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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홀도-229화 (229/600)

#229화. 第四十六章 토족(土族) (4)

강포봉(姜鮑鋒)은 검을 고쳐 잡았다.

‘찜찜해.’

주위에는 아무도 없다. 쥐새끼 한 마리 움직이지 않는다. 바람도 불지 않는다. 하지만 느낌이라는 게 있다.

공기가 후텁지근하다.

뭔가 꼭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날 것 같은 밤이다.

이런 날, 무슨 일인가 터지면 대부분 피를 보면서 끝난다. 주위가 대단히 적막하니 별일은 없을 것 같은데, 그래도 만일을 대비해서 경계는 철저히 서야겠다.

‘내가 요즘 신경이 예민해졌나?’

강포봉은 미간을 찌푸렸다.

누군가가 단곡에 들어서면 당장 두 군데서 연락을 취해 온다.

전보영 사람들이 전서구, 인편, 봉화 등등 온갖 신호체계를 이용해서 소식을 알려 준다.

취화원도 움직인다. 치밀하게 배치한 간자들이 이상한 자를 선별해서 말해 준다. 그리고 실제로 취화원 살수들이 미행까지 하면서 계속 연락을 취한다.

그들에게서 아무 연락도 없다.

적어도 전방 이십 리까지는 누구도 침입한 적이 없다.

‘아무래도 기가 허해졌어. 별일도 없는데 느낌이 안 좋은 걸 보면…….’

그때, 옆에서 매우 기분 나쁜 느낌이 들었다. 꼭 사나운 맹수가 숨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츄웃!

강포봉은 즉시 옆으로 이동하면서 우측 숲을 향해 검을 겨눴다.

하지만 아무도 없다. 분명히 뭔가가 있다는 느낌이 들었는데, 다시 보니 새까만 어둠뿐이다.

강포봉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건 매우 이상하다. 단순히 신경이 예민해져서 이상한 느낌을 받는 게 아니다. 적이라고 생각할 만한 것은 전혀 없지만, 그래도 살펴봐야 한다.

‘이런 느낌이 괜히 일어날 리 없어.’

츠읏!

진기를 전신에 쫙 유포시켰다. 감각을 최대한으로 끌어냈다. 검을 쥔 손에도 진기가 가득 운집되었다.

무슨 일이 있으면 낚아챌 것이고 아무런 일도 없으면 더 바랄 게 없다.

스읏!

그가 어둠으로 들어가려고 했다. 그때,

쉣!

갑자기 날카로운 검기가 귓전을 간질였다.

‘역시!’

그는 즉시 검을 신형을 반 바퀴 회전시키며, 검을 쏘아 냈다.

주위에 적이 있다. 전보영이나 취화원 살수들이 잡아채지 못한 강적이다.

슛! 슛!

상대방의 검과 강포봉의 검이 서로 스치며 지나갔다.

이제는 확실히 적이 있다는 것을 안다. 무공이 결코 자신에게 뒤지지 않는다는 것도 파악했다.

슈웃!

좌측 방에서 검이 불쑥 튀어나왔다.

‘두 명!’

현재까지 파악된 적만 둘이다. 이들 외에 또 몇 명이 있을지 알지 못한다.

강포봉은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히고 검을 휘둘렀다.

아걸이 그를 찾아오게끔 했던 대라검법(大羅劍法)이 촘촘히 풀려나갔다.

대라검법은 아걸을 만나게 해 주었고, 또 그를 이십 인의 은거 무인 중 한 명으로 존재하게 해 주었다. 대라검법의 연원은 차지하고라도 그만큼 절정 검법이다.

쒜에에엑! 촤촤촤촥!

그물처럼 촘촘히 펼쳐진 검초가 상대를 휘감았다.

퍼억! 퍽퍽퍽! 퍼어억!

상대방은 즉시 배가 갈라지고, 다리가 찢어졌다. 이어서 휘돌린 검초에 가슴도 베였다.

상대는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쓰러졌다.

스읏!

강포봉을 공격하던 자들이 즉시 물러섰다.

고요하다. 공격해 올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강포봉은 죽은 자에게 가까이 다가가서 얼굴을 들여다봤다.

‘어떤 놈들이지?’

그때 검을 맞고 피를 철철 흘리면서 쓰러져 있던 사내가 와락 달려들어서 그의 다리를 꽉 껴안았다.

강포봉은 깜짝 놀라서 검으로 사내를 내리찍었다.

퍼억!

검이 뒷머리를 뚫고 들어갔다.

그런데도 상대방은 떨어지지 않는다. 이미 숨이 끊어졌을 텐데, 두 다리를 꼭 껴안고 있다.

“이익!”

강포봉은 그를 떼어 내기 위해서 다리에 힘을 주었다.

하지만 떨어지지 않는다. 마치 아교로 찰싹 붙여놓은 듯 단단히 고정되었다.

쒜에에엑! 쒜엑!

역시 예상대로 공격이 시작되었다.

검이 삼 방에서 날아왔다. 적어도 세 명 이상이 합공을 펼친다. 완벽한 합격술이다.

강포봉에 다리의 자유를 잃은 체 신형만 휘돌려서 공격을 막았다.

까앙!

검 한 자루를 쳐 냈다. 아니다. 그는 분명히 밀어내려고 했는데, 상대방이 검을 바싹 붙여 왔다. 검을 검을 맞대고 검력을 겨룬다. 내력으로 짓누른다.

‘이런!’

그는 실수를 깨달았지만 이미 늦었다.

퍼억!

검이 갈비뼈를 뚫고 들어와서 심장을 찔렀다.

“아아악!”

강포봉은 최대한 크게 비명을 내질렀다.

적이 습격했다는 사실을 알려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동료들까지 자신처럼 죽는다.

푸욱! 푹! 푹!

검이 사정없이 떨어졌다.

“으음!”

강포봉은 신음을 흘렸다.

그때, 공격자 중의 한 명이 강포봉에게 다가와서 귓속말을 하려는 듯 얼굴을 바싹 붙였다. 그러더니 느닷없이 목덜미를 꽉 깨물었다.

상대의 이빨이 목동맥을 뚫고 들어왔다.

강포봉은 목살이 후드득 찢겨 나가는 것을 느끼면서 숨을 떨궜다.

토족 이십 명이 은거 무인 세 명을 죽이는 데 두 시진이 걸렸다.

시간이 꽤 오래 걸렸다.

비밀이 유지된 것도 아니다. 은거 무인들은 죽으면서 최대한 비명을 크게 질렀다. 그러니 이미 남은 자들은 즉각 병기를 들고 싸울 태세를 갖춘다.

그래도 토족은 이번 싸움에서 잘못된 점을 찾아내지 못했다.

원래 토족 싸움이 이렇다. 최대한 가까이 접근해서 암살을 시도한다.

비밀 유지는 할 수 있으면 좋고, 지금처럼 소리가 흘러나와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기습이 발각되었으면 그런대로 싸우면 되는 것이다.

세 명을 죽이기까지 두 시진이 걸렸다고 하지만, 사실 두 시진은 접근하는 시간이다.

공격 순간은 매우 짧다.

싸움이 벌어지고 승패가 결정되기까지는 한 호흡에서 두 호흡 정도밖에 걸리지 않았다.

토족 무인도 네 명이 목숨을 잃었다. 목숨 세 개를 거두면서 이쪽도 네 개를 내놓았다.

토족은 이것을 손해로 보지 않는다.

전쟁에는 희생자가 나온다. 한 명도 죽지 않고 오로지 죽이기만 하는 전쟁은 없다.

토족에게 이번 싸움은 일반적인 싸움이 아니라 전쟁이다.

자신들의 병력이 상대보다 월등히 많다. 그러니 일대일로 목숨을 버리면 이것처럼 남는 장사가 없다.

족장이 앞으로 나아가라고 손을 휘둘렀다.

“킥킥!”

“크크크!”

토족들이 누런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그리고 일제히 숲을 향해 쏟아져 들어갔다.

아아악!

처절한 비명이 야공을 찢으며 울렸다.

“웃!”

“기습!”

무인들은 즉시 병기를 잡고 일어섰다.

“중간에 아무런 언질도 없었는데?”

“평범한 놈들이 달려들 리 없지.”

은거 무인들은 느닷없이 울린 비명으로 전초가 무너졌다는 사실을 알았다.

비명은 세 번 울렸다.

가장 앞쪽에서 경계를 서던 세 명이 한순간에 쓰러졌다.

그들의 무공은 절대 가볍지 않다. 그들 역시 이십 은거 무인 중 한 명이다. 이십 명 중에서는 누가 우월하다고 말할 수 없는, 싸워봐야 승패를 가를 수 있는 강자다.

그들이 죽었다는 것은 자신들 역시 죽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은거 무인들은 편히 쉬고 있었다. 누구는 하늘을 쳐다보고, 누구는 운공을 하고, 잠이 많은 사람은 초저녁부터 깊은 잠에 빠져서 단잠을 즐겼다.

그들이 일제히 일어서 긴장을 끌어올렸다.

“아걸에게 말해야지?”

아니, 굳이 말해 주러 달려갈 필요가 없었다. 아걸이 비명을 듣고 모습을 드러냈다.

“저놈들이 토족이야?”

나통이 물었다.

아걸은 고개를 끄덕였다.

조위 장군은 다섯 가지 부탁을 할 때, 토족을 끌어내겠다고 사전 움직임을 말해 주었다.

이들을 물리쳐 달라는 것이 네 번째 부탁이다.

토족은 조위 장군이 남만 정벌을 할 때 사로잡은 포로들이다. 중원에 끌고 와서는 고명산에 가둬 놓았다. 황상의 명령이 없으면 한 발짝도 나오면 안 된다.

하지만 이들은 이미 허도기의 수하가 되었다.

엄밀히 말해서 명령을 받는 관계는 아니다. 부탁 정도 하는 관계라고 봐야 한다.

토족의 부탁은 단 하나, 남만으로 돌아가겠다는 것이다.

황상으로부터 명령을 받아내든, 자신들이 탈주한 후에 황상을 다독이든 그건 허도기가 할 몫이다. 어떻게든 자신들을 풀어 달라는 것이 요구 조건이다.

이만한 조건을 받아들인 만큼 허도기도 이들을 큰 곳에 써야 한다.

그래서 남겨 두고 있다. 결정적일 때, 이제는 나라를 뒤집어도 되겠다 싶을 때 쓸 생각이었다.

전보영은 이번 기회에 허도기의 가장 큰 힘 중 하나를 제거할 심산이다.

사실, 허도기라면 아걸을 죽인다거나 조위 장군을 죽이는 일에 토족을 쓰지는 않는다. 십오 년이나 묵혀온 힘인데 겨우 이 정도 일에 쓰겠나.

또 조위 장군도 아걸이 아니라면 이런 방법을 쓰지 못한다.

토족은 어떤 상대든 무조건 짓밟고 지나갈 만한 힘이 있다. 이들을 풀어놓는다는 것은 호랑이 무리를 민가에 쏟아내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누군가가 절대적인 힘으로 이들을 쳐 주어야 한다.

조위 장군은 아걸을 믿고 이들을 끌어냈다.

어쩌면 조위 장군의 도박이나 승부수일지도 모른다. 그만큼 위험천만한 계략이다.

네 번째 부탁은 아걸이 아니면 제시할 수도 없었다.

“음! 저자들에 대해서 말해 줬잖아요. 가장 경계해야 할 점이 난폭함. 두 번째가 은신.”

아아악! 크아아악!

아걸이 말하는 동안에도 비명이 계속 터졌다.

전초 세 명에 이어서 이초에 섰던 네 명도 목숨을 잃었다.

은거 무인 이십 명 중 일곱 명이 물 한 모금 마실 동안에 절명해 버렸다.

이초에 있던 무인은 전초와는 사정이 다르다.

그들은 기습을 눈치챘다. 비명을 들었으니 경계심을 있는 대로 끌어 올렸을 것이다.

그런데도 네 명이 순식간에 무너졌다.

소축십검과도 손속을 맞댈 수 있다고 자부하던 무인들이 힘없이 죽었다.

전초는 은신술에 당했지만, 이초는 난폭함에 무너졌다.

이판사판, 그래! 죽여라! 나도 한칼만 먹이자! 어서 목을 쳐! 난 다리 하나만 자를게. 손해가 아니잖아! 치란 말이야, 새끼야! 어서 쳐! 못 쳐?

생명을 버리고 악착같이 달려드는 악귀.

“방패진(防牌陣)을 펼쳐요.”

아걸이 말했다.

“음!”

은거 무인들이 침음했다.

그들은 아걸이 방패진을 설명할 때, 웃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

지금 뭐라고 하는 거야? 지금 누구에게 한낱 군졸처럼 우르르 뭉쳐서 싸울 생각도 하지 말고 수비만 하라는 거야? 이런 말을 할 때는 자존심도 생각해 줘야 하지 않나?

지금은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없다.

일곱 명, 삼분지 일이 한순간에 죽었다. 특히 이초 무인 네 명도 순식간에 쓰러졌다는 점이 중요하다.

아걸 말대로 방패진을 펼치지 않고 흩어져 있으면 당한다.

“뭐해? 움직여!”

손승이 월도를 움켜쥐고 한쪽 구석에 섰다.

그러나 다른 무인들도 즉시 움직여서 어깨를 나란히 하고 섰다.

원래 그들이 머물던 곳은 나무가 밀집한 숲이었다. 하지만 아걸이 벌목해서 평지로 만들었다.

지금은 넓은 공터다.

사오십 명 정도는 한데 뒤엉켜서 뒹굴어도 넉넉할 정도로 넓다. 그래서 저녁을 함께 먹는 장소로 활용한다.

이제야 아걸이 왜 이런 공터를 만들었는지 이해된다.

저들이 은신술의 강점을 지녔으니 이쪽은 지리(地理)를 움켜쥐어야 한다. 숨을 수 있는 공간을 최대한 배제해서 움직이기 힘들게 만든다.

넓은 공터 한복판으로 적을 끌어들인다.

무공 대 무공으로 싸운다면 이쪽도 결코 질 이유가 없다.

저들의 난폭함을 역으로 이용하면 오히려 더 효과적으로 싸울 수도 있다. 어차피 저들은 목숨을 내놓고 덤빌 것이니, 그 점을 잘 활용해야 한다.

토족은 은거 무인들이 상상하지도 못했던 전혀 다른 인간들이다.

스읏! 슷! 슷!

토족 야만인들이 한 명, 두 명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이거 조 장군한테 너무 큰 선물을 준 거 아닌가?”

손승이 야만인들을 쳐다보며 말했다.

“대가를 받을 겁니다.”

아걸이 차분하게 말했다.

“조위 장군에 내놓는 대가는 지금보다 훨씬 더 클 거예요. 버틸 수 있겠습니까?”

“버텨 봐야지.”

“그럼.”

아걸이 은거 무인 열세 명에게 눈인사하고는 뒤로 물러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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