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화. 第四十一章 누명(陋名) (2)
“이거 재미있군.”
허도기가 싱긋 웃었다.
아걸이 완전히 바뀌었다. 눈에 익은 일홀도가 아니다. 완전히 낯선 무공을 구사하고 있다.
그런데 아걸이 구사하는 무공이 오히려 뒤로 후퇴했다. 일류고수에서 초상승 고수로 발전하지 않고 오히려 삼류 무인으로 타락했다.
아걸은 진기를 전혀 사용하지 못하고 있다.
말도 안 된다. 아걸은 진기를 극한으로 사용해서 일홀도를 뽑아냈다. 풍도곡 서리가헌의 팔을 잘라내기까지 한 초극고수다. 절대 하수가 아니다.
고수가 왜 하수 흉내를 내고 있지?
더 웃긴 것은 고수가 펼친 창법을 하수가 태연히 막아 내고 있다는 점이다.
아걸은 진기를 전혀 사용하지 않은 육신의 힘만으로 조경의 창을 막아 내고 있다. 비록 사력을 다해서 막아 내고는 있지만, 그렇다고 해도 말이 안 된다.
아걸은 천하 역사가 아니다.
태어날 때부터 항우 정도 되는 힘을 지니고 있다면 모르겠다. 그 외에는 전혀 불가능한 일이다.
조경의 팔군창법에는 엄청난 진력이 내포되어 있다.
달리는 말 위에서 번쩍 뛰어올라 월극을 내리친다. 그러면 상대는 당연히 병기를 들어서 막는다. 월극은 가로막는 창을 단숨에 잘라 버린다. 투구를 자르고, 머리를 베고, 몸까지…… 그리고 그가 타고 있는 말까지 갈라 낸다.
팔군창법의 묘용은 빠름에 있지 않다. 극강의 힘을 빠르게 쳐 내는 데 있다.
아걸이 이런 창법을 막아 내고 있는 것이다.
‘뭐지?’
허도기는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아걸을 주시했다.
까앙! 깡! 깡! 깡! 까앙!
조경이 매우 빠르게 월극을 휘둘렀다. 반철도가 간발의 차이로 겨우겨우 창을 막는다.
구경하는 사람이 병기 부딪치는 소리를 들으면 또 한 합 교환했구나 하고 지나칠 것이다.
천둥과 천둥이 부딪히고 있다.
감히 방심할 수 없는 빠름과 힘이 거침없이 터지고 있다.
‘도대체 뭐냐?’
허도기는 진기를 사용하지 않고 어떻게 조경의 창법을 막아 낼 수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까앙! 깡! 깡!
반철도와 월극이 부딪쳤다.
허도기는 아걸만 주시했다. 조경은 보지 않고 아걸의 움직임만 뚫어지게 지켜보았다.
원래는 이 싸움에서 조경의 팔군창법을 주시할 생각이었다.
팔군창법은 나중에 반드시 부딪쳐야 하는 무공이다. 조경보다 훨씬 뛰어난 창술의 고수가 기다리고 있다. 허도기조차도 방심할 수 없는 전신(戰神)이다.
오방충신 조위의 창술은 ‘자술제일두(刺術第一頭)’로 불린다.
찌르는 병기 중에서 단연 으뜸이라는 소리이니, 이보다 더한 칭송은 없다.
조위는 좋은 적이 될 것이다.
그와 일전을 벌이기 위해서 팔군창법을 봐 두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싶었다.
그런데 팔군창법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저놈!’
허도기는 아걸만 쳐다봤다.
조경은 월극을 머리 위로 쳐들었다. 그리고 반원을 그리면서 떨어트린다.
아걸이 월극을 피한다.
월극은 땅으로 떨어지는가 싶더니 다시 탄력을 받아서 위로 솟구친다. 처음부터 쪼개는 창이 아니라 쳐올리는 창법을 염두에 둔 듯 속도가 훨씬 빠르다.
쒜에에엑!
아걸은 급히 반철도를 휘둘러서 창을 막았다.
따앙!
반철도와 월극이 부딪쳤다.
허도기가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바로 이 점이다.
아걸은 도대체 어떻게 저 충격을 흡수하는 것일까? 월극에는 조경의 전신 진기가 깃들어 있다. 그러니 진기 없이는 맞받을 수 없다. 칼을 쥔 손이 찢겨 나간다. 지금쯤 찢어진 손에서 핏물이 뚝뚝 떨어져야 정상이다.
‘손가락이 부러져도 모자랄 충격인데…….’
하지만 아걸은 조금도 충격을 받지 않았다. 병기끼리 충돌한 후에도 여전히 반철도를 휘두른다. 물러서지도 않고, 칼을 놓치지도 않았다.
휘익!
아걸이 뒤로 쭉 물러나면서 다시 칼을 고쳐 잡았다
조경은 급히 따라붙었다.
찌르고, 후려치고, 돌려치고, 허공으로 솟구쳐서 몸을 뒤집어 공격하는 운룡번천(雲龍翻天)을 네 번이나 펼쳐 냈고, 재차 도약하여 천중양단(天中兩斷)을 시전한다.
그야말로 눈부신 속도다.
비무를 지켜보는 사람들이 입을 짝 벌린 채 다물지 못하고 있다.
조경은 성검문 무인이 아니다. 성검문 병기인 검을 사용하고 있지도 않다.
초도성에서는 처음 보는 낯선 무인이다.
허도기가 조경을 내세웠을 때는 나름대로 한가락 할 것이라고 짐작했지만, 완전히 혈무대를 장악하고 훨훨 날아다닐 줄은 몰랐다. 명부판관이 쩔쩔매고 있지 않나.
아걸은 방어하기에도 급급하다.
탕! 탕탕!
조경의 월극이 아걸의 몸 주위에서 격렬하게 불똥을 튀겼다.
아걸의 반응이 조금만 늦었어도 몸이 꿰였을 것이다.
‘촌경(寸勁)?’
허도기는 눈살을 찌푸렸다.
문득, 생각나는 것이 있다. 아걸, 저놈…… 촌경을 사용하고 있다.
조경의 창을 피하지 못해서 쩔쩔매는 것이 아니다. 창이 몸에서 손가락 한 마디 정도 거리까지 다가오도록 내버려 둔다. 최대한 기다린다.
그런 후, 손가락만 까딱 움직여서 반철도를 쳐올린다.
반철도의 도신은 몸에 붙어 있다. 월극이 반철도를 칠 때, 몸이 반철도를 받쳐 준다.
조경의 전신 진기는 칼을 통해서 몸으로 흡수한다.
촌경은 죽음을 각오한 자만이 수련할 수 있다. 병기를 막을 거리가 손가락 한 마디밖에 되지 않는다. 아차! 하는 순간에 막지 못하고 몸이 베일 수도 있다.
이런 위험 때문에 촌경을 연마하는 무인은 없다.
‘일홀사도……!’
허도기는 고개를 끄덕였다.
일홀문에는 극악한 수련 방법이 존재한다. 육신을 죽음 속에 던져 버린다. 살겠다는 생각을 버린다. 눈을 뜨면 ‘오늘이 마지막 날이다. 오늘 죽는다’하고 생각한다.
그리고 말할 수 없을 만큼 강한 자나 사람이 들어설 수 없는 극악한 환경을 찾아서 도전한다.
목숨을 버렸는데, 그까짓 칼이 몸에 바싹 붙을 때까지 못 기다릴까.
손가락 한 마디 거리까지 다가오게 만들 수 있다. 진득하게 참고 지켜볼 수 있다.
촌경은 진력을 소진하고 적의 공격을 무산시켜 준다.
하지만 단지 그것뿐이라면 목숨을 던져 가면서 촌경을 수련할 사람은 없다.
힘을 비축하는 효과보다 위험 부담이 너무 크다.
정반대로 위험 부담이 너무 커서 전력을 다 쏟아 내도 사용하지 말아야 할 수법이다.
촌경에는 또 다른 효과가 있다.
피할 수 없는 역습이다.
촌경은 칼을 막는 순간, 이미 역습을 준비한다. 아니, 역습이 동시에 펼쳐진다. 반철도로는 창을 막고, 동시에 다른 손은 역습을 가해 숨을 끊는다.
방어와 공격이 동시에 이루어진다.
방어가 촌경으로 이루어진 만큼 역습 또한 촌경의 거리밖에 주지 않는다.
상대도 촌경으로 막아야 한다.
촌경에 대해 수련을 하지 않은 무인이라면 절대로 막을 수 없다.
극초단타(極超短打)!
병기와 병기가 부딪치는 찰나, 두 사람의 병기는 동시에 무력화된다. 비록 그 순간이 한순간에 불과할지라도 양쪽 모두 병기를 사용할 수 없는 순간을 맞이한다.
서로의 거리는 숨소리를 들을 정도로 바싹 붙어 있다.
이런 경우를 예측한 사람은 살짝 손목의 변화만 일으켜도 칼을 움직일 수 있다.
전력을 다해서 공격한 상대는 병기를 회수하는 데 집중한다.
이미 준비하고 있던 자가 회수 과정이 없이 즉시 공격하는 극초단타를 어떻게 막아 낼까.
아걸은 쩔쩔매고 있는 게 아니다. 무척 여유 있게 막아 내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이미 역공 기회를 수십 번은 더 찾아냈다. 그런데도 아걸은 조경을 치지 않고 있다.
승부는 벌써 끝났다.
“후후후!”
허도기가 웃었다.
촌경은 이론상의 무학이다.
촌경이라는 말보다는 극초단타의 의미가 짙은 일촌살타(一寸殺打)로 더 많이 알려져 있다.
그저 이렇게 하면 어떤 병기든 막아 낼 수 있지 않을까 하고 농담으로 늘어놓는 헛소리다.
아걸은 일촌살타를 정확히 구사했다.
진기를 버리고 칼의 힘을 다시 상기하자, 무공에 대한 안목이 달라졌다.
당연히 삼십육 문주의 일홀도도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관점에서 살펴보게 되었다. 단지 무공을 보는 것이 아니라 일홀문주가 왜 이런 칼을 선택했는지 그 이유를 찾아보았다.
그러다가 몇몇 무공에서 공통점을 찾아냈다.
십칠 대 문주의 칼, 도령전체(刀靈轉遞)는 몸과 칼의 일체화를 추구한다. 이십오 대 문주의 수신도(守身刀)는 칼을 몸 주위로 휘돌린다. 사부, 삼십육 대 문주의 진기통타(眞氣痛打)는 칼을 손의 연장선으로 만든다.
모두 촌경을 추구하고 있었다.
몸을 많이 움직이지 않고, 즉각적인 방어와 공격을 할 수 있는 칼들이다.
아걸은 이런 기초가 있었기 때문에 은거 무인들의 병기를 지켜볼 수 있었다. 진기를 사용하지 않고도 그들과 대등한 수준에서 비무를 치를 수 있었다.
이것이 일촌살타의 위력이다.
특히 아걸은 몰안이라는 천고에 다시 없는 눈을 가지고 있다.
집중하면 주위가 사라지고 오직 한 점만 두드러진다. 모든 감각이 한 점에 모인다.
몰안으로 지켜보고 쳐 낸다.
별로 어렵지 않다. 다만 진기 없이 칼을 사용하려면 기본적으로 신체 능력을 예민하게 가다듬어 놔야 한다. 신경이 바짝 곤두서야 하고, 근육이 탄탄하게 단련되어 있어야 한다.
일촌살타를 이루는 기본 중 기본은 강인한 신체다.
그다음에 몰안이 있고, 진기 실린 병기를 받아 내는 칼이 있는 것이다.
아걸은 은거 무인들과 무예를 겨루면서 일촌살타를 수련했다. 다만 역공을 취하지 않았을 뿐이다. 그들의 병기를 받아 내면서 충격을 흡수하는 방법도 찾아냈다.
그럼 왜 진기를 사용하면 안 되나? 아니다. 진기를 사용한다. 진기 없이 칼을 쳐 내는 것은 수련용이다. 실전에서는 진기를 사용해서 더 빠르게 구사한다.
진기를 사용하지 않고 은거 무인들의 병기를 받아 낸다면, 진기를 사용했을 때는 어떻겠나.
은거 무인들과의 비무는 결국 허도기를 겨냥한 것이다.
허도기의 검을 상대하기 위해서 필사적으로 일촌살타를 수련했다.
아걸은 조경의 창법을 수련하듯이 막아 냈다. 진기를 사용하지 않고도 막아 낸다. 진기를 사용하거나 역공을 취했다면 승부는 벌써 끝났다.
그런데도 조경이 계속 달려든다. 그는 자신이 어려워졌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인가?
그렇다. 모른다.
일촌살타가 재미있는 것은 상대방이 아걸의 상태를 정확하게 판단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정말 운 좋은 놈! 하지만 한 번만 더 공격하면……!
딱 그 정도의 느낌만 온다.
쒜에에엑!
조경이 득달같이 달려든다.
월극이 내리쳐진다. 월극에 붙은 도끼가 이마를 내리찍는다. 아니, 이마를 노리지 않는다. 이마를 치는 척하면서 밑으로 흘러내려 허벅지나 정강이를 찍을 것이다.
아걸은 월극의 흐름이 보였다.
머리를 살짝 돌려 월극을 피했다. 예측한 대로 도끼날이 머리를 스치며 흘러내렸다.
아걸은 월극이 허리 아래로 떨어지기 전에 반철도를 퉁겨 냈다.
순간, 조경의 가슴이 열렸다.
수련 기간이 일 년만 넘어도 공격을 피한 후, 반격하는 행동은 하지 않는다. 그러면 한 수 늦어진다. 오른쪽 눈을 찔러 오는 창이 있으면 당연히 고개를 돌려 피한다. 하지만 고개를 돌리는 순간 이미 왼손은 상대방의 눈을 찌른다.
모든 무인은 동시 공방을 일으킨다.
다만 그들의 공방이 초단타라면, 아걸의 공방은 극초단타라는 점이 다르다.
‘가슴!’
일촌살타는 이런 기회를 수십 번이나 찾았다. 하지만 공격하기를 망설였는데…… 이번에는 반철도로 가슴을 쳤다.
퍼억!
“크윽!”
조경이 비명을 내지르면서 나가떨어졌다.
조경은 무사하다. 칼날로 치지 않고 칼등으로 쳤기 때문에 흉측하게 멍이 들었을망정 생명에는 지장이 없다. 그런데 그때!
“멈춰!”
쒜에에에엑!
거센 일갈이 터지면서 섬광처럼 검광이 뻗쳐 왔다.
아걸은 깜짝 놀라서 뒤로 물러섰다. 이번 검은 일촌살타로도 보지 못했을 만큼 빨랐다.
휘리리릭! 쒜에에엑!
허도기가 신랄하게 검을 쏘아 냈다.
아걸을 노리고 친 검은 아니다. 아걸과는 상당히 거리를 벌린 채 공격했다. 단지 아걸을 뒤로 물러서게 만드는 데 목적이 있는 검공이다.
허도기가 냉혹한 표정으로 말했다.
“잔인한 놈! 명부판관이라는 놈이! 승부는 끝났다! 이미 쓰러진 자까지 다시 공격해서 죽일 셈인가!”
허도기의 일성이 쩌렁 울렸다.
혈무대 비무를 지켜보는 모든 사람이 그의 음성을 들었다. 멀리 백여 장 넘게 떨어진 곳까지 똑똑히 들을 수 있을 정도로 엄청난 일성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