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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홀도-222화 (222/600)

#222화. 第四十五章 살자(殺者), 사자(死者) (2)

취운은 전서구를 받았다.

“응?”

취운은 전서구를 받자마자 미간부터 찡그렸다.

허도기, 진공부에서 날아온 전서구다.

취화원은 정말 어렵게 진공부에 사람을 심어 놨다. 신분 확인이 워낙 철저해서 하녀로 들여보내는 것이 과거에 급제하는 것만큼이나 어려웠다.

그래서 정말 중요한 일이 아니면 보고하지 말라고 지시해 놓은 터이다.

그런데 전서구가 날아와?

‘느낌이 좋지 않아. 살행을 마치자마자 바로…….’

취운은 급히 전통을 열어 전서를 꺼냈다.

역시 느낌대로 내용이 좋지 않다. 사구정이 적위군을 이끌고 공격해 온다는 보고다.

‘아! 해월(海月). 미안해, 정말 미안해.’

취운은 전서를 보내온 해월에게 고맙고, 미안했다. 젊음을 피워 보지도 못하고 쓰러진 것이 마음 아팠다.

오곡이 하는 일은 늘 이렇다.

언제 어느 때 수하가 떠나갈지 모른다. 오늘은 멀쩡하다가도 느닷없이 시신이 되기도 한다.

해월은 틀림없이 죽었을 것이다.

사구정이 적위군을 이끌고 오는 것처럼 큰 사건이 벌어질 때는 그만큼 감시의 눈초리도 높아진다. 간자들을 색출해 낼 절호의 기회이기 때문이다.

해월이 아무리 급하더라도 인편을 이용해서 소식을 보냈어야 한다.

이런 소식을 전서구로 보냈다는 것은 이미 종적이 발각되었다는 뜻이다.

그나마 자진을 했다면 고통스럽지 않게 떠났을 것이고, 살고자 발버둥 쳤다면…… 어쩌면 지금도 살아있을지 모른다. 모진 고문을 받으면서.

취운은 한달음에 몽설에게 달려왔다.

“허도기가 드디어 움직였습니다. 취화원 멸절 명령이 떨어졌고, 무인들이 이미 출발했습니다.”

“오는 사람이 누구야?”

“적위군과 적위군장 사구정입니다.”

“음!”

몽설은 신음을 흘렸다.

그들은 모두 서른한 명이다. 하지만 무공이 무척 강하다. 소축십검 서른한 명이 달려온다고 봐야 한다.

물론 적위군 무공은 소축십검에 비하지 못한다. 다소 떨어지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 차이는 겨우 숨 한 모금 정도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

굉장한 강자들이 달려오고 있다.

“정동을 치면서 상당한 전략을 얻었잖아요. 그렇게 싸우면 승패를 알 수 없어요.”

“그러면 우리도 거의 몰살에 가까운 피해를 볼 거야.”

“그 정도는 감수해야죠. 상대가 사구정과 적위군인데.”

“곤란해.”

몽설이 고개를 저었다.

몽설은 싸울 생각이 없다. 그렇다면 피해야 한다.

취화원은 허도기가 움직였을 때를 대비해서 여러 가지 방책을 생각해 놓았다. 크게 나눠서 싸울 때와 피해야 할 때로 구분했는데, 몽설은 두 번째를 택했다.

“두 번째 계획으로 갈까요?”

“그래. 잠적해.”

“완전 잠적입니까?”

“완전 잠적. 지금 바로 움직여.”

완전 잠적에 대한 논의를 상당히 많이 했다.

자칫하면, 쫓는 자들이 탁월하면 자칫 정동 무인들에게 쫓기던 것과 같은 상황이 벌어진다.

취화원을 해산했어도 거의 모든 살수가 도륙당했다.

살아남은 사람은 팔 장로와 구곡주 정도에 불과했다. 이백 명 넘는 식솔이 죽었다.

그때 경험을 바탕으로 계획을 짰다. 보통 잠적이어서는 곤란하다. 천신이 눈을 부릅뜨고 굽어보아도 찾을 수 없을 정도로 철저하게 숨어야 한다.

“지금 바로 준비시키겠습니다.”

취운이 빠르게 달려 나갔다.

완전 잠적!

살수들은 명을 받자마자 즉시 짐을 꾸렸다.

취화원은 완전 잠적에 대한 대비책을 준비해 놓았다. 은신처도 마련되어 있고, 당분간 외부 출입을 하지 않고도 버틸 수 있을 정도로 식량도 갖춰 놨다.

그러니 가지고 갈 짐도 거의 없다.

본인이 꼭 가져가야 할 기념물? 행낭 하나 정도만 챙겨서 곧바로 떠난다.

“한성으로 가겠지?”

“우린 퇴빙과는 거리가 멀잖아. 사람들 틈에 섞여 있으면 단박에 티가 나. 그러니 한성에 가도 돌아다니는 건 어림도 없어. 숨어 있어야 할 거야.”

보통 사람이 되는 것, 퇴빙을 구사할 수 있는 사람은 몇 명 되지 않는다. 원주나 구곡주 정도는 되어야 보통 사람으로 행세하면서 지낼 수 있다.

사구정 앞을 지나쳐가도 취화원 살수라는 냄새를 전혀 풍기지 않아야 한다.

퇴빙은 살수의 최고봉이다.

그런 경지를 아직 어린 살수들에게 요구한다는 것은 무리다. 그래서 지하 밀실을 준비했다. 밖에서는 전혀 알 수 없는 밀실인데, 지내기는 갑갑하지 않다.

그렇게 몇 달을 지내야 한다.

‘완전 잠적’ 명령이 떨어지면 일 년이고 이 년이고 밀실에 갇혀 있을 생각을 해야 한다고 가르침 받았다.

“적위군이 그렇게 센가? 우린 정동 무인들도 이겼잖아.”

“싸워도 될 거 같은데.”

“원주님이 어련히 알아서 하시겠지. 원주님이 이긴다고 하면 이기고, 진다고 하면 지는 거야. 지금은 싸우면 안 된다고 판단하신 거고. 빨리 준비나 해.”

살수들은 이야기를 주고받았지만, 손은 무척 바삐 움직였다. 몇 마디를 나누는 사이에 이미 떠날 채비가 끝났다.

은영(隱影)은 떠날 준비를 끝내고 밖으로 나왔다.

“아! 연공실!”

그녀가 불현듯 소리쳤다.

“왜?”

“비급! 비급이 거기 있어.”

연공실에는 비급이 항시 놓여 있다.

누구나 들어가서 수련할 수 있게끔 비급을 공개해 놓았다.

살수들은 여러 권의 비급을 살펴본 후, 자신에게 맞는 무공을 골라서 수련한다.

각기 선호하는 비급이 다를 수밖에 없다.

“무슨 비급인데?”

“비사검(飛蛇劍) 십육식(十六式).”

“어휴! 그건 아는 사람이 별로 없는데, 왜 하필 그 무공에 꽂힌 거야? 빨리 갔다 와.”

“시간이 될까?”

“빨리 다녀오면 될 거야.”

“나 잠깐 다녀올게. 말 좀 잘해 놔. 야단맞지 않게.”

“알았어.”

은영은 대답조차도 듣지 않았다. 그녀는 마음이 급한지 벌써 허공에 신형을 띄웠다.

“휘이이익!”

은영은 산을 쳐다보면서 급히 휘파람을 불었다.

그러자 멀리 산 위에서 새까만 점 하나가 나타나더니 은영을 향해 쏜살같이 내리꽂혔다.

은영은 팔을 들어서 비응(飛鷹)을 받았다. 아니, 받자마자 바로 비응의 발목에 전서를 묶었다.

“빨리 가!”

은영은 팔을 흔들어서 비응을 날려 보냈다.

쒜에에에엑!

비응이 하늘 높이 솟구치더니 금방 먼 하늘로 사라져갔다.

“휴우!”

은영은 마음의 짐을 던 듯 한숨을 내쉬며 돌아섰다. 하지만 그녀의 안색은 곧 새하얗게 질렸다.

“계집애! 넌 도대체 그동안 뭘 배운 거니!”

사곡주 규화가 대뜸 핀잔부터 주었다.

“곡주님…….”

“큰일이 벌어질 때는 간자를 색출할 절호의 기회다. 배웠어, 안 배웠어!”

은영의 안색이 더욱 새하얘졌다.

자신의 행적이 탄로 났다. 사곡주는 이미 비응이 날아가는 것까지 봤다. 무슨 할 말이 있겠나.

스릉!

은영이 검을 뽑았다.

“검까지?”

“그냥 죽을 수는 없잖아.”

“어쭈! 반말? 이제 아예 안면까지 바꾼 거야? 그럼 이제 난 네 곡주도 아니네?”

은영이 깔깔대며 웃었다.

“호호호호! 너희 모두 다 죽었어. 완전 잠적? 누구 마음대로! 규화, 날 보내 주면 네 목숨은 살려 줄 수 있는데.”

스릉!

사곡주 규화가 검을 뽑았다. 그때,

쒜에에엑!

은영이 쾌속하게 규화의 허리를 노리고 검을 쳐 왔다.

취화원 검공이 아니다. 조명천검 중 우중광류(雨中光流)다. 쏟아지는 빗방울 사이로 검초를 쳐 낸다는 쾌검식이다.

순간 삿! 규화의 모습이 시야에서 사라졌다.

“사생락!”

은영이 위기를 느끼며 옆으로 몸을 비틀었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등에서 화끈한 통증이 일어나는가 싶더니 이내 극렬한 아픔이 되어서 전신을 꿰뚫었다.

“아악!”

은영이 비명을 내질렀다.

그녀의 비명은 매우 짧았다. 규화의 검이 매우 잔혹했다. 단 일 검에 등 뒤를 뚫고 들어와서 심장까지 꿰어 버렸다. 그리고 옆으로 쭉 그어서 척추까지 갈라 버렸다.

풀썩!

은영이 쓰러졌다.

빨리 죽이는 것이 가장 편하게 죽이는 길이다.

어떤 때는 가장 잔혹한 검이 가장 편안한 검이 될 수도 있다.

“바보 같은 계집애.”

규화는 쓰러진 은영을 쳐다보았다.

마음이 좋지 않다. 착잡하다.

허도기의 간자이니 죽여야 마땅하다. 또 완전 잠적을 알고 있으니 놓아 줄 수가 없다. 다른 일 같으면 색출만 하고는 보내 주겠지만, 지금은 죽여야 한다.

“휴우!”

규화는 은영의 시신을 뒤로하고 걸음을 옮겼다.

또 누가 나오려나?

* * *

사구정은 취화원을 향해서 달려가는 도중에 비응을 받았다.

취화원이 대별산에 터를 잡은 관계로 전서구가 아닌 비응을 전서용으로 내주었다.

비둘기는 산에 들어가면 잡혀서 먹히기에 십상이다. 하지만 매는 거의 무적이다. 적어도 대별산에서는 매를 능가할 하늘의 제왕은 보이지 않는다.

비응이 날아왔다는 것은 취화원이 움직였다는 소리다.

사구정은 비응의 발목에 매달린 전서를 낚아채듯 뽑아내서 읽었다.

“이것들이!”

사구정의 얼굴에 잔혹한 미소가 어렸다.

취화원이 잠적한다는 보고다. 일단 한성으로 진입할 것이다. 그 이후는 아직 모른다. 향후, 보고할 기회가 없을지도 모른다. 완전 잠적을 하면 행동을 통제받는다.

보고 내용은 간단했다.

“숨으면 찾기 힘들어. 그전에 두들겨야지 돼! 더 빨리!”

사구정이 말 배를 걷어찼다.

히히히힝!

말이 큰 울음을 토하면서 있는 힘껏 질주했다. 그야말로 폭풍처럼 달려 나갔다.

“한성 상황 보고는?”

사구정이 말을 몰아 질주하면서 물었다.

“아직입니다!”

부하가 숨넘어가는 소리로 보고를 해 왔다.

숨 쉴 틈도 주지 않고 말을 몰고 있어서 입을 열기가 쉽지 않다. 무공에 능한 적위군도 힘들어한다. 그 정도로 급하게 말을 몰아치고 있다.

사구정은 못마땅한 듯 미간을 찡그렸다.

이럴 것에 대비해서 한성에 준비한 밀부(密府)를 낱낱이 파악하라고 지시했다.

취화원이 한성에 사들이 전각을 파악하다 보면 그들의 움직임이 읽힐 것이다. 지금 같은 경우, 완전히 잠적한다고 해도 어디에 숨을지 예측할 수 있다.

그런데 겨우 두세 군데 정도만 알아냈을 뿐, 나머지 전각은 알아내지 못했다.

취화원이 적어도 서른 채 이상 매입했을 텐데, 산 사람은 물론이고 판 사람조차도 철저하게 입을 다물었다. 아마도 판매 조건에 비밀유지 조항도 포함된 듯하다.

시간적인 여유가 있는 줄 알고 빨리 알아내라고 재촉하지 않은 게 실수다. 설마 취화원을 공격하는 날이 이렇게 빨리 닥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이렇게 되면 완전 잠적이 꽤 효과가 있다.

자칫하면 대별산을 들이치고도 검을 휘둘러보지 못하는 경우까지 일어날 수 있다.

방법이 없다. 숨기 전에 쳐야 한다.

“끼랴! 더 빨리!”

사구정은 적위군을 재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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