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8화. 第四十二章 전지(剪枝) (3)
“서리형개가 전보영 사람들을 죽였습니다.”
“몇 명?”
“지금까지 취합된 인원은 열네 명입니다.”
몽설은 눈빛을 반짝 빛냈다.
이런 일은 이미 예상했다.
서리형개가 전보영 사람들을 죽인 일은 다소 뜻밖이다. 하지만 허도기가 움직였으니 어떤 식으로든 관원들과 충돌이 있을 것이라고 짐작했다.
“장군가에서 보낸 사람은 누구야?”
“왜살이라고 하는데, 협척검법(狹剔劍法)의 계승자입니다. 자세한 것은 아직…….”
취운이 말했다.
“협척검법에 대해서 알아요?”
몽설이 팔 장로에게 물었다.
“제 식견이 부족해서…… 처음 들어보는 검법이네요.”
팔 장로가 어색하게 말했다.
조위 장군이 아걸과 싸우라고 보낸 사람이라면 상당한 고수일 것으로 짐작된다.
몽설은 서리형개가 전보영을 친 것은 개의치 않았다. 이미 예상한 일이다. 그보다는 왜살이라는 자가 아걸 주변을 얼씬거리는 것이 더 신경 쓰였다.
“원주님.”
취운이 몽설을 불렀다.
몽설은 취운을 부름을 듣고야 머리를 세차게 저으며 다시 생각을 전보영에 집중시켰다.
“서리형개가 전보영은 공격한 것은 허도기 명령 때문인 것 같아요. 어쨌든 우리 쪽에서는 잘 된 것 같은데요.”
“아니.”
몽설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라고 말은 했지만,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는 알지 못한다. 막연히 뭔가가 잘못되었다는 느낌이 든다.
그동안 조위 장군이 누군지 알아봤다.
매우 현명하고, 병법에 밝고, 황상에 대한 충성심이 뛰어난 공신이다. 장군가의 독문 창법인 팔군창법의 달인이면서도 창술을 꺼내 보이지 않는다.
그만한 무공이라면 조경 장군의 몸에 새겨진 사흔을 정확히 판독해 냈을 것이다.
그래도 장군가에서 아걸을 죽이려고 할까?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조위 장군이라면 흉수가 아걸이 아니라는 것을 알 텐데.
일단 겉으로 드러난 모양을 무시할 수는 없다.
조경 장군이 아걸에게 무너진 것은 사실이다. 혈무대에서 쓰러진 사람이 조경 장군이라고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곧 소문이 나기 시작할 것이다.
그렇다면 일단 아걸을 제압해 둘 필요는 있다.
조경 장군의 시신이 장군가에 도착한 후, 조위 장군이 하는 행동도 살폈다.
장군가에는 상(喪)이 나지 않았다.
어찌 된 영문인지 장군가는 조경 장군이 죽은 것을 아직 공표하지 않았다.
장군가에서 한 일은 왜살이라는 자를 내보낸 것이 전부다.
역시 조경 장군의 죽음이 드러나기 전에 아걸을 제압해 둘 심산인 것 같다.
그 외에 어떠한 행동도 취하지 않고 있다.
그 후에 바로 닥친 일이 바로 이것, 서리형개가 전보영 민간 세작들을 죽인 일이다.
허도기가 아걸을 빌미로 전보영을 치고 있다.
아걸은 고래 싸움에 낀 새우다. 서리형개 역시 고래들에게 휘둘리는 새우다.
“아걸은 어떻게 하고 있어요?”
“어제까지만 해도 들것에 실려서 옮겨졌었는데, 어제저녁부터는 단곡(端谷)이라는 곳에서 움직이지 않고 있어요. 한동안 움직이지 않을 생각인 것으로…….”
“숨지도 않고요?”
“네. 모든 걸 환히 개방해 놓은 상태입니다.”
몽설은 ‘역시 아걸’이라는 생각을 했다.
아걸은 조경 장군에 대해서 안다.
아걸 주위에 있는 무인 중 지당검 고사는 전보영 사람이었다는 정보를 얻었다. 지금은 전보영을 등졌지만, 과거에는 꽤 중요한 직책에 있었다.
아걸에게 천군만마가 있는 셈이다.
당연히 전보영이 달려들거나 왜살 같은 사람이 공격해 올 것도 예측한다.
그래도 한 곳에 터를 잡았다.
누가 찾아와도 상관없다는 듯이 편안히 앉아서 대기한다.
이것이 일홀도다.
물론 아걸 주위를 스무 명이나 되는 은거 무인들이 둘러싸고 있다. 하지만 아걸은 그들 힘조차 거부할 것이다. 누군가가 찾아오면 혼자서 싸울 것이다.
아걸은 염려하지 않는다.
아걸에게 가장 염려가 되는 사람은 허도기인데, 허도기는 아걸을 미끼로 쓰고 있다.
당분간은 아걸을 공격하지 않는다.
몽설이 말했다.
“……나 원주 그만둘까 봐.”
“원주님! 그런 말은 함부로 하는 게 아니에요!”
팔 장로가 대뜸 꾸짖었다.
“아니. 진심이에요. 내가 원주로 있으면 취화원을 죽음으로 끌고 갈 것 같아요.”
몽설이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거짓이 아니다. 진심이다.
“저희는 괜찮습니다. 어디로 가든 상관없어요. 어차피 정동 무인들이 공격했을 때 이미 죽었던 목숨이에요. 덤으로 사는 삶인데, 뭘 해도 상관없죠. 원주님, 저희는 아무 염려 마시고, 하시고 싶은 거 마음대로 하세요.”
취운이 활짝 웃으면서 말했다.
“고마워. 언니.”
“언니가 아니고 오곡주예요. 지금은 사적인 자리가 아니잖아요? 공적으로 원주님께 저를 맡깁니다.”
취운이 허리를 숙였다.
“고마워. 오곡주.”
몽설이 활짝 웃으면서 말했다.
몽설은 혼자 길을 나섰다.
팔 장로가 따라나서겠다고 하는 것을 간신히 눌러 앉혔다.
“아무런 위험도 없어요. 절 그렇게 못 믿으세요? 무공은 제가 장로님보다 더 강한데?”
“무공이 아무리 강해도 경륜을 무시하지는 못해요.”
“이번에는 경륜도 필요하지 않아요. 정말이에요. 잠시 다녀올 테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 * *
서리가헌의 일과는 무척 단조롭다.
새벽에 일어나서 아침 운공을 하고 밥을 먹는다. 아침을 먹은 후에는 점심 무렵까지 명상에 잠긴다. 무려 두 시진 동안이나 꼼짝도 하지 않고 명상한다.
점심을 먹은 후에는 마당을 거닌다.
마당은 오십 평 정도로 산책 정도 할 수 있는 크기다.
서리가헌은 마당은 매우 느리게 걷는다.
걷고, 걷고, 걷고…… 해가 서녘으로 떨어질 때까지 거의 두 시진을 걷는다.
저녁을 먹은 후에는 칼을 간다.
물과 숫돌과 한지를 준비해 놓고 한 팔로 칼을 문지른다.
이것이 일과다. 특별히 하는 일이 전혀 없다. 몇 날 며칠을 반복하기에는 지루해서 견딜 수 없을 지경이다.
서리가헌은 무공 수련도 하지 않는다.
마당이 오십 평 정도 되면 웬만한 초식 수련은 할 수 있다. 하지만 일절 칼을 쓰지 않는다.
몽설이 안배해 준 저택에서 거의 두 달째 머물고 있지만, 일상이 전혀 변하지 않았다.
끼이익!
몽설이 문을 밀치고 안으로 들어섰다. 마침 서리가헌은 마당을 거닐고 있었다.
두 사람이 서로를 쳐다봤다.
“왔니?”
서리가헌이 말했다.
“도와줬으면 해.”
몽설이 말했다.
“형개를 베라는 말이니?”
서리가헌은 밖에서 일어나는 일을 알고 있었다.
“우리 취화원보다 소식이 빠르네? 그 소식을 벌써 알고 있다니 놀라워.”
서리가헌에게도 소식을 전해주는 사람이 있다.
그가 누구인지는 취화원도 파악하지 못했다. 다만 허도기 쪽에 숨겨진 사람이라는 정도만 짐작한다.
몽설이 차분하게 말했다.
“하지만 아니야. 당신이나 서리형개나 일홀문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죽으면 안 돼. 아걸에게 심판받아야지.”
“후후, 그런가?”
“지금은 좀 위험한 데를 가야겠어. 내 호위 좀 맡아 달라고.”
서리가헌이 몽설을 쳐다봤다.
취화원 고수들도 상당히 강하다. 그들은 이미 사생락을 상당히 깊은 경지까지 수련했다.
몽설의 무공도 일홀도와 맞상대할 정도로 강해졌다.
누가 뭐라고 해도 혈검경은 중원 제일 검법 중 하나다. 능히 천하제일인이 될 수 있는 검법이다.
이 정도 무공을 수련하고도 일홀문의 호위가 필요한 일?
“해 주지.”
서리가헌은 생각할 것 없다는 듯 즉시 말했다.
서리가헌이 칼을 가지러 방 안으로 들어갔다.
몽설은 무심히 마당을 쳐다봤다. 그러다가 화들짝 놀라서 재차 마당을 쏘아봤다.
마당에 발자국이 찍혀 있다
단단한 흙 마당에 발자국이 너무도 뚜렷하게 깊이 찍혀 있다. 마치 진흙땅을 밟은 것 같다.
하루아침에 생긴 발자국이 아니다.
서리가헌은 이곳에 머문 두 달 동안 매일 마당을 걸었다. 계속 걸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발자국이 생길 리 없다. 진기를 사용해서 일부러 힘껏 밟았다면 모를까.
마당에 새겨진 발자국은 진기를 사용해서 밟은 게 아니다. 자연스럽게 만들어졌다.
서리가헌이 매일, 매 순간 똑같은 곳만 밟았다.
이것은 무공 수련이다. 보폭을 일정하게 유지하는 것은 기본적인 몸만들기에 해당한다. 대체로 초보자에게 수련시키는 방법의 하나로 지루하게 반복 수련시킨다.
몸이 만들어지면 어떤 식으로 움직여도 몸은 그 형태를 따라가게 되어 있다.
몸을 만들고 초식을 수련시키면 그야말로 눈부시게 발전한다.
서리가헌 같은 사람이 몸만들기를 하고 있다.
어떤 무공인지 모르지만, 이 정도로 몸이 준비되어 있다면 칼은 원하는 대로 뻗어 나간다.
서리가헌은 자신이 부족한 점을 알고 있다.
언제 누구와 싸우든 마당에 찍힌 발자국대로 몸을 움직일 수 있을 것이다.
몽설은 서리가헌의 칼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되었다.
‘이 사람, 내 경지를 넘었어!’
일홀도는 정말 상종하지 못할 칼이다.
서리가헌, 서리형개, 아걸!
그들도 수많은 사람 중의 한 명인데, 똑같은 칼을 배우고도 어떻게 이 정도까지 달라지나.
이 사람들은 정말 칼귀신들인가.
“휴우!”
몽설은 깊은 한숨을 토해 냈다.
* * *
스읏! 슷!
몽설과 서리가헌은 산을 뚫고 나왔다.
두 사람의 눈앞에 어둠에 휘감긴 관아(官衙)가 모습을 드러냈다.
“여기를 들어가자는 말이니?”
서리가헌이 놀란 눈으로 말했다.
몽설은 대답하지 않고 관아를 뚫어지게 쳐다봤다. 뚫고 들어갈 허점을 찾고 있다.
“신중하게 생각하는 게 좋지 않겠니? 여긴 한 번 들어가면 두 번 다시 빠져나오지 못해.”
서리가헌이 말했다.
“알고 있어.”
몽설이 무심히 말했다.
몸은 언제든 빠져나올 수 있다.
서리가헌이 말한 ‘빠져나오지 못한다’라는 말은 무림과 관(官), 무인과 관원의 연관 고리를 뜻한다.
“관과 엮어서 좋은 거 없지 않겠니?”
“벌써 엮였어. 허도기 지인들을 암살하고 있잖아.”
“그건 암살이지. 이건 다른 문제잖니. 이 사람들과 엮이면 발목에 사슬이 채워져. 지금까지 많은 무인이 사슬에 묶였지만 풀고 나온 사람이 없어. 다시 한번…….”
“아니, 다를 거 없어. 이미 취화원은 사슬에 묶였어.”
“취화원 살수들이 모두 이용당하다가 죽어도 괜찮다는 말이니? 거기까지 생각한 거니?”
“……나는 지금 들어갈 건데, 내키지 않으면 돌아가도 돼.”
서리가헌이 몽설을 쳐다봤다.
관군과 엮이면 평생 꼬리표를 떼지 못한다.
좋은 쪽으로는 나쁜 쪽으로든 반드시 이용하는 자가 나올 것이다. 그리고 어쩔 수 없이 따라가게 된다.
결국은 죽음이다.
관 또는 황궁과 연관된 모든 문파가 멸문당했다. 한때는 성세를 구가하기도 했지만, 종래에는 항상 멸문으로 장식된다. 그것도 뿌리조차 남지 못하고 죽는다.
관은 무림에 간여하지 않는다.
하지만 여기에는 조건이 있다. 엄연히 무림이 황궁의 지배 아래에 있을 때 한한 이야기다.
무림이 황궁의 영역을 넘어서면, 황궁이 평화를 건드리면, 백성을 다스리는 일에 거치적거리면, 민치(民治)를 조정한다 싶으면 가차 없이 공격해 올 것이다.
그 부분을 건드리지 않기 때문에 내버려 두는 것이다.
고관대작들은 종종 무인을 이용한다. 그들에게 걸려들면 이용만 당하다가 죽는다.
모든 무인이 그랬다.
더욱이 몽설은 막대한 권력을 가지고 있는 전보영으로 잠입할 생각이다.
정보영의 권력은 살인에서 나온다.
이들은 첩보 기관이자 암살 기관이다. 이들 자체적으로 상당한 무인이 있다.
“나 먼저 들어갈게.”
몽설이 일어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