 데는 합당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아걸은 정확하게 창대만 노리고 반철도를 쏘아 냈다.
까앙! 깡깡! 까아앙!
반철도와 월극이 거칠게 부딪쳤다.
월극은 강철로 만들어져 있어서 잘리지 않는다. 더욱이 조경이 들고 있는 월극은 단단하기가 둘째라면 서러운 묵강한철을 천 일 동안 제련해서 만든 것이다.
아걸도 월극을 잘라 낼 생각은 없다. 그래도 창대를 노렸다.
강한 힘으로 강철을 두들기면 그 충격이 고스란히 창대를 타고 흘러가서 손아귀를 찢어 놓는다.
아걸보다 내력이 약하면 창을 놓친다.
아걸보다 내력이 강해도 상관없다. 일단 팔군창법을 틀어막는 효과가 있다. 그런데,
“큭!”
아걸이 오히려 짧은 신음을 토해 냈다.
조경은 아걸의 공격을 알면서도 받아 냈다. 반철도가 창대를 치는 순간, 아주 빠르게 반탄력을 일으켰다.
그 충격은 고스란히 반철도를 두들겼다.
창대를 타고 밀려든 강맹한 내력이 반철도를 쥐고 있는 아걸의 손에 전달되었다.
휘익!
아걸은 뒤로 한 걸음 물러났다. 하지만 아걸은 물러날 때보다 더욱더 빠르게 달려들었다.
쒜에엑! 쒝! 쒝!
반철도가 역으로 월극을 압박했다.
창날, 도끼, 창대…… 월극의 머리부터 차례로 가격하면서 순식간에 손목을 후려쳤다.
타앙!
조경이 창대로 반철도를 받아넘겼다.
두 사람은 쾌속을 타진하고 있다. 조경이 팔군창법으로 일차 타진을 했고, 아걸이 집중 공격을 퍼부으면서 조경의 반응을 끌어내고 있다.
상대방의 힘과 빠르기를 점검한다? 전형적인 무인 간의 비무다.
죽고 죽이는 싸움이 아니라 힘과 기량, 병기의 숙련도를 타진하고 있다.
아걸은 철저하게 일홀도를 사용하지 않았다.
삼십육 문주의 일홀도는 물론이고, 자신이 터득한 일홀도까지 쓰지 않았다.
먼저 몸을 가볍게 한다.
두 번째로 내공을 사용하지 않는다. 오로지 육신의 힘만으로 팔군창법을 상대한다.
은거 무인들을 상대해서 백전백패를 기록한 바로 그 무공이다.
휘릭!
어느 순간, 아걸이 뒤로 훌쩍 물러섰다.
“후우!”
아걸이 한숨을 내쉬면서 말했다.
“서로 볼 건 다 본 것 같은데?”
“말 많은 친구군. 난 말 많은 건 딱 질색이야. 시작했으면 끝을 봐야지.”
“여기서 더 하려는 이유가 뭔데?”
“네놈 칼에 살기가 없어. 그게 마음에 안 들어. 살인 병기에는 살기가 담겨 있어야지.”
“그건 피차일반 아닌가?”
“중원제일인에게 도전하는 무공이 어떤 건지 보고 싶었거든. 하지만 별것 없네. 그래서 지금부터 살기를 담아 보려고.”
스읏!
조경이 월극을 들어 올렸다.
그러자 월극이 갑자기 피를 흘렸다. 창날에서 붉은 핏물이 방울방울 맺혔다.
진짜 핏물은 아니다.
월극에 진기를 주입하자 시리디시린 창날이 붉은색으로 바뀐 것이다. 묵강한철로 제련하면 주인의 마음이 창날에 담긴다고 하는데, 그런 모양이다.
조경이 살기를 띠었다.
아걸은 반철도를 빙빙 휘돌렸다. 역시 진기는 싣지 않았다. 육신의 힘만으로 반철도를 돌린다.
쒜에에엑!
조경이 창을 찔러 왔다.
공격이 시작되기도 전에 파공음부터 들렸다.
창이 허공을 찢어 놓는다. 수평으로 쭉쭉 찌르는 창에 허공이 갈라진다.
창은 순식간에 코앞으로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