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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홀도-224화 (224/600)

#224화. 第四十五章 살자(殺者), 사자(死者) (4)

사구정은 쉽게 공격해 들어오지 못했다.

그는 아걸에게 당한 경험이 있다. 그 경험이 검을 쉽게 쓰지 못하게 만든다.

스스슷! 스슷!

사구정은 아걸 주위를 빙빙 돌기만 했다

그러는 사이 적위군과 취화원, 그리고 은거 무인들이 격렬하게 부딪혔다.

단순한 비무가 아니다. 죽고 죽이는 싸움이다.

일대일의 승부, 혹은 이 대 일의 승부도 아니다. 서른 명 대 열다섯 명의 싸움이다. 적위군이라는 조직과 취화원이라는 살수가 서로를 멸절시키려고 한다.

일면 적위군이 유리해 보인다.

그들은 숫자가 많다. 딱 이 대 일 싸움이다. 실제로 두 명이 한 명씩을 맡아서 협공을 펼친다. 구곡주는 두 명을 상대하느라 다른 사람을 돌볼 여지가 없다.

적위군은 무공도 강하다.

소축십검이 구사하는 모든 검공을 구사한다. 성검문 신법을 능숙하게 펼친다.

쒜에에엑! 카앙! 쒜에엑! 팟!

취화원 살수들이 기세 좋게 검을 맞받았다. 하지만 두세 번 맞받다가는 이내 암영검을 펼친다. 은신술로 몸을 흐리게 만들면서 검권을 벗어나려고 한다.

적위군의 검을 받아 보니 검에 깃든 힘이 무척 강하다.

이들의 내공만큼은 구곡주를 압도한다. 아니, 내공에서는 은거 무인들도 쩔쩔맨다.

구곡주는 암영검과 사생락을 펼쳐서 간신히 버텨 내고 있다.

“얘네들, 쥐약을 먹었나. 왜 이렇게 강해?”

이곡주 소호가 검광을 별빛처럼 뿌려 내며 말했다.

취화원이 파악하고 있던 적위군이 아니다. 알고 있던 것보다 적어도 두 배는 강하다.

까앙! 깡!

규화가 위에서 떨어지는 검을 막았다. 동시에 허리를 옆으로 비틀어서 몸통을 쓸어오는 검을 피했다.

검날이 아슬아슬하게 옆구리를 스치며 지나갔다.

“훅! 확실히 쥐약 먹었네.”

“흐흐흐! 네년들 눈에는 이게 쥐약으로 보이냐? 말은 제대로 알고 있어야지. 이런 걸 보고 뼈를 깎는 수련이라고 하는 거야. 이것들 별것 아닌데?”

“킥킥!”

쒜에에엑! 쒜액!

적위군은 말을 하면서도 검을 늦추지 않았다.

위에서 떨어지고, 아래에서 솟구치고, 가슴 한복판을 찔러 오고…… 도무지 정신이 없다. 그때!

“사(死)!”

불현듯 하늘에서 벼락이 떨어지듯 거센 음성이 구곡주의 귓전을 강타했다.

순간, 구곡주의 검이 일제히 변했다.

스슷! 스으으읏!

구곡주는 더는 말하지 않았다.

입을 굳게 다물고, 눈빛은 심유하게 가라앉고, 호흡은 감지하지 못할 정도로 매우 낮게 가라앉았다.

“음!”

적위군도 농담을 주고받지 못했다.

구곡주의 모습은 저승에서 뛰쳐나온 저승사자의 모습이었다. 악독하다거나 흉포하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무서운 쪽과는 느낌이 달랐다.

구곡주는 매우 음산했다.

가까이 다가서면 여지없이 죽음 속으로 끌려들어 갈 듯 차갑고 비정했다.

“사생락!”

적위군 중 한 명이 중얼거렸다.

구곡주는 선제공격을 가해오지 않는다. 누구든 먼저 공격하라는 듯 몸을 내주고 있다. 그런데도 적위군은 쉽게 들어가지 못하고 허점만 살핀다.

이 대 일 승부의 판도를 바꾼 사람은 몽설이다.

쒜에에엑! 퍼억!

핏빛 혈기를 담은 검광이 허공을 흐르면 한 사람이 여지없이 쓰러진다.

“크윽!”

또 한 명이 쓰러졌다.

몽설은 검초를 쓰지 않는다. 무희(舞姬)처럼 춤을 춘다.

검이 아직 다가오지 않았다. 먼 거리에 있다. 공격을 가해 오려면 적어도 검을 들어 올리고, 다가서는 행동이 필요하다. 그런데 갑자기 눈앞에서 번쩍! 핏빛이 터진다.

몽설의 검은 거리 차이를 빼앗아 버린다.

검권(劍圈), 검의 거리를 판단하는 능력은 무인마다 다르다. 하지만 시각에 의존하는 무인은 없다. 누구라도 감각에 의존해서 판단하고 움직인다.

‘날 노리고 있어.’

이것이 판단이다. 하지만 몽설의 검은 이미 코앞에 이르렀다. 노리고 있는 게 아니라 벌써 검초를 펼쳐 냈다.

몽설은 혈검 속에 사생락까지 섞었다.

삶과 죽음 사이에서 검초를 펼쳐 내려면 극초감각이 있어야 한다. 바늘 끝만 한 공간을 두고 일어나는 미세한 떨림도 감지할 수 있어야 한다.

사생락의 극초감각과 혈검의 심유함은 상통하는 면이 있다.

몽설이 두 절공을 섞어서 검을 떨쳐 낸다.

“크윽!”

적위군이 또 쓰러졌다.

몽설의 검이 노리는 자는 여지없이 쓰러진다. 요혈을 정확히 가격해서 동귀어진도 펼치지 못하고 쓰러진다.

“음!”

적위군이 쩔쩔매며 물러섰다.

적위군은 조명십해 중 한두 가지 이상의 무리를 담을 줄 안다.

검 속에 은장재계이살을 담았다. 겉모습은 평온하다. 유연하다. 하지만 검초 속에는 살기가 가득 담겨 있다.

검을 쳐 낸다. 평범한 검이다. 그러니 평범하게 받으면 된다. 역공을 취해도 무방하다. 어떤 움직임을 보이든, 은장재계이살이 터진다. 움직이는 즉시 반격이 일어난다.

하지만 몽설에게는 이런 무리도 통하지 않는다.

쒜에엑! 퍼억!

몽설은 검초 속에 깃들어 있는 모든 변초를 무시해 버리고 곧장 몸통을 가격했다.

어떤 무리든 거침없이 뚫어 버린다.

몽설의 검을 상대하는 방법은 오직 절대 쾌검뿐이다.

만약 잠기일력타를 사용할 수 있다면, 또는 삼륜축첩공을 펼칠 수 있다면 승부를 걸어 볼 만하다.

그 외에는 어떤 검초도 몽설이 흘리는 이상한 거리 차이를 무너트리지 못한다.

쒜엑! 빠악!

또 한 명이 머리에 검을 맞고 쓰러졌다.

머리가 반쯤 찍혀 나가면서 즉사했다. 벌써 다섯 명째다. 적위군 서른 명 중 다섯 명이 즉사했다. 몽설이 사구정에게서 떨어져 나와 싸움에 가담한 직후에 벌어진 일이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적위군의 기세는 단번에 수그러들었다.

몽설이 한 사람을 향해 다가섰다.

그가 주춤거리면서 물러섰다. 적위군은 싸움 앞에서 물러선 본 적이 없다. 하지만 쓰러진 자들에 비해서 월등하게 강하다고 자신할 수가 없으니 물러선다.

“이놈아! 도망가더라도 주위는 살펴야지! 이쪽으로 오면 어떻게 해!”

쒜에에엑!

무인을 향해 승표가 날아왔다.

뒤로 물러서던 적위군은 깜짝 놀라서 옆으로 몸을 피했다. 하지만 그곳에는 쌍겸이 있었다.

“킥킥킥!”

쌍겸이 괴소를 흘리며 낫을 휘둘렀다.

퍽! 퍼억!

낫 한 자루가 발등을 찍었다. 동시에 아래에서 위로 올려친 낫이 배를 뚫고 가슴으로 쳐올려졌다.

쌍겸의 키가 너무 왜소해서 시야에서 놓쳐 버렸다.

“크으윽!”

적위군이 쓰러졌다.

뿔뿔이 흩어져 있던 적위군은 즉시 한군데로 모였다. 서로 등을 맞대고 서로를 보호하면서 취화원을 상대한다. 공세는 엄두도 내지 못하고 수세만 취한다.

상황이 역전되었다. 적위군이 취화원을 몰살시키려고 왔는데, 오히려 취화원에게 몰살당할 판이다.

하지만 적위군은 상황이 바뀐 줄도 알지 못했다.

‘이러다가는 몰살당한다!’

사구정은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아걸은 서둘지 않는다. 상황이 이렇게 변할 것을 이미 알고 있었던 듯 태연하게 사구정만 잡아 놓고 있다. 굳이 승부를 가릴 생각도 없어 보인다.

‘좋아! 이렇게 되면!’

사구정이 이를 꽉 깨물었다.

비장의 절초를 꺼내지 않는 한 아걸을 상대할 방법이 없다.

사구정은 사령귀변(四靈鬼變)을 일으켰다.

사령귀변은 조명십해 중 하나다. 겉보기에는 사술 같지만, 엄연히 정통 무공이다.

파앗!

아걸을 겨누고 있는 검 끝이 살랑살랑 흔들렸다. 검이 동공을 파고든다. 검기가 눈을 가린다.

아걸은 눈을 끔뻑거렸다.

순간, 사구정의 신형이 네 개로 확 불어났다. 어느 것이 실체고 어느 것이 허상인지 구분이 되지 않는다. 신형 넷이 모두 실체처럼 보인다.

사령귀변은 무당파(巫堂派) 신법인 환허보(幻虛步)와 왜국(倭國) 동영(東瀛)의 분화수(焚火手)를 조합한 절공이다. 얼핏 보면 그렇게 보인다.

하지만 사령귀변은 그보다 훨씬 더 절묘하다.

검기로 동공을 찔러서 환시, 환각을 일으킨다. 대부분 착시는 순간적으로 그치고 말지만, 사령귀변은 움직임이 일어나지 않는 한은 계속 환시를 지속시킨다.

그리고 은밀히 움직임을 일으킨다.

상대방에게는 움직이지 않는 듯 보이게 만들면서 환허보와 흡사한 보법을 밟는다.

다급해진 상대는 허상 네 개를 모두 가격한다. 하지만 실체는 이미 빠져나간 후다. 전혀 다른 곳에서 텅 빈 곳을 공격한다.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사이에.

이 모든 움직임이 찰나 만에 일어난다.

잠기일력타가 쾌검의 정화라면 사령귀변은 환술의 정화다.

스스슷!

사구정이 아걸의 종아리를 노리고 검을 쳐 냈다.

사령귀변에 따른 공격은 생명에 위협이 적은 부분부터 노린다. 그래야 경각심이 한결 덜어진다. 어차피 발목이나 손목을 타격당해도 승부는 끝난 것이다. 애써서 처음부터 치명적인 사혈을 노릴 필요가 전혀 없다. 그런데,

쒜에에엑!

아걸이 도환(刀環)에 손가락에 걸고 반철도를 빙글 돌렸다.

몸이 돌고 반철도가 휘둘러진다. 하지만 몸이 삼분지 일쯤 돌았을 무렵부터는 반철도가 툭 튀어 나가 몸을 앞선다. 반철도가 앞서 나가고 몸이 뒤따른다.

놀라운 쾌도다.

파파파파파팟!

사구정이 일으킨 분신(分身)이 일제히 타격당했다. 신형, 네 개가 연기처럼 꺼졌다.

환검의 정화가 깨졌다. 아걸은 사령귀변을 단숨에 파악해 냈다.

사구정은 사부가 해 줬던 말을 떠올렸다.

- 일홀문에 몰안이라는 기공이 있다. 몰안을 터득한 놈은 이 환검을 단숨에 깰 수 있어. 그런 놈에게 사령귀변을 펼치는 것은 자살 행위다. 네 무덤을 파는 행위니, 잘 살펴서 써라.

몰안을 수련한 자에게는 사령귀변보다 잠기일력타가 훨씬 낫다. 물론 몰안은 잠기일력타도 찾아낸다. 하지만 사령귀변을 펼치는 것보다 백번 낫다.

“으음!”

사구정은 신음을 흘렸다.

아걸이 몰안을 수련한 게 틀림없다

부웅!

반철도가 사구정의 검을 노리고 달려들었다.

반철도가 회전하면서 상단에서 중단으로, 중단에서 하단으로 급격히 방향을 바꾼다. 위에서 아래서, 비스듬히 사선을 그리면서 내리꽂힌다.

‘강하다!’

사구정은 미처 반철도를 받아 내지 못하고 뒤로 물러섰다.

진기를 쏟아붓지도 않은데, 반철도에 깃든 힘이 무지막지하다. 검과 부딪치면 당장 검신을 두 동강 낼 것 같다.

쉬이잉!

반철도는 물러서는 것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사구정이 물러서자, 반철도가 바로 뒤쫓아 왔다.

그렇다! 아걸이 아니라 반철도가 쫓아온다.

아걸은 칼을 들고 있을 뿐이다. 반철도가 앞장서고, 아걸은 반철도에 이끌려서 질질 끌려온다. 반철도에 눈이 있어서 그를 쫓아오는 것처럼 보인다.

“이익!”

사구정은 온 힘으로 검을 들어서 반철도를 막았다.

따앙!

검과 반철도가 부딪쳤다. 그리고 예상했던 그대로 검신 한가운데가 뚝 부러져 나갔다.

쒸이이익!

검을 반으로 갈라 버린 반철도가 계속 내리쳐졌다.

칼이 사구정을 노린다. 반으로 갈라 버리지 않고는 직성이 풀리지 않는다는 듯 거세게 내리쳐진다.

“후웁!”

사구정은 급히 신형을 뒤로 빼 냈다. 순간,

쩌어어억!

반철도가 오른쪽 가슴 밑부분부터 아랫배까지 쭉 그어 내렸다.

피한다고 피했지만, 완전히 피하지는 못했다. 여지없이 일격을 맞고 말았다.

“크윽!”

사구정이 신음을 쏟아 냈다.

휘릭!

반철도가 방향을 바꾸어서 계속 달려들었다. 몸을 긋고 내리쳐진 칼이 빙글 휘돌면서 위로 올려지더니 이번에는 머리를 노리고 내리찍는다.

사구정은 눈을 부릅떴다.

이 칼…… 도저히 막을 수 없다. 방금 당한 일격이 너무 강해서 몸을 제대로 움직일 수 없다. 아무리 빨리 움직여도 반철도를 피하지 못한다.

“헉!”

사구정은 자신도 모르게 헛바람을 토해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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