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6화. 第四十六章 토족(土族) (1)
따각! 따각! 따각! 따각!
무인이 말을 타고 산으로 들어섰다.
산길은 좁지 않았다. 말을 타고 가도 충분할 정도로 넓고 완만하게 잘 닦여 있다.
좌우로는 가파른 산이 둘러쳐져 있다.
산을 잘 타는 사람이라도 밧줄 없이는 들어설 엄두가 나지 않을 만큼 경사가 급하다.
한데 유독 산길만 잘 닦여 있다. 산을 오르는 사람도 없다.
고명산(膏明山)은 세상에서 잊혔다.
가장 가까이에 있는 민가가 삼십 리 정도 떨어져 있을 만큼 외진 곳이다. 아니, 고명산이 외졌다기보다는 사람들이 발을 들여놓지 않는다.
고명산은 출입 금지다.
국법으로 출입 금지 명령을 내리면서, 항명(抗命)하는 자는 즉참(卽斬) 한다는 선포까지 했다.
또 산 곳곳에는 관군이 경계를 서고 있다.
이러니 어떤 배포 좋은 자가 발을 들여놓겠나. 길을 잃어서 산에 들어섰다는 변명도 통하지 않는다. 어떤 이유이건 고명산에 들어서면 즉결 처분당한다.
그래서 인근 마을 사람들은 아예 고명산이라는 말을 입에 담지 않는다.
황상은 왜 고명산을 금역으로 지정했을까? 고명산 안에 무엇이 있을까? 금역으로 지정해 놓고 찾는 사람이 없으니 좋은 것을 숨겨 놓지는 않았을 것 같은데.
다각! 다각! 다각!
사내는 고명산 안으로 거침없이 말을 몰았다.
쉬잇! 쉿! 쉿! 쉬이이잇!
주위에서 날카로운 바람 소리가 들려왔다.
괜한 소리가 아니다. 저 소리 하나하나가 죽음을 담고 있다.
사내는 소리가 꽤 명확하게 들릴 때쯤, 비로소 말을 멈추며 조용히 말했다.
“진공부에서 왔다.”
사내의 음성은 나직했지만, 바람이 듣기에는 충분했다.
그러자 사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진공부’라는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한 사람이 쑥 내려섰다.
‘이환보!’
말을 탄 사내의 눈에서 기광이 번뜩였다.
앞을 가로막은 사내는 성검문 신법을 상당히 능숙하게 사용한다. 신법이 몸에 붙어서 일부러 펼치지 않는데도 저절로 이환보가 일어난다.
“진공부에서 왔다고?”
사내가 눈을 게슴츠레하게 뜨고 말 위를 쳐다봤다.
말 탄 사내는 당연한 절차인 듯 품에서 영패를 꺼내 사내에게 던져 주었다.
사내가 날아오는 영패를 받아서 자세히 살펴봤다.
“영패는 맞네. 여기 진공부라고 딱 쓰여 있어. 한데 난 아무 소식도 받지 못했는데, 어쩌지?”
사내가 누런 이를 드러내며 씩 웃었다.
“국수. 곤륜(崑崙). 논어(論語).”
말 탄 사내가 난데없이 전혀 뜻이 통하지 않는 세 단어를 말했다.
순간, 앞을 가로막아선 사내가 기괴한 웃음소리를 터트렸다.
“크크큿! 하하하! 크큭! 맞네. 진공부.”
웃음을 그친 사내가 손을 번쩍 들었다.
그러자 주위에서 사람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은 조금 전까지 완벽하게 산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사람이 되었다.
이들의 위장술은 혀를 내두를 만큼 탁월했다.
“상당히 뛰어난 은신술이군.”
“이곳에서만 십오 년이지. 토족(土族)과 어울리다 보면 이런 잔재주쯤은 배우게 돼.”
앞을 가로막은 사내, 고명산 산주(山主) 장기록(張寄麓)이 말했다.
“아! 이 지겨운 일도 이제 끝인가? 여기 올 때는 일이 년이면 끝날 줄 알았는데, 벌써 십오 년이야. 내 한평생이 여기서 다 썩었어. 제길!”
산주가 말 옆에 서서 걸으며 투덜거렸다.
스슷! 스스슷! 스스스슷!
산에서 사람들이 쏟아져 내려왔다.
대충 눈짐작으로 헤아려 봤는데, 대략 스무 명 정도 된다. 산주 곁을 지키는 산귀(山鬼)들이다.
산귀들의 무공은 중원 무공과는 상당히 다르다.
원래 이들은 조명천검을 수련했다. 고명산에 배치될 때만 해도 허도기에게 충성을 맹세한 수하였다. 한데 지금은 조명천검을 버리고 완전히 다른 무공을 사용한다.
‘토족과 동화되었군.’
말 탄 사내가 잔잔한 미소를 머금었다.
사내는 산막으로 안내되었다.
말 그대로 나뭇가지 몇 개를 얼기설기 묶어서 만들어 놓은 집인데, 거주하기는 불편하지 않아 보였다.
“모두 이런 곳에서 사나?”
사내가 말에서 내리며 물었다.
“이건 혹시 쓸모 있을까 싶어서 남겨 둔 것이고, 우린 집 없이 산 지 오래됐어. 운이 좋으면 동굴, 운 없는 놈들은 토굴을 파고 벌레들과 함께 살지. 큭큭!”
산주가 음침하게 웃었다.
“오늘은 여기서 자고, 토족 족장은 내일 만나. 그쪽은 반드시 사전에 연락해야 만날 수 있거든.”
“사전 연락? 그놈들, 죄수 아냐?”
“큭큭큭! 그건 십오 년 전 일이고. 지금은 우리랑 함께 산다니까. 필요한 것 서로 주고받고, 일정한 격식이나 예의도 지켜 주고. 서로 편하자는 거지. 이게 여기 고명산의 법이야.”
산주가 사내의 어깨를 툭 치고 일어섰다.
산주는 사내의 이름도 묻지 않았다. 물을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사내가 무엇 때문에 고명산에 찾아왔는지도 안다. 토족과 연관된 일이 아니면 올 일이 없다.
스스슷! 스슷! 스스스슷!
중간에서부터 쫓아왔던 산귀 스무 명이 움막 주위를 포위했다.
그들은 곧 산과 동화되었다. 산의 일부분이 되어서 감쪽같이 사라져 버렸다.
사내를 감시하는 것인지, 보호하는 것인지 구별되지 않는다.
“후후! 그럼 난 좀 쉬어야겠군.”
사내는 나무를 엮어서 만든 침상에 누웠다. 그리고 곧 그르렁 코까지 골면서 잠이 들었다.
* * *
꾸르르륵! 꾸르륵!
고명산에서 전서구가 날아올랐다.
“저기다!”
전서구가 고명산을 벗어나기 무섭게 일단의 무리가 말을 타고 빠르게 뒤쫓았다.
두두두두! 두두두두!
그들은 말 배를 연신 걷어차면서도 눈을 하늘에 두었다. 전서구가 날아가는 모습을 자세히 지켜봤다.
“떨궈!”
한 명이 소리쳤다.
그러자 일행 중 두 명이 허리춤에서 수리검을 꺼내서 전서구를 향해 날렸다.
쒜에에엑! 쒜에에엑!
수리검 한 자루가 전서구가 날아가는 앞쪽을 차단했다.
비둘기가 화들짝 놀라서 방향을 트는 사이, 다른 수리검이 날아가서 몸통을 적중시켰다.
퍼억!
전서구는 힘을 잃고 툭 떨어졌다.
사내들은 전서구를 잡는 데 매우 능하다.
전보영에는 전문적으로 전서구만 잡는 사람들이 있다. 칠청(七廳) 중 첩보청(諜報廳) 소속으로, 신분 내력이 비밀에 부쳐진 비밀 관원들이다.
전서구를 낚아챈 자가 재빨리 전통을 풀어냈다.
“진공부, 맞지?”
“맞아.”
“뭐라고 쓰여있어?”
“글은 읽지 못하겠어. 비문(祕文)이야.”
“이놈들, 정말 철두철미하네. 영패도 보여 주고, 밀마도 확인했으면서 공부에게 확인까지 해? 하!”
전서에 적힌 글은 비문이라서 해독할 수 없다. 하지만 이미 내용을 알고 있다. 진공부 영패를 가지고 방문한 이강(李綱)이 진짜인지 묻고 있다.
전보영 본영은 이미 고명산에서 사용하는 밀마까지 파악하고 있다.
전보영이 파악한 바에 의하면 고명산 산주가 진공부로 날린 전서구는 모두 여섯 마리다. 그러니 전서구를 낚아채려면 여섯 마리 전부를 잡아야 한다.
지금 다른 다섯 곳에서도 첩보청 관원이 자신들과 똑같이 전서구를 낚아챘을 것이다.
“그럼 이제 유시(酉時:오후 5~7시)까지 푹 쉬면 되나?”
관원이 말에서 내려 그늘로 가며 말했다.
전서구 여섯 마리를 받은 진공부는 답신을 적은 후, 시차를 두고 전서구를 날린다.
각 전서구가 반 각 시차를 두고 도착한다.
여섯 마리 모두가 도착하는데 세 시진이 걸린다.
여기에 안전장치를 또 하나 마련했다. 전서구는 시간에 따라서 각기 다른 방향에서 날아든다.
미시 전서구는 동북방(東北方)에서 날아와야 한다. 미시에 날아든 전서구가 동남방에서 날아들었다면, 일단 모든 계획을 보류한다. 절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자! 그럼 우린 할 일은 거의 끝났어. 푹 쉬자고.”
그들은 말을 한쪽에 묶어 놓고 길가에 털썩 주저앉았다.
* * *
고명산 산주는 전서구 여섯 마리를 받았다.
여섯 마리 모두 공부 허도기의 직인이 찍힌 친서가 들어 있었다.
글자는 딱 한 자다.
“여섯 마리 전서구에서 나온 글자를 모두 합하자 ‘심정불파뇌타(心正不怕雷打)’라는 글자가 되었다.”
마음이 바르면 우레가 쳐도 무섭지 않다는 속담이다. 마음이 바르면 벌을 받지 않는다는 뜻과 진실하면 두려운 것이 없다는 뜻도 포함된다.
사신의 신분이 확인되었다.
“공부가 보낸 놈이 맞네. 큭큭! 그럼 드디어 여기서 나가게 되는 건가? 이게 꿈이야, 실제야.”
산주는 손을 들어서 자신의 볼을 꼬집어 봤다.
아프다. 진실이다. 사실이다.
산주는 환하게 웃었다.
말 탄 사내가 고명산에 들어섰다는 보고를 받았을 때부터 잘하면 이 지겨운 땅을 벗어날 수 있다는 기쁨에 심장이 두근거렸는데 정말로 그런 일이 벌어졌다.
“사신은 어디 있어?”
“자고 있습니다.”
“자? 이 판국에?”
“굉장히 피곤한 모양입니다.”
“가서 깨워! 오늘 같은 날은 술 한잔해야지. 잠은 자서 뭐해! 하하하!”
“네!”
수하가 재빨리 달려갔다.
사실은 잔치를 벌일 정신도 없다. 술 마실 기회는 차후에도 얼마든지 있다.
먼저 토족 족장을 만나야 한다.
“족장한테서 연락이 왔어. 당장 데려오라고 해서 말이야.”
연락 같은 것은 하지 않았다. 수하를 보내서 소식을 전하기는 했지만, 대답을 들을 필요는 없었다. 멀리 떨어져 있는 것도 아니니 그냥 찾아가면 된다.
“밤이 깊었는데, 내일 보는 게 낫지 않나?”
“하하하! 팔자 좋은 소리 하고 있네. 이 산골짜기에 틀어박힌 게 십오 년이야. 아예 이가 갈린다고. 하루도 더 있고 싶지 않은 저주의 땅이지. 하하하!”
산주는 매우 기분이 좋아 보였다.
“그런데 자네 이름은 뭔가?”
“이강.”
“이강? 무공은 그저 그런 것 같은데? 아! 기분 나빠하지 말고. 기분 나빠지라고 한 말은 아냐.”
“아니, 괜찮아. 기분 나쁘지 않아. 사실이니까. 난 문(文) 쪽이라서. 무공은 간신히 호신 정도만 익혔지.”
“그렇군.”
산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직책은?”
“없지.”
이번에도 산주는 전혀 의심하지 않았다.
공부 옆에는 직책 없는 사람들이 많다. 원래부터 입관(入官)하지 않은 사람들이 대부분이고, 하원랑이나 사구정처럼 장군으로 있다가 무직이 된 사람들도 꽤 많다.
산주는 이강을 데리고 고명산 깊은 절곡 안으로 들어섰다.
쒜에에엑! 쒜엑! 쒜에에엑!
주위에서 찬 바람이 흐른다.
고명산에 들어섰을 때 산귀들이 흘린 소리를 들었다. 하지만 그 소리보다 훨씬 미약하고 은밀하다. 있는 듯 없는 듯, 귀신이 살살 속삭이는 소리처럼 들린다.
“토족인가?”
산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누군지 모르지만 참 안 됐어. 이 자들을 적으로 돌리면 저승에 들지도 못해.”
“저승도 못 간다고?”
“저승사자가 못 알아보거든. 워낙 갈기갈기 찢어 놔서.”
“아!”
이강은 산주의 말뜻을 이해했다.
토족이 무섭다는 것은 익히 알고 있다. 황상이 토족을 이곳에 가둬 놨다. 허도기가 토족을 숨겨 둔 채 마지막 한 수로 사용하려고 벼르고 있다.
토족을 적으로 돌리면 확실히 불행해진다.
하지만 그런 면에서는 아걸도 마찬가지다. 아걸을 적으로 돌려서 성한 사람이 없다.
서리가헌, 서리형개가 무너졌다.
철옹성처럼 단단하던 성검문도 체면이 말이 아니다. 소축십검도 태반이 무너졌다.
‘정말로 누가 불행한 거지? 토족과 아걸이 만나면 둘 중 하나는 전멸할 텐데.’
이강의 미간이 살며시 찌푸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