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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홀도-203화 (203/600)

#203화. 第四十一章 누명(陋名) (3)

아걸은 조경을 공격할 생각이 없었다.

조경은 이미 인사불성이다. 비록 칼등으로 맞았지만, 가슴 요혈을 정확히 적중당했다.

보통 사람 같으면 칠 주야 정도는 끙끙거리면서 앓아누워야 할 만큼 심한 충격을 받았다. 아무리 전쟁터를 누빈 조경이라고 해도 오늘 하루는 몸을 움직이기 힘들 것이다.

그런 사람을 또 공격하겠나.

그런데 허도기가 한 말은 무엇인가.

허도기는 아걸을 물리치는 선에서 그치지 않고 직접 공격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공격하지 않았다. 검은 맹렬하게 휘둘렀지만, 아걸이 물러서자 즉시 거뒀다.

“날 굳이 나쁜 놈으로 만들어서 좋은 거 있나?”

아걸이 반철도를 들어 올리며 말했다.

“칼이 꽤 좋아졌군.”

허도기가 피식 웃었다.

순간, 아걸은 눈살을 미미하게 찌푸렸다.

다른 사람은 다 속였다. 누구도 자신이 무엇을 하는지 알지 못했다. 은거 무인들도 비무를 해줄 뿐, 아걸이 왜 어처구니없는 비무를 하는지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그런데 허도기는 단번에 알아본다.

“아무래도 오늘 내가 일진이 안 좋은 것 같은데.”

저벅! 저벅!

아걸은 말을 하면서 허도기에게 다가섰다.

“맞아. 넌 오늘 일진이 무척 사나운 날이야. 촌경을 수련한 것은 기특한데, 아직 미숙해. 어떡하나? 이제 막 기초를 잡은 거 같은데. 안타깝군.”

허도기도 싸움을 피할 뜻이 없는 듯 몸을 낮추고 검을 잡았다.

허도기는 공격이 시작되면 급하게 휘몰아친다. 그리고 다시 검을 검집에 찔러 넣는다. 싸움 도중에도 몇 번이고 검을 뽑았다가 다시 집어넣기를 반복한다.

허도기의 검법은 발검술에서 시작된다.

검이 검집에서 튀어나오는 순간이 가장 빠르다. 또 검집에서 검이 빠져나오는 순간, 타격점이 상당히 많아진다.

보통 사람은 검을 뽑고 자세를 가다듬고 검으로 상대를 겨눈다. 하지만 허도기는 검집에 든 검을 잡는 순간, 이미 노릴 곳을 정해 놓는다.

이마를 공격할까? 검집에 든 검과 이마가 일직선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가장 빠른 검, 가장 현란한 검, 아니면 변화막측한 검…… 허도기의 마음에 드는 검을 쏟아 낸다.

검은 검집에 들어 있을 때가 가장 안정적이다. 검이 타격할 때, 가장 빛난다.

안정 상태에서 가장 화려한 상태로 곧장 연결된다.

츠읏!

아걸은 진기를 일으켰다.

조경까지는 진기를 일으키지 않고 상대했다. 하지만 허도기에게는 어림도 없다.

전신에 진기를 가득 유포시키고 도신일체를 이룬다. 칼과 한 몸이 된다.

일촌살탄을 전개할 준비가 끝났다.

그때, 허도기가 쩌렁 일설을 내질렀다.

“이 비무는 네가 이겼다. 어디 가서 날 이겼다고 말해도 좋다.”

“……풋!”

아걸은 실소를 흘렸다.

어디 가서 허도기를 이겼다고 말해도 좋다고? 그 말을 믿을 사람이 누가 있나. 아무도 없다. 지금도 허도기가 꼿꼿하게 서서 큰소리 탕탕 치고 있는데 누가 이겼다고 생각하나.

허도기는 아걸이 말할 틈도 주지 않으려는 듯 즉시 말을 이었다.

“승패를 결정한 네 무공, 무척 뛰어나다. 인정한다. 만천하에 네가 이겼다고 선포해 주마. 하지만 명부판관은 너무 잔악하다. 승패가 끝난 후, 네가 한 행동은 사마외도와 다름없다. 쓰러진 상대를 재차 공격하는 것은 무인의 도리가 아니다!”

“그래서 할 말이 뭔데?”

“살도(殺刀)! 그러기에 네가 이긴 것과는 전혀 상관없이, 너한테 징계를 내리고자 한다.”

허도기는 주위에 있는 사람 모두 들을 수 있을 정도로 쩌렁쩌렁 말했다.

단순한 육성이 아니다. 진기 실린 음성, 창룡음(蒼龍音)이다.

“당신 참 헛소리 많이 하네. 안타깝다. 원래 성검문주는 이런 헛소리 하지 않는데, 많이 타락했어. 이런 말을 해서 뭘 얻으려는 건지 모르겠지만, 그때 그 검 한 번 보지.”

스읏!

아걸이 반철도를 겨눴다.

“그러지. 보여주마. 징계한다고 했으니 네 몸에 검 자국 하나는 새겨 놓아야지. 후후후!”

허도기가 웃으며 다가왔다.

아걸은 바싹 긴장했다.

전에 봤던 검! 발검! 피해야 한다!

사실, 아걸은 촌경을 수련하고 싶어서 한 것이 아니다. 이 방법이 아니면 허도기의 검을 막을 수 없겠다고 여겼기 때문에 필사적으로 수련했다.

몸 가까이 붙을 때까지 지켜본다고? 손가락 한 마디까지 다가올 동안 진득하게 쳐다본다고? 어림도 없다. 허도기의 검은 번쩍하는 순간에 터졌다가 거둬진다.

촌경을 수련한 이유를 말하면 전부 웃을 것이다.

뒤늦게라도 허도기의 검을 보고 싶어서다. 발검하는 순간은 보지 못해도, 노력을 기울이다 보면 몸 가까이 붙을 때는 어떤 느낌이라도 얻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한다.

예전에 일전을 벌일 때는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

발검하는 순간도, 검이 몸을 그어 내릴 때도 전혀 보지 못했다. 초식 자체는 구분할 수 없었고, 뭔가가 번쩍 스쳐 지나간다는 느낌만 받았다.

지금도 검을 보지 못한다면 끝난다.

슷! 팟!

발검이 터졌다.

눈앞에서 검광이 번쩍 빛났다.

순간, 아걸은 반철도를 곧추세워 가슴을 가렸다.

까앙!

가슴 앞에서 거센 충돌이 일어났다. 병기와 병기가 부딪치면서 빨간 불똥을 튀겨 냈다.

스읏!

일전을 겨룬 후, 허도기는 즉시 검을 거뒀다.

“크윽!”

아걸은 신음을 쏟아 냈다. 제 자리에 버티고 서지도 못했다. 오리처럼 뒤뚱거리면서 연신 뒤로 물러섰다.

반철도로 일격을 막아 내긴 했다. 하지만 검에 실린 진력이 상상 이상으로 강하다. 검이 아니라 무거운 철판이 하늘에서 뚝 떨어진 느낌이다.

아걸은 정신이 번쩍 났다.

‘내력을 잊고 있었다!’

지금까지 허도기의 빠름만 쳐다봤다. 허도기의 내력이 얼마나 강한지는 고려할 틈이 없었다.

허도기와 병기를 마주쳐 보지 않은 사람은 절대로 내력을 생각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막상 부딪쳐 보면 정신이 번쩍 난다. 그제야 아! 내력! 하고 후회한다.

허도기의 빠름은 내력에서 끌어내진다.

“후욱!”

아걸은 반철도를 다시 고쳐잡았다.

머릿속에 들어 있는, 몸에 체득하고 있는 모든 무공을 버린다. 오직 일촌살타에만 집중한다.

다른 무공은 허도기의 검을 막지 못했다. 그래도 일촌살타는 막긴 막았다. 허도기의 검초가 순간적으로 느껴졌다. 자신도 느끼지 못한 사이에 몰안이 궤적 중 일부분을 본 것이다.

자신이 생겼다.

“후후! 제법이군. 한 번 더 할까?”

쉬익! 쉿! 쉬이이잇!

허도기가 좌에서 우로, 우에서 좌로 번쩍번쩍 귀신처럼 움직이더니 어느새 눈앞에 섰다. 그리고 당연하다는 듯이 시린 검광이 번쩍 터졌다.

순간, 아걸은 검의 흐름을 봤다.

왼쪽 옆구리에서 터져 나온 검이 검집을 빠져나오자마자 손을 중심으로 방향이 바뀐다. 검을 잡아 빼던 손이 부드럽게 멈추면서 반탄력을 일으킨다. 검날은 달려 나오던 속도에 반탄력까지 더해져서 한결 빨라진다.

휘릭!

방향을 바꾼 검이 목을 찔러 온다.

‘목이 아니다!’

번쩍 느낌이 들었다.

왜 이런 느낌이 들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본능적으로 목이 아니라 다른 곳, 배를 막아갔다.

분명히 타격점은 목이 아니다. 아걸이 몸을 돌리거나 검에 반응하는 순간 다시 변화를 일으키며 배를 가른다. 찌르는 검에서 가로로 가르는 검이 된다.

굉장히 빠른 변속이다.

아걸은 일련의 흐름을 단숨에 느꼈다.

스읏!

머리를 돌려서 찔러 오는 검을 피했다. 동시에 반철도를 들어 옆구리를 막았다. 그 순간,

까앙!

옆구리에서 일격이 터졌다. 황소가 들이받는 것 같은 충격이 불길처럼 들이쳤다.

“후우욱!”

아걸은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비틀비틀 물러섰다.

하지만 이번에는 허도기도 여유를 주지 않았다. 검이 검집에 들어갔는가 싶더니 다시 튀어나왔다.

쒜에에엑!

검이 흐른다.

아걸은 비칠거리며 물러서느라 다가오는 검을 미처 보지 못했다.

퍼억!

검이 몸을 관통했다.

“컥!”

아걸은 벼락 맞은 짐승처럼 펄쩍 뛰어오르더니 그대로 쓰러졌다.

와아! 와! 문주님 만세!

한순간, 혈무대 주위에서 함성이 터져 나왔다.

사람들은 성검문주 편이다. 명부판관을 응원하는 사람은 없다. 적어도 초도성 사람들은 그렇다.

스릇! 휘위이익!

허도기는 검에 묻은 피를 허공에 흩뿌렸다. 그리고 여유 있게 검을 거뒀다.

철컥!

검이 검집에 꽂히는 소리가 유난히 차갑게 들렸다.

허도기가 아걸을 오연히 주시하며 말했다.

“좀 전에도 말했지만, 이 비무는 네가 이겼다. 네 무공은 분명히 뛰어나니 자신 있게 말하고 다녀라.”

웃기는 소리다. 검에 찔려서 비틀거리는데, 누가 이겼다고 인정하나. 이 비무는 졌다. 오히려 허도기의 위명만 한층 높여 주는 꼴이 되고 말았다.

“내가 너를 징계한 것은 무인의 도리를 가르친 것. 선배의 가르침으로 생각하면 억울하지는 않을 것이다. 가라. 보내주겠다.”

허도기가 등을 돌렸다.

* * *

조경은 잘 싸웠다. 다만 상대가 일홀도일 뿐이다. 그것이 폐인이다. 조경이 제 아비처럼 창술의 달인이라면 모를까, 아직은 일홀도를 상대할 자격이 없다.

그걸 알면서도 싸움을 시켰다.

그러니 싸움의 결과는 이미 정해진 것이다. 그나마 아걸이 손속에 사정을 남겼으니 이 정도에서 그쳤지, 만약 전력을 다했다면 벌써 저승 고혼이 되고도 남았다.

“물건은 회수해 왔습니다.”

진개가 말했다.

탁자 위에 허도기가 써 준 사직서와 인장들이 가지런히 올려져 있었다.

“빠진 건?”

“없습니다. 모두 회수했습니다.”

“내 방에 가져다 놔.”

“네.”

진개가 서신과 인장을 다시 보자기에 쌌다.

“칼은?”

“준비해 놓았습니다. 여기.”

점박이 오진복이 반철도를 내밀었다.

아걸의 반철도와 흡사한 칼이다. 칼끝이 뭉툭하고, 무겁고, 투박하다. 그러면서도 칼날은 예리하다.

“잘 만들었군. 모양이 똑같아. 무게는?”

“맞췄습니다.”

“좋아. 해.”

허도기가 말하자 오진복이 칼을 들고 잠자듯 누워 있는 조경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칼을 번쩍 들어 올렸다.

“……잠깐.”

허도기가 오진복을 만류했다.

“넌 조명천검에 능통해서 칼을 써도 검법 냄새가 풍겨. 다른 사람은 속여도 조위는 못 속여. 이리 줘. 내가 하지.”

“네.”

오진복이 즉시 물러나며 칼을 건넸다.

허도기가 칼을 잡았다. 그리고 정신을 잃은 채 누워 있는 조경에게 다가갔다.

“쯧, 죽기에는 너무 젊지 않나. 딱 좋은 나이인데. 이래서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칼이 등 뒤에서 찌르는 칼이라는 거야. 그런데 군인들은 적장의 칼만 생각해.”

스읏! 푹!

허도기는 거침없이 손에 든 칼로 조경의 심장을 푹 내리찍었다.

조경은 불에 덴 듯 펄쩍 뛰어오르더니 곧 잠잠해졌다.

의식을 잃었어도 칼을 맞으면 본능적으로 저항을 하게 되어 있다. 근육과 신경은 살아 있기 때문에 어떻게든 살려고 발버둥을 친다. 하지만 이미 죽음은 정해졌다.

“이놈이 제 아비만큼 세상 실정을 알았어도 여기에 오지는 않았을 텐데. 아무 대책 없이 호굴로 들어서면 죽기밖에 더 해? 쯧! 너무 무모해.”

허도기가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조경의 육신이 축 늘어졌다. 심장에서 흘러내린 피가 대청 바닥에 주르륵 흘러내렸다.

“준비한 대로 시신을 돌려보내.”

“예. 알겠습니다!”

“이번에 가는 놈은 죽는다. 그러니 죽어도 괜찮은 놈을 보내. 조위도 성질깨나 날 거야.”

“알겠습니다.”

진개와 오진복이 허리를 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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