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6화. 第四十二章 전지(剪枝) (1)
왜살이 싸움을 잘못 봤을 리 없다. 다른 사람은 못 믿어도 왜살만은 믿는다.
하지만 일단 잘못 봤다고 가정하고 다시 조사해 본다.
초도성에 열 명을 투입했다.
그들은 당시 비무를 본 사람들 열 명씩을 찾아서 비무 내용을 상세히 들었다.
그리고 그 결과가 취합되었다.
“여기가 혈무대입니다.”
진흙을 다듬어서 작은 모형도를 만들었다.
“제일선(第一線)에서 비무를 본 자는 모두 네 명입니다.”
백 명 중 네 명이 본 것을 말했다.
제일선은 혈무대 바로 밑이다. 두 무인의 숨소리까지 들을 수 있는 위치에서 봤다.
명부판관과 조경이 싸운다.
명부판관이 공격하고 조경이 나가떨어진다.
그때 피를 본 사람이 있나? 혈무대 바로 밑에서 본 네 명은 피를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뿐만 아니라 명부판관이 조경을 죽이지 않았다고 확신하기까지 했다.
가까이에서 본 사람이나 멀리 떨어진 곳에 본 사람이나 백 명 모두 피를 본 사람은 없다.
명부판관이 내친 일격에 조경이 죽었나?
여기서 의견은 상당히 갈린다. 무려 칠 할에 이르는 사람이 그 일격 때문에 조경이 죽었다고 말했다. 아니라고 말한 사람은 서른 명이 채 안 된다.
이 대답은 뒤쪽에서 본 사람일수록 확신에 가까운 답을 했다.
- 즉사지. 바로 즉사했어!
- 머리가 뒤로 출렁하더라니까. 그렇게 죽는 모습은 처음 봐. 아주 잔인했지.
가슴을 맞았는데 머리까지 출렁거릴 이유가 없다. 하지만 본 사람들은 자신 있게 말했다.
이것은 당연한 결과다.
조경은 시신이 되어서 성검문을 나왔다.
명부판관이 내친 일격에 죽었다고 생각하는 게 맞다. 일단 칼은 맞았고, 사람이 죽었다. 칼에 맞은 순간에 죽었다고 생각하는 것은 지극히 타당하다.
자신의 눈으로 본 것이 아니다.
눈으로 본 것과 싸움의 결과가 합쳐진 창작물이다. 하지만 눈으로 본 것으로 생각한다.
쓰러진 조경은 누가 데리고 갔나.
이 부분에서도 의견이 많이 갈린다.
진개와 오진복이 들고 들어갔다는 자가 있고 성검문 무인들이 데려갔다는 자가 있다.
사람들은 이 부분에서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
성검문주와 아걸이 재차 격돌을 벌이고 있었기 때문에, 관심을 둘 이유가 없었다.
제일선에서 본 자부터 제십 선에서 본 자까지 백 명의 목격담이 취합해서 보고되었다.
“조사해 봤는데, 예상대로야. 이걸로는 빼도 박도 못해. 성검문주가 죽인 거야.”
전보영주 탁호가 말했다.
왜살은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확인해 볼 필요도 없었다. 탁호가 돌다리도 두들겨 본 후에야 건너는 성격이 아니라면 벌써 왜살의 말을 믿고, 왜살의 말을 바탕으로 일을 시작했을 것이다.
그때, 아걸은 분명히 살도가 아니었다.
하지만 아걸이 죽이지 않았다고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다. 조경의 죽음을 단정한 사람이 성검문주이기 때문에 반박하려면 확실한 증거가 필요하다.
왜살은 비로소 조위 장군의 비통한 심정을 헤아렸다.
분명히 심증은 있지만, 물증이 없다.
성검문을 추궁할 만한 단서가 나왔다면 당장 군병을 이끌고 성검문으로 쳐들어갔을 것이다.
왜살이 말했다.
“나는 장군님의 뜻을 도저히 모르겠는데, 내가 아걸을 쫓으면 어떤 일이 벌어지나?”
“일차로 은거 무인들이라는 자와 싸울 것이고, 결국은 아걸과 싸우겠지.”
“승부는?”
“나도 모르지.”
탁호가 고개를 저었다.
웬만하면 친구의 손을 들어주고 싶지만, 아걸의 무공이 바로 일홀도다. 아무것도 장담하지 못한다.
“분명한 건 둘 중 한 명은 죽어.”
“난 장군 뜻이 거기까지 가지는 않을 것 같은데…… 중간에 무슨 일이 있을지 짐작조차 못 하겠어.”
왜살이 고개를 흔들었다.
탁호도 같이 고개를 끄덕였다. 장군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 도대체 모르겠다.
“우리 하는 일이 다 그렇지만, 만약 죽으면 무덤에 술 한 잔은 올려 주지. 다만…… 그런 일이 없도록 해 줬으면 좋겠다. 살아와서 술 한잔하자고.”
“후후! 그래. 날 아걸에게 안내해 줘.”
왜살이 일어섰다.
* * *
서리형개는 술잔을 들어서 단숨에 들이켰다.
독한 화주가 목구멍을 불태운다. 뱃속에 들어가기 무섭게 뜨거운 불길을 확 일으킨다.
“후후후…….”
서리형개는 쓴웃음을 흘렸다.
정동이 무너졌는데도 전혀 움직이지 못하고 있다.
몇십 년 동안 공들였던 소중한 기반이 한순간에 화르르 무너졌다. 그것도 꼴 같지 않은 취화원 살수 나부랭이에게 뒤통수를 얻어맞은 꼴이 되었다.
정동을 파괴한 주범은 취화원이다. 하지만 취화원에 복수도 하지 못한다. 취화원을 무너트리는 것은 일도 아니지만, 아무런 의미가 없다.
취화원이 할 수 있는 일은 허도기도 한다.
정동 조직이라는 것은 한순간에 무너질 수 있는 허망한 것이었다. 허도기가 직접 칼을 들고 나섰다면 아마도 한 시진 안에 소멸해 버렸을 같잖은 거였다.
서리형개는 이제야 비로소 사형이 왜 아무 조직도 키우지 않고 조용히 있었는지 이해되었다.
허도기가 지켜보고 있다. 허도기가 봐주고 있으니 존재할 수 있다. 그가 없애겠다고 마음먹으면 한순간에 사라진다.
서리형개는 술을 또 한 잔 마셨다.
일단 취화원을 통해서 눈과 귀를 다시 얻었다.
하지만 이것도 의미가 없다.
취화원이 제대로 된 정보를 보내줄 리 없다. 숨길 것은 다 숨기고 보내줄 것이다. 아니, 그 전에, 취화원이 무엇을 알아내기 전에 허도기는 숨기고 싶은 것을 모두 숨겨 버린다. 허도기가 밖으로 내놓은 정보만 취화원이 파악하는 것이고, 그 정보들조차 선별되어서 자신에게 보내진다.
이게 무슨 의미가 있나. 정작 알고 싶은 것이 있는데, 그것은 아무도 말해 주지 않는다.
허도기가 안으로 숨긴 것은 아무도 알지 못한다. 정동이 멀쩡히 존재하고 있어도 알아내지 못한다.
사형은 이런 점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지금도 조용히 있다.
허도기에 대해서 알려고도 하지 않고, 도전할 생각도 하지 않고, 조직을 키우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 어떤 것도 눈 밖에 나는 순간 소멸한다.
서리형개는 거대한 구렁이에게 몸이 칭칭 감긴 느낌이었다. 꼼짝달싹할 수가 없었다. 숨이 막혔다.
“난 이제야 허도기가 누군지 알았는데, 사형은 벌써 이십 년 전에 알았다는 말이군. 후후! 확실히 세상 보는 눈은 사형이 나보다 한 수 위야.”
스읏! 꿀꺽!
서리형개는 술잔을 들어 단숨에 마셨다.
검을 잡은 무인이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누가 뭐라고 하는 사람도 없는데 스스로 올가미에 걸려들었다. 그때,
슷!
서리형개는 수상한 기척을 감지하고 즉시 칼을 잡았다.
누군가 다가온다!
‘뭐야? 뭐가 이렇게 강해!’
서리형개는 상대를 보기 전에 이맛살부터 찌푸렸다.
굉장히 강한 자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전해지는 기도가 숨통을 콱 틀어막는다.
슷!
상대가 삼십 장 앞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허도기?’
서리형개는 눈을 부릅떴다.
상대가 자신을 숨길 생각이 없다. 기척을 환히 드러내 놓고 있다. 그래서 삼십 장이라는 먼 거리를 격하고도 존재를 눈치챌 수 있었다. 만약 기척을 숨길 생각이었다면 지척까지 다가왔어도 눈치채지 못했을 것이다.
“풋!”
서리형개는 실소를 흘렸다.
“여전하군.”
허도기가 주위를 돌아보며 말했다.
그는 완전히 무방비 상태로 천천히 걸어오고 있다. 누군가가 기습을 걸면 성공할 수 있을 것 같다. 아니다. 성공하지 못한다. 은연중에 내뿜는 기도만 접하고도 숨이 막힌다. 일단 저 철벽을 걷어내야 하는데, 그게 쉽지 않다.
한 마디로 기세에 눌렸다.
“옛날에 보고 거의 이십여 년 만인가? 그때는 젊음이 넘쳤는데. 후후! 너도 나이가 들었군.”
“우린 다시 만날 일이 없을 줄 알았는데.”
서리형개가 눈빛을 차게 굳히며 말했다.
“그 칼 쓸 거냐?”
허도기는 서리형개가 꽉 잡은 칼을 보며 물었다.
“내가 당신 적수나 돼야지.”
서리형개는 칼을 툭 던져 버렸다.
“모든 사람이 이 풍도곡 일홀문 같으면 얼마나 좋을까? 일어설 때 일어서고, 굽힐 때 굽힐 줄 알고. 쯧! 요즘 막내 사제가 너무 튀고 있지?”
서리형개는 술병을 들어서 빈 잔에 술을 채우며 싸늘하게 말했다.
“안부나 물어보려고 온 건 아닐 테고. 용건이나 말하지.”
“그럴까? 아걸을 찾겠다고 따라붙는 놈들이 있어. 내가 기껏 아걸을 살려 주었는데 엉뚱한 놈들이 중간에 죽이면 내 입장이 곤란해져서 말이야. 다른 사람이 뭐라고 생각하겠어. 성검문에서 사람을 보내 암살했다고 생각할 거 아냐. 이 일 좀 해. 아걸을 죽이겠다고 달려드는 놈들을 그 칼로 죽여.”
허도기가 맞은 편에 앉으며 말했다.
“당신에게 개가 많이 있잖아. 그런 일은 말 잘 듣는 당신 개들에게나 시키지 그래.”
순간, 허도기의 눈빛에 살광이 번뜩였다.
“너, 내가 여기까지 온 건 그래도 일홀문을 예우해서다. 말을 섞어 주니까 내가 네놈 친구라도 되는 줄 아나 봐?”
허도기가 피식 웃으면서 서리형개를 응시했다.
“말투 조심해라. 난 지금 네놈한테 명령을 내리고 있는 거야. 명령. 너한테 부탁하는 게 아니라고. 정신 차려. 그러다가 죽어. 그렇게 주제 파악을 못 해서 한세상 살겠어?”
“…….”
서리형개는 허도기를 쏘아 보았다. 하지만 말은 하지 않았다.
“아걸을 찾겠다고 달려든 놈들은 누가 되었든 모조리 베어 넘겨. 그놈들이 아걸과 만나기 전에 미리 다 죽여. 정보는 내가 주지. 한 달만 일해.”
“…….”
“한 달이 지난 후에는 자유를 준다. 어디 가서 뭔 짓을 하든 상관 안 해. 아! 그렇다고 내게 칼을 들이대면 죽는다. 가헌이처럼 죽은 듯이 살아.”
“…….”
서리형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니, 하지 못했다.
지금까지 허도기가 맹수인 줄 알았다. 아주 난폭하고 잔인한 맹수로 보아 왔다. 아니다. 이놈은 맹수가 아니다. 이미 맹수를 넘어선 악귀다.
서리형개는 허도기의 강기에 완전히 눌려 버렸다.
사실, 서리형개는 삼도일살을 수십 번이나 쳐 냈다. 허도기가 말을 하는 동안에 계속 손가락이 꿈틀거렸다. 칼을 잡기 위해서 안간힘을 다했다.
식은땀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지금! 아냐, 안 돼! 지금 공격하면? 안 돼. 지금! 목! 아!
심도(心刀)를 수십 번이나 쳐 냈지만, 그때마다 모두 틀어막혔다. 칼을 쓰기도 전에 막힌 것을 느꼈다.
허도기는 자신보다 두 배 이상 빨랐다.
결국, 허도기가 하고 싶은 말을 다 할 때까지 서리형개는 묵묵히 듣기만 했다.
허도기는 넘을 수 없는 벽이다.
아걸, 그놈은 어쩌자고 이런 놈하고 부딪혔는가.
서리형개는 사형을 또 생각했다.
서리가헌은 허도기의 명을 받자 묵묵히 칼을 들고 일어섰다. 그토록 오랜 시간이 흘렀는데도 허도기의 명령에 순순히 움직였다. 아걸을 찾아갔고, 팔이 잘렸다.
사형은 그 후에도 풍도곡으로 돌아오지 않고 있다. 중원을 유랑객처럼 떠돌아다닌다.
사형은 그렇게 자유를 얻어서 갔다.
자유를 얻는 길이 이것밖에 없는 것인가?
“……한 달. 한 달만 죽여주면 되나?”
“나이도 어린 친구가 말 좀 올리지? 내가 요즘 항상 존대만 듣고 살아와서. 그만한 위치잖아? 나는 괜찮은데, 이 두 귀가 영 듣기 싫다고 하네?”
“…….”
서리형개는 또 말을 하지 못했다.
동네 파락호들이나 걸어올 법한 시비를 받고도 대꾸 한마디 하지 못한다.
“후후후! 명심해. 누군가가 아걸과 만나서 싸운다거나 대화를 나눈다면 네 역할을 못 한 거야. 쓸모없는 존재인 거지. 난 그런 놈을 보면 무척 화가 나. 그러니 잘하자. 응?”
허도기가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