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4화. 第四十一章 누명(陋名) (4)
쉬익!
한 사람이 담장을 넘어 날아들었다.
그는 매우 왜소했다. 키가 간신히 오 척을 넘을 정도로 작다. 나이는 추측할 수 없다. 머리는 검은데, 얼굴에 주름이 너무 많아서 나이가 많은지 적은지 구분이 되지 않는다.
그는 문이 활짝 열려 있는데도 문을 통하지 않고 담을 넘었다. 문을 통하려면 이십여 보 정도 돌아가야 한다. 그 시간조차도 아낄 생각이다.
쉬이이익!
그의 신형은 무척 은밀했다.
벌건 대낮에 나는 듯이 질주하고 있지만, 경계서는 자들은 전혀 알아채지 못했다.
그는 외따로 떨어진 전각 앞에서 멈췄다.
헌원각(軒轅閣)!
편액이 매우 단아한 글씨로 적혀 있다.
담장을 넘어선 자는 문 앞에 이르자 넙죽 엎드렸다.
“들어와라.”
전각 안에서 차분한 음성이 울렸다.
오 척 단구 사내가 차분히 문을 밀치고 안으로 들어섰다.
침묵이 흘렀다.
그를 들어오라고 한 사람도, 오 척 단구 사내도 할 말이 없는 듯 서로 침묵만 지켰다.
“……결국, 그렇게 되었느냐?”
전각 안에 있던 중년인이 물었다.
“네.”
오 척 단구 사내가 대답했다.
“막을 수는 없었더냐?”
“없었습니다.”
“음!”
중년인이 찻잔을 들어 차를 마셨다. 하지만 이미 평정심을 잃은 듯 찻잔을 든 손이 파르르 떨렸다.
“어떻게 죽었느냐?”
“…….”
오 척 단구 사내는 말하지 않았다.
“왜살(矮殺).”
“네.”
“괜찮으니까…… 말해.”
중년인이 힘들게 말했다.
왜살이라고 불린 오 척 단구의 사내가 머리를 깊이 숙인 후, 힘들게 말을 꺼냈다.
“칼에 심장이 찔렸습니다. 다행히 큰 고통 없이 운명하셨을 거라고 생각됩니다.”
“명부판관이라는 자인가?”
“겉보기에는…… 그렇습니다.”
“……겉보기? 그렇겠지.”
중년인이 차를 들어서 한 모금 마셨다. 하지만 찻잔이 입에 닿자, 이빨 닿는 소리가 다다닥 흘러나왔다.
중년인은 분노하고 있다.
“경이의 죽음은 절대 비밀로 해라. 집안사람 누구도 알아서는 안 될 것이야.”
“네.”
“성검문에서 경이 시신을 보내올 것이다. 정문으로 통과시키지 말고 후문 쪽으로 해서 내게 데려와라.”
“네.”
“다시 말하지만, 누구에게도 이 사실을 밝혀서는 안 된다.”
“네. 그러자면 성검문 쪽에서 오는 사람은 소하(溯河)부터는 통제해야 합니다.”
“그렇게 해.”
“네. 즉시 시행하겠습니다.”
왜살, 오척단구 사내가 스르륵 사라졌다.
‘허도기! 이놈……!’
중년인 조위 장군은 꼼짝도 하지 않고 의자에 앉아 있었다.
의자에서 일어서기만 하면 길길이 날뛸 것 같아서 차마 일어설 수 없었다.
조경이 성검문에 갔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바로 왜살을 보냈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아무리 급한 일이 있어도 모든 것을 접고 당장 돌아오라는 말을 전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너무 늦었다.
왜살이 도착했을 때는 싸움이 이미 끝난 후였다.
조경, 그놈은 왜 아무런 언질도 없이 적진 한복판으로 기어들어 간 것인가.
성검문은 적군보다도 더 위험하다는 사실을 왜 몰라!
조경이 막무가내로 갔을 리는 없고, 허도기가 그만큼 달콤한 유혹을 했을 것이다.
그 유혹이 도대체 무엇이었길래 아비한테 말 한마디 하지 않고 단독으로 성검문까지 갔을까. 그리고 무인하고는 왜 싸워. 무공은 전쟁터에서만 사용해야 한다는 것을 잘 아는 놈이……!
세상은 아직 조경 장군이 죽은 것을 알지 못한다.
혈무대에서 한 사람이 성검문주를 대신해서 싸웠지만, 그가 장군이라는 사실은 아무도 모른다. 허도기가 초빙한 무인쯤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대다수다.
현재까지 죽은 사람이 조경 장군이라는 말은 누구의 입에서도 나오지 않고 있다.
이 부분은 허도기도 밝히지 못한다.
허도기가 조경 장군을 끌어들여서 무인과 싸움을 시켰다면, 이 일은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해명해야 한다. 단순히 조경 장군이 무림의 무공이 어떤 것인지 알아보고 싶어 했다는 형식적인 핑계로 해결될 성질의 것이 아니다.
정국 장군에게는 소임이 있다.
무림의 무공이 아무리 궁금해도 소임을 등지고 싸움판을 기웃거릴 수는 없다.
허도기는 자신이 먼저 발설하지 않고, 장군가에서 이의를 제기할 때 역습을 취할 생각이다.
지금은 조경의 시신을 은밀히 전달해 올 것이다.
‘허도기! 이놈!’
조위 장군은 분노만 떠올렸다.
이제 허도기와는 영원히 함께 할 수 없는 적이 되었다는 사실만 절실히 깨달았다.
조위 장군은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성검문 총관이라는 자가 왔다.
듣기로는 소축십검이 총관 노릇을 하고 있다는데, 총관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자는 무공을 모르는 잡놈이다. 총관이라면 수치에도 밝아야 하는데 그런 것 같지도 않다.
어중이떠중이를 골라서 총관이라는 직책을 씌워 보내왔다.
이것은 명백한 도전이다.
“문주님께서 간곡히 만류하셨는데도 굳이 명부판관이라는 자와 한번 겨뤄 봐야겠다고 하시면서…….”
“조용히 해라.”
조위는 총관이 입을 열자마자 싸늘하게 쏘아붙였다.
“정말로 문주님은 간곡하게 만류…….”
“이놈, 치워.”
순간, 쓱! 허공에서 바람이 불었다.
“컥!”
총관이라는 자가 다급히 비명을 쏟아 냈다.
그의 머리는 어느새 몸에서 분리되어 뚝 떨어졌다.
쒝! 쒜에엑!
날카로운 바람 소리가 울렸다.
바람 하나는 땅에 떨어진 머리를 들고 사라졌다. 다른 바람들은 쓰러지는 총관의 몸을 들고 담장 너머 사라졌다. 머리 잃은 몸에서 피가 콸콸 쏟아지는데도 전혀 개의치 않았다.
총관은 금방 치워졌다.
중년인은 관뚜껑을 열고 아들을 봤다.
안색은 평온하다. 최소한 죽음의 순간이 매우 짧았다는 것은 알겠다. 그나마 다행이다.
중년인의 눈이 상처로 향했다.
가슴에 칼이 박힌 자국이 있다. 그와는 별개로 아주 강하게 타격한 멍 자국도 있다.
“음!”
중년인이 침음했다.
심장을 찌른 칼은 기다란 삼각형이다. 칼등 쪽 폭이 넓고, 칼날 쪽이 얇다.
그런데 가슴을 친 멍 자국은 폭이 넓다. 칼등으로 쳤다.
칼로 심장을 찌른 후에 칼등으로 가슴을 치는 행동은 이해되지 않는다. 이미 죽인 자를 또 칠 필요가 없다.
반대 상황도 이해되지 않는다. 칼등으로 가슴을 쳤다는 것은 죽일 생각이 없다는 것인데, 그 이후 칼로 심장을 찔러? 생각이 급격하게 변해?
아들이 아걸과 싸운 것은 맞다. 아들이 가슴을 얻어맞고 패한 것도 맞다. 하지만 아걸은 아들을 죽이지 않았다. 가슴을 친 칼, 심장을 찌른 칼은 다르다.
조위는 이런 사실을 단번에 파악해 냈다.
눈썰미가 예리해서가 아니다. 워낙 간계가 난무하는 세상에 살다 보니 자연스럽게 보게 되었다.
허도기는 이점까지는 생각하지 못했다.
칼의 모양과 무게는 맞춰서 같은 자의 소행이라는 점만 부각했다.
‘허도기! 절대로 용서하지 않는다!’
조위 장군은 관뚜껑을 다시 닫았다.
“왜살.”
“네.”
“아걸을 잡아 와.”
“허도기가 아니라 아걸입니까?”
“너희가 허도기를 어떻게 잡아. 어림도 없는 일은 하는 게 아니야. 아걸이란 놈도 만만한 자가 아닐 것이다. 어찌 되었든 경이의 팔군창법을 넘어섰어. 또 허도기에게 도전하지 않았나. 듣자 하니 소축십검도 죽였다는데. 그럼 너희 역시 죽음을 각오해야 해.”
“나리. 죄송하지만…… 상처를 봤습니다. 아걸은 흉수가 아닙니다. 아걸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데 왜 아걸을 쫓으라고 하시는 건지 이해가 안 됩니다.”
“허도기, 그놈이 바라는 것이기 때문이다.”
“네?”
“허도기가 우리에게 움직이라고 하잖느냐. 너희들 정체를 드러내라고 하니 정체를 드러내는 거지.”
“네. 알겠습니다.”
왜살이 머리를 숙였다.
왜살은 조위 장군을 철저히 믿는다.
조경 장군은 맹장(猛將)이다. 조위 장군의 아들이지만 기질이 완전히 다르다. 전쟁터에 나서면 성난 맹수처럼 적진을 휩쓴다. 주요 작전도 돌파다.
반면에 조위 장군은 지장(智將)이다.
전략을 짜고, 무력보다는 계략으로 싸운다. 무력은 언제나 최후 수단이다.
조위 장군은 이미 허도기의 생각을 읽고 있다.
허도기의 뜻에 맞춰서 아걸을 쫓는 일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는 모르지만, 장군이 시키는 일이니 한다.
왜살이 말했다.
“전보영(戰補營)을 쓰겠습니다.”
중년인이 머리를 끄덕였다.
싸움이 어디서 시작될지 늘 궁금했다.
허도기가 싸움을 걸어올 텐데, 어디서 무엇부터 건드릴지 항상 염려했다.
사달은 아들에게서 일어났다.
허도기는 가장 치명적이고 돌이킬 수 없는 부분부터 건드렸다.
이제는 생사(生死)다.
허도기의 야욕이 무엇인지 알 바 아니다. 무조건 무너트려야 하는 상대가 되었다.
허도기는 이미 한 번 반란을 시도했다가 좌절당한 경험이 있다.
성검문 문주가 되기 위해서 형을 죽이려다가 오히려 제압당했다. 그래서 소축 생활을 한 것이고…… 지금은 나라를 상대로 소축 생활을 한다.
한 번 경험이 있으니만치 이빨을 드러낼 때는 매서울 것이다. 또 미심쩍은 일이 조금만 생겨도 당장 행동을 멈출 것이다. 간사한 여우 새끼처럼.
스읏!
중년인은 오랜만에 월극을 잡았다.
무공을 사용할 순간이 곧 올 것 같다.
* * *
전보영은 전투를 보조하는 군영 중 하나다.
주요 임무는 적정탐지, 첩보 수집, 요인 암살 등 다양하다. 전쟁에 도움이 되는 일은 모두 관여한다.
조직은 방대하다. 삼부(三府), 칠청(七廳) 형태로 운영되며 직접 전보영에 소속된 인원만 천여 명이다. 전국 각처에 흩어져 있는 첩자들까지 망라하면 거의 삼만여 명에 육박한다는 말도 있다.
전보영은 비공식 임무도 가진다.
조위 장군의 가문, 장군가를 보필하는 비밀 수호 집단이라는 점이니 그렇다.
전보영의 영주(營主)는 종삼품(從三品)에 해당하는 중직이다.
하지만 실제로 전보영을 이끄는 사람은 조위 장군이다. 전보영주 또한 조위 장군의 충신이다.
“무슨 바람이 불어서?”
전보영주 탁호(濯胡)가 활짝 웃으면서 다가왔다.
“나리 명이 있었다.”
왜살이 마주 다가가 탁호의 두 손을 잡았다.
두 사람은 오랫동안 조위 장군을 모셨다. 왜살은 오십 년 넘게 장군의 곁을 지켰고, 탁호는 군직을 전전하면서 조위 장군을 보필하고 있다.
서로 목숨도 나눌 수 있는 막역한 사이다.
“나리가 무슨 명령을 내리셨기에…….”
왜살이 탁호의 귀에 대고 나직이 몇 마디를 속삭였다.
“음!”
탁호가 신음을 쏟아 냈다.
“전쟁이군.”
그가 터트린 첫 마디다.
“야! 명부판관에 대한 자료들 모두 가져와!”
탁호가 밖에 대고 버럭 일갈을 내질렀다.
“명부판관. 혈도비자. 일홀문? 이놈 보통 아닌데? 이놈 잡으려면 자네 목숨 걸어야겠어. 일홀문이잖아.”
“음!”
왜살도 침음했다.
다른 점은 다 간과해도 좋다. 무시해도 상관없다. 하지만 일홀문만은 무시할 수 없다.
일홀문은 황실의 호황위와 더불어 가장 경계해야 할 신비 집단이다.
그들이 불사신은 아니지만, 굉장히 넘기 힘든 산인 것만은 분명하다.
“나를 이놈이 있는 데까지 안내해 줘야겠어.”
“그건 어렵지 않은데. 이놈하고 붙으면 둘 중 한 명은 죽을 거 같다는 예감이 든단 말이지. 이놈이 도련님을 죽인 것도 아닌데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기도 하고.”
“나리께서 시키신 일이야.”
“그럼 가야지. 뭐가 뭔지 잘 모르겠는데 안내는 해 주지.”
탁호가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