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8화. 第四十四章 오탁(五託) (3)
왜살이 눈을 떴다.
그는 의식을 찾자 급히 몸을 일으키려고 했다. 아직도 고조시의 검이 느껴진다.
하지만 그는 급히 가슴을 부여잡고 다시 무너졌다.
가슴에서 극심한 통증이 전해져 왔다. 칼 수십 자루를 찔러 넣고 일시에 확 뜯어내는 것 같다.
너무 아파서 눈물이 찔끔 나왔다.
“으!”
왜살은 신음을 흘렸다.
어찌 된 영문인지 단번에 읽힌다.
왜살은 후지비육공(厚脂肥肉功)이라는 특이한 외문 기공을 수련했다.
지방을 두껍게 하고, 몸에 살을 찌운다는 공부다.
세상에 이런 공부가 있나? 일부러 지방을 키우고 살을 찌운다고?
있다. 북쪽 빙토(氷土), 얼음 땅에 사는 전사들은 후지비육공을 수련한다.
그들은 한결같이 뚱뚱하다. 몸을 움직이기 곤란할 정도로 살이 찐 사람도 많다. 그렇게 지방이 두텁지 않으면 혹한의 추위를 견뎌내지 못한다.
거짓말을 조금 보태서 말하면 오줌을 싸면 곧바로 얼어붙어서 오줌 기둥이 만들어진다는 곳이다.
굳이 후지비육공이 아니더라고 빙토 사람들은 돼지비계, 고래 비계 같은 것을 일상으로 먹는다. 고래 비계, 마딱을 최고급 요리로 칭송하며 생으로 먹는다.
이것은 일반 사람들 말이고, 전사는 후지비육공을 수련한다.
살을 찌워서 추위에 대항하면서도 몸은 유성처럼 빠르다. 빠르고 오래 움직인다. 육신이 고무처럼 탄력 있게 변한다. 더욱이 후지비육공은 한 줌 숨만 붙어 있어도 계속 유지된다.
동토에서 불을 피우지 못하고 잠들어야 할 경우, 후지비육공은 생명을 보장하는 목숨줄이 된다.
왜살도 이번에 후지비육공 덕을 톡톡히 봤다.
혼절한 상태에서 적에게 기습을 당했지만, 단검이 제대로 들어오지 않았다. 덕분에 목숨을 부지했다.
장군이 말한 ‘믿고 죽으라’라는 말에는 후지비육공을 펼치라는 주문도 포함되어 있지 않을까? 최소한 자신이 할 바는 다한 후에 조처를 기다려야 하지 않나?
‘장군.’
왜살은 자신이 낯선 방에 누워 있다는 것을 알았다. 장군이 약조대로 살려주었다.
‘운이 좋았어. 정말 운이 좋았어.’
왜살은 고조시를 생각하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잠기일력타를 맞고도 살아난 사람은 아걸 이후 자신이 두 번째다.
아걸은 어떤지 모르겠는데, 자신은 완전히 몸뚱이로 잠기일력타를 받아 냈다. 뿐만 아니라 비조복개를 칠 수 있는 방법까지 발견해냈다. 철구탄검이 비조복개를 누를 수 있다.
향후, 성검문에서 비조복개를 펼치는 자가 있으면 일 검에 목숨을 잃을 것이다.
덜컹!
방문이 열리며 한 사람이 들어왔다.
“깨어나셨습니까?”
의원이 말을 하면서 가까이 다가왔다. 그는 익숙하게 왜살의 맥문을 움켜잡고 상세를 살폈다.
“내가 얼마나 누워 있었나?”
“쉿! 우선 맥부터 살피고요.”
의원이 왜살을 침묵시킨 후, 맥박을 살폈다.
“음! 좋습니다. 회복이 빠르시네요. 누워계신 지 칠 주야가 됐습니다. 잘 주무시던데요.”
“칠 주야?”
“아직도 상처가 깊습니다. 꽤 깊이 당했어요.”
“음!”
왜살이 침음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칠 주야 동안이나 정신을 잃은 적이 없다. 크고 작은 상처를 많이 입었지만, 하루 이상 누웠던 적이…… 있었나? 없었던 것 같다.
“아직 움직이실 때는 아닌데, 이곳도 안전한 곳이 아니라서요. 힘드시더라도 지금 바로 모실 생각인데, 고통이 꽤 심하실 겁니다. 괜찮으시겠습니까?”
“선택의 여지가 있나?”
“없죠.”
“그런데 왜 물어?”
“알려드리는 거죠. 고통이 심할 거라고.”
“악취미군.”
“하하. 입에 재갈을 채우겠습니다. 신음을 흘리셔도 무방한데, 이가 다 상하실 것 같아서요.”
“괜찮아.”
“상처가 정말 고통스러울 겁니다. 뭐하러 억지로 참아요. 자갈만 물고 있으면 괜찮은데. 무인이라고 억지로 참아야 할 필요는 없어요. 편하게 사세요.”
“하!”
왜살은 어처구니없어서 의원을 쳐다봤다.
말하는 모양새를 보니 의원도 만만치 않은 자 같다.
“장군의 명을 받았나?”
“도취(萄炊)라고 합니다. 앞으로 얼마 동안은 매일 얼굴을 보게 될 겁니다.”
왜살은 피식 웃었다.
사내가 누군지 모르겠다. 하지만 조위 장군이 곁에 붙여 놓은 자라면 믿을 수 있다.
“지금 움직여도 좋고, 자갈을 물려도 좋은데, 우선 물부터 주지? 갈증이 심해.”
“입술만 축이시죠.”
의원이 작은 대롱을 내밀었다.
“물을 많이 마시는 건 회복에 방해가 됩니다. 이건 저희 방법인데, 믿으시죠.”
“자네 어디 사람인가? 군의(軍醫)는 아닌 것 같은데?”
“중활원(衆活院)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중활원?”
왜살이 다소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
군부는 중활원과 전혀 상관이 없다. 조위 장군은 물론이고 허도기도 중활원과 선이 닿지는 않는다.
중활원은 나라에서 만든 기관이 아니다. 일종의 자선단체다. 의원 중 긍휼에 뜻이 있는 사람들이 모여서 자비로 의술을 베풀었는데, 기왕이면 함께 모여서 일사불란하게 조직적으로 의술을 베풀자는 뜻으로 만든 곳이다.
그러니 중활원 의원들은 중활원을 소속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삼일 정도 시간이 남는다 싶으면 중활원에 가서 의술을 베풀다가 볼일이 있으면 언제든 그만두고 나온다. 모든 게 철저히 자발적이기 때문에 붙잡는 사람도 없다.
중활원과 계속 일하고 싶으면 이름과 연락처를 남기고, 일 회만 선의를 베푸는 것이라면 몇 시진, 혹은 며칠 일하다가 나오면 그만이다.
그러면 중활원 의원들 의술 수준은 어떤가?
고절할 수도 있고, 엉망일 수도 있다. 의술만 알면 누구든 일할 수 있다.
나이도 따지지 않고 과거 행적도 추궁하지 않는다.
중활원은 권력기관이 아니다. 중활원과 인연을 맺으면 계속 약재값만 지급해야 한다. 얻을 수 있는 것은 거의 없다. 더 웃긴 것은 중활원은 기부자 이름을 밝히지 않는다. 중활원에 천금을 기부해도 알아주는 사람이 전혀 없다.
도움을 보태는 자는 철저히 비밀로 한다.
선행이라는 행적을 완전히 숨겨도 좋은 사람만 기부하라는 뜻이다.
의원도 마찬가지다. 이름을 알리지 않는다. 중활원 이름으로 전염병이 도는 지역에 투입되어서 치료하다가 병사해도 가족에게만 소식을 알린다.
고위 관직자 중 중활원과 깊은 연관을 맺고 있는 사람은 몇 명 되지 않는다.
“장군이 중활원과도 인연을 맺었나?”
“장군하고는 일면식도 없죠. 어의(御醫)를 통해서 부탁을 받았는데, 하필 그 부탁이 제게 전해져서.”
도취가 씩 웃었다.
“그렇군.”
왜살이 고개를 끄덕였다.
중활원 의원들은 의술 차이가 천차만별이다.
도취는 매우 뛰어난 의술을 지닌 것 같은데, 어디서 의술을 배웠는지 말하지 않는다.
“바로 옮기겠습니다.”
왜살이 고개를 끄덕였다.
도취는 왜살을 목관 속에 눕혔다. 그리고 관을 들어서 우마차에 실었다.
뚜껑 열린 관이라서 답답하지는 않다.
관 주위로 나뭇가지들이 쌓였다. 사람들 눈을 속이기 위해서 위장을 한다.
나뭇가지는 곧 관 위를 덮였다.
나뭇가지가 관을 뺑뺑 둘러쳤다.
“꽤 오래 갈 겁니다.”
“알았네.”
왜살이 대답했다.
따각! 따각! 따각!
비루먹은 망아지가 느린 걸음으로 걷기 시작했다. 급한 일이 없는 사람처럼 매우 느리게 망아지를 몬다. 하지만 가만히 지켜보면 꾸준히 움직이고 있다.
마차는 거친 돌밭 길을 지나쳤다.
마차 바퀴가 한 바퀴 구를 때마다 덜컹거리면서 마차가 흔들렸다.
왜살은 도취가 자갈을 물리겠다고 한 이유를 알았다. 가슴이 쾅쾅 울리면서 고통이 뼛속까지 밀려왔다.
고통이 너무 심하다.
그나마 이것도 관에 눕혀지기 전에 마취 성분이 있는 약물을 뿌려 놨기 때문에 이 정도다. 그렇지 않았으면 벌써 혼절했을 것이다. 아니면 고함을 내질렀거나.
“거친 길은 다 빠져나왔어요.”
도취가 말했다.
우마차가 관도로 들어선 후에는 덜컹거림이 한결 덜했다.
고통도 참을 수 있는 정도까지 가라앉았다.
“휴우!”
왜살은 한숨을 내쉬었다.
비로소 조금 숨을 돌렸다.
‘……!’
관속에 누워 있던 왜살이 바싹 긴장해서 눈을 부릅떴다.
누군가 나타났다. 기척을 흘리지 않고 지척까지 다가왔다. 누가 다가서는 것을 까마득히 몰랐다.
‘음!’
왜살은 긴장을 풀지 못했다.
아무리 상처 입은 몸이라고 해도 외인이 다가오는 것을 알지 못했다니. 상처를 입지 않았다면 미리 알아냈을까? 이 자는 장담하지 못한다.
불쑥 나타나서 우마차 앞을 가로막은 자가 말했다.
“여기는 인적 끊긴 길인데, 무슨 볼일이라도 있나?”
“관을 날라왔습니다.”
도취가 태연히 말했다.
도취도 여간내기가 아니다. 누군가가 갑자기 불쑥 나타나면 놀라기 마련인데, 전혀 놀라지 않는다.
“그래? 따라오게.”
우마차를 가로막은 자는 관을 날아왔다는 말에 두말하지 않고 길을 내줬다.
마차 위에 올려졌던 나뭇가지들이 치워졌다. 그리고 검은 하늘이 나타났다. 까만 하늘에 하얀 달과 별이 총총히 박혀서 환한 빛을 뿌린다.
아침에 출발했는데, 벌써 깊은 밤이다.
낯선 자들이 우마차에서 관을 끌어냈다.
하지만 왜살은 낯선 자들에게 눈길을 주지 못했다. 옆에 도취도 있었지만, 그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눈길이 오직 한 사람에게 틀어박혀서 떨어지지 않았다.
보통 키에 보통 체격, 잘 생겼다고는 할 수 없는데 매력이 없는 자도 아니다. 좋아하는 사람은 매우 좋아하고 싫어하는 사람은 첫눈에 싫어할 자다.
낯선 자, 하지만 매우 강한 칼!
‘아걸!’
왜살은 낯선 청년이 누군지 단박에 알았다.
장군이 베라고 했던 자다. 이 자를 베기 위해서 여기까지 왔고, 기다렸다.
“당신, 내 인질이야.”
아걸이 왜살을 쳐다보며 말했다.
“인질?”
왜살이 눈을 부라렸다.
아걸이 품에서 서신을 꺼내 왜살의 가슴 위에 얹어 놨다.
“시간 나면 차분히 읽어 봐. 장군이 당신을 인질로 내줬어. 장군에게 꽤 비중 있는 사람인가 봐?”
‘장군이 인질로?’
어떤 내막인지 아직은 모른다. 믿고 죽으라는 서신을 받았는데, 깨어나다 보니 인질이란다. 아걸이 거짓말할 사람은 아니다. 그럴 이유도 없다. 아마도 사실일 것이다.
“그만한 값어치는 된다.”
왜살이 툭 쏘아붙였다.
“당신에 대해서 알아봤지. 장군이 당신을 인질로 내줬다는 것은 친자식을 내준 것, 친동생을 내준 것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해. 참 귀중한 사람이야, 당신.”
아걸이 웃었다.
관에 누워 있는 초라한 사람은 한 사람을 위해서 목숨을 아끼지 않는 사람이다. 누군가를 위해서 목숨을 던진다는 것은 대단한 충정이요, 의리다.
“일단 왔으니 푹 쉬라고. 당신 같은 검이 옆에 있으면 나도 든든하니까.”
아걸이 말했다.
왜살을 맡긴다.
조위 장군이 서신에 적은 세 번째 부탁이다.
이 부분은 큰 고민 없이 쉽게 받아들였다. 주위에 은거 무인들이 많으니 한 사람 더 있다고 해서 불편할 것도 없다. 모두 제 할 일들은 알아서 하는 사람들이라.
서신에는 왜살이 장군가로 돌아가지 못할 이유가 적혀 있었다.
왜살은 이미 죽은 자다.
장군가나 전보영에 죽은 자를 둘 수는 없다. 허도기 간자 눈에 띌 수도 있다. 누가 간자인지 모르는 이상, 백분 조심해도 모자라지 않는다.
지금 상황에서 왜살에게 가장 안전한 장소는 적의 품, 아걸 곁이다.
왜살은 당장 변복을 해야 한다. 얼굴에 복면하거나 방갓을 써야 한다.
그래도 이곳이 가장 안전한 곳이다.
이제 조위 장군이 부탁한 다섯 개 중에서 세 개가 이루어졌다. 두 개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