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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홀도-214화 (214/600)

#214화. 第四十三章 기패(棄牌) (4)

몽설은 아걸을 보자 꼼짝도 하지 못했다. 두 다리가 얼어붙어서 움직일 수가 없었다.

이런 일이 벌어질 것이라고는 몽설도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그렇게 보고 싶었는데, 막상 보게 되니 몸만 부들부들 떨릴 뿐 도저히 움직일 수가 없었다.

아걸이 다가와 두 손으로 그녀의 어깨를 잡았다. 그리고 살며시 끌어당겨 품에 안았다.

몽설은 갑자기 뜨거운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눈에서는 눈물이 쏟아지는데 그녀 자신도 왜 눈물을 흘리는지 이유를 알지 못했다. 무조건 눈물이 펑펑 쏟아지면서 서럽다는 생각이 왈칵 치밀었다.

갑자기 모든 감정이 와르르 무너졌다.

꿋꿋하던 의지가 수수깡처럼 가볍게 분질러졌다.

눈물이 샘솟듯이 흘러나왔다.

“흑! 흐흑……!”

그녀는 쏟아지는 눈물을 삼키기 위해서 이를 꽉 깨물었다.

아걸이 그녀를 힘주어 안았다.

“염려 많이 했구나. 괜찮아.”

그녀가 울먹이는 음성으로 물었다.

“괜찮아? 다시는 다치지 말라니까.”

“나도 다치고 싶지 않은데. 허도기가 꽤 세네.”

“안 아파?”

“지금은 다 나았어. 할배가 녹선마황을 보내 줬어.”

그제야 비로소 몽설은 정신이 들었다.

그녀가 손을 들어서 아걸을 꽉 껴안았다. 아걸이 떨어지지 못하도록 붙잡아 놓으려는 듯 꽉 움켜쥐었다.

“정말 다치지 좀 마. 속상하게 왜 다치고 다녀!”

“후후!”

아걸은 웃기만 했다.

일홀문 역대 문주 중 가정을 가진 문주는 딱 두 명이다. 사부와 팔대 문주만이 가정을 가졌다. 다른 서른네 명은 평생 홀로 지냈다.

이제 그 이유를 알 것 같다.

지켜야 할 사람이 있으면 괴로움이 늘어난다. 여인을 늘 마음 아프게 한다.

일홀문을 남편으로 둔 아내는 항상 남편이 죽을 염려를 해야 한다. 아침에 일어나면 ‘이 사람을 보는 게 오늘이 마지막이구나.’ 하는 생각을 한다. 밤이 깊어서 같이 침상에 드러누워도 마찬가지다. 잠에서 깰 때까지 아무 일이 없었으면 하고 바란다.

안도하는 순간이 없다.

이게 일홀문도의 삶인데 가정을 어떻게 갖겠나. 여인에게 참 못 할 짓이다.

일홀도는 고독한 칼이다.

그나마 사부는 칼을 절제했다.

일홀도를 얻은 후에는 함부로 사용하지 않았다. 그 덕분에 일홀문주 중에는 상당히 장수한 편에 속한다. 사부 역시 칼에 맞아서 절명했지만.

칼에 미쳐서 계속 강한 칼만 쫓아다니면 반드시 누군가에게 쓰러진다.

이 세상에 절대 강자는 존재하지 않는다.

중원 무림은 허도기를 절대 강자로 추앙한다. 그래서 도전할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서리가헌과 서리형개도 허도기를 절대 강자로 인정했다. 그래서 근 이십여 년을 도전조차 해보지 못하고 풍도곡에서 쩔쩔매며 살았다.

일홀도는 ‘이 세상 모든 칼은 같다’라는 전제하에서 출발한다.

그러니 싸움을 많이 하면 그만큼 죽을 가능성도 커진다. 항상 마음 졸이면서 살아야 한다.

“어떡하지? 앞으로도 걱정을 좀 더 시켜야겠는데.”

“알아. 미안. 내가 추태를 보였지? 정말 미안해. 다 알고 있으면서도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어. 내가 못 나서 그래.”

몽설이 눈물을 훔치며 말했다.

“그런 소리 하지 말고. 세상에 취화원주가 못났다면 잘난 사람은 누가 있게. 세상에서 제일 예쁘고, 제일 현명하고, 제일 강한데. 이런 여자를 울리는 내가 밉지.”

“어멋! 입에 발린 소리도 할 줄 아네?”

“정말인데.”

“듣기 좋은 소리 해 줘서 내가 봐줬다. 다음에는 정말 다치면 안 돼? 알았지?”

아걸은 고개를 끄덕였다.

지키지 못할 약속을 또 한다. 늘 약속하고 어기고, 약속하고 어기기를 반복한다.

“들어가자.”

아걸은 몽설을 데리고 자신이 머무는 초옥으로 들어갔다.

몽설은 낯선 무인들에게 둘러싸여 이런저런 질문을 받았다.

“언제 만났소?”

“취화원 원주라고 들었는데, 여인이 살수 문파를 끌어가기가 힘들지는 않은지?”

은거 무인들한테는 살수 문파를 이끄는 몽설이 상당히 낯선 부류의 인물인 것 같다.

흔히 살수 문파라고 하면 냉혹하고, 야비하고, 늘 피비린내를 풍기는 사람이 연상된다. 결코, 몽설처럼 단아하고 아름다운 여인이 할 일이 아니다.

무인들은 궁금한 게 뭐가 그렇게 많은지 많은 걸 물어본다.

몽설은 그들의 물음에 정성껏 답해 주었다. 대답하기 난처한 물음까지 기꺼이 해 주었다.

“돈을 받고 사람을 죽인다는 게 사람 할 짓은 못 되는데…….”

“그렇죠?”

“지금이라도 취화원을 해산할 생각은 없소?”

“해산이 중요한가요?”

“아무래도 살수 문파는……. 명부판관 식으로 사람을 가려서 죽인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돈 받고 사람을 죽이는 건데. 그건 사람 할 짓이 아니지.”

“많은 분이 그렇게 생각해요. 알고 있어요.”

“그런데도 해산하지 않을 생각이오?”

“칼을 들었다는 자체가 사람을 죽이겠다는 뜻인데. 근본적인 해결책은 칼을 놓는 거잖아요. 저희가 칼을 놓으면, 일제히 추살당해요. 일종의 업보인데, 어떻게 할까요?”

몽설은 은거 무인들과 대화를 이어갔다.

다투려는 게 아니다. 아주 편한 마음으로 대화를 나눈다.

그 사이에 아걸은 밀봉된 편지를 열었다.

조위 장군의 편지에는 놀라운 사실이 적혀 있다.

“음!”

아걸은 편지를 읽자마자 침음했다. 하지만 곧 촛불을 당겨서 밀지를 불태웠다.

생각이 깊어진다.

단곡에서 조위 장군이 보내올 살수를 기다렸다. 왜살을 보냈다고 하는데, 그가 곧 올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그 일까지 허도기에게 이용당하고 있는 줄은 몰랐다.

서리형개가 접근하는 자들을 죽이고 있을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그리고 밀지.

아걸은 머리를 내둘렀다.

그는 이런 일들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허도기는 가족의 원수, 사부의 원수다. 그리고 일홀도가 반드시 넘어서야 할 태산이다.

허도기에 대한 도전 이유는 명확하다.

아마도 이 일은 허도기나 자신, 둘 중 한 명이 죽기 전에는 끝나지 않을 것이다.

두 번째, 일홀도는 강적을 원한다.

일홀도보다 더 강한 칼이 있다면 대환영이다. 그 칼이 죽음의 사도라고 해도 당장 달려간다.

강한 칼을 대하면 두려움보다는 흥분이 치민다.

아걸의 관심을 끄는 것은 딱 이것뿐이다. 권력이나 야욕, 부에 대한 환상은 전혀 없다. 위정자들이 벌이는 아비규환 속으로 끌려들어 갈 생각도 없다.

아걸은 황상조차도 만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다.

황상이 절대적인 칼을 가졌다면 부르지 않아도 찾아간다. 하지만 나라를 통치하는 군주라고 해서 찾아가지는 않는다. 불러도 갈 이유가 없다.

조위 장군이 보낸 편지는 이해할 수 있다.

조경 장군에 대해서 오해를 하지 않는다니 고맙기도 하다. 하지만 표면상으로는 여전히 ‘장군을 죽인 자’로 남아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이해할 수 없다.

아걸은 오랫동안 생각했다.

아걸이 초옥 밖으로 나왔다.

몽설은 모닥불을 가운데 두고 은거 무인들과 둘러앉아서 이런저런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황열이 술독을 가져와서 개봉했다.

“오늘 같은 날은 한 잔 마셔야 해.”

“오늘이 무슨 날인데?”

“취화원 원주를 알게 된 날.”

“하하하!”

은거 무인들은 오랜만에 호쾌하게 마음을 풀어놓고 술을 마셨다.

그들과 몽설 사이에 거리감은 완전히 사라졌다.

이들은 몽설이 취화원 원주라서 기뻐하는 게 아니다. 아걸의 정혼녀이기 때문에 기뻐한다. 사실 살수 문파의 원주라는 직함은 다소 거리감을 두게 만든다. 하지만 아걸의 정혼녀라는 사실이 모든 단점을 덮어 버린다.

몽설은 아걸의 얼굴에서 어두운 그림자를 봤다.

‘무슨 내용이야?’

몽설은 목구멍까지 치민 말은 꿀꺽 삼켜 버렸다. 대신 활짝 웃으면서 술을 권했다.

“마셔 봐. 이 술 아주 잘 익었어.”

* * *

전보영이 정보를 얻었다.

허도기가 왜살을 죽이라고 사람을 보냈다. 그러니 조만간 살검이 들이친다.

믿고 죽어라.

조위 장군의 서신은 매우 간단했다.

정보 내용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기술했고, 미안한 마음도 잔뜩 적어 놨지만 골자는 하나다. 조위 장군을, 친구를 믿고 죽어달라는 서신이다.

반드시 허도기가 보낸 자에게 죽어라.

아걸이나 서리가헌, 서리형개에게 죽지 마라.

허도기가 누구를 보낼지 모르겠다. 하지만 왜살을 죽일 정도로 강한 검이라면 몇 되지 않는다. 매우 극소수다. 기껏해야 네다섯 명에 불과하다.

어쩌면 허도기 본인이 올지도 모르겠다.

왜살은 허도기 외에는 어떤 자도 자신이 있다.

누구와 싸워도 지지 않을 검이 있다고 자부한다. 아니, 허도기와도 겨룰 수 있다.

그런데 조위 장군은 싸우라는 말이 아니라 죽어달라고 주문한다.

“크크크……!”

왜살은 웃었다.

허도기가 보낸 자, 자신을 죽일 자……. 지금은 그자가 누군지 알았다.

처벅! 처벅! 처벅!

한 명이 걸어온다.

칠군 고조시다. 공부 허도기와 함께 황궁에 입궐했고, 백만 대군에게 무공을 전수했다.

고조시라면 왜살도 잘 안다.

고조시는 무공 교두에서 그치지 않는다. 장군들과 함께 전장을 누빈 동료다. 무인의 검이 아니라 전사의 검이다. 무인이 아니다. 직함은 없지만 장군이다.

‘그나마 다행이군. 이런 놈한테 죽으니.’

왜살이 피식 웃었다.

편한 곳에서 기름진 음식이나 먹던 놈한테 칼을 맞으면 얼마나 억울할까.

그것보다는 그래도 감자나 옥수수로 배를 채우고, 흙탕물로 갈증을 풀고, 쥐 한 마리 잡아서 네다섯 명이 먹어가며 낄낄대던 놈에게 죽는 것이 훨씬 낫다.

“네놈이구나.”

왜살이 키득키득 웃으면서 말했다.

“내가 올 줄 알고 있었나?”

“허도기, 그 쥐새끼가 하는 짓이 다 뻔하지. 너희 같은 놈들 정말 마음에 안 들어.”

“나도 이런 일이 썩 마음에 드는 건 아냐.”

“킥킥! 네놈이라면 그런 말을 할 줄 알았다. 그래도 네놈이라서 조금 낫네.”

스릉!

왜살이 검을 뽑았다.

스르릉!

칠군 고조시도 검을 뽑았다. 하지만 즉시 공격해 오지는 않았다.

“여기 오기 전에 사부님께서 묘한 말씀을 하더라고. 조위 장군이 상(象) 하나를 버렸는데, 주워 먹어야 할까 말아야 할까. 이게 꼭 함정 같아서 말이지.”

“내가 그 상인가?”

“하하하! 넌 네가 버려진 것도 모르고 있네. 생각해 봐. 여기서 네가 죽는다고 누가 눈썹 하나 까닥할 것 같나. 죽으면 그저 개미 밥이 될 뿐이야.”

왜살의 머릿속에 장군의 편지와 고조시의 말이 교차해서 지나갔다.

두 말 사이에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지금 이 싸움이 계획된 것이라는 점이다.

장군이 계획했고, 허도기가 말려들었다.

믿고 죽어라!

‘후후! 장군에게 내 죽음이 필요한 것 같은데, 그럼 기꺼이.’

“잡담은 이 정도 하면 됐고, 이제 네 검을 볼까? 조명천검이겠지?”

“기왕 쥐새끼라고 불렸으니 꽉 물어 줘야겠군.”

두 사람은 서로가 호적수라는 사실을 안다. 그러면서도 자신이 상대방보다 한 수 앞선다고 생각한다. 절대로 질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고조시는 왜살을 죽일 생각만 했다.

왜살은 정반대다. 고조시에게 어떻게 죽어야 할지를 고민했다.

싸우다가 죽는 게 자연스러울 것 같은데, 정식으로 싸우면 꼭 이길 것 같았다. 그러니 적당히 싸워야 하는데, 또 적당히 싸우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

‘어떻게 죽어야 하지?’

왜살의 고민은 전혀 달랐다.

장군이 ‘믿고 죽어라’라고 서신을 보내온 데는 고조시를 속이라는 뜻도 포함되어 있다.

자연스럽게, 전혀 의심을 사지 않고 죽어야 한다.

죽는 것이 이토록 어려울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해 보지 않았는데, 정말 어렵다.

스읏! 슷!

두 사람은 검을 겨누고 조금씩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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