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5화. 第四十七章 아방(我方: 내 편) (5)
조위는 아들 조경이 아걸에게 죽었으니 어떻게든 복수를 해야 낯을 들고 다닐 수 있다. 흉수를 알면서도 내버려 둔다면 장군가 체면이 땅에 떨어진다.
어쨌든 조 장군은 장군가나 전보영을 건드리지 않고 아걸을 공격하는 데 성공했다.
그런데 문제가 일어났다.
이 싸움에서 아걸이 죽었다면 아무 문제도 없다. 가장 깔끔하게 모든 일이 처리된다.
조 장군은 아들 복수를 했고, 공격에 동원된 사람들은 장군가 무인으로 대체된다. 이백 명이 공격한 것이 아니라 한 명이 가서 격돌한 것으로 각색된다.
그런데 아걸이 죽지 않고 살았다.
조위 장군의 숙제가 아직 풀리지 않았다.
하지만 조 장군은 잃은 것도 없다. 이번 공격에서 잃은 것은 딱 한 명, 이강이라는 자뿐이다.
조 장군은 이번 공격을 굳이 전보영이나 장군가에서 주도했다고 말할 필요가 없다. 반대로 허도기가 담당하던 포로들이 탈출했으니 책임을 묻겠다고 나설 수도 있다.
조경의 복수는 사적인 일이지만 포로가 탈출한 일은 공적인 일이다. 아주 중요한 사안이다.
아걸에 대해서는 달리 손을 쓰면 된다.
당장 오늘 입궐해서 황상에게 토족 탈출 건과 공부 책임론을 들먹일 수도 있다.
상당히 난감한 일이다. 하지만 큰 타격은 없다.
기껏해야 십오 년 전에 잡아 놓은 포로들이 탈출하다가 무림인과 싸웠고, 죽은 것뿐이다. 포로를 지키지 못한 책임을 묻는다고 해도 훈계 정도다.
조 장군은 아무것도 하지 않을 것이다.
자신도 이제 조경 장군의 죽음에 대해서 침묵할 수밖에 없다. 어쨌든 토족이 탈출했으니까.
결국, 조 장군도 자신도 이번 싸움에서는 얻은 것은 없고 잃은 것만 많다.
조 장군은 아들과 왜살을 잃었다.
자신은 토족을 잃었다. 그 와중에 적위군이 사라졌고, 진개가 팔을 잃었다.
조경을 죽여서 선제공격을 가할 때까지는 좋았는데, 그 후부터는 계속 손해만 봤다. 얻은 것이라고는 왜살을 죽인 것뿐인데, 성에 차지 않는다.
무엇보다도 조위가 토족을 이용했다는 사실이 매우 중요하다.
조위가 예상외로 자신에 대해서 깊이 알고 있다는 말이 된다. 이미 속속들이 다 꿰고 있다는 엄포다. 다른 힘들도 움직이려고 들썩거리기만 하면 눌러 버리겠다는 공갈이다.
그럴 수 있다. 진공부에 스며든 간자가 어디 한둘인가.
조위 장군은 용장, 맹장이 아니다. 전형적인 지장이다. 무력으로 전쟁을 하지 않고, 병법으로 대결한다. 다른 사람이 예측할 수 없는 수를 아주 쉽게 쓴다.
조위 장군은 싸우는 법을 너무 잘 안다.
남만 정벌에도 동행했고, 북벌에도 따라가 봐서 얼마나 속이 깊은 능구렁이인지 잘 안다.
조 장군이 지장이라는 점에서 자신을 간파하고 있다는 것은 매우 경계해야 할 일이다.
“그런데.”
허도기가 의자에서 일어나 대청을 걸었다.
“상을 먹는 게 아니었어. 왜살 그놈을 죽이는 게 아니었어. 후후후! 제대로 걸렸단 말이야.”
몇 번을 고쳐서 생각해 봐도 왜살을 죽인 게 마음에 걸린다.
근본적으로 어디서부터 일이 꼬였는지 살펴봤다. 중간에 벌어진 일들을 꼼꼼히 되짚었다.
그러자 조위가 던진 상(象)을 덜컥 먹어 버린 일이 턱 나타났다.
조위 장군이 왜 왜살을 내주었을까? 물론 왜살이 죽었기 때문에 전보영이 움직일 때 의심하지 않았다. 토족을 끌어내도 전혀 알지 못했다.
하지만 토족을 멸살하기 위해서 왜살을 버린다는 게 아무래도 믿기지 않는다.
‘분신이나 다름없는 자를 죽음으로 내몰았다. 왜?’
조위가 왜살을 내준 이유를 모르겠다. 아무리 생각해도 왜살을 죽일 필요가 없었다. 그렇다면 일이 끝난 게 아니다. 조위의 공격은 지금, 이 순간에도 진행되고 있다. 왜살의 죽음이 이해되는 상황이 나올 때 계략도 끝난다.
“후후! 조 장군이 상을 버렸다고 생각했는데, 상이 아니라 독이었어. 전보영에서 차(車) 하나를 떼어 냈다고 생각했는데, 내 차를 내주고 말았고. 조위. 조위. 이 여우 같은 놈. 큿큿……!”
허도기는 창가로 가서 밖을 쳐다봤다.
허도기는 근 한 시진 동안이나 창밖을 쳐다봤다.
처음에는 깊은 생각에 몰입했지만, 느리게 흘러가는 구름을 보자 일체 잡념이 사라졌다.
그렇다. 아직 싸움 중이다. 이 싸움은 둘 중 한 명이 완전히 무너질 때까지는 끝나지 않는다. 조위가 이미 그런 마음으로 싸움을 벌이고 있다.
허도기는 여전히 창밖을 보면서 말했다.
“밖에 누구냐?”
“네. 장소(張小)입니다.”
대답이 들려왔다.
길거리 노예상에게서 은자 닷 냥에 산 아이인데, 무척 야무져서 곁에 두고 있다.
“가서 정동 사람들을 데려와라.”
“네.”
장소가 대답하고는 총총걸음으로 사라졌다.
드르륵!
허도기는 책상으로 돌아와서 서랍을 열었다.
서랍 속에는 두루마리 서류가 하나 가득 들어 있었다.
귀적칠흔이 암암리에 전보영을 관찰하며 조사해 온 것으로 십분 믿을 수 있다.
“후후, 전쟁 중이라면 망설일 이유가 없지. 그럼 다음 수는 이걸로 할까?”
허도기는 종이를 보면서 싱긋 웃었다.
* * *
“모셔 왔습니다.”
밖에서 호위 무인이 말했다.
“들여보내.”
허도기는 두루마리 서류를 하나씩 책상 위에 올려놓으며 말했다.
드륵!
문이 열리고, 땀 냄새를 풀풀 풍기면서 사내들이 우르르 걸어 들어왔다.
정동 무인들이다.
정동과 취화원의 싸움에서 목숨을 건진 자들이 그를 찾아왔다.
허도기는 이들을 다시 수련시켰다. 서리형개가 야무지게 수련을 시킨 탓에 더 손 볼 곳이 없다. 약간 부족한 부분, 잔인한 살심과 치명적인 절초 하나를 전수했다.
탄명저주공(呑命咀呪功)!
사공이다.
탄명저주공을 펼치면 일시 모든 감각이 마비된다. 밝은 빛에 노출되었을 때처럼 눈이 멀고, 굉음을 들었을 때처럼 귀가 먹먹해진다. 후각도 잃는다.
그렇다고 대단한 공부는 아니다.
여기까지 이르는 데는 독분(毒紛)의 도움을 받는다. 일정 범위에 있는 사람이 모두 똑같은 영향을 받는다. 정동 무인도, 상대방도 같은 처지가 된다.
그래서 정동 무인은 독을 하나 더 복용한다.
독으로 독을 짓누르면서 감각을 일깨운다. 멀었던 눈을 되돌리고, 귀를 열어 준다.
그런 후, 일격필살 공격을 가한다.
물론 효과는 대단하다. 탄명저주공을 펼치면 십 중 십 상대방을 쓰러트릴 수 있다. 독으로 상황을 유도하기 때문에 알고 있는 사람도 당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두 번째 복용한 독은 대단히 독하다.
첫 번째 독을 이겨 내고 다시 감각을 찾아온다는 게 쉬운 일인가. 전신 신경을 박박 긁어놓는다. 독성이 얼마나 강한지 탄명저주공을 펼치고 나면 단숨에 이십 년은 늙어 버린다고 한다. 그만큼 몰골이 형편없어진다.
굳이 표현하자면 탄명저주공을 펼칠 때마다 사약을 한 사발씩 들이켜는 것과 같다.
처음은 용케 버틸 수 있다. 두 번째도 운이 좋으면 버텨 낸다. 하지만 세 번째는 매우 위험하고, 네 번째는 어김없이 피를 토하면서 절명한다.
목숨을 갉아먹으면서 펼치는 저주의 무공이 탄명저주공이다.
현재, 정동 무인들은 그들보다 월등히 강한 자도 꺾을 수 있다. 서리형개나 서리가헌도 공격할 수 있다. 거짓말이 아니다. 이들 중 네 명이 연속해서 탄명저주공을 펼치면서 공격한다면 일홀문도 무너질 것이다.
허도기는 그들을 쓱 훑어보았다.
“탄명은 쓸만하더냐?”
“넷! 죽을힘을 다해서 수련했습니다!”
정동 무인들의 눈에서 새파란 안광이 펄펄 피어났다.
“임무를 주려고 불렀다.”
“넷!”
“이번 임무는 굉장히 어려워. 아마도 너희 중 절반은 돌아오지 못할 것이다.”
“…….”
“매우 위험한 일이니, 지금이라도 하고 싶지 않은 자는 빠져도 좋아. 현재 너희는 내 식구가 아니지. 그러니 어떤 강요도 하지 않는다. 부탁도 하지 않아. 하고 싶은 사람만 해.”
물러서는 사람은 없었다.
허도기는 책상 위에 올려진 두루마리 서류를 툭 건드렸다.
“열한 개다. 하나씩 가져가.”
정동 무인들은 앞에 섰던 사람부터 순서대로 책상으로 다가가서 두루마리를 집어 들었다.
정동 무인은 모두 서른두 명이다. 그들 중 열한 명이 두루마리를 집었다.
스스로 선택한 것이 아니다. 허도기는 이들에게 순번을 정해 주었다. 어떤 일이 생기면 일의 경중을 따지지 말고 순번에 의해서 행하게 했다.
“열한 명이 앞을 치고, 스물한 명이 뒤를 봐. 앞에서 손해를 봤다 싶으면 즉시 투입해. 너희가 배운 대로만 움직이면 능히 삼 대 일의 싸움이 될 테니, 누구라도 죽일 수 있어.”
“넷!”
정동 무인들이 힘차게 대답했다.
“너희 중 살아 돌아올 자가 몇이나 될지 모르겠는데, 어차피 너희도 칼 밥을 계속 먹겠다고 날 찾아온 거 아니더냐. 그럼 한 번쯤은 목숨을 걸어.”
“알겠습니다!”
정동 무인들이 각오했다는 듯 이를 악물며 답했다.
“이번 일을 마치고 돌아오면 내 식구로 만들어 주지. 대충 일이 년만 수련하면 소축십검 위치에 오를 수 있을 거다. 내 말을 믿어. 내가 만들면 그렇게 돼.”
“넷! 감사합니다!”
허도기는 그만 나가라는 듯 손을 저었다.
정동 무인들이 일제히 읍을 취해 보인 후, 뒷걸음질로 대청을 빠져나왔다.
정동 무인들은 밤을 새워서 달려갈 것이다.
저들은 이미 서신을 봤을 것이고, 자신이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도 알았을 것이다.
두루마리 안에 적힌 자들은 전원 암살된다.
허도기와 일체 관계가 없는 정동 무인들이 공격하는 것이니 자신이 꼬투리를 잡힐 우려도 없다.
전보영주 탁호를 비롯한 전보영 삼부주, 칠청사 등 열한 명이 하루아침에 암살된다.
전보영의 머리가 한날한시에 목이 떨어진다.
저들 정동 무인들이라면 충분히 해낼 수 있다. 정동 무인을 믿는 게 아니다. 탄명저주공을 믿는다. 그리고 서리형개가 심어 놓은 야망을 믿는다.
분에 넘치는 것을 얻으려는 자는 지독하게 잔인해진다.
전보영의 머리 열한 개가 떨어지면 조위 진영은 초상집 분위기가 될 것이다.
그러면 호황위가 나서지 않을 수 없다.
“후후후!”
허도기가 기분 좋게 웃었다.
더불어서 또 한 가지, 생각한 것이 있다. 이것 역시 매우 중요한 일이다.
아걸을 죽일 기회가 두 번 있었다.
한 번은 적랑대가 농간을 부리는 바람에 놓쳤고, 한 번은 손속에 사정을 베풀었다.
죽일 수 있는데 죽이지 않았다.
아걸쯤은 언제든 죽일 수 있다는 것을 확인했으니 섣불리 죽이지 말고 이용하자는 생각이었다.
나름대로 아주 훌륭한 도구가 되어 주었다.
다른 것은 고사하고 조경을 잡는 일을 해 준 것만 해도 대단히 훌륭하다.
그런데 이제 그 도구가 신경에 거슬린다.
자신이 도구를 이용한다고 생각했는데, 어디서부터 일이 틀어졌는가 살펴보니 놈을 살려 주었을 때부터다.
아걸이 나타나면서 소축십검이 죽기 시작했다.
성검문이 무림에 쌓아 놓은 기반도 와르르 무너지는 중이다. 아직은 버티고 있지만 이른 시일 안에 손보지 않으면 한물간 퇴물 취급받기에 십상이다.
사실, 소축십검이 죽은 것보다 민심이 성검문에 눈을 돌리기 시작한 게 더 아프다.
무림에서 일어난 일은 성검문에서 처리했어야 하는데, 놈이 살아서 이곳저곳을 마구 쑤신다. 알게 모르게 자신이 힘이 조금씩 사라져 가는 중이다.
일이 잘 풀리고 있었는데, 그놈이 나타난 후부터 어긋나기 시작했다.
아걸을 정리하는 게 틀어진 일을 바로잡는 지름길이다.
“내가 너무 멀리 돌아왔어.”
그는 자신이 무인이라는 사실을 잠시 잊었다. 아니, 그동안 까마득히 잊고 살았다.
이제 다시 무인이 될 때다.
성검문주, 아니, 일초단검 허도기로 돌아갈 때다.
“후후후!”
허도기는 웃었다.