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일홀도-227화 (227/600)

#227화. 第四十六章 토족(土族) (2)

“크크크! 크크크크!”

“킥킥!”

사방에서 기괴한 웃음소리가 들렸다.

산주가 웃으면서 말했다.

“철천지원수라도 십오 년 동안 한솥밥을 먹다 보면 정이 드는 법이지. 토족, 이미 우리와는 한 가족이나 마찬가지야. 쟤들도 들떠 있기는 마찬가지고. 십오 년 만에 손님이 왔잖아.”

“풀어놓으면 탈출할 수도 있지 않나?”

이강이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죄수를 풀어놓고 감시한다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다. 더욱이 토족은 지극히 잔인하다. 또 한결같이 싸움 귀신들이라서 일당백(一當百)이라는 말에 아주 잘 어울린다.

이런 자들을 풀어놓고도 잠이 오나?

자칫하면 산주와 산귀들을 도륙하고, 자신들의 땅인 남만(南蠻)으로 도주할 수도 있는데.

“탈출? 하하하! 킥킥킥!”

산주가 어처구니없다는 듯 키득거리면서 웃었다.

“자넨 어떻게 공부님 곁에 있었다면서 나보다도 몰라? 문인이라서 그런가?”

“…….”

“공부님에게 패한 자들은 도주하지 못해. 도주하면 어떻게 된다는 것을 잘 아니까. 공부님을 쓰러트린 후가 아니면 이곳에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지. 봐. 저렇게 마음껏 쏘다니게 내버려 두어도 고명산 밖으로 나간 적이 한 번도 없어.”

“음!”

이강이 고개를 끄덕였다.

토족은 남만 밀림 속에서 살던 전사들이다.

중원과는 조위 장군이 남만 정벌을 할 때 처음 만났다. 그전까지는 남만인들도 아는 사람이 별로 없을 정도로 깊은 밀림에서 소수민족으로 살아왔다.

게다가 옷차림도 가죽을 기워 놓은 수준이니, 중원인은 토족을 야만인 중에서 야만인이라고 말한다.

이들에게는 식인 습관도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실제로 토족은 사람을 이빨로 물어뜯는다. 목, 가슴, 다리…… 이빨이 들어갈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깨문다.

식인 습관 때문에 사람을 물어뜯던 것은 아니다.

모든 게 싸움의 일환이다. 싸움을 꼭 칼과 검으로만 하라는 법은 없다. 가까이 달라붙으면 이발로 물어뜯고. 손톱으로 할퀴고, 손가락으로 눈을 찌르고, 불알도 걷어차고…… 적을 해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한다.

또 토족은 은신술의 대가다. 주위 환경에 굉장히 잘 적응한다. 변색(變色)에 능하다고 할까? 사막에 가면 모래가 되고, 밀림에 가면 나무가 된다.

아무것도 없는 숲인 줄 알고 무심히 들어섰다가 떼로 몰살당한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그러나, 당시 허도기가 예하 장군으로 참전했을 때, 토족에게는 저승사자가 되어 버렸다.

토족이 아무리 용맹해도 성검문주의 검을 막지는 못했다.

결국, 토족 전사는 생포되고, 가족은 남만에 남겨졌다. 인질로 감시를 받는다.

그때, 허도기의 무공을 분명히 봤다.

단 일 초도 버티지 못하고 펑펑 쓰러지던 전사들의 모습이 아직도 많은 사람의 가슴에 남아 있다.

그래서 섣불리 움직이지 않는다.

절대 금역인 고명산을 벗어난다거나 어떤 문제라도 일으키면 당장 남만이 토벌될 것이다.

공부는 남만인들이 무공 수련을 하지 못하게끔 금지했다.

어떠한 무력 사용도 안 된다. 무공 수련은 당연히 금지다. 남만에서 살아가려면 온갖 맹수와 싸워야 하는데, 무공 수련을 하지 못한다면 상당히 고달파진다,

지금 남만인들은 그런 고통 속에서 지내고 있다.

이들은 한시라도 빨리 남만으로 돌아가고 싶어 한다.

방법은 둘 중 하나, 황상이 사면령을 내려 주거나 아니면 허도기가 시킨 심부름을 하면 된다.

이강은 토족 족장 강희군(姜曦君)과 마주 앉았다.

강희군은 유령이다. 분명히 앞에 앉아서 음식을 먹는데, 그의 기척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눈을 살짝만 감아도 존재가 사라진다.

아예 사람이 없는 것 같다. 음식을 씹어 먹고 있는데, 소리가 전혀 나지 않는다. 분명히 웃고 있는데, 옆 사람하고 담소를 나누는 중인데, 아무 느낌도 느껴지지 않는다.

‘어떻게 이런 인간이 있을 수 있지?’

이강은 눈을 끔뻑거렸다.

그도 무인이라고 말할 수 있다. 산주나 토족 사람 눈에는 형편없이 보일지 모르지만, 그래도 검에 이름을 새길 정도는 수련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자에게는 검을 겨눌 수가 없다.

검을 뽑으면 베인다.

무인이 싸워 보지도 않고 기가 눌렸냐고 핀잔을 맞을 소리겠지만, 사실이 그렇다.

“조위 장군을 쳐 주셔야겠습니다.”

이강이 말했다.

“……조위 정도는 공부가 칠 수 있지 않나? 그런데도 우릴 시킨다는 것은 직접 공격하지 못할 이유가 있는 거겠지. 조위를 압도하지 못하고 있네. 맞지?”

“그렇습니다.”

“조위 그놈이 어딨는데?”

“단곡이라는 곳에 있습니다.”

이강이 침착하게 말했다.

전보영에서 무인을 보내지 않고 그를 보낸 것은 오직 침착함 때문이다.

마음이 들뜨면 의심을 산다.

어떤 질문, 어떤 의문이 쏟아져도 당연하다는 듯이 말할 줄 알아야 한다.

단곡에는 아걸이 있다. 조위 장군은 없다.

토족 족장이 떠올리고 있을 허도기는 고명산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을 까마득히 모르고 있다.

이강은 이런 모든 음모를 차분하게 말할 수 있다.

“단곡이 어디 있는지 알아?”

족장이 산주를 보며 물었다.

“어휴! 나도 여기 틀어박힌 지 십오 년이에요. 중원 지리는 어린애보다도 모르지.”

“제가 안내하겠습니다.”

이강이 족장을 보며 말했다.

족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즈음, 족장이 앉아 있는 넓은 공터에는 짐승 가죽옷을 입은 야만인들이 가득 들어찼다.

그 수가 무려 이백여 명에 이르렀다.

한결같이 맹수 냄새를 풀풀 풍기고 있는 야만인이 넓은 공지를 꽉 메웠다.

“조위라면 나도 원한이 많지. 후후! 좋아! 죽이러 가지. 단, 이번 일이 끝나면 우린 곧바로 남만으로 떠날 거야. 뒤통수를 치면…… 큭큭!”

족장이 키득거리면서 웃었다.

“여기.”

이강은 봉인된 밀서 한 장을 내밀었다.

진공부의 밀랍으로 봉인된 밀서다. 토족의 안위를 보장하는 내용이 적혀 있다.

족장이 토족 야만인들을 쳐다보며 말했다.

“내일 떠난다! 먹을 수 있는 것들은 다 먹어 치워! 술도 먹고 고기도 먹고 돼지도 먹고 다 먹어라!”

야만인들이 기괴한 웃음소리로 함성을 대신했다. 하지만 그 웃음소리가 거센 함성보다도 더 심장을 얼려 버린다.

이 자들을 내보내는 게 맞나? 이 자들을 내보내면 세상이 아비규환으로 변할 것 같은데. 아걸이 상대할 수 있을까? 아걸도 어렵지 않을까?

이강의 낯빛이 미미하게 어두워졌다.

이동을 어떻게 해야 할까?

상당히 난감한 문제다. 야만인들을 사람들 눈에 드러낼 수는 없다. 아니, 세상에 드러내지 못한다. 이들 모습이 드러나면 당장 허도기에게 보고가 된다.

‘은밀히 이동해야 하는데…….’

이들이 숨어서 이동하는 것에 응할까? 자신들이 뭘 잘못했냐고, 버젓이 관도로 걸어가자고 하면은 뭐라고 설득하지? 산에만 갇혀 있었으니 세상 구경을 하고 싶을 텐데.

고민이 많았다.

하지만 토족 족장이 그런 우려를 말끔히 씻어 주었다.

“말을 타고 전력 질주를 한다면 단곡까지 며칠이나 걸리지?”

“말을 탈 수 없습니다. 더욱이 토족 사람들이 전부 타려면 이백 필 넘는 말이 필요한데…….”

“대답만 해. 며칠이나 걸려?”

“팔구일 정도입니다.”

“팔구일. 단곡까지 팔 일 만에 간다. 거리를 여덟 개로 나눠. 오늘 어디까지 가면 돼?”

“……무양(舞陽)입니다.”

이강은 고민 끝에 대답했다.

말을 타고 죽을힘을 다해서 치달릴 경우, 간신히 무양까지는 도착할 수 있다. 조금 넉넉히 거리를 잡아도 될 듯한데, 그러면 팔 일이 넘어간다.

팔 일 안에 단곡에 도착하려면 최소한 무양까지는 가야 한다.

족장이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족장이 명령을 내렸다.

“오늘 시합을 한다. 여기서부터 무양까지 가는데, 길은 알아서 찾아와라. 제일 먼저 도착하는 놈에게 적양팔식(赤陽八式)을 전수할 테니까, 욕심나는 놈은 피를 토하는 한이 있어도 달려와.”

순간, 이강은 얼굴을 와락 일그러트렸다.

은밀히 이동해도 모자랄 판에 시합이라니. 이건 곤란하다. 이들의 움직임이 사람들 눈에 띄면 당장 허도기에게 보고가 들어간다. 아걸과 부딪치기 전에 차단당한다.

이강이 만류하려고 입술을 꿈쩍거릴 때, 족장이 다시 말했다.

“이동 방법은 은잠(隱潛)이다. 귀 밝은 놈은 벌써 들었겠지만, 여기서 무양까지는 말을 타고 진력 질주를 해야만 도착할 수 있는 먼 거리다.”

“크크큭!”

토족 전사들이 웃었다.

이강은 안도하기도 했고, 의아스럽기도 했다.

은잠으로 이동하라는 말은 은잠술을 사용하라는 거다. 은신술을 펼쳐서 움직인다. 세상으로부터 모습을 완전히 감춘 채 비밀스럽게 움직인다.

무양까지는 거리가 상당하다. 정말 멀다. 은신술까지 펼치면서 이동할 수 있을까?

그런데 토족은 웃는다. 어느 한 사람 곤란해하지 않는다.

“가라!”

명령이 떨어지기 무섭게, 토족은 사방으로 흩어졌다.

족장이 말한 것처럼, 느린 자는 대여섯 걸음, 빠른 자는 두어 걸음 만에 모습을 감춰 버렸다.

이백 명이 갑자기 사라졌다.

* * *

“여기. 이게 우리 마지막인 것 같습니다.”

산주가 이두 마차를 내오며 말했다.

마차는 꽤 날렵하다. 말 두 필이 끌지만 나는 듯이 달릴 수 있을 것 같다.

“진공부로 가나?”

“그래야죠.”

“후후후! 그럼 살아서는 이제 더 못 보겠군. 덕분에 잘 쉬었어.”

족장이 산주를 쳐다보더니 이내 마차 안으로 들어갔다.

“끼럇! 끼라앗!”

이강은 말고삐를 힘차게 잡아당겼다.

무양까지는 상당히 먼 거리다. 토족 전사들이 어떤 식으로 달려올지는 모르겠지만, 이두 마차로 달려가려면 숨 한 모금도 허투루 쓰면 안 된다.

족장은 마차 안에서 느긋하게 음식을 먹었다.

식사 때가 되어서 먹는 게 아니다. 온종일 군것질거리를 입에 물고 있다. 마치 조상 중에 굶어 죽은 귀신이라도 있는 듯, 과자라도 있어야 잔소리를 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강은 아무 소리도 하지 못했다.

족장의 눈빛이 사냥개처럼 번들거린다. 사람 눈인데, 유막(油幕)이 낀 것처럼 기름져 보인다. 그러면서 가끔 살기 비슷한 안광이 퍼뜩 쏘아진다.

이강은 앞만 보고 마차를 몰았다.

한참 마차를 몰다 보면 마차에 사람이 있는지 의심스러울 때가 있다. 다른 건 고사하고 어떻게 과자를 씹어 먹으면서 소리를 안 낼 수가 있나.

‘희한해.’

당면을 기름에 튀기면 바삭바삭한 과자가 된다.

큼지막하게 부풀어 오른 당면 과자를 입에 넣으면 아작! 소리와 함께 부서진다.

한데 족장은 전혀 소리를 내지 않고 먹는다.

과자를 입에 넣고 슬슬 침으로 녹여서 먹는 것일까?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소리가 나지 않을 리 있나.

족장은 소리뿐만이 아니라 기척도 숨긴다.

모든 것을 숨기는 것이 일상생활이 되었다. 검을 뽑을 때도, 검초를 전개할 때도 소리가 나지 않을 것 같다. 지금도 그런 공부를 하는 게 아닐까?

“끼럇!”

이강은 말채찍을 더 힘차게 후려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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