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화. 第四十六章 토족(土族) (5)
허도기는 보고를 받았다.
“이백 명? 전보영에 이렇게 고수가 많았나? 이백 명이나 내보낼 수 있는 거야?”
허도기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초가평이 ‘고수’라고 말했다면 적어도 초가평 눈에는 자신과 필적할 수 있는 자들로 보였다는 뜻이다. 소축십검과 검을 겨를 수 있는 자들이 이백 명이다.
물론 소축십검에게는 상대가 되지 않을 것이다. 만약, 정말로 상대할 수 있다면 전보영이야말로 천하제일 문파다. 그만한 자들을 키워 낸 자가 천하제일이다.
‘소축십검’과 ‘싸울 수 있는 자’라는 말속에는 아주 큰 차이가 존재한다.
절대자와 절대자에 근접한 자만큼의 차이다.
어쨌든 전보영이 그 정도의 고수가 이백 명이나 있었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다.
“……음!”
허도기는 자신도 모르게 신음을 흘렸다.
조위 장군은 ‘절대자에 근접한 자’인 왜살을 내보냈다. 그리고 그가 죽자 막강한 군대를 끄집어냈다. 이들 이백 명이라면 아걸이 아니라 진공부를 공격했어도 이상하지 않다.
허도기는 눈을 감고 전보영 어느 조직에서 이런 자들을 키웠는지 생각해 봤다.
허도기가 가장 꺼리는 적은 황실의 비밀고수인 호황위다.
그 외에는 꺼리는 것이 없다. 호황위를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에 아직 움직이지 않고 있다.
옛날, 일홀문을 무시하고 형을 공격했다가 실패했다.
그 후에 소축에 은거하면서 두 번 다시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형에게 일홀문주가 있었다면 황궁에는 호황위가 있다. 그들이 누군지, 무공이 어느 정도인지 명확하게 파악해야 한다. 하니, 황궁을 전복하기 전에 호황위부터 제거해야 한다.
어쩌면 전보영에서 툭 튀어나온 고수들을 호황위가 지도한 것은 아닐까?
아무리 생각해도 전보영에서는 초가평이 보고한 자들을 키워 낼 만한 곳이 없다.
“이번 판을 만들어 내길 잘했어. 천만다행이지 않나. 일을 벌이지 않았다면 앞으로도 계속 이런 조직이 있다는 걸 모르고 있을 뻔했으니까.”
허도기는 고명산 살귀들을 떠올렸다.
초가평이 말한 고수들을 상대하려면 고명산 살귀를 불러야 한다.
토족 전사들이라면 단곡으로 달려간 자들과 좋은 승부를 겨룰 수 있을 것이다.
“차대차(車對車). 든든한 차 하나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조위도 차를 가지고 있었네. 후후! 그러면 상에 이어서 차까지 공짜로 먹는 건데. 정말 미안하게 됐군. 하하하!”
허도기는 기분 좋게 웃었다.
조위 장군이 던진 상에 이어서 차 하나를 공짜로 먹는다.
아걸과 은거 무인 이십 명은 전보영이 보낸 차를 단단히 움켜쥘 것이다.
이 싸움에서 살아남는 자는 아걸이다.
허도기는 일홀도를 안다. 더욱이 저들은 초가평에게도 미치지 못한다. 일부 소축십검에 해당하는 자들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아걸 상대는 되지 않는다.
“어디 그래 싸워 봐라. 하하하!”
허도기는 이 싸움이 어떻게 끝을 맺을지 자못 궁금했다.
* * *
“끄응!”
왜살은 몸을 일으키려고 안간힘을 다했다.
“아직 무리입니다.”
도취가 살며시 다가앉으며 어깨를 짓눌러서 다시 눕혔다.
“밖이 시끄러운데.”
“저들에게 맡기시죠.”
왜살은 눈을 감고 진기를 두 귀에 집중시켰다.
소리를 듣는다.
적은 공격해 오는 동안 아주 많은 정보를 넘겨준다.
달려오는 발걸음 소리가 있고, 거칠게 내뱉는 호흡 소리도 있다. 검을 휘두르는 파공음도 들을 수 있고, 몸에 붙은 장식품이 덜컹거리는 소리도 듣는다.
전쟁터에서 이런 소리를 구분해서 들을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천 명, 이천 명이 우르르 움직이면 모든 소리가 ‘굉음’이라는 한 마디에 묻혀 버린다.
하지만 왜살은 그 속에서도 소리를 듣는다.
왜살이 소리를 듣고 상대방을 파악하는 능력은 매우 정확하다. 그래서 전투가 벌어지기 전에는 늘 조위 장군에게 최종적으로 조언을 해 주곤 했다.
“기세는 드세 보여도, 지쳐 있습니다.”
“혈기가 매우 왕성합니다. 격돌이 일어나면 거세게 부딪칠 겁니다. 예기를 꺾으시는 게…….”
조위 장군은 왜살의 판단을 전적으로 믿었다.
상대방이 혈기 왕성하면 첫 접전은 저들에게 양보했다. 대신 유인계나 화공, 매복전 등등을 활용했다.
왜살은 그런 능력으로 단곡에 들어선 자들의 움직임을 읽는다
기분 나쁠 정도로 조용하다. 그러다가 느닷없이 칼바람이 일어난다. 공격이 시작될 때는 적어도 수십 자루는 넘는 검들이 일제히 검풍을 일으킨다.
저들 모두 발걸음 소리를 죽일 수 있을 만큼 신법이 뛰어나다.
파공음도 섬뜩할 정도로 예리하다.
‘강적! 그것도 한두 명이 아니다!’
이쪽에도 뛰어난 고수가 스무 명 넘게 있다. 하지만 저들은 숫자가 너무 많다. 무공이 비슷하다면 그다음은 숫자 싸움인데, 저들이 압도적으로 우세하다.
왜살은 눈을 떴다.
“아무래도 내가…….”
“이런 말씀까지는 드리고 싶지 않은데, 지금 나가셔 봤자 개죽음밖에 더 당합니까? 저도 대충 사람 보는 눈이 있는데, 지금 몸으로는 일격도 막아내지 못해요. 그냥 누워 계시죠.”
의원 도취가 매정하게 말했다.
“으음! 그럼 시야가 트인 곳으로 옮겨 주겠나? 구경이라도 해야겠어.”
“원래 견물생심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눈에 보이면 갖고 싶은 게 사람이죠. 이쪽이 어려운 걸 보면 아무리 힘들어도 뛰쳐나가시고 싶으실 겁니다. 그냥 이대로 있으시죠.”
“자네 무인인가?”
“그런 것 같습니까?”
도취가 싱긋 웃었다.
무인이 아니다. 왜살은 도취에게서 어떤 예기도 읽어 내지 못했다. 아침마다 운공은 하지만 일반인이 건강을 위해서 펼치는 운기토납술(運氣吐納術)일 뿐이다.
지금 바깥 상황은 매우 좋지 않다. 하지만 어려운 상황과는 달리 사위가 너무 조용해서 정확하게 지금 어떤 상황인지 알기가 매우 곤란하다.
도취는 왜살이 느낀 것만큼 정확하게 짐작한다.
“저는 바깥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릅니다. 다만,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것은 압니다. 나가서 싸울 수도 없고, 도주할 수도 없고. 그렇다면 여기서 결과를 기다려야 하는데, 그럴 바에는 마음 편히 있자는 거죠.”
“……그렇군.”
왜살은 눈을 감았다.
어떤 말을 해도 이 자는 자신을 놓아주지 않을 것이다.
아걸이나 은거 무인들도 왜살에게 어떻게 해 달라고 요구해 오지 않았다. 하지만 움직이지 말라는 소리나 마찬가지다.
왜살은 눈을 감고 두 귀에 모든 진기를 모았다. 그리고 계속 소리를 분석했다.
비명이 터졌다. 은거 무인의 비명이다. 그 속에서 또 다른 움직임도 들렸다.
퍽! 퍽! 퍽퍽퍽!
장작 패는 듯한 소리가 울린다.
“음!”
왜살은 자신도 모르게 침음했다.
장작 패는 소리는 점점 커진다. 반면에 은거 무인의 비명은 점점 잦아들다가 완전히 그쳤다.
퍽퍽퍽! 퍽퍽!
소리가 뚝 그친 후에도 칼질을 계속 이어졌다.
‘어떤 놈들이지?’
저들은 매우 잔인하다. 대체로 승부가 끝났다고 여겨지면 병기를 거두는데, 저들은 끝까지 죽인다. 아니, 숨이 끊어진 후에는 난도질하고 있다.
왜살의 표정을 보고, 그의 마음을 짐작한 듯 도취가 말했다.
“우리가 할 건 아무것도 없어요. 그냥 푹 쉬세요.”
* * *
‘살수 문파는 나처럼 잘 아는 사람도 없지. 후후!’
아걸은 피식 웃으면서 숲으로 들어섰다.
어렸을 때부터 적랑대의 움직임을 보면서 자라 왔다. 어떻게 하면 몸을 숨길 수 있고, 어떻게 하면 기척을 흘리지 않을 수 있는지 잘 안다.
‘몸을 숨기려면 숨길만 한 장소가 있어야 해.’
장소만 있다고 끝난 게 아니다. 몸을 숨길 수 있는 도구도 있어야 한다. 아무런 준비 없이 환한 대낮에 몸을 숨긴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이것이 적랑대 움직임이다.
취화원 움직임은 조금 다르다.
취화원은 도구를 사용하지 않는다. 오로지 빠름과 지형지물, 그리고 기공으로 승부한다.
지둔술(地遁術)을 펼쳐서 땅속으로 숨는다.
참목공(塹木功)을 사용해서 텅 빈 고목 속으로 몸을 밀어 넣는다.
지휴가사공(止休假死功)도 있다. 귀식대법(龜息大法)과 흡사한데, 의식을 자유롭게 풀어놓아서 기습에 대비할 수 있다는 점에서 한층 발전된 기공이다.
취화원은 이런 기공을 운영해서 은신술을 펼친다.
아걸은 토족이 어떤 식으로 움직이는지, 숨는지 이미 파악했다.
이들은 도구, 위장포를 사용한다.
위장포 같은 도구는 대체로 하수들이 주로 사용한다. 은신하기 쉽고, 효과가 좋아서 상승 절기를 펼친 것만큼 상대방을 잘 속일 수 있다.
중수(中手)가 되면 도구를 버리고 절공으로 승부를 건다.
절공으로 은신한 자를 찾아내려면 두 배, 세 배 강한 안목이 필요하다.
언제 어디서든 사용할 수 있고, 효과가 좋다.
상수가 되면 선택의 자유를 얻는다. 계속 절공을 사용할 수도 있고, 도구를 다시 들기도 한다. 하지만 이때 사용하는 도구는 하수 때와는 질적으로 다르다. 절공까지 가미해서 사용하기 때문에 찾아낼 수 있는 자가 손꼽는다.
토족은 맨 마지막 단계다.
이들은 시각으로 찾아낼 수 없다. 천안통(天眼通)처럼 밝은 눈을 지녔어도 한참을 쳐다봐야 한다.
하지만 아걸은 결정적인 약점을 찾아냈다.
사실, 이 약점은 아걸이 찾아낸 것이 아니다. 원래부터 존재했고, 은신술을 펼치는 사람들도 알고 있다.
냄새!
적랑대는 맹수가 들끓는 산에서 위장포를 사용할 때는 체취를 제거하는 약물을 몸에 뿌린다. 몸에서 냄새가 난다는 사실을 알고 있어서 대처한다.
하지만 인간에게 사용할 때는 약물을 쓰지 않는다.
인간은 짐승처럼 후각이 예민하지 않다. 짐승은 알아도 인간은 알지 못한다.
- 인간 냄새를 달리 말하면 채취(體臭)라고 하는데, 사실 이 말은 조금 구분해야 해. 채취라고 하면 흔히 암내[腋臭]를 말하거든. 이 액취가 심한 사람이 있잖아? 같이 있으면 냄새가 독해서 두통까지 생기지. 하지만 체취 속에는 암내만 있는 게 아니야. 입 냄새, 발 냄새도 빼놓을 수 없고, 머리에서 나는 냄새도 지독해. 살내도 있어. 살에서 나는 냄새. 남자가 맡는 여자 냄새는 주로 이 살내야.
아걸은 예민한 후각을 지녔다.
몰안을 수련하면서 후각까지 연마했다.
몰안과 마찬가지로 모든 감각을 지워 버린다. 어떤 감각도 일으키지 않는다. 그리고 집중된 의식을 이끌어서 코로 집중시킨다. 후각만 일으킨다.
세상 모든 냄새를 맡는다.
아걸은 이것에 적당한 명칭을 붙이지 않았다.
굳이 말하자면 몰안처럼 몰후(沒嗅)라고 해야 하는데, 어쩐지 어색하다.
또 사용할 일도 없었다.
몰안은 도신일체를 이끈다. 즉각 공격에 활용된다. 몰후는?
어렸을 때는 장난삼아서 심심풀이로 몇 번 해 본 적이 있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일홀도를 수련하기 시작하면서부터는 들춰 볼 엄두도 내지 못했다.
그럴 만한 시간도 없었다. 쓸데없는 행동에 단 한 순간도 허비하기 싫었다.
저벅! 저벅!
아걸은 숲을 걸어 들어갔다.
저들이 보인다. 아니, 냄새가 풍겨 온다.
눈에 보이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하지만 짙은 땀 냄새가 솔솔 풍겨 온다.
사위는 칠흑같이 어둡다.
수림이 울창해서 별빛도 달빛도 스며들지 않는다.
스읏! 휘리리릭! 퍼억!
반철도를 휘둘러서 나무를 찍었다.
순간, 나무가 물컹거리면서 붉은 핏물을 쫙 뿜어냈다.
“크윽!”
뒤늦게 비명이 새어 나왔다.
살아서 내뱉는 비명이 아니다. 의식은 이미 저승으로 넘어간 후이다. 목구멍이 살아서 저절로 소리를 흘린다.
토족 전사 한 명이 풀썩 쓰러졌다.
그는 허리가 반쯤 잘려 나갔다. 순간,
스읏!
아걸은 나무에 몸을 붙였다.
힘들게 싸울 필요가 없다. 아걸에게 토족 방식은 아주 쉽게 싸우는 방법이기도 하다.
‘날 찾아봐. 찾지 못하면 죽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