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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홀도-211화 (211/600)

#211화. 第四十三章 기패(棄牌) (1)

딱!

장기판 기물이 움직였다.

한(漢) 상(象)이 초진(楚陣)에 있는 졸(卒)을 먹었다. 그러자 소축십검 칠군 고조시가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얼굴을 들어 허도기를 쳐다봤다.

“소탐대실(小貪大失) 아닙니까?”

“그래?”

“졸 하나 먹자고 상을 버리시면…….”

“그럼 네게는 더 좋은 거 아냐?”

“저야 좋습니다만.”

“그럼 수를 이어가지.”

고조시가 졸을 움직여서 상을 먹었다.

원래 졸은 나란히 있었다. 기물을 버릴 생각이 아니라면 졸을 먹을 수 없다.

“상을 취했습니다.”

고조시가 말했다.

“내가 상을 버렸다고는 생각하지 않나? 과연 이 수에 노림수는 없을까?”

고조시가 장기판을 다시 한번 훑어봤다.

“숨겨진 수는 없습니다. 사부님께서 수를 잘못 읽으신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래? 그럼 무를까?”

“안 되죠. 이미 수를 놓으셨습니다. 일수불퇴(一手不退), 물릴 수 없습니다.”

“하하하! 딱딱하기는. 넌 장기를 몇 수까지 보지?”

“네 수까지는 읽는다고 생각합니다.”

겸손이다. 고조시는 장기 수가 꽤 높다. 적어도 칠팔 수는 읽으면서 수를 이어간다.

허도기가 말했다.

“네 수라. 그럼 네 수를 보는 사람과 열 수를 보는 사람이 장기를 둔다면 누가 이기겠나?”

“수를 어떤 식으로 보느냐 하는 차이도 있습니다. 수를 깊이 읽으면 유리하지만, 필승은 아닙니다.”

“계속 둘까?”

“네.”

딱! 딱! 타악! 딱!

두 사람은 묵묵히 장기를 이어갔다.

여덟 수가 넘어갔을 때, 고조시는 자신이 상을 잡았다는 사실조차도 잊어버렸다.

아니, 상을 잡은 사실은 알고 있다. 하지만 사부가 무엇 때문에 상을 버렸는지에 대한 의문은 깨끗이 잊은 상태다. 사부가 수를 잘못 읽었다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탁!

포(包)가 마(馬)를 넘더니 장군을 불렀다.

상이 앞을 막고 있었다면 부르지 못할 장군인데…… 딱 한 수 차이가 난다.

사실 고조시는 이미 서너 수 전에 포가 움직일 것을 예측했다. 하지만 피하지 못했다. 이미 모든 수순이 외통으로 흘렀다. 알면서도 꼼작하지 못하고 따라가야만 했다.

“걸렸군.”

“졌습니다.”

“이게 상을 버린 결과다. 복기해 봐.”

“네.”

이제는 안다. 그때 상을 버리지 않았다면 무심히 먹는 일은 없었다. 두 번, 세 번 판세를 살펴봤을 것이다. 너무 쉽게 상을 버려서 실수인 줄 알았다.

상을 버리는 시점이 정말 좋았다.

고조시는 머릿속으로 복기를 해 보았다.

상이 졸을 먹었을 때, 졸 하나 잃어버린 셈 치고 무시하면 어떻게 될까?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그때는 새판이 짜여진다.

물론 기물 하나를 잃기는 했다. 하지만 지금처럼 맥없이 무너지지는 않는다.

그런데 이것 또한 노림수다.

고조시가 상을 먹지 않았다면 상은 졸을 취한 후, 유유히 넘어간다. 그리고 새롭게 시작한다. 상대 기물을 하나 빼앗았으니 나름대로 효과가 있다.

이런 식으로 계속 기물을 잃으면 결국은 진다.

“네 수를 읽는 사람과 열 수는 읽는 사람은 엄청난 차이가 있는 법이지.”

허도기가 일어나 창가로 갔다.

“지금 조위 장군에게 상이 하나 있어. 그 상이 내 진형으로 뛰어들었는데…… 어떻게 할까? 먹을까, 말까? 그냥 돌려보내기에는 너무 약이 오르지?”

“먹는 방법이 있으면 먹어야 하겠지만, 지금 이 장기판 같으면 먹을 방법이 없습니다. 약이 오르더라도 돌려보내는 것이 나을 듯합니다.”

“후후! 그런데 난 그런 걸 잘 못 해. 성이 나면 화를 내야지 참을 이유가 있나? 그러다가 괜히 화병만 생기지. 잡아먹으라고 던진 것을 먹어야지.”

“…….”

고조시는 대답하지 못했다.

사부가 하는 말을 알아듣지 못하겠다. 조위 장군이 던진 상은 무엇인가? 사람인가? 사람이라면 누구를 말하나? 주변에 널린 사람이 너무 많았다.

“상대방의 의중을 알고 있으면 장군을 부르지 못하게 만들 수도 있는 법이지. 이건 열 수 대 열 수의 싸움이야. 한 수만 삐끗해도 무너져. 고조시, 상을 취해.”

“상이 누굽니까?”

“왜살.”

고조시의 눈가에 기광이 일렁거렸다.

“왜살이 숨겨진 복병입니까?”

“난 그렇게 봐. 가만히 잘 봐 봐. 지금 왜살이 앞에 나와 있는데, 왜살을 죽인다면 어떻게 될까? 소리 없이 죽여 버리면. 그다음은 전보영이 전격적으로 나서야 해.”

“가신단을 움직이는 방법도 있습니다.”

“아니, 그건 위험부담이 더 커. 가신들을 움직였다가 사건이 크게 터지면 모든 걸 잃어. 장군가의 위명은 물론이고 황상의 신임까지 잃어버리지. 그런 모험은 하지 않을 거야.”

“네.”

“왜살이 없으면 전보영이 움직여야 하는데……. 그럼 왜살은 뭐지? 먹어도 아무 탈이 없잖아? 바로 네가 취했던 상처럼 말이야. 먹지 않을 이유가 있어?”

“없습니다.”

“한데 이놈을 먹으면 꼭 뭐가 있을 것 같다는 말이지. 왜살 아닌가. 조위에게는 벗이나 다름없는 놈인데, 그런 놈을 버젓이 내놓았다는 게 찜찜하지?”

“…….”

고조시는 대답하지 않았다. 아니, 어떤 말도 하지 못했다.

사부 말처럼 왜살은 장군가나 관부로부터 떨어져 나왔다. 무림에 홀로 있다. 누군가가 그를 죽인다고 해도 아무런 탈이 나지 않는다. 장군가도 나서지 못한다.

그런데 또 먹기도 찜찜하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병법에 밝은 조위 장군이 친구나 다름없는 자를 먹잇감으로 던져 놓았다.

일단 상을 취해도 조위 장군은 움직이지 않는다.

왜살의 죽음은 단지 한 사람의 죽음으로 끝난다. 아무도 그의 죽음을 거론하지 않는다.

한데 이 수로 인해서, 왜살의 죽음으로써 결국은 사부의 목줄을 움켜잡는 길이 열린다. 열 수 앞을 내다보며 왜살을 상으로 던졌다면 틀림없이 그럴 것이다.

“왜살은 어차피 아걸을 잡을 자, 그냥 놓아두는 게…….”

“아니. 아걸은 신경 쓰지 않는다. 놈의 칼을 두 번이나 봤는데, 아직 멀었어. 그런 칼은 언제든지 쓰러트릴 수 있다. 놈은 향기 좋은 미끼일 뿐이야. 왜살을 죽이면 전보영이 달려들 테니, 그게 더 좋은 것 같기도 해.”

허도기는 전보영과 서리형개의 싸움을 기대하고 있다.

허도기가 말했다.

“그런데 왜살을 잡을 수는 있겠어?”

고조시는 검 위에 손을 얹었다가 뗐다. 지금이라도 맞서 싸울 수 있다는 뜻이다.

“좋아! 가서 왜살을 베. 나가면 그놈이 어디에 있는지 알려줄 거야. 빨리 베고 돌아와.”

사부가 명령을 내렸다.

“알겠습니다.”

고조시는 즉시 부복했다.

사부의 판단은 빠르고 정확하다.

사부는 제자가 왜살을 이길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니 죽이라는 명령을 내린 것이다.

사부는 능력이 없는 자에게는 일을 시키지 않는다.

객관적으로 평가했을 때, 고조시라면 왜살을 죽일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사부가 빠르게 움직이고 있어. 옛날 성검문을 차지할 때보다 더 급하게……. 흠!’

다른 사람은 마음이 급해지면 서두른다. 하지만 사부는 다르다. 기회가 정확하게 포착되었다는 뜻이다. 지금이 움직이기에 최적기라는 뜻이다.

사부는 기회를 잡으면 매우 공격적으로 움직인다.

지금이 그렇다. 왜살을 죽인 결과가 어떤 식으로 파생될지 모르지만, 전격적으로 죽인다. 지금처럼 띄엄띄엄 전보영을 해치지 않고 본격적으로 끌어들일 심산이다.

고조시는 소축 생활을 즐긴다.

옛날 성검문 시절에 소축 생활을 해서인지, 소축에 머물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아직도 안락한 침상보다는 딱딱한 나무 침상이 좋다.

그는 출행 명령을 받을 때마다 반드시 소축에 들린다.

아무리 쉬운 일을 명령받아도 이것이 마지막 길이려니 하는 마음으로 주위를 돌아본다.

자신이 떠나면 어떤 사람이 이 소축을 이용할까?

그를 위해서 정리할 것은 정리해 둔다. 버릴 것은 버리고, 남은 것은 버리기 좋게 정리해 둔다.

사부는 가볍게 말했지만, 왜살을 죽이는 일은 쉽지 않다.

중원 무림은 왜살을 알지 못하지만, 전장을 떠도는 사람은 왜살이라는 이름을 한 번씩은 들어봤을 것이다.

한 마디로 죽음의 검이다.

조위 장군을 치려면 반드시 왜살을 거처야 한다.

왜살이 있어서 장군의 암살이 아예 불가능하다는 말까지 나돌 정도로 뛰어난 검객이다.

그런 자를 잡으러 가는 길이니, 주위 정돈을 더욱 철저히 해 놓을 생각이다.

그런데, 소축 앞에 낯선 사내들이 기다리고 있다.

“명령을 받았습니다. 적위군 미축(渼縮)입니다.”

“적위군?”

“저희가 왜살을 추격하고 있습니다. 왜살 거처를 가르쳐드리라는 명령이 있으셨습니다.”

미축이라는 자가 곱게 접힌 서신을 내밀었다.

고조시는 서신을 받아서 쫙 펼쳤다.

어딘지 모르지만 약도다.

미축이 말했다.

“왜살은 봉산(峯山) 초도암(草萄庵)에 머물고 있습니다. 아걸은 단곡에 있는데, 엎드리면 코 닿을 곳이지만, 서로 위치를 모르고 있습니다.”

“이게 봉산 약도인가?”

“네. 봉산까지는 쉽게 가실 수 있고, 초도암을 찾기가 쉽지 않아서 약도를 그려 보았습니다.”

“수고했다.”

미축이라는 자가 한 손을 가슴 앞에 대고 허리를 숙였다.

군례(軍禮)다.

고도시는 약도를 접어서 품에 푹 찔러 넣었다.

“너희는 뭐야?”

고조시가 다른 두 명을 쳐다보며 말했다.

“무공 시연을 해 드리겠습니다.”

“무공 시연? 무슨 무공?”

“어떤 무공인지는 저희도 모릅니다. 단지 몇 가지 동작을 가르쳐 주시면서 보여 드리라고 했습니다. 자세한 것은 저희도 알지 못하는 상태입니다.”

사내들이 난감해했다.

고조시는 팔짱을 꼈다.

그러자 두 사내가 즉시 검을 뽑아 들고 무공을 펼쳤다.

쒜엑! 쒝!

웃기는 시연이 펼쳐졌다. 한 명이 검을 쳐 내면, 다른 자가 검 앞으로 가서 다른 동작을 펼친다. 그러면 먼저 펼쳤던 자가 다시 검 앞으로 가서 동작을 잇는다.

이들은 무공을 안다. 한 사람이 펼칠 수 있는 초식을 굳이 두 사람이 이어서 펼친다.

초식의 모양을 똑똑히 보라는 배려다.

또 다른 이유도 있다. 오의를 제대로 모른 체 초식을 펼치면 엉뚱한 초식을 선보일 수 있다. 그런 결점을 보완하기 위해서 처음부터 철저하게 모양만 꾸며 놓는다.

고조시는 무심히 두 사내를 쳐다봤다.

‘이게 뭐 하는 짓이지?’ 하고 짜증도 치밀었다. 그러잖아도 갈 길이 바쁜데.

그러다가 문득 한 생각이 떠올랐다.

‘협척검법!’

두 사내가 펼쳐 보이는 초식은 왜살의 협척검법이다.

“적위군장 사구정이 이 검초를 아나?”

“모릅니다. 단지 왜살이 무공 수련하는 모습을 보고 몇몇 동작만 파악했을 뿐입니다.”

“음!”

고조시는 신음을 흘리면서 협척검법을 주시했다.

적위군은 왜살에 대해서 꽤 깊이 연구했다. 이것도 모두 사부가 명령했을 것이다.

사실, 고조시는 이런 편법을 좋아하지 않는다. 아무것도 모른 체 협척검법을 맞이하는 게 더 재미있을 것 같다. 하지만 사부가 보낸 자들이기에 끝까지 지켜본다.

사부가 말하고 있다.

이것을 보고 허점을 파악해라. 그렇지 않으면 왜살을 이기지 못한다. 철저히 파악한 후에야 길을 떠나라. 내 명령을 소홀히 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다.

‘사부!’

고조시는 두 사내의 움직임 속에서 사부의 철두철미한 움직임을 읽었다.

무섭다. 질린다.

두 사내가 무공 시연을 끝냈다.

“……다시.”

고조시는 재시연을 명했다.

사부의 뜻대로 허점이 파악될 때까지 시연을 지켜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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