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5화. 第四十五章 살자(殺者), 사자(死者) (5)
희한한 노릇이지만 거센 공격 속에서 아걸은 보이지 않았다. 사구정의 눈에는 오직 반철도만 보였다. 반철도가 스스로 살아서 공격해 온다.
스읏!
사구정은 검을 들어 올렸다.
쏟아져 내리는 칼을 그냥 맞을 수가 없어서 검을 쳐올리기는 하는데, 한발 늦었다는 게 확 느껴진다.
그때다!
펙펙펙펙펙! 펙펙펙!
난데없이 표창, 수리검, 비표 등등 온갖 암기들이 폭우처럼 쏟아져 내렸다.
휘리링! 탕탕탕! 타앙!
사구정을 향해 내리쳐지던 반철도가 재빨리 방향을 틀어서 암기들을 쳐 냈다.
쒜엑! 쎅! 쒝!
암기를 던진 자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은 곧장 아걸을 향해 공격했다.
매우 빠르다! 변화를 일절 배제한 채 일직선으로 아걸을 향해 찔러온다. 방어는 무시하고 오직 공격에만 치중한다. 죽더라도 너만은 죽이겠다는 공격이다.
아걸이 신형을 빙글 휘돌렸다.
그러자 방금 사령귀변을 깼던 도법이 또다시 펼쳐졌다.
몸이 들고 칼이 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칼이 먼저 앞서 나가고 몸이 뒤따른다.
타당탕탕!
반철도가 검, 네 개를 쳐 냈다. 진기를 싣지 않은 칼이 번갯불처럼 쏘아 온 검들을 모조리 퉁겨 냈다. 아니, 사구정의 검을 분지른 것처럼 저들 검도 부숴 버렸다.
칼에 깃든 힘이 가히 천력(天力)이다.
순간, 아걸이 허공으로 신형을 쭉 뽑아 올렸다. 그리고 사구정이 평생 보지 못했던 섬광을 쏟아 냈다.
쩌억!
공격자 중의 한 명이 칼에 맞았다.
그는 칼에 맞았는데도 피를 흘리지 않는다. 하지만 칼에 맞은 것은 확실한 것 같다. 술 취한 사람처럼 비틀비틀 움직이더니 픽 꼬꾸라졌다.
푸아악!
뒤늦게 살이 갈라지면서 피가 솟구쳤다.
‘피축(皮縮)!’
사구정은 눈을 부릅떴다.
아걸이 던진 칼은 너무 강하고 빠르다. 그래서 살을 베었는데도 피부가 쩍 벌어지지 않고 스쳐 지나가는 칼날을 쫓아서 일시 오므라드는 현상이 벌어졌다.
옛날, 아걸이 마방에서 활검문 문도에게 이런 칼을 썼다고 들었다.
쒜에엑! 퍽! 퍽퍽!
사구정이 놀라는 사이, 아걸은 남은 세 명도 간단히 베어 냈다.
아걸을 공격한 자들은 검은 복면을 썼다. 옷도 흑의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통 시커멓다.
흑의인들은 무공이 강하지 않다. 소축십검보다 한참 밑이다. 단지 목숨을 도외시하고 공격하기 때문에 위협적인데, 일 회에 한할 뿐이다. 계속 위협을 가하지 못한다.
“삐이익!”
사구정은 입을 오므려서 휘파람을 쏘아 냈다. 그리고 재빨리 신형을 날려 자리를 떴다.
이미 상당한 상처를 입었다.
이 자리에 남아 있으면 끝이 어떻게 될지 빤히 보인다.
“비켜!”
“물러서!”
적위군들이 사력을 다해 검을 쳐 냈다.
하지만 몽설은 그들을 온전히 보낼 생각이 없다. 예전에 정동 무인들에게 공격당한 경험이 있어서, 이번만큼은 습격자들을 온전히 돌려보내지 않으려고 한다.
취화원을 공격하면 끝이 좋지 않다는 것을 확실히 알려 준다.
스으으읏! 퍼억!
사사가 전개한 일 검에 적위군이 피식 쓰러졌다.
사사는 검초를 펼쳐 내지 않았다. 적위군이 느닷없이 풀썩 쓰러졌다. 이것이 사생락이다. 검을 쓸 때는 재빨리, 하지만 쓰지 않은 것처럼 평온을 유지하고.
구곡주가 감각을 최고조까지 끌어올린 채, 곁을 스쳐 지나가는 적위군을 노린다.
퍼억! 퍽!
적위군은 구곡주를 통과하지 못했다. 검초를 떨쳐내기는 했지만, 구곡주는 정확하게 피하고 역공을 취했다. 공격을 무산시키면서 달려든 검초라서 미처 막을 새가 없었다.
삐이이익!
퇴각을 재촉하는 휘파람 소리가 울려왔다.
“비켜! 이것들아!”
“아아악!”
적위군은 사력을 다해서 구곡주를 뚫었다. 하지만 그 뒤를 은거 무인들이 받치고 있었다.
맨 마지막은 몽설이 기다린다.
적위군은 무더기로 쓰러졌다.
퇴각 소리를 들은 적위군은 오히려 실수가 더 잦아졌다.
사생락 앞에서 저지르는 실수는 목숨과 연관된다. 한치의 용서도 없이 검이 날아든다.
적위군 서른 명 중 몸을 빼낸 자는 두 명에 불과했다.
나머지 스물여덟 명이 대별산에 몸을 뉘었다.
한때, 적군들에게 ‘붉은 악마’로 불렸던 용사들이지만 이번만은 상대를 잘못 골랐다.
* * *
탁호는 취화원에서 벌어진 일을 보고 받았다.
“다행히 아걸이 나타나는 바람에 사구정을 쉽게 제압한 듯합니다. 적위군장이 중상을 입었고, 적위군은 두 명만 살았으니 거의 몰살 되었다고 봐야죠.”
“호위청사는?”
“뒤늦게 도착하긴 했는데 할 일이 없어서. 어쨌든 일단은 취화원에 남아 있겠다고 합니다.”
“으음!”
탁호는 신음을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호위청사 허굉우는 탁호의 심중을 정확하게 읽었다.
적위군이 살수를 공격하다가 오히려 격퇴당했다. 살수들에게 전멸에 가까운 치명타를 입었다.
이것은 대단히 큰 문제다.
적위군은 살수를 칠 수 있다. 하지만 살수는 적위군을 쳐서는 안 된다.
관군은 도적을 토벌할 수 있다. 한데 토벌하러 간 관군이 오히려 전멸당했다. 그러면 향후, 어떤 일이 벌어질 것 같은가. 단지 도적들의 승리로 끝날까?
그래서 허굉우가 남은 것이다.
허도기가 적위군 죽음을 이유로 취화원에 어떤 조처를 취할 수 있다. 그럴 경우, 허굉우가 전보영 호위청사 자격으로 취화원에 유리한 말을 해 줄 생각이다.
그가 취화원에 남아 있는 것은 허도기에게 적위군의 죽음을 공적인 일로 만들지 말라는 뜻이다.
“이건 내 선을 벗어났어.”
탁호가 즉시 일어섰다.
* * *
“어차피 이런 일이 일어날 가능성은 있었지. 그것보다도 아걸이 취화원에 있었다고?”
“네.”
“자네도 아무 소리 못 들었나?”
“네.”
“하하하! 모두 감쪽같이 속았군. 나도 아걸이 단곡에 있는 줄 알았지 뭔가.”
조위 장군이 웃었다.
아걸이 움직인 것은 전보영도 알지 못했다. 그야말로 전격적인 움직임이다.
아걸이 움직인 이상 사구정은 패할 수밖에 없다.
“저는 혹시 장군께서 아걸에게 보낸 밀지로 이번 일을 말씀하신 게 아닌지 생각했습니다만.”
“아니. 나는 이번 일을 생각하지 못했어. 솔직히 지금 나는 취화원을 생각할 겨를이 없네. 허도기를 쳐다보는 것만 해도 눈이 다 아파. 후후!”
장군이 웃었다.
“아걸 곁에 지당검 고사가 있습니다.”
“알고 있네.”
“이번 일은 아마도 고사 머리에서 나온 게 아닐지…….”
“아니, 아니야. 고사는 이런 모험을 하지 않아. 단곡은 지금 당장 습격을 받아도 전혀 이상하지 않거든. 이런 마당에 아걸이 자리를 뜰 수는 없지.”
“그럼 누가?”
“취화원주가 꽤 야무져. 내 판단은 그래. 그것참…… 전보영이 단곡을 들이쳤다면 남은 내 부탁은 허망하게 무너질 뻔했군. 아걸, 이 사람. 대의보다는 여자가 먼저야. 하하하!”
장군은 아걸에게 다섯 가지 부탁을 했다.
허도기를 쓰러트리기 위해서 반드시 밟고 넘어가야 할 단계라고 설득했다.
그중 세 단계를 밟았다.
아직 두 단계가 더 남았는데, 자리를 비웠다.
하마터면 지금까지 들인 공이 무너질 뻔했다. 허도기도 잡지 못하고, 아들은 개죽음당하고, 허도기와의 싸움은 원점에서 다시 시작하게 된다.
장군은 아걸이라는 사내를 어느 정도 알 것 같았다.
“전보영과 취화원은 어떤 관계인가?”
“…….”
탁호는 일시 대답하지 못했다.
전보영이 외인과 맺는 관계는 지극히 냉정하다. 도움이 되면 받아들이고, 거치적거리면 뱉는다. 감탄고토(甘呑苦吐),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것이 명확하다.
“제 생각은 여쭙는 것이라면…… 버리고 싶지 않습니다.”
“무엇 때문에?”
“선을 지킬 줄 압니다.”
조위 장군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취화원을 지켜 줘야지. 살수 집단이 아무리 좋은 일을 해도 음지에 있을 수밖에 없어. 양지로 꺼낼 방법을 생각해 봐. 밖으로 나와야 움직이기도 쉽지.”
“네. 방법을 찾아보겠습니다.”
“그리고 이제 아걸을 공격해.”
“시행합니까?”
장군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자들이 움직이면 아걸도 상당히 힘들 텐데, 괜찮을까요?”
“그게 네 번째 부탁이지. 아주 혹독한 싸움인데, 견뎌 달라고 부탁했지. 견뎌낼 거야.”
“아! 네. 그럼 안심하고 움직이겠습니다.”
조위 장군이 고개를 끄덕였다.
* * *
“못난 놈.”
허도기는 상처를 입고 돌아온 사구정을 쏘아보았다.
“죄송합니다. 아걸이 있을 줄은 몰랐습니다.”
“아걸의 칼은 외차도(外差刀)라는 칼이다. 자연을 따르는 칼이지. 물은 위에서 아래로 흐르고, 불길은 아래에서 위로 솟구치고, 빠르게 질주하는 말은 즉시 멈출 수 없고.”
사구정은 입을 꾹 다물고 귀 기울여 들었다.
외차도라는 칼은 도법이나 도초가 아니다. 일홀도처럼 도법의 속성을 말한다.
“외차도를 깨기 위해서는 자연을 알면 돼. 자연을 모르는 사람이 누가 있냐고 하겠지만, 사실 신경 쓰고 사는 사람은 거의 없어. 아걸은 이런 점을 늘 염두에 두고 사는 것이고.”
“연구하겠습니다.”
“넌 무엇을 펼쳤냐?”
“사령귀변입니다. 아걸이 몰안까지 수련한 줄은 몰랐습니다. 단번에 간파되어서…….”
“밑천을 드러냈구나.”
“…….”
사구정은 대답하지 못했다.
“너 벌써 별 두 번 맞았지?”
“네.”
“누구에게든 한 번은 질 수 있다. 하지만 두 번은 지지 마라. 다시 싸울 때는 반드시 이길 수 있도록 해. 이길 자신이 없다면 아예 싸우지 마.”
허도기는 적위군이 대패해서 단 두 명밖에 살아남지 못했는데도 노여워하지 않았다. 오히려 여유로웠다. 취화원을 멸절시키지 못했는데도 아무 일도 없었던 듯 태연했다.
“나가 봐. 당분간 문밖출입을 삼가고 몸을 추슬러.”
“네. 사령을 보내 주셔서 감사합니다.”
사구정이 깊이 부복했다.
만일의 경우, 자신의 목숨을 던져서 단 한 번 공격을 막아 줄 자들이 뒤따랐다.
진공부를 나설 때부터 뒤따르는 것을 알았다.
사부가 괜히 쓸데없이 걱정하는 것이라고 못마땅해했는데, 그들 덕분에 목숨을 구했다.
허도기가 나가라는 듯 손을 휘휘 내저었다.
오늘, 사부 허도기는 기분이 매우 좋아 보였다. 사구정이 대패해서 돌아왔는데도.
드디어 전보영이 움직인다.
여우 같은 탁호도 왜살까지 죽은 마당에서 어쩔 수 없었나 보다.
세상에 조경 장군의 시신을 내놓으려면 그를 죽인 흉수의 시신도 함께 내놓아야 한다.
조경 장군은 병사한 게 아니다. 칼에 맞아 죽었다.
장군을 죽인 자는 누가 되었던 참형이다. 하물며 장군가에서 일을 당했으니 반드시 흉수를 잡아야 한다. 복수하지 않으면 장군가 얼굴에 먹칠하는 셈이다.
더 재미있는 것은 지금 아걸이 취화원에 있다는 점이다.
단곡은 텅 비었다. 그런데 전보영은 움직이고 있다. 막상 공격해 보니 흉수는 없다.
사실, 아걸의 존재 여부는 아무 상관이 없다.
아걸은 미끼다. 그것도 아주 큰 미끼다. 겨우 전보영 따위나 끌어내는 작은 미끼가 아니라 조위 장군을 낚아채는 아주 큰 미끼가 되어야 한다.
이번에 나선 전보영은 누구도 살아서 돌아가지 못한다.
‘아걸을 공격하려면 상당히 강한 자들이 움직여야 하는데, 누가 나왔을까? 아걸을 상대할 만한 자라. 전보영에 그런 자가 있나? 딱히 생각나는 자는 없는데. 후후!’
허도기는 곧 들어올 보고가 사뭇 기대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