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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홀도-232화 (232/600)

#232화. 第四十七章 아방(我方: 내 편) (2)

아걸은 토족 전사들이 말발굽 형태로 둘러서 있는 진형을 보고도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반철도에 묻은 피가 땅으로 뚝뚝 떨어져 내렸다.

그는 무려 백삼십여 명을 죽였는데도 태연하다. 일말의 흔들림도 없어 보인다.

이미 살인을 안다.

“이런 싸움에 능숙한 놈이군.”

족장도 태연하게 말했다.

“첫 싸움은 내가 한다.”

“…….”

모두 침묵했다. 이번에는 기괴한 웃음도 흘리지 않았다. 조금 전처럼 침통한 표정도 아니다. 모두 언제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이 담담하다.

족장이 말했다.

“전멸은 있어도!”

“후퇴는 없다!”

전사들이 우렁차게 뒷말을 이었다.

족장은 아걸에게 걸어갔다.

“아걸이라고?”

“족장. 당신들에게는 유감없어.”

“유감없다면서 잘만 죽이는군.”

“그쪽이 먼저 죽이지 않았나? 먼저 칼을 써 놓고는 왜 이래? 설마 죽이는 사람 따로 있고, 죽는 사람 따로 있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그런가? 내가 적반하장을 했나? 우리 전사들이 너무 싱겁게 죽기에 나도 모르게 나온 말이야. 이거 꼭 우리가 피해자가 된 기분이라서 찜찜해.”

“토족은 꽤 강하다고 들었는데, 조금 더 치열하게 싸워 줄 수는 없나? 너무 싱겁군.”

“들었냐!”

족장이 소리쳤다.

“넷!”

토족이 일제히 응답했다.

“우리는 굉장히 사나운 맹수들이야. 그건 누구도 부인하지 못해. 하지만 맹수를 잡아먹는 것 또한 맹수지. 우리보다 더 강한 맹수가 나오면 어쩔 수 없어. 넌 단신이지만 능히 우릴 잡을 만한 힘이 있다. 존경한다.”

아걸이 고개를 끄덕였다.

서로 생면부지다. 오늘 처음 봤다. 하지만 보자마자 서로 강하다는 것을 느꼈다.

아걸은 족장을 만나는 순간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자르르 저려 울리는 전율을 맛봤다. 겁을 먹을 정도는 아니지만 강한 맹수를 만났을 때 일어나는 흥분이 치솟는다.

토족 족장은 진정한 강자다.

“하나만 묻지. 우리 다음이 허도기냐?”

“모르지.”

“우릴 여기까지 끌고 온 놈 말로는 겨우 팔다리 하나 자르는 정도라고 하던데.”

“난 머리 쓰는 사람이 아니라서 몰라.”

족장이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천천히 검을 들어 올렸다.

“우리 토족에게는 적양팔식이라는 검법이 있어. 그것을 펼치려고 해.”

“나는 그냥 내 칼.”

“일홀도라고 들었는데?”

“일홀도는 도법이 아니야. 일홀문이 추구하는 칼은 모두 일홀도라고 부르지. 나도 내 칼에 자신이 붙으면 마땅한 이름을 붙여 줄 텐데, 아직은 자신이 없다.”

“후후! 자신 없는 칼로 적양팔식과 싸우겠다? 이거 자존심이 무척 상하는데?”

족장이 피식 웃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실제로 자존심이 상하지는 않았다. 아니, 일홀도가 어떤 칼인지 짐작했고, 아걸을 말을 듣기 전보다 더 안색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이름이라. 후후후! 사실 우리 무공도 검법이 아니지. 칼이야. 적양팔식은 허도기가 붙인 이름이고, 우리 전통 말로는 ‘다오 푼 라야’ 뜨거운 불길을 뿜어내는 칼이라고 해. 다오 푼 라야. 오랜만에 입에 올려 보내. 하하하!”

족장이 기분 좋은 듯 웃었다.

“쵸 디엔!”

족장이 누군가를 불렀다.

“네!”

족장과 함께 마차를 타고 오면서 적양팔식을 배웠던 사내가 뒤로 다가와 시립했다.

족장이 아걸을 쳐다보면서 말했다.

“이놈 이름은 정달(鄭撻)이야. 중원식 이름이지. 우리는 쵸 디엔이라고 불렀는데, 쵸 디엔이 무슨 뜻인지 아나? 미친개라는 뜻이야. 하하! 정달. 쵸 디엔. 쵸 디엔!”

“네!”

“지금부터 내 칼을 잘 봐라. 똑똑히 기억해. 내가 죽으면 네가 족장이다. 넌 이 싸움에 개입하지 말고 살아서 돌아가라. 돌아가서 다오 푼 라야를 전해!”

“넷!”

“한 사람은 살려 보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데.”

족장이 아걸을 보며 말했다.

아걸이 족장을 봤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고맙군. 그런다고 내가 너한테 진다는 뜻은 아니야.”

스슷!

족장이 옆으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휘릭! 휘릭! 휘리릭!

아걸도 반철도를 휘둘렀다.

아걸의 칼에는 진기가 담겨 있지 않다. 그래서 반철도의 무게가 손에 고스란히 얹혔다. 칼을 휘두르는 모습이 능숙하면서도 힘들어 보인다.

족장의 눈에 기광이 번뜩였다.

쉽게 들어갈 수 없다. 아걸은 언제 어느 방향으로든 칼을 뻗어 낼 수 있다.

아걸은 전혀 싸움을 모르는 사람처럼 바싹 긴장해 있다.

긴장한 것이 아니다. 근육을 적당하게 당겼다가 풀어주기를 반복한다. 반철도가 밖으로 뻗어 나갈 때는 당겨 주고, 안으로 끌어들일 때는 풀어 준다.

난생처음 보는 이상한 도법이다.

팟! 파팟! 파아앗!

족장은 검에 진기를 주입했다.

검신에서 화끈한 열기가 치솟았다. 검에 진기가 밀집되면서 마찰까지 일으켰는데 뜨거운 열기가 피어난다.

쒜에에엑!

족장이 검을 휘두르면서 아걸을 향해 쏘아 왔다.

“덩 남 푼 트라오!”

족장이 우렁차게 소리쳤다.

족장은 뒤에서 지켜보고 있는 미친개에게 도초를 알려 주고 있다. 적양팔식이 아닌 다오 푼 라야를 펼친다.

“회류도!”

아걸도 소리쳤다.

족장에게 초식을 알려 주는 것이 아니다. 뒤에 있는 미친개, 쵸 디엔에게 말해 준다. 적어도 ‘덩 남 푼 트라오’라는 초식이 어떤 초식과 어떤 식으로 어울렸는지는 알려 주려는 것이다.

패애애애앵!

반철도가 팽그르르 돌면서 족장의 검에 마주쳐 갔다.

삼십오 대 문주의 회륜도가 오랜만에 펼쳐졌다.

아걸은 자신의 칼을 펼치지 않았다. 그 칼은 촌각 만에 승부를 끌어낸다. 족장의 무공이 적양팔식이라고 하니, 여덟 번의 공격을 받아 줄 생각이다.

용암이 분출하듯이 확 쏟아져 나오는 검을 빙빙 휘도는 칼이 부딪쳐 간다.

까앙!

칼과 검이 부딪치며 허공에서 격렬하게 부딪쳤다.

치솟는 용암 대 회전하며 내리꽂히는 송곳의 대결이다.

츄아아악!

족장이 신형을 퉁겨 올려서 허공으로 쑥 솟구쳤다. 동시에 두 팔을 좌우로 쫙 벌리더니 하늘, 천중을 향해 두 손을 모았다.

촤아아악!

검에서 검기가 분출되어 아름다운 무지개를 일으켰다. 하지만 무지개는 곧 살기로 변해서 지상을 내리 덮쳤다. 뜨거운 불길이 온 세상을 뒤덮었다.

“느곤 루아 바오 푸 바우 트로이!”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검이 아걸의 전신을 뒤덮었다.

“십이살환도!”

아걸은 구대 문주의 십이살환도로 상대했다.

상대방의 검초는 마치 불길이 하늘을 뒤덮는 느낌을 일으킨다. 그래서 사방을 넓게 방어할 수 있고, 또 역공을 취할 수 있는 십이살환도를 썼다.

까앙! 깡깡깡! 까아앙! 까앙! 깡깡!

두 사람은 순식간에 이십여 번이나 격돌했다.

내리치는 칼과 올려 치는 칼이 부딪쳤다.

검과 칼이 부딪치는데 하늘에서 떨어진 바위와 땅에 굳건히 박힌 바위가 부딪힌 듯한 굉음이 터졌다.

저게 과연 인간이 펼친 무공인가?

눈으로 직접 보고도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강렬한 울림이 터졌다.

주르르!

반철도를 잡은 손에서 붉은 핏물이 흘러내렸다.

손아귀가 찢어졌다. 아직도 반철도를 굳게 움켜쥐고 있지만, 뚝뚝 떨어지는 핏물을 막지는 못했다.

족장도 같은 상황이다. 검을 잡은 손에서 핏물이 흘러내려 땅에 똑똑 떨어진다.

“……칼도 강하고, 내공도 강하군.”

“그게 검이 아니라 남만인의 칼이었으면 더 좋았을 텐데, 아쉽군.”

“지금까지 펼친 칼, 네 칼이 아니지?”

아걸이 고개를 끄덕였다.

“잠깐 기다리지. 쿅 송 밭 호아 당 디엔 라! 보이 이오 드렌 비엔 루아!”

족장이 연신 초식을 말하면서 칼을 휘둘렀다.

휘릭! 휘리리릭! 휘릭!

순식간에 다섯 초식이 지나갔다.

아걸은 족장이 말하는 초식 명칭은 알아듣지 못했다. 하지만 적양팔식이라는 말을 염두에 두면 족장의 검초가 대충 어떤 모습을 띠는지 눈에 보였다.

지금까지가 적양칠식이다.

진기를 있는 대로 끌어모아서 일격에 터트리는 수법은 성검문의 잠기일력타와 흡사하다.

적양칠식은 한 발 더 나간다. 내 몸을 죽이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전신을 내던진다. 상대방의 병기를 몸으로 붙잡는다. 그리고 검을 찔러 넣는다.

잠기일력타에 이어서 곧바로 동귀어진이 펼쳐진다.

이게 무공인가? 적어도 심신을 올바르게 한다거나, 육신을 건강하게 만드는 무공은 아니다. 오직 싸움에 치중해서 죽음만을 쳐다보는 처절한 전투 무술이다.

“휴우!”

족장이 차분하게 숨을 골랐다.

“마지막은?”

“뇻 디엔.”

쵸 디엔이 답했다.

족장은 이미 죽음을 예감했다.

아걸이 자신의 칼이 아닌 다른 칼로 적양팔식 중 일식과 이식을 막아 냈을 때, 승산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

계속 싸울까? 그래도 아걸은 받아 줄 것 같다.

족장은 싸움을 이어가지 않았다. 지금까지만 해도 대우를 충분히 받았다. 계속 무리한 싸움을 요구하는 것은 무인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중원 무인 따위에게 예의를 지키고 싶은 생각은 없다. 하지만 아걸에게는 해 주고 싶다.

그래서 허공에 오 초를 흘려버렸다.

족장이 말했다.

“그래. 뇻 디엔. 이걸 본 즉시 바로 떠나.”

“네!”

쵸 디엔이 대답했다

“고맙다!”

족장은 소리를 버럭 지르면서 아걸을 향해 쏘아 왔다.

아걸은 움직이지 않았다. 조용히 반철도를 휘휘 휘돌리면서 족장이 다가오기를 기다렸다.

츄아아악!

족장이 이번에 펼친 무공은 대사형의 일탄십검과 흡사하다.

족장의 무공은 중원 무공과는 전혀 상관없다. 남만 깊은 오지에서 자생한 무학이다. 그런데도 중원 무학중 최고라는 무공들이 섞여 있다.

아걸은 이 순간 퍼뜩 생각 하나를 떠올렸다.

인간이 찾아낸 모든 무공은 극점에 이르면 모두 공통적인 형태를 띤다.

‘강한 무공’ 혹은 ‘강한 칼’에는 특정한 요소가 있다.

이런 요소를 중원 여러 문파가 사용한다. 초식이나 병기는 달라도 요점은 같다.

족장의 뇻 디엔과 사형의 일탄십검이 부딪치면 좋은 승부가 되지 않을까? 아니다. 가장 재미없는 승부가 된다. 두 사람 모두 살아남지 못할 테니까.

달라도 요점은 같다.

쒜엥에에엑!

족장의 검이 어느새 아걸을 바짝 따라붙었다. 자석에 이끌린 듯 몸으로 빨려들었다. 그리고 순식간에 모든 변화가 한 점으로 응축되어 살을 가른다.

아걸의 몸이 족장의 검에 갈라지는 것처럼 보였다.

순간, 아걸이 몸을 살짝 비틀었다. 족장의 칼을 실낱같은 차이로 흘려보냈다. 그리고 그 순간, 아걸의 몸이 족장이 휘도는 방향과는 정반대로 움직였다.

슈욱! 퍼억!

수평으로 뻗친 칼이 족장이 뒤통수를 가격했다.

파앗!

족장은 쏘아져 오던 탄력을 이기지 못하고 계속 앞으로 달려갔다. 그러다가 풀썩 쓰러졌다.

쵸 디엔이 두 손 모아 읍했다.

쓰러진 족장에게, 아걸에게.

그는 신형을 쏘아 냈다. 족장의 유언을 받들어서 남만으로 돌아가고 있다.

다른 자들은 돌아갈 생각이 없다.

족장이 죽고 한 사람이 고향으로 떠났는데도 남은 사람들 눈에는 투지가 불타오른다.

“전멸은 있어도!”

“후퇴는 없다!”

누군가가 선창하고, 나머지가 따라서 외쳤다.

스읏! 슷! 스으읏!

그들이 아걸을 노리고 가까이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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