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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홀도-209화 (209/600)

#209화. 第四十二章 전지(剪枝) (4)

몽설과 서리가헌은 담장을 넘었다.

정문으로 출입한 생각은 애당초 하지도 않는다. 초대받지 못한 손님들이다.

몽설은 전보영이 오기 전에 건물 배치도를 입수했다.

어떤 전각에서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대충 짐작한다. 전각을 맡은 사람이 누군지, 누가 위험한지, 반드시 피해야 할 곳은 어딘지도 파악해 놓은 상태다.

스슷! 스스스스슷!

두 사람은 빠르게 안으로 파고들었다.

어떨 때는 마당을 질주했고, 어느 곳에서는 지붕 위로 뛰어올라 날다람쥐처럼 재빨리 이동했다.

스읏! 슷!

두 사람은 신형을 멈춰 세웠다.

주변에서 살기가 일렁거린다. 대단히 은밀하게 숨어 있어서 찾아낼 수는 없는데, 누군가 있는 게 틀림없다.

서리가헌이 주위를 자세히 살폈다. 그리고 몽설을 쳐다봤다.

“여기서부터는 막혔지 않니? 사방에 안목이 촘촘히 깔려 있으니, 뚫고 들어갈 수는 있지만 몰래 들어갈 수는 없지 않겠니?”

서리가헌이 칼을 잡자, 몽설이 말했다.

“여기서 기다려 줘. 내가 밑으로 내려갈 테니까. 나한테 이목이 쏠리면 틈이 벌어질 거야. 그때 안으로 잠입해 들어가.”

“후후

……

! 알았다. 잘해 보라.”

서리가헌이 웃었다.

몽설은 가장 마지막 수단으로 서리가헌을 선택했다.

원래는 단신으로 잠입할 생각이었지만, 전보영이 워낙 생소한 곳이라서 서리가헌을 데려왔다.

처음 계획한 대로 정정당당하게 돌파할 생각이다.

“열두 명은 무시해도 좋다. 하지만 한 명은 신중해야 해. 검을 쓸 때는 살검으로.”

서리가헌이 몽설에게 최종적으로 충고했다.

숨어 있는 자는 열셋이다. 열두 명은 몽설의 무공으로 능히 제압할 수 있지만, 한 명은 다르다. 싸우게 되면 전력을 다해서 살검을 떨쳐 내야만 겨우 승기를 잡는다.

서리가헌은 이미 숨어 있는 자들의 무공 수준까지 파악했다.

몽설이 움직이려고 할 때, 서리가헌은 몽설의 옷소매를 잡아챘다.

“다시 한번 생각하는 게 좋지 않겠니? 네가 지금 가면 취화원 몰살은 기정사실이야.”

몽설은 서리가헌의 손을 살며시 밀어냈다. 그리고 스읏! 땅으로 뛰어내렸다. 순간,

쒜에에엑! 쒜엑! 쒜에에엑!

사방에서 그림자들이 빛살처럼 쏘아져 왔다. 그리고 순식간에 몽설을 에워쌌다.

몽설이 그들을 보면서 차분히 말했다.

“나. 취화원 원주 몽설이야. 전보영주를 만나러 왔는데, 안내해 주겠어?”

“후후, 여기가 어딘 줄 알고 난장이냐.”

그림자 중 한 명이 냉소를 흘리며 말했다.

“전보영주를 만나러 왔다고 했잖아. 못 들었어?”

“죽고 싶어서 환장했구나.”

몽설이 차분하게 니환일검을 일으켰다. 역혈활류가 이루어져서 얼굴빛이 빨갛게 상기되었다.

언제든 공격할 수 있는 상태다.

“영주님을 뵙는 방법은 딱 하나, 사지를 결박당하면 뵐 수 있기는 하지.”

“내가 너희를 두려워한다고 생각해?”

스읏!

몽설은 검을 잡았다.

좋게 말로 해결될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전보영은 상당히 배타적인 존재라서 외인을 받아들인 적이 없다. 취화원이 조사한 바로는 그렇다.

결국, 싸움이 벌어진다. 이들을 베면서 뚫고 나가야 한다.

츠읏! 츳!

그림자들도 싸움을 예감했는지, 즉시 병기를 고쳐잡았다.

“취화원 원주 무공이 혈검이라는 얘긴 들었지? 검이 나가면 피가 쏟아질 텐데, 누구부터 들어올래?”

몽설은 아예 안내를 기대하지도 않은 듯했다. 처음부터 전보영 전체와 싸울 생각이다.

무림사에서 단신으로 전보영에 뛰어들어서 이토록 난장을 피운 무인은 없었다. 전보영을 공격한다는 것은 황상의 수족을 건드리는 것과 같다.

이 순간, 몽설은 역적이다.

“후후! 안하무인이 따로 없군. 하늘 높은 줄 모르는 계집. 따끔한 맛을…….”

그림자가 말을 이어갈 때, 그들 뒤로 또 다른 그림자가 소리 없이 내려섰다.

서리가헌이 말한 신중하게 대처해야 할 고수다.

“물러서라.”

사내가 나직이 말했다.

그의 말에 그림자들은 일사불란하게 물러섰다.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취화원 원주 몽설. 후후! 대담하군. 그게 혈검인가?”

“맞아.”

사내가 몽설을 뚫어지게 쳐다보면서 차분히 말했다.

“가서 영주님께 보고해라. 취화원 원주가 뵙고 싶어 한다고.”

“넷!”

스릉!

사내는 그림자에게 명령한 후, 정작 자신은 검을 뽑았다.

“오랜만에 좋은 검이 들어왔는데 검 맛은 봐야지.”

“혈검에는 눈이 없어.”

“내 검도 마찬가지. 원래 병기에는 눈이 없는 법이야. 네 보고는 전해졌으니까, 이제 내 검을 통과해. 전보영에 들어왔으면 최소한 이 정도는 해야지?”

스읏!

사내가 검을 들어 올렸다.

* * *

사람들은 종종 이해하지 못할 말을 한다.

황궁의 검은 현묘하면서 강하다고 한다. 무림에서 증명된 검법들을 다시 재정리했기 때문이란다.

전쟁터의 검은 실전적이라는 말도 한다. 싸우면서 터득한 검이기 때문에 허초가 없고, 오직 실초로만 이루어졌단다. 매 초식마다 살기가 넘친단다.

그러면 무림의 검은 현묘하지 않은가?

무인들은 실전적이지 않나?

생사가 걸린 싸움을 벌이는 사람들은 모두 같은 입장이다. 환검(幻劍)이 허초가 많다고 꺼리는 무인도 있는데, 환검에 걸려들면 ‘아아!’ 하는 동안에 목숨을 잃는다.

빠른 쾌검이나, 강력한 중검만이 능사가 아니다.

병기를 들고 맞서면 남은 일은 오직 하나, 적을 죽이고 살아남은 일뿐이다.

휘루루룽!

심공을 일으키자 혈류가 세 배 이상 빨라졌다.

무엇인가 매우 뜨겁고 강렬한 기운이 혈관을 타고 흐른다. 역혈활류가 일어난다. 심장에서 뿜어진 피가 순식간에 전신을 휘돌더니 머리로 운집한다.

혈검심기(血劍心氣)가 일어났다. 니환궁에 검 한 자루가 우뚝 세워진다.

파아아앗!

몽설은 손에 검을 들고 있다. 하지만 상대를 겨누는 검은 니환궁에 세워진 니환일검이다. 손에 든 검은 니환일검이 움직이는 대로 따라서 움직일 뿐이다.

상대는 검 끝으로 원을 그리기 시작했다.

작은 원이 조금 큰 원이 되고, 점점 커지다가 어린아이 머리만큼 큰 원이 생겼다.

휘리릭! 휘리리리릭!

검이 빙글빙글 회전한다.

검 끝, 한 점이 몽설을 겨누는 게 아니다. 조금 큰 원이 몽설을 겨눈다. 검신은 보이지 않는다. 워낙 빠르게 돌고 있어서…… 오직 원만 보인다.

이 순간, 니환일검은 원을 보지 않았다.

원은 검이 그려내는 환상이다. 검을 잡은 손은 매우 움직임이 적다. 손목은 더 적다. 팔꿈치는 움직이는 것 같지도 않다. 어깨는 거의 움직이지 않는다.

니환일검은 검의 중심, 상대방의 몸을 지켜보았다.

쒜에에엑!

상대방이 검초를 뻗어 냈다.

둥근 원이 빠르게 찔러온다. 베어오는 것인지, 찌르는 검인지 구분이 되지 않는다.

문득, 상대방의 검을 옆으로 쳐 내고 싶다는 마음이 일어났다. 검신을 두들겨서 정신 사납게 휘도는 원을 없애 버리고 싶다는 충동이 불쑥 일어났다.

물론 니환일검은 전혀 다른 행동을 요구했다.

투웅!

몽설은 어깨춤을 추듯이 슬쩍슬쩍 어깨를 들썩였다.

어깨를 들썩이는데 검이 따라서 쳐들렸다. 갈대처럼 연약한 힘이 거센 풍차를 아래에서 위로 퉁! 쳤다. 순간,

꽈앙!

두 검이 부딪쳤는데, 마치 커다란 바위가 부딪치는 듯 거센 충돌음이 일어났다.

그때, 사내의 검이 돌연 사라졌다.

슈우웃!

검이 몽설의 검에 바싹 붙었다. 검신을 따라서 밑으로 쭉 내려오더니 손목을 툭 건드린다.

둥그런 원이 사라지자 마치 검이 사라진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검신을 쫓아 내려오는 검이 보이지 않았다. 상대방의 검이 자신의 검에 붙어 있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다.

순간적인 변화, 빠른 검초 변화로 환각을 일으킨다. 아니, 검을 숨겨 버린다.

투웅! 따앙!

몽설은 손목을 꺾었다. 그러자 검 끝이 툭 솟구치면서 사내의 검을 밀어냈다.

사내는 검이 부딪치는 탄력을 이용해서 허공에서 붕 떠올랐다.

파파파파팟!

검이 화살로 변해서 내리꽂혔다.

그가 사용하는 검은 한 자루뿐이다. 하지만 검 십여 자루가 일시에 전신을 찍어온다.

‘굉장한 환검!’

니환일검은 열 자루 모두에게 반응했다.

환검으로 보이는 열 자루가 실은 모두 실초다. 빠른 검초 변화로 환검으로 보일 뿐, 모든 검에 살기가 담겼다. 어떤 검이 몸을 쳐도 이상하지 않다.

이 검은 전형적인 살수검이다.

본능적인 움직임으로 허점을 찾아서 달려든다. 하지만 검이 너무 빨라서 미처 대응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

니환일검은 즉시 반응했다.

몽설은 무희가 춤을 추듯이 무릎을 살짝 굽히면서 주저앉았다. 아니, 무릎의 탄력을 이용해서 부드럽게 퉁겨 올랐다. 얕은 개울을 건널 때처럼 폴짝 뛰었다.

쑤에에에엑!

검이 빠르게 솟구쳤다.

혈검 제삼식, 일검무성(一劍無聲)! 일성압만성(一聲壓萬聲)!

소리 하나가 만 가지 소리를 제압한다. 모든 소리를 한 소리로 짓눌러 버린다.

휘루루루룽!

검이 우산처럼 넓게 펴져서 머리 위를 막았다.

역변(逆變)!

검과 검이 부딪치는 순간에 상대의 검과 내 검의 위치를 바꾼다. 상대방의 병기를 밑으로 누르고, 내 검이 위에 서도록 검신을 빗겨 올린다.

진압(鎭壓)!

검으로 상대방의 병기를 밀어낸다. 상대방의 병기가 밑으로 뚝 떨어진다. 병기를 잡은 손도, 몸도 밑으로 누른 힘에 떠밀려서 같이 떨어진다.

상대가 니환일검을 스치며 지나간다.

격통(膈痛)!

가슴을 찌른다.

상대는 이미 검 옆에 있다. 베려고 하지 말고, 찌르려고 하지 말고, 내 검이 가는 길만 꿋꿋이 가게 만든다. 하면 상대가 베이면서 떨어진다.

혈검 중 일검무성이 환상처럼 펼쳐졌다.

초식 변화가 세 번이나 있었고, 격타까지 이루어졌지만, 이 모든 것이 찰나에 끝났다.

푸아악!

핏물이 터져 나왔다.

혈검이 핏물을 머금었다. 검첨에서부터 손잡이까지 길고 긴 혈선을 그어 냈다.

“크윽!”

사내는 비명을 내지르며 뚝 떨어졌다.

몽설은 내리찍는 검을 막고, 검신을 움직여서 위치를 바꾸고, 밑으로 누르고, 순간적으로 뚝 떨어지는 사내의 옆구리에 검을 붙이고 길게 베어 냈다.

“끄윽! 끅!”

상대방이 옆구리를 움켜잡은 채 일어서지도 못하고 쩔쩔맸다.

“청사(廳使) 님!”

옆에서 지켜보던 그림자가 급히 와서 쓰러진 자를 부축했다.

“으음!”

청사라고 불린 자가 인상을 찡그린 채 상처를 살펴보았다.

옆구리가 상당히 길게 찢어졌다. 몽설의 검이 대부분 살에 닿았다.

츠츳! 츠츠츳!

그림자들이 재빨리 몽설을 에워쌌다.

청사와의 싸움은 끝났지만, 이대로 놓아줄 수 없다는 뜻이 역력해 보였다. 그때,

“그만. 너희 상대가 아냐.”

다소 푸근한 듯한 말투와 함께 한 사람이 나타났다.

다소 뚱뚱한 몸, 둥그런 얼굴, 편한 인상…… 싸움, 첩보, 암살 등등과는 전혀 상관없어 보인다. 시나 읊으면서 유유자적하는 한량 같은 모습이다.

“사정을 봐줘서 고맙네.”

전보영 영주 탁호가 몽설에게 말했다.

영주 말이 맞는다. 사내를 죽이지 않으려고 마지막 순간에 손목을 비틀었다.

“검을 그렇게 억지로 비틀면 손목에 충격이 많이 갔을 텐데, 괜찮나?”

“괜찮아요.”

몽설이 검을 집어넣고 왼손으로 오른 손목을 주물럭거리며 말했다.

영주가 말했다.

“주위를 철통같이 경계하고. 청사, 목숨을 구해 준 은인이다. 나중에 기회가 생기면 보답해라.”

“알겠습니다.”

옆구리가 베인 사내가 대답했다. 그리고 몽설을 향해 눈인사를 보냈다.

몽설도 그를 향해 가볍게 머리를 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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